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81
81화. 금제를 깨다
구레나룻 사내는 한립에게도 매서운 눈길을 보냈는데 분명 경고를 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한립의 눈썹이 축 쳐졌다.
보아하니 소녀가 영수산에서 힘든 나날을 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구레나룻 사내는 자신이 눈 여겨 본 강자 중 1인으로 십삼 성 공력을 지녔다. 이런 자에게 걸렸으니 고생을 할 수도 있다.
허나 자신은 영수산 사람도 아니었고 어차피 금지에 들어가면 누구나 다 적이었다. 그러니 도발을 참을 생각도 없이 상대에게 확연한 비웃음을 날려주었다.
이런 행동에 구레나룻 사내가 열이 뻗쳤는지 얼굴로 피가 쏠렸다. 그러나 당장 한립을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 바로 고개를 돌려 소녀에게 또 무어라 소리쳤다.
그 소리에 근처에 있던 영수산 제자들이 다 놀라 그녀를 피하니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보던 한립도 화가 치솟으며 소녀가 가여운 마음이 더욱 커졌다. 그러나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구레나룻 사내의 말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때 각 문파 사조들의 상의가 드디어 끝났는지 각자의 제자들에게 돌아갔다. 그 후 모두 하늘을 날아올라 금지를 향해 출발했다.
생각보다 가까워서 원무국 국경 방향으로 날아가 광활한 황토 언덕 앞에 내려섰다. 이곳은 돌덩이들을 제외하면 풀 한 포기도 보이지 않아 사방을 둘러봐도 다 누런 색 천지였다.
‘설마 이곳이? ’
다른 이들처럼 한립도 이곳에 영초가 있으리라고는 믿겨지지 않았다. 다시 결단기 고인들이 모여 말을 나누더니 거검문에서 온 건장한 고인이 홀로 십여 걸음을 나섰다.
그가 왼손을 드니 황광이 번뜩였고 그것이 지면을 할퀴며 마치 누런 용이 한 마리 용솟음치듯 진흙의 흐름이 생겨났다. 거검문 고인의 손에서 그 황토는 거대한 검의 모습으로 변했다.
다른 손을 들어 흙검의 손잡이부터 검 끝까지 스치니 그의 손을 따라 빛이 흐르며 순식간에 회백색을 띠는 석 검이 되어버렸다.
흙을 돌로 만들어 버리는 중계 법술에 칠대문파 제자들도 탄성을 질렀다.
그러나 검을 만든 손은 쉬지 않고 바로 기합을 넣으며 정면을 향했는데 그 속도가 마치 별이 떨어지는 것과 같이 빨랐다.
이런 강력한 일격이 담긴 석검은 장장 수십 장을 날아갔고 그곳에서 무언가와 충돌했는지 검신을 부르르 떨며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동시에 검과 마주한 허공에 푸른 광이 빛나더니 거의 하늘을 덮어 버릴 기세로 퍼져나갔다. 그것을 지켜보던 제자들의 온 몸이 푸르게 보일 정도로 강력한 광채였다.
제자들을 불안하게 하며 청광이 용솟음치는데 엄청난 바람 소리와 함께 무수히 많은 풍인(風刃)들이 나타나 광포하게 휘몰아 쳤다.
그것들이 모여 만들어진 풍인의 장벽은 고개를 돌려도 끝이 없을 만큼 거대해서 도무지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 것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고 푸른빛만이 회오리바람 소리와 함께 너울 거렸다.
이 장벽을 마음대로 침입했다간 바로 능지처참이 어떤 기분인지 느끼게 될 것 같았다. 아마 천 갈래로 갈라진다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게 바로 금제(禁制)였다. 이렇게 엄청난 규모와 위용이라니 어떤 신비한 상고시대의 수사가 설치한 것인지 알고 싶어졌다.
황풍곡의 정문을 지키는 거대한 진은 이것과 비교하면 어린애 장난 수준에 불과했다. 그 때 거검문 고수가 고개를 저으며 돌아섰다.
이에 다른 사조들도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았으니 제자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렇게 매 한 시진마다 거검문 수사가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금제의 강약을 측정하기 위함이었는데 네 번째 석검이 뻗어나갔을 때 드디어 금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광채가 크게 줄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다른 여섯 명의 결단기 수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몸을 날렸다.
