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99
99화. 의외의 사건
한립은 흑룡의 공격을 막으면서 슬쩍 소녀를 보더니 몰래 쓴웃음을 지었다. 원래는 계획대로 착실히 기다리고 있었다.
엄월종 제자들과 흑룡 사이의 일전을 흥미롭게 구경하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흑룡이 환골탈태를 해 자신을 기함하게 하더니 다음으로는 돌연 통로가 막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간 것이다.
통로가 막히면 누가 이기든 자신은 이곳에 갇히는 셈 아닌가! 흑룡과 소녀의 결투가 길어지더니 엄월종 여인의 패색이 짙어졌다.
고리 형태의 법보가 쉼 없이 흑룡을 공격해 들어갔으나 새로운 껍질을 걸친 요수의 방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무리 고리 법보가 강렬한 화염을 분출하거나 충돌해도 눈에 띌만한 상처를 낼 수 없었다.
그런데 흑룡의 반격은 더욱 거칠어져서 소녀를 쫓는 몸놀림이 더욱 사나워졌다. 심지어 방금 전에는 소녀를 절체절명의 위기까지 몰아넣는데 성공했다. 엄월종 사조라는 자가 지닌 중급 부적이 다양해서 한립도 견문을 넓히기는 했다. 무슨 토둔부(土遁符), 수뢰부(水牢符), 화조부(火鳥符) 등 그가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한 것들이 연달아 날아다녔다.
그녀가 요수의 공격에 당할 것 같은 순간마다 부적이 뿌려지면 기이한 효과를 발휘하며 위험에서 벗어나곤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살상력이 큰 부적은 없는 것인지 겨우겨우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겨우 저런 부적을 가지고 흑룡을 상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았다.
그녀와 흑룡 사이의 결전이 치열해 질수록 한립의 머릿속도 터져나갈 것 같았다. 통로만 막히지 않았어도 엄월종 사조가 죽든 말든 관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으로 통로가 증발해 버렸으니 그의 마음이 심란한 것도 당연했다.
엄월종 사조가 통로가 사라지는 금제의 술법을 보고 ‘소오행수미금법’이라 소리쳤던 것으로 보아 분명 이 금제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터였다.
한립은 저런 금법에 대해 전혀 몰랐으니 이곳에서 벗어날 유일한 희망은 저 소녀에게 달려있었다. 그러나 혹시나 소녀가 아직 비장의 한 수를 남겨두고 단 번에 흑룡을 처치하고 금제를 풀 수도 있기에 지금까지 버텨본 것이었다.
그런데 부적을 마구 뿌리며 절망에 찬 기색을 보이는 것을 보고는 어쩔 수 없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등장한 한립을 보고 소녀는 반가우면서도 정말 울분이 차올랐다. 지금까지 꼭꼭 숨어 있다가 이제야 나타났으니 말이다.
그러나 당장은 저 미친 듯 날뛰는 흑룡을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녀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바로 법보를 이용해 요수를 공격해 들어갔다. 한립은 요수의 공격을 막아낸 순간부터 울상을 하고 있었다. 멀리서 소녀와의 일전을 지켜볼 때는 그렇게 엄청나게 느껴지지 않던 위력이 직접 경험해 보니 살이 떨릴 정도였다.
금부자모인도 최상급 법기 중에서도 탁월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금빛이 흑룡에 근접 할 때 마다 저 갈고리 같은 발톱이나 꼬리에 맞아 사정없이 튕겨나가 버렸다.
수량으로 밀어 붙어 간신히 한 두 개가 흑룡의 몸까지 닿아도 겨우 하얀 흔적만을 남기고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흑룡의 모든 공격에 한립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발톱이나 꼬리가 날아 들든 심지어 새까만 물줄기를 분출하든 한립은 물 샐 틈 없이 방패를 이용해 막아냈다.
한립을 여러 번 죽을 위기에서 구해준 법기가 푹푹 패이고 있었다. 아마 이대로 가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 지 알 수 없었다.
