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8
8화. 려사형
조금이라도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그가 패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한립은 이를 보니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저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어째서 나이 많은 사형들은 오지 않은 건가요? 대결에 참가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이렇게 떠들썩하면, 구경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 같은데, 모여 있는 이들이 모두 우리와 동년배인 어린 제자들뿐이군요.”
그는 거리낌 없이 물었다. 이 말을 들은 빠삭이는 갑자기 안색이 변해 이상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설마 내가 무슨 못할 말이라도 한 건가? ’
빠삭이는 의심스런 눈초리로 한립을 바라보고 말했다.
“한사형은 정말 문파가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군요. 아무리 폐관수련을 한다지만 스승님께서 한 번도 언급을 안 하셨단 말인가요?”
한립은 그 말을 듣고 단정하게 품을 뒤져 요패(腰牌) 하나를 꺼내 들어 빠삭이에게 보였다.
“아이구, 한사형 뭐 하러 이러십니까? 제가 설마 사형을 못 믿겠어요? 하하!”
그가 재빨리 요패를 훑어 진품임을 알아채고는 다시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이제 무슨 일인지 말해 줄 수 있겠지요?”
한립은 대답을 재촉하며 다시 물었다. 그는 그동안 무슨 일이 생겼는지 꼭 알고 싶었다.
“그럼요. 그럼요.”
알고 보니 몇 년간 칠현문과 아랑단 사이의 알력다툼이 더욱 심각해, 부유한 성과 읍을 차지하려는 분쟁이 십여 차례 벌어졌던 모양이다.
그 분쟁에서 적지 않은 제자들이 희생되었던 것이다. 아랑단의 무리는 모두 난폭해 성난 도적떼처럼 한 명, 한명이 모두 목숨을 걸고 달려들며 미쳐 날뛰었다.
그러나 칠현문의 제자들은 비록 무공은 높았지만, 그런 독한 면이 부족했다.
미친 말처럼 달려드는 아랑단의 모습을 본 제자들은 겁을 먹고 뒷걸음쳤고, 그렇다 보니 칠현문에서 사상자가 더욱 많이 나왔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칠현문의 몇몇 거물급 수장들은 본문 대부분의 내문제자들을 모두 파견해 혈투에 참여하게 하였다.
이는 문파의 기반이 되는 지역들은 지키기 위함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제자들이 강호의 잔혹함을 느끼고, 실전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결과적으로 그 후의 교전에서는 칠현문이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지만, 많은 수의 내문제자들이 끝내 문파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에 몇 문주들이 다시 전략을 바꾸었다. 내문제자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임무를 맡기거나 타 지방으로 떠나 얼마간 강호의 경험을 쌓은 후에야, 아랑단과의 교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제야 사상자가 크게 감소하였고, 2년 전부터 정식으로 문파의 내규로 자리 잡았다.
칠현문의 제자라면 누구나 스승의 가르침을 받은 직후, 강호로 나가 경험을 쌓은 후에야 문파에서 실질적인 직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나이가 좀 있는 제자라면 문파 밖으로 파견을 나갔거나 아랑단과 다투고 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강호에서 수행을 하고 있어야 했다.
본 산에는 문파를 지키는데 필수 인력을 제외하고는, 이제 스승의 가르침이 끝나지 않은 나이어린 제자들뿐이었다.
빠삭이의 이야기를 통해 한립은 노을산의 상황이 이전과는 크게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챙!
큰 울림과 함께 연검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조자령이 오른손을 붙잡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가쁜 숨을 들이쉬며 씩씩거렸다. 려사형의 신속하고 맹렬한 연환(連環) 도법을 피하지 못하고, 연검으로 맞서다가 엄청난 힘에 밀려 연검을 놓쳐 버린 것이다.
“려사형 과연 대단하십니다. 소제(小弟)가 패배를 인정합니다.”
조자령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예를 표했다. 사방에서 엄청난 환호성이 쏟아졌다.
“려사형, 역시 출중한 실력이오!”
“려사형, 도법이 대단합니다!”
“려사형, 소제에게도 한 수 가르침을 주십쇼!”
서로 앞다퉈 떠들어 대는 소리가 그들의 우상에게 향했다.
려사형이 검을 거두어 들였다. 얼굴에는 홍조가 떠올랐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오른 것인지 미간을 찌푸리며 담담히 이야기했다.
“그럼 전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먼저 물러가 보겠습니다.”
몸을 돌려 자리를 뜨는데도 빼어난 경공(輕功)을 선보이며, 절벽 옆 소나무 숲으로 사라졌다.