모두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는데 이 사조는 손을 펼치니 무슨 목각 같은 물건이 은광을 흩뿌리며 나타났고 도사는 스스로 뒤통수를 치고 입을 벌리는데 그 입안에서 청광이 분출돼 비검으로 변했다. 다른 다섯 명도 각각 휘황찬란한 물건들을 하나씩 구비했다.
분홍색의 댕기, 용 모양 지팡이, 묵색 거검, 홍광의 장도, 황광이 요란한 거대한 도장. 칠인칠색의 물건들이 다채로운 빛을 내뿜으며 호선을 그리며 풍인대진(風刃大陣)을 향해 쳐들어갔다.
그것들은 아마 그들이 결단기에 이르러 고된 제련을 거쳐 만들어낸 법보들일 것이다.
각 파의 제자들도 긴장을 하며 다른 축기기 선배들의 분부에 따라 모두 칠인의 뒤에 서 대열을 이루었다. 이제 금지로 들어갈 준비를 한 것이다.
‘콰과광!’
엄청난 울림과 함께 풍인과 칠색 법보가 날카롭게 대립했다. 다양한 불빛의 불똥들이 튀었고 괴상한 울림이 끊임없이 들려 지켜보는 제자들의 마음을 애타게 했다.
이 사조의 계척(戒尺)이 빙글빙글 돌며 그것이 뿜는 은광과 자체의 크기가 줄었다 늘었다 했다.
마치 그렇게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풍인들을 분쇄하고 있는 것이었다.
청색 비검은 이미 엄청난 크기의 교룡으로 변해 풍인들을 하나하나 잡아먹을 때마다 기괴하게 으르렁거렸다.
다른 다섯 법보도 제각기 재간을 부리는데 특히 천궐보 고인의 거대한 도장이 위세가 대단했다.
매번 풍인들을 눌러 으스러트릴 때마다 마치 작은 동산을 옮겨놓은 듯 거대해 졌고 우레와 같은 파괴음을 내다가 다시 자리를 옮길 때는 원래의 크기로 돌아왔다.
다만 날아가는 속도가 느려 조금 우둔해 보였다. 그 일곱 법기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데도 기세가 약해졌다는 풍인대진에 비해 아직도 부족했다.
매번 풍인의 장벽 안에서 반복하니 일곱 사조들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한 것이다.
두, 세 시진의 격렬한 저항에 사조들이 마치 비 오듯 땀을 쏟아냈고 법기들도 겨우 풍인을 압도하기 시작해 장벽에 원형 통로가 만들어졌다. 그 통로는 어두컴컴해 들어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어서 들어가거라! 얼마 버티지 못해!”
도사가 가장 먼저 소리를 질렀다. 그가 일곱 수사 중 법력이 가장 부족해 유수와 같이 땀을 분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자들도 이 소리에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앞 다투어 무리를 이뤄 통로 속으로 날아들었다.
모두 말은 안 했지만 표정이 굳은 것이 일단 금지에 진입하면 바로 생사대전이 시작되고 동문 사형제들이라 해도 바로 믿지 못할 상대가 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한립은 대열의 중후반 부에 위치해 앞에는 거검문의 제자들이 뒤에는 화도오 사람이 있었다.
통로는 그리 길지 않아 눈 깜짝할 사이에 출구로 튀어나왔다. 처음 출구를 나오자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데 빛이 보인다 하는 순간 이미 그의 종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 * *
짙은 회색의 질퍽한 지면과 끊임없이 기포가 끌어 오르는 물웅덩이 그리고 기괴하게 비틀린 수목들과 발밑의 이름 모를 핏빛 풀. 이것들이 코를 찌르는 이상한 냄새와 함께 한립이 감각을 되찾고 가장 먼저 본 장면이었다.
이런 이색적인 광경을 살필 사이도 없이 한립은 바로 경계하며 근처에 누가 없는 지 살폈다.
어쨌든 지금 가장 위험한 이들은 그와 동시에 금지에 진입한 다른 문파 제자들이었다.
운이 좋았는지 근처에는 한립을 제외하면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 한숨은 돌렸지만 완전히 경계는 풀 수 없어 그가 곧 한 손에는 부적을 쥐고 다른 손에는 금부자모인(金蚨子母刃)을 꺼내 만전을 기했다.
이제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이곳의 이상한 풍경을 살펴볼 수 있었다.
방금 이곳에 도착했으나 한립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금지 원행 전 관사들이 각 제자들에게 관련 자료를 나눠주었던 것이다.
