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79
79화. 내기
“좋다, 그 내기 하지! 허나 네 놈이 노리는 것은 어떤 것이더냐?”
이 사조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내기를 승낙했다. 이번 내기는 정말 승산이 반반이라 여겨졌고 상대가 가진 내단을 갖고 싶다는 열망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중을 기하여 상대의 의중을 확인하고자 했다.
“허허. 빈도, 시주의 다른 보물들은 되었고 운이 따라 이번 내기에서 이긴다면 20년 내로 시주가 이전에 넘겨주신 것과 같은 크기의 철정(鐵精) 두 개를 제련해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 시주의 정화가 정순한 것은 칠대선파에 그 명성이 매우 크니 간단한 일이겠지요!”
“철정을 다시 두 개나 더?”
도사가 눈을 가늘게 뜨고 웃는데 간사한 분위기가 풍겨 나왔다. 반대로 이 사조의 안색은 너무 붉어져 곧 퍼지기라도 할 듯했다.
“도사 나부랭이가 날 종 부리듯 하겠다는 거냐!”
“어찌 그러겠습니까? 이기기만 하면 시주께선 아무 것도 하지 않으셔도 되지요. 게다가 무려 오(五) 급 요수의 내단입니다. 우리 수사들로 치면 결단기 초기나 마찬가지이니 그 가치야 말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도사는 자기 말에 자기가 탄복한 듯 고개를 끄덕여 댔다. 이 사조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다가 결국엔 한 손을 내밀었다.
“저번과 같은 규칙인 게지? 우선 어느 쪽이 더 많은 영초를 구해왔는지를 보고 그 다음 그 가치를 따진 후 마지막으로 금지에서 살아남은 제자들의 수를 따진다.”
“모든 것은 이전과 동일합니다.”
도사가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자신도 손을 뻗어 이 사조의 손바닥을 치려했다. 이로써 내기가 성립된 것이다.
‘짝!’
두 손바닥이 닿아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도사는 전혀 신나는 표정이 아니었고 오히려 울상이 되어버렸다. 그가 맞댄 것은 이 사조의 손이 아니라 공중에서 등장한 꾀죄죄한 손이었는데 기름과 때 같은 것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게 얼마나 오랫동안 씻지 않았는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게다가 손의 주인은 보이지도 않았다.
각자 본문의 사조들을 주시하던 제자들은 모두 이 괴이한 상황에 숨을 죽였다.
“궁 선배!”
도사와 이 사조가 동시에 안색이 파래져 외쳤다.
“선배는 무슨? 나나 너희가 모두 결단기에 있는 이들 아니더냐. 내 겨우 몇 년 먼저 경계에 들었을 뿐!”
나른한 목소리가 둘 사이에서 울리더니 이상한 복장을 한 인물의 형상이 점차 드러났다.
그는 수 촌 가량의 단발머리로 여러 번 꿰매 입은 듯한 남색 적삼을 입고 허리엔 색이 바란 푸른색 천 가방을 메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기름기와 때가 가득해 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몇 년이요? 수 백 년은 차이가 납니다.”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고 이 사조와 도사 모두 속으로 역시 이 사람이었구나 하며 쓴 웃음을 지었지만 겉으로는 불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이 괴인은 놀랄 만큼 나이가 많을 뿐 아니라 원영기에 이를 날이 머지않은 실력자였다.
그가 창조한 무형둔법(無形遁法)은 월국 수도계에 명성이 자자할 뿐 아니라 주변 수 개국 수도계에서도 알아주었다.
그가 어떤 연유로 원영기에 들지 못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근 100년간 그의 성격은 점점 더 괴상해졌다.
다른 결단기 수사들을 놀리는 것을 즐겨 했는데 겨우 수십 명 밖에 안 되는 월국 고계 수사들 중 그의 이런 희롱 때문에 곤란을 겪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러나 문 내에서는 사조 어르신으로 공경 받던 이들도 그 앞에선 방법이 없었다.
법력으로 따지면 결단기 수사들 중 으뜸이었고 그 배경으로 따져도 칠대선파 중 세력이 가장 강한 엄월종(掩月宗) 사람이었다.
그를 말리려면 각자 문파의 원영기 고인이라도 나서 훈계를 해야 했는데 이런 고인들도 대부분 그를 알아 굳이 사소한 일에 문제를 만들려 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니 수도계의 고층의 불량배이자 무뢰배처럼 되어버려 그를 만나면 그날 그의 기분이 좋기만을 바라야 했다.
안 그랬다간 고약한 장난에 쓴맛을 봐야 했다. 이런 연유로 선배 한 사람이 추가된 후로 줄곧 이 사조와 도사는 좌불안석이었다. 둘 다 그의 장난에 걸려 고생을 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기왕 내기를 하는데 너희 둘이면 너무 적적하지. 이 늙은이도 껴주는 게 어떻겠느냐?”