“와! 려사형은 도법뿐 아니라, 경공 역시 대단합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그를 칭찬하는 소리가 다시 웅성거리며 들려왔다.
“그런데 사제, 그러고 보니 제가 아직까지 사제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네요.”
한립이 자신의 옆에 서있는 빠삭이를 보고 물었다.
“제 이름은 김동보입니다. 허나 한사형은 그냥 빠삭이라 불러주시면 됩니다.”
빠삭이가 한립의 물음에 흥분해서 즉시 답했다. 보아하니 자신의 뒤 배경이 되어줄 거목이 자신의 진가를 알아보는 듯했다.
“앞으로 병이 들거나 부상을 당하면 날 찾아오십쇼. 제가 무료로 진료해 줄 테니까요.”
한립은 손을 흔들며 다시 시끄러워진 무리를 보다가 소나무 숲으로 사라졌다. 김동보는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한참을 생각해도 방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 * *
절벽을 떠나 한참 걸어왔음에도 여전히 그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들이 어떻게 안뚱과 장정귀 사이의 분란을 해결할 것인지는 별로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김동보가 그곳에서 멍하니 넋 놓고 서있던 것을 떠올리자, 한립은 박장대소 하고 싶은 마음이 참을 수 없이 샘솟았다.
그렇게 한참을 웃고 나니 기분이 훨씬 가벼워졌다. 신수곡에서의 울적했던 마음이 모두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그는 소나무 숲을 지나 발걸음이 가는 대로 걸어갔다. 더 외진 곳으로 들어가자 그 앞에 한 줄기 얕은 시냇물이 나타났다.
고개를 들어 뜨겁게 타오르는 해를 한번 보고는, 물을 좀 적시는 것도 좋은 생각 같았다.
몸을 굽혀 두 손을 서늘한 시냇물에 담갔을 때, 상류에서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한립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신음소리를 따라 올라가 보니 내문제자의 복식을 한 사람이 시냇가에 쓰러져 있었다.
그는 땅에 엎드려 온 몸을 꿈틀거렸고, 사지도 쉼 없이 떨리고 있었다.
한립은 단번에 그가 위급한 병증을 보이며, 지금 돕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가 품속에서 박달나무로 된 함을 꺼냈다. 그 안에서 윤이 나는 은침(銀針)을 꺼내어 등 뒤의 혈도에 깔끔하게 찔러 넣었다.
한립이 빠르게 등 뒤의 시침을 끝내고는, 몸을 뒤집어 가슴 쪽의 혈도에 침을 놓을 준비를 하였다.
몸을 돌리자 한립은 놀라서 숨을 들이 마실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누워있는 사람은 바로 방금 절벽에서 신위(神威)를 선보이며, 대전을 하던 려사형이었던 것이다.
한립은 방금 전 보았던 그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살펴봤다. 그는 방금 적을 물리치던 용맹하고 품위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본래의 차가운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고, 입에서는 끊임없이 하얀 거품이 일었다.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정신을 잃은 듯했다.
한립은 냉정함을 되찾고 손에 든 은침을 재빠르게 그의 몸에 꽂아 넣었다.
쉬지 않고 수십 개의 은침들을 놓고 마지막 시침까지 마치자 겨우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렇게 오직 시침만으로 위급한 환자를 구해내는 침술법은 그에게도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의 전신이 은침으로 뒤덮여 반짝일 때가 되어서야 려사형은 정신을 차리고 깨어났다.
“당신은…….”
그가 온 힘을 다해 무엇인가 말하려 했지만,
기력이 없어 미처 다 말하지 못했다.
“나는 신수곡 사람입니다. 말씀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일단 기력을 좀 찾아야 합니다. 난 그저 당신이 정신을 차리게 할 뿐이에요. 병증이 괴이하여 아마 문 대인님이 계셔야만 당신을 치료할 수 있을 듯한데. 안타깝게도 지금 본 산에 안 계십니다.”
한립이 그의 맥을 짚어보며 눈썹을 찡그렸다.
“약이…… 약…….”
려사형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떠올랐다. 입술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팔을 들고 무엇인가를 말하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몸에 병증을 치료할 약을 지니고 있는 건가요?”
한립은 바로 그의 의도를 파악해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물었다.
“음…….”