자료상에는 누구나 금지에 들어서면 그 안에 설치된 또 다른 진법의 영향으로 금지 각처로 흩어진다. 다만 어디를 누구와 가게 될지는 순전히 각자의 운에 달려 있었다.
어떤 이는 가장 좋은 곳에 떨어져 눈을 뜨자마자 영초 서식지를 마주하게 되기도하고, 또 어떤 이는 바로 야수가 득실거리는 곳에 떨어지기도 한다.
정말 운이 없는 사람은 바로 절벽 같은 곳으로 보내져 절명하는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금 한립처럼 금지의 무난한 곳에 떨어져 스스로 약초를 찾아 헤매야 하는 경우가 가장 확률이 높다 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억지로 금제를 깨고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정식으로 들어온 자들이 아니니 다른 작은 진법들이 촉발되어 이런 의외의 효과를 불러오는 것이다.
한립은 신중히 도처를 살피며 동시에 자료에서 보았던 내용과 주변 풍경을 비교해 보았고 결국엔 유용한 정보를 떠올렸다.
그 자료는 이전에 금지에 다녀간 제자들의 기억을 토대로 한 것이라 새로 원행을 나선 이들에겐 큰 도움이 되었다.
‘오룡담(烏龍潭)은 금지 동북쪽에 위치, 수십 장 면적의 깊은 연못을 중심으로 방원 수 리에 부골화(腐骨花)와 사연수(蛇蜒樹) 등의 초목이 자생. 독약을 제조하는 용도로 쓰이나 가격은 높지 않음.
‘오룡담의 중심과 수변에는 십 년마다 한연초(寒烟草)가 자라나기도 함. 용도가 광범이 한 기초(奇草)로 채집 가능하다면 보상을 받을 수 있음. 주의할 점은 연못 깊은 곳에 일(一)급 하계 요수 한빙섬(寒氷蟾) 무리가 서식. 성정이 온화한 편이라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음.’
여러 번 자료를 되뇌다 보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금지의 중심으로 갈수록 진귀한 영초가 많았고 그것을 지키는 요수 무리도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오룡담은 조금 외각이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 보아 아주 외진 곳은 아니라 서두른다면 하루 정도면 금지의 중심부에 도착할 수 있다.
한립은 바로 튀어 올라 무성한 수풀 속 큰 나무를 골라 올라섰다. 그 꼭대기에서 사방을 바라보니 대략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연못의 남쪽으로 금지 중심부로 통하는 길이 나있어 그것을 살펴두었다. 그는 닉형술(匿形術)을 시전하고 조용히 걷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조심스러워서 조금 과해 보이기까지 했는데 한참을 가도 어떤 일도 없었다. 오룡담 주변에는 그 한 사람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자 한립도 팽팽히 당겼던 긴장의 끈을 점차 풀어놓았다.
앞을 막아서는 수많은 수목들을 지나 옥빛이 만연한 연못가가 나타났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 오래인 연못의 한기에 한립이 몸을 떨었다.
‘이곳이 오룡담이란 말이지? ’
연못은 그리 크다 할 수 없었는데 그 주변을 사연수들이 두르고 있었다.
수면은 보기만 해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여서 연못 주변부에는 얇은 얼음층이 생기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차가울 지는 분명했다.
이런 것들 보다는 연못 주변의 움푹 패인 지형에서 십여 개의 하얗고 보송보송한 풀들이 그의 눈길을 끌었다.
한 줄기에 잎이 다섯 개였고 전신이 새하얀 것이 은은히 기운을 내뿜었다. 그 조그만 풀이 풍기는 분위기가 꽤나 영초다웠다.
‘저게 바로 한연초구나! 자료에서 묘사된 거랑 같아.’
한립은 한연초를 확인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이 영초는 축기단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지만 막 금지에 들어서자마자 영초를 얻다니 좋은 증조가 아닌가!
이미 습관이 된 듯 좌우를 살피더니 막 발을 떼려는데 돌연 얼굴을 굳히며 다시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한립은 몸을 수풀 속에 숨기고는 좌측의 밀림을 주시했다.
곧 인영이 번뜩이며 남의인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수풀에서 걸어 나왔다.
복색으로 보아 천궐보 사람이었고 매우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것이 머리를 세 네 번은 돌리는 듯했다.
그는 습격에 대비하며 한연초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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