Bachelor RAW novel - Chapter 789
789화. 이상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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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에 설치된 진법은 여전히 영기의 빛으로 반짝였지만 은빛 장막 귀퉁이의 점들은 훨씬 암담해져 잘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확인한 한립이 진법 모서리의 고계 영석들을 교체해 진법을 다시 발동시켰다. 팔각 진법 원반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색 빛의 장막이 더욱 선명해졌다.
한립은 말없이 은빛장막을 훑었지만 표정이 좋지 않았다. 갈라져 있던 네 개의 점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고 자신의 거처와 불과 4, 5백 리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가 오늘 밀실에서 나온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드디어 태일화청부 한 장을 제련하는데 성공했다. 둘째, 감시하기 위해 보낸 서금충 한 마리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라진 것이다. 갇힌 것인지 아니면 죽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동부에서 약초를 숙성시키는 임무를 맡은 제2의 원영을 통해 수사들을 대표하는 네 개의 점들이 한 곳에 모인 지 수일이 지났다는 것을 알아냈다.
‘설마 벌써 목표를 찾아냈단 말인가?’
한립은 침착하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고 은빛 장막 앞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삼일 밤낮을 주시했다. 그러나 빛의 반점은 제자리에 머물며 이동하거나 흩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흘 째 아침, 그가 탄식하며 일어났다.
“직접 움직여야겠구나.”
그들의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의 영지에서 사단이 난다면 동부에 숨어있는 것으로 화를 피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수백 리는 동급이나 그 이상 수사들에게는 눈 깜짝할 시간이면 도달 할 수 있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신의 거처에서 이렇게 가깝게 맴돌고 있는데 수련이라고 편히 마음 놓고 할 수 있겠는가?
만일 기회가 되면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가 되어 이득을 챙기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영계로 와서 연허기 수사들과 겨뤄 보니 적수는 못 되어도 목숨을 부지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는 판단이 섰던 것이다.
이제 뇌포와 뇌문구슬 그리고 태일 화청부까지 지니고 있으니 마음이 든든했다. 또한 영지를 침입한 네 명 모두 만롱주의 감시를 눈치 채지 못한 것으로 보아 그들 중 합체기 수사는 없었다.
한립은 생각을 마치고 푸른빛으로 변해 쏜살같이 동부를 벗어났다. 그의 둔광이 허공을 선회하는 동안 그가 주술을 외자 둔광의 색이 점점 흐릿해지면서 결국은 투명하게 변했다.
이런 은닉술은 태일화청부 보다는 못해도 상대가 의식으로 직접 수색하지 않으면 쉽게 발각되지 않았다.
한립은 방향을 틀어 은빛 장막에서 보았던 위치로 향했다.
그는 순식간에 그들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의로 속도를 늦춰 은신해가며 천천해 이동했기 때문에 그곳까지 가는데 일다경이나 걸렸다.
목표가 가까워지자 한립은 소리 없이 땅에 내려서 은은한 노란 광채를 뿜으며 땅 속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토둔술을 개선한 술법으로 무척 은밀했다.
그는 수결을 맺어 기운과 법력마저 지웠다. 그러나 지하에서 십여 리를 전진하던 한립이 돌연 멈추고 전방을 주시하다 소리 없이 주술을 외웠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금빛 점들이 반짝이며 몰려들었다.
웽!
풀어놓은 서금충들이 돌아와 그의 소매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들에게 붙여 보낸 의식 줄기들까지 회수한 한립의 표정이 묘해졌다.
“과연 무언가를 찾는 중이구나. 그런데 찾는 물건이 그런데 있다고? 상상도 못할 일이군. 허나 서금충을 발견하고 한 마리를 죽였다는 건 연허기 수사가 있다는 뜻이겠지.”
중얼중얼 거리며 한립이 상황을 정리했다.
파앗.
그가 손목의 저물탁을 스치자 보라색 부적이 영기의 빛 속에서 나타났다. 부적의 표면은 순금가루를 뿌려 놓은 듯 번뜩였고 빼곡한 은색 문자가 일렁였다. 그가 새롭게 제련해낸 태일화청부였다.
지난 번 부적과 달리 이번 태일화청부는 재료나 제련법을 금궐옥서에 쓰여 있는 그대로 따라했기에 지난 번의 불완전한 부적과는 차원이 달랐다.
연허기 수사들이 모여 있는 곳에 들키지 않고 접근할 자신이 없었기에 아까웠지만 공들여 제련한 태일화청부를 사용한 것이다. 부적을 사용하면 허상처럼 사라져 들킬 염려가 없기에 일단 네 수사의 신분이나 수행을 알아 볼 생각이었다.