려사형은 한립이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에 머뭇거리지 않고 그의 몸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잡다한 물건들 속에서, 작은 하얀 색깔의 병을 찾아냈다. 이렇게 고급스러운 병에 단단히 밀봉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것이 려사형이 찾는 물건 일듯했다. 그가 병을 들고 려사형의 표정을 살폈다. 과연 그의 얼굴에는 희색이 가득해 최선을 다해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한립이 병의 마개를 열었는데, 의외로 약재의 향은 나지 않고 짙은 비린내가 훅 풍겨왔다.
조심스레 분홍색의 환을 한 알 꺼내었다. 그 환약은 보기에는 아름다운 색채를 가지고 있으나, 참기 힘든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이 환약인가요?”
한립은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 려사형은 다급하여 말을 꺼낼 틈도 없이 눈을 깜빡였다.
“추수환. 목란, 갈미화(蝎尾花), 백년남의란(百年藍蟻卵) 등 총 스물세 가지 보기 드문 약재들을 섞어 연단하면 표면에 붉은 기가 돌고, 기이하게도 비릿하면서도 쾨쾨한 냄새가 나죠. 이것을 복용하면 신체의 잠재된 능력을 무리해서 대폭 끌어올리게 되고, 이후의 수명을 대가로 현재의 공력을 한 층 높일 수 있어요. 내가 말한 게 맞나요?”
한립이 려사형을 차갑게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자 려사형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 핏기조차 남아 있지 낳았다. 그의 황망한 심경이 그대로 표출되었다.
“이 환약을 이미 한번 먹기 시작했으니, 일정한 시간마다 반드시 다시 복용해야 하며, 근육이 뽑히고 골수를 빨리는 듯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겠군요. 만약 먹지 않으면, 운이 좋으면 반신불수가 될 테고, 심하면 생명을 잃을 거요. 게다가 설령 적정한 시기마다 정시에 환약을 먹는다 해도, 십 년 이내에 생명력을 과도하게 끌어다 쓴 대가로 죽게 될 것입니다.”
한립은 거침없이 계속 말을 이었다.
한립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려사형은 한립의 말을 듣고 자신의 가장 숨기고 싶은 진실이 드러났다는 절망감을 얼굴에 드러냈다. 또한 눈빛에서는 대단히 의아하다는 뜻을 나타냈다.
“당신은 분명 크게 놀랐을 거예요. 이런 종류의 환약은 몹시 보기 힘든 것인데, 내가 어떻게 이것을 알아보는 가에 대해서요.”
한립이 그의 심경을 읽고는 말머리를 자신에게로 돌려왔다.
“사실 매우 간단해요. 나도 이런 종류의 환약을 먹어본 적이 있어요.”
엄청난 사실을 담고 있는 한립 한마디에 려사형은 크게 놀랐지만, 바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가 이 환약을 먹는 방식은 당신과 달라요. 난 겨우 단 한 알을 먹었을 뿐이에요. 그 한 알을 열 조각으로 나누어 복용했고, 매번 다른 약재의 약효를 끌어올리기 위한 부수적인 수단으로 활용했어요. 그러니 내 몸을 상하게 할 어떤 부작용도 생기지 않았어요. 이 환약의 생김새와 냄새 사이의 괴리가 너무 크기 때문에,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을 뿐이죠. 이전에는 줄곧 나를 제외하고는 이런 이상한 환약을 먹을 사람이 세상에 있겠는가 싶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그런 사람이 한 명 있었군요.”
말을 마친 한립은 그가 대단하면서도 가련하다는 눈빛으로 려사형을 쳐다보았다.
려사형은 그런 한립의 시선을 마주치기 싫다는 듯 두 눈을 감아버렸다. 그의 불안정하게 오르내리는 가슴만이 혼란스러운 그의 심경을 드러냈다.
“당신은 벌써 이 환약을 복용한지 몇 년은 되겠군요. 만약 다시 이 환약을 복용하지 않겠다면, 내가 문 대인께 해독약을 만들어 달라 부탁드릴 수도 있어요. 설령 완전히 이전의 수명을 되찾을 수는 없겠지만, 20~30년은 더 살 수 있을 겁니다. 허나 당신의 무공의 성취는 지켜낼 수 없겠죠. 만약에 당신이 계속해서 이 환약을 섭취하면 당신의 무공은 나날이 높아질 것이고, 지금보다 훨씬 빨리 성장하겠죠. 허나 발작의 정도로 보아 기껏해야 5~6년 밖에는 살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의 몸이니 당신이 선택해야 합니다. 이 환약을 다시 먹을 것인지, 아니면 버릴 것인지를요!”
려사형의 눈꺼풀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평소와는 다른 격렬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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