빈번히 사용하는 물줄기의 위력이 이 정도인데 독액으로 추정되는 자색 액체는 얼마나 대단하단 말인가!
제대로 저항도 못해보고 죽어나간 엄월종 제자들과 그들의 법기가 떠올랐다. 흑룡과 맞붙을 때마다 경악을 금치 못하던 한립이 온전히 신법에 의지해 그 맹렬한 공격들을 흘려보냈다. 금부자모인의 칼날은 공격을 막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소녀가 제자들을 서둘러 내보낸 까닭이 있었다. 자신처럼 신법이 뛰어나지 않고서야 저 요수의 공격에서 버틸 수 있는 연기기 제자는 손에 꼽을 터였다.
그때 소녀의 주작환이 날아들어 한립에게 가해지던 부담을 줄여주었다. 저 법보에 호되게 당한 적이 있는 흑룡은 주작환 만은 경계하고 피했기 때문이다.
“이제야 기어 나오면 어떻게 하느냐! 조금만 일찍 나왔어도 저 짐승을 꺾을 기회가 있었을 것을!”
“당신에게 해를 당할까 두려워서 말입니다.”
법보를 조종하면서도 소녀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는데, 한립의 솔직한 답변에 그녀도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겉보기에는 어린 소녀에 불과했지만 자신의 친할머니 보다 나이가 많을 수도 있었다. 이런 노련한 자 앞에선 얕은 꾀를 부리기보다는 속 시원히 속내를 밝히는 것이 더 나았다.
상대는 결단기 수사로 자신과 배분 차이나 엄청났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점은 일부러 모른척해야 할 때였다. 어쨌든 법력을 소진한 그녀가 그리 두렵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나이도 이런 녀석이 그렇게 머리를 굴려서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지 모르겠구나!”
소녀가 울적한 표정으로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그러나 한립은 답하지 않고 속으로 생각할 뿐이었다.
‘머리를 조금만 덜 굴렸다면 벌써 수 백 번은 죽어나갔을 것이다!’
“저 뱀을 상처 입힐 방법이 있으면 뜸 들이지 말고 말하거라!”
소리를 좀 지르자 심경이 나아졌는지 이제 흑룡을 상대할 계책을 찾으려 했다. 그와의 합공에도 상황을 역전시킬 만한 뾰족한 수가 없자 소녀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있기는 하지만 저것을 잠시 묶어두어야 합니다. 절대 움직이지 못 하도록요!”
그가 방패를 이용해 흑룡의 물줄기를 막으며 쉼 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겨우 흑룡과의 거리를 벌린 그가 다급히 소리쳤다.
“좋다. 최후의 법력을 이용해 아주 잠시는 묶어 둘 수 있다. 그런데 그 방법이란 것은 믿을 만한 것이더냐?”
“위력이 엄청난 부보가 있습니다. 그 위력이라면 반드시 저 요수의 방어를 뚫을 수 있지요.”
한립은 정말 금광전 부보를 믿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부보?”
생각지도 못하게 황풍곡 녀석이 희귀한 물건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도 부보를 갖고 있긴 했지만 그 위력은 주작환에 미치지 못했다.
상대의 말투로 보아 정말 괴력을 발휘하는 부보를 갖고 있는 듯 했다. 기왕 상대의 전략을 알았으니 더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그녀는 바로 구결을 외워 주작환이 다시 한 번 요수를 옭아매도록 만들었다.
당연히 흑룡은 요동을 쳤지만 한립은 방패로 몸을 보호하고는 금광전 부보를 쥐고 가부좌를 틀었다.
일단 금광전 부보를 발동을 시키자 부보가 일촌 정도의 금색 벽돌이 되어 공중으로 떠올랐다. 동시에 한립 몸 안의 영력이 범람하듯 벽돌로 빨려 들어가 순식간에 삼분의 일이 사라져 버렸다. 이제 부보가 내뿜는