부적이 제아무리 귀하다 해도 목숨 보다 중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번 태일화청부는 완성품이라 위력도 지난 번 보다 높았고 효력이 다하지 않는 한 연달아 사용 가능했다.
보라색 부적이 폭발해 은빛 문자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떠올랐고 한립 주위를 춤추듯 날아다녔다. 한립은 진지한 얼굴로 법결을 날렸다.
푸슉.
은빛 안개로 변한 주술 문자가 그를 뒤덮었다. 안개마저 사라진 후로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이런 차이가.’
한립은 순간적으로 이전의 태일화청부와 차이를 알아차렸다. 지금은 체내의 법보와 대량의 영력을 움직일 수 있었다.
아마 정말 법보를 꺼내거나 강력한 공법을 운용하면 부적의 효력이 스스로 사라져버리겠지만 이것만으로도 크게 만족스러웠다. 적어도 아무도 모를 때 선공을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그는 다시 앞으로 이동했고 몇 리를 날아가고 나서 점점 위쪽으로 떠올랐다.
한립은 소리 없이 지면 위에 나타나 주위를 살폈다. 그는 민둥민둥한 석산 어느 중턱에 서 있었다.
영맥이 흐르는 영지(靈地)라는 것을 감안하면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땅이 있다는 것은 무척 이상했다.
처음 영지를 돌아볼 때도 그것이 이상해 내려와 살펴보았는데 아무런 이상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때는 동부를 건립하는데 급급해 오래 고민하지 않고 돌아갔었다.
영맥이 흐르는 땅에서 이런 일이 흔한 것은 아니지만 아예 선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저들이 이곳에 머무는 것을 보니, 확실히 문제가 있는 곳이군.’
한립은 여러 정보를 떠올리며 산 정상을 향해 움직였다. 부적을 사용하니 정말 몸이 없는 것처럼 이동할 때도 저항이 없었다.
꼭대기에 이른 그는 움직임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이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한립이 눈썹을 끌어 올리며 의식을 퍼트렸다. 그리고 명청령안을 극도로 발휘해 평소에 볼 수 없던 것들을 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확실히 무언가 달랐다.
산의 사방에서 희미하게 빛다발 같은 것이 솟아올라 기괴한 사각형 진법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빛다발은 기이한 보물이 변화한 것인지 진법은 무형무색이었고 영기의 파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임시로 금제를 펼쳐 놓았구나. 미리 그들의 행적을 감시하고 있지 않았다면 이곳을 지나쳤다 해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야.’
그러나 금제는 숨겨주는 기능은 있어도 누군가의 침입을 막는 효과는 없었다. 진법에 조예가 깊은 한립은 바로 그것을 알아보고 수결을 맺은 다음 두려움 없이 몸을 날렸다.
진법은 한립과 접촉하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그는 저항 없이 산 속으로 스며들었다.
지하로 스무 장 넘게 들어가자 남색 빛덩이가 보였고 사람 머리통만한 빛덩이는 쉼 없이 회전하며 일곱 빛깔의 소용돌이 같은 것을 품고 있었다.
한립은 일단 신형을 멈추고 그것을 관찰하다 다가가려 했다. 그러다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그가 멈춘 순간, 남색 빛덩이 속의 소용돌이가 그의 존재를 감지해 사방으로 빛을 뿜어냈고 일곱 빛깔의 기운이 번뜩이며 그의 몸으로 흡수된 것이다.
‘이런!’
아무런 대비도 못한 한립은 식겁했고 온 몸이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의 영향권에 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갑자기 주위가 모호해지며 동시에 낯선 곳으로 순간이동을 하고 말았다.
그러자 부적의 효력이 깨져 그의 몸이 강제로 노출되었고 가슴에 보랏빛이 반짝이며 부적 한 장이 괴이하게 나타났다.
깜짝 놀란 그는 재빨리 손을 뻗어 태일화청부를 회수했다.
그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두 사람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자기 나타난 한립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당신은? 어찌 여기 있는 것이오!”
소리친 사내는 눈썹이 치켜 올라간 옹 수사였고, 다른 한 명은 뚱뚱한 금 수사였다.
한립이 신중을 기하기 위해 태일화청부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일곱 빛깔 기운에 휩싸였을 때 피를 토하며 정원을 소모했을 것이다.
일곱 빛깔 기운은 보기에는 불종의 영기의 빛과 비슷했지만 실은 일반 수사가 휩싸이면 전신의 법력이 무용지물이 되고 압력에 의해 몸이 피범벅이 되고 마는 무서운 기운이었다.