오늘 궁 선배가 기분이 괜찮은 지 두 사람이 끙끙 앓을 소리를 늘어놓았다.
“농담도 잘 하십니다. 저희 제자들이 어찌 엄월종의 훌륭한 인재들을 이기겠습니까? 해보지 않아도 질것이 당연하니 내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저희가 너무 불리합니다.”
도사가 꿋꿋이 웃음을 유지하며 궁 선배의 기분을 맞추려 했다. 말 한 마디 없이 눈까지 감아 버렸지만 이 사조도 이번만은 도사의 말에 스무 번은 더 찬성했다. 궁 노인이 눈을 굴리더니 웃음을 흘렸다.
“내가 그렇게 불공평한 일을 하겠느냐? 안심하거라. 그저 너희 두 문파의 성과를 합해 본 종을 뛰어넘기만 하면 본인이 진 것으로 하마. 그리고 너희 둘이 따로 승패를 가르면 될 것이야.”
“정말입니까?”
도사가 한 숨을 돌리며 확인 했다. 비록 궁 노인이 변덕스럽고 기분이 오락가락 하긴 했으나 한번 약속한 일은 지키지 않은 일이 없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 내기는 공평해 질 뿐 아니라 도사와 이 수사에게 조금 유리하기까지 했다.
“이 무형침(無形針) 부보(符寶) 세 장 걸지. 원래 한가할 때 제련해 본 것인데 어차피 난 무슨 후인도 없으니 내기에나 걸어야겠어.”
노인이 손을 들어 올리니 번쩍하며 일곱 가지 색깔의 바늘이 그려진 부적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 사조와 도사가 놀란 표정을 수습하지 못하며 서로 눈이 마주치자 상대의 눈에서 흐르는 욕망을 읽어낼 수 있었다.
무형침(無形針)은 두 사람조차 오래전부터 탐내던 것이었다.
이 법보(法寶)는 다섯 가지 금속의 정미와 궁 노인의 무형둔법(無形遁法)이 만나 만들어진 것으로 사람은 상했는데 그 원인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떠도는 말에 의하면 원영기 수사들도 무형침과 마주하면 골치가 아프다 하니 궁 노인이 마음껏 활개치고 다닐 수 있는 또 한 가지의 이유였다.
그 위력을 봉인한 무형침 부보(符寶)를 손에 넣으면 그 신형을 감추는 특수한 능력으로 결투 중 목숨을 구할 수도 있고 결단기 수사라면 이 부보 앞에 대응할 수 없는 기이한 물건이었다.
“그러시죠. 궁 선배 말씀에 따라 내기를 하겠습니다.”
도사가 곰곰이 따져 보아도 어긋나는 바가 없자 그의 조건을 받아 들였다. 이 사조도 승리 후 따라오는 막대한 보상에 이를 악물고 모른 척 했다.
짝!
짝!
3인이 서로 손을 마주치며 내기를 확정 지었다.
“선배님, 그런데 어찌 여기까지 오신 겝니까? 설마 이번 엄월종 원행은 선배님께서 인도하시는 건가요?”
막 셋이 흩어지려는데 도사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궁 노인을 향해 물었다.
“내가 애들을 이끌면 본 종에서 안심을 하겠어? 이번에 엄월종 제자들을 이끄는 것은 예상이 계집애다. 난 그저 따라 나와 각 문파에 쓸 만한 제자들이 있나 살피러 온 것이지.”
궁 선배가 황풍곡과 청허문 제자들을 훑어보았다.
“이제 보니 다 평범하구나, 아마 자질이 뛰어난 제자들은 아까워 내놓지 못했나 보군! 분명 보석을 다루듯이 품에 끼고 돌 것이야. 그러나 어려운 위기를 넘고 또 넘지 않고서야 그 자질이 얼마나 뛰어나든 일단 사마외도의 무리를 만나면 분명 순한 양처럼 도살당할 거란 것을 알아야지!”
노인은 각 문파의 방식이 마음에 안 드는지 불편한 기색을 내보였다. 그 앞에선 두 사람은 표정은 평안 했으나 속으론 크게 반박하고 있었다.
‘늙은 괴물이 말은 쉽게 하네! 우리 문파에서 천부적 자질을 지닌 제자를 받기가 그리 쉬운 일인 줄 아나? 이런 원행에 포함되면 거의 다 죽는 것이나 마찬가진데. 경험을 쌓는 것도 좋지만 다른 일도 많은데 꼭 혈금시련에 나가게 할 필요가 무어란 말인가? ’
단연히 이 말은 입 밖으로 내 궁 노인 면전에 쏟아 부을 수 없었다. 괜히 입을 잘못 놀리다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도사와 이 사조 모두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당연히 수도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온 만큼 누구의 주먹이 센 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던 탓이었다.
그때 양 문파의 제자들은 이 3인이 자신들의 원행을 두고 내기를 하는 것을 전부 듣고 있었다. 모두들 다 괴상한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앞에 나서 그들을 책망하는 이는 없었다.