그래서 금제를 깨며 옹 수사, 금 수사의 사부들도 삼일 밤낮을 고생하고서야 겨우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한립은 두 사람을 보고 오히려 마음이 조금 놓였다. 연허기 수사가 없다면 둘이 협공해 와도 상대할 만 했다. 그래서 은닉술이 탄로 나고도 그들을 향해 소리 내어 미소 지었다.
“바깥의 금제도 두 분이 설치한 것이겠군요. 이곳에서 뭐하고 계신 것입니까? 제 기억대로라면 천연성의 규칙 중에 다른 이의 영지를 함부로 침범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을 텐데요. 사정이 있어 체류하고자 한다면 주인에게 허락을 구해야하고요. 그러지 않았다가 천위에게 발각되면 독편형(毒鞭刑)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알 텐데요.”
말을 하면서 한립의 얼굴이 싸늘해졌고 결코 선의를 갖고 나타난 것이 아님이 드러났다.
화신기 수사인 옹 수사와 금 수사도 독편형이라는 말에 안색이 일순 변했고, 금 수사가 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곧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한 수사, 이건 전부 오해입니다. 저와 옹 수사는 우연히 이곳을 발견했을 뿐이에요. 이곳을 지나다 산 위에서 잠시 쉬어가려는데 무슨 금제를 건드렸는지 이곳으로 전송되고 말았지 뭡니까!”
“금 형의 말을 제가 믿을 거라 여기십니까? 그건 그렇고 다른 두 분은 보이지 않으십니다.”
한립이 뒷짐을 지고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는 알 수 없는 신비한 공간 안에 들어와 있었다. 높이는 백 장에 너비는 일 리 정도였고 허공은 물론 사방에서 일곱 빛깔 기운이 반짝였다.
더욱 놀라운 점은 고공에 일곱 개의 태양처럼 커다란 우윳빛 빛덩이가 떠 있어 보는 사람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곱 개 빛덩이 중심에는 일곱 빛깔의 빛의 문이 뚫려있었다.
한립의 말을 듣고 놀란 옹 수사와 금 수사는 그의 시선이 빛의 문에 닿자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떻게 그것을 알아낸 것입니까?”
금 수사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두 분께서 저를 공격이라도 할 생각이십니까?”
“깜빡 잊고 말씀드리지 않은 것이 있는데 저는 이곳에 오기 전에 금제 속에 전음부를 여러 장 남겨두었습니다. 제게 무슨 일이 생기면 금제가 반응해 저의 대원들과 조무귀 선배님에게 날아가겠지요. 남의 영지에 침입해 임무를 수행 중인 동료를 해친다면 집법대가 관심을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 죄명이면 빙옥도산형(氷獄刀山刑)을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게다가 두 분이 힘을 합친다고 정말 저를 격살할 수 있다고 믿으시는 겁니까?”
한립은 전혀 화내는 기색 없이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조 천위님을 안다고?”
옹 수사는 뜨끔해서 의문을 표했다. 금 수사도 얼굴이 굳기는 매 한가지였다.
“저는 조 선배님이 친히 천연성에 데려온 수사입니다. 그러니 그 분을 모를 리 있겠습니까?”
한립의 유유자적한 태도에 옹 수사와 금 수사가 서로 눈치를 살폈다.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 하겠소! 이곳에는 우리 둘 뿐만 아니라 사문의 어른께서도 함께 하십니다. 그분들은 금제 깊은 곳을 살피고 계시고 우리는 명을 받아 이곳을 지키고 있지요. 겨우 화신기 수사가 그분들까지 막을 수는 없을 텐데요. 아무리 천연성 규정이 그렇다 해도 시시비비를 가릴 때나 그런 것이지, 누가 일개 화신기 수사를 위해 연허기 수사 둘에게 책잡히려 들겠소. 조무귀 선배님과 안다는 것도 겨우 안면이나 익힌 수준이겠지.”
잠시 침묵하던 옹 수사가 돌연 이렇게 말했다.
“그런가요? 그래서 옹 수사께서는 도박을 하려고 하십니까? 이런, 제가 이곳에 오기 전에 갑자기 수사가 생각나 전음부에 이름을 언급해 놓은 것을 어찌 합니까. 옹 수사께는 법력이 고강해 집법대의 추혼술도 두렵지 않은가 봅니다.”
한립이 웃음을 흘리며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만일 그들이 천연성 집법 천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몰래 숨어들 이유가 있었겠는가!
한립의 말에 옹 수사도 난색을 표했다. 일단 이 일이 외부에 알려지면 그는 어떻게든 연루되고 말 것이다. 그건 천위와 장로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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