그저 속으로만 화를 삭일뿐이었다. 저들은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그들 같은 수도계의 풋내기들을 죽일 수 있는 이들이었다.
이 사조는 나머지 두 사람이 떠나자 바로 몸을 돌려 황풍곡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싸늘한 어조로 한립 등 제자들이 놀랄만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너희의 생사를 두고 내기를 하여 너희를 무시 한다 여기겠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여러 구실을 빌어 해명을 했을 것이야. 허나 나는 항상 그럴 가치가 없다 여겨왔다. 오늘 내가 수선계의 진면목과 그 잔혹성에 대해 분명히 일러주겠다.
충고라 여기고 잘 듣거라. 수도계는 명문정파든 사마외도든 가릴 것 없이 모두 하늘을 거스르는 힘을 추구하고 강자는 번성하고 약자는 도태된다.
단지 정파의 공법은 성취가 느려 물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 거대한 강을 이루는 것과 같은 대신 법력이 온화할 뿐이지. 무슨 마도를 없애자는 기치를 걸고 나서는 소인배들은 대부분 가식을 떠는 위선자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사파의 마도인들은 비약적 성취를 이루고 그 법력이 강대하지만 수련 과정이 음험하고 악랄하기 이를 데 없고 성취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지.
알려지기는 천성적으로 제멋대로인 족속들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공법의 정진과 함께 점차 행동이 과격해 지고 인간의 본성을 잃어 피에 굶주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과 사 그리고 다른 수선문파들은 입으로야 무어라 떠들든 실질적으론 약육강식의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는 점에서 같다고 보면 된다. 수도자는 속세의 범인들과는 다르다.
그저 공법의 경지가 높은 수사란 이유로 저계의 수사는 벌레 취급할 수 있지. 말 한 마디가 심기를 거스른다고 상대를 죽여 버리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란 말이다.”
여기까지 말하고는 이 사조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의 말투로 보아 정파와 사파 모두를 탐탐치 않게 여기는 느낌이 들어 많은 제자들이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그 중에서도 담이 큰 제자 하나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사조, 우리 황풍곡은 정파입니까 아니면 사파입니까?”
“정파도 아니고 사파도 아니다. 월국 내 다른 여섯 개 문파도 마찬가지지.”
그는 입을 실룩거리며 차갑게 답했다.
“너희는 어리고 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월국 수도계의 역사에 대해 들은 바가 없을 것이다.
1,000년 전 월국도 다른 지역처럼 정사가 양립해 있었고 당시엔 칠대문파도 별 볼일 없는 작은 문파들에 불과했지.
생존을 위해 정사 양쪽 문파 담장 사이에 난 잡초처럼 지내고 있었는데 한 쪽이 세력이 커져 그곳에 붙으려 해도 우리 같은 작은 문파들은 그들 눈에 차지도 않았던 거야.
그러던 어느 날 그들 사이에 엄청난 일전이 벌어져 수많은 고수들이 남김없이 죽어나갔다. 그때 이후 정사의 모두 세력이 꺾여 우리 황풍곡 등 작은 문파들을 억제할 세력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다시 한참이 흘러 뜻밖에도 칠대선파가 연합해 둘 모두를 뿌리뽑아버렸지. 심지어 도통(道統)까지 제거해 다시는 제기할 싹을 남기지 않았지.
오늘 날 너희가 배우는 공법 중 대부분이 당시 정사의 양쪽 파가 남긴 전리품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기틀을 닦아 월국을 칠대선파가 독점하게 되었으니 일단 정파나 사파가 이곳을 침입하려 한다면 문파는 바로 단결해 그들을 격퇴시켜 발을 붙일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 칠대문파에서 전수되는 공법은 정파의 것도 있고 사파의 것도 있으며 일부는 독창적인 것도 있는 것이지. 진영 상에서 본다면 정파와 사파 사이 중립에 속한다.”
긴 이야기를 하면서 이 사조의 얼굴에 만족스런 표정이 떠올랐다.
“너희가 곡 내에 머물며 수련을 하고 기껏 나가봐야 월국의 손바닥만 한 땅을 돌아다니니 진정한 수선계를 접해보았을 리가 없고 더욱이 수선계의 명암과 피비린내 나는 일면을 마주했을 턱이 없겠지.
실제 다른 지역에선 정사는 물론이고 불(佛), 도(道), 유(儒), 마(魔), 요(妖) 다섯 개의 거대 수선류파가 뒤섞여 있어 그 혼란이 상상을 초월하지. 보물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물론 하루아침에 멸문을 당하는 일도 일상다반사이고 많은 지역에서 사마 쪽이 승기를 잡아 걸핏하면 사람을 죽여 대니 피비린내가 진동을 해.”
여기에 이르자 이 사조의 얼굴도 더 없이 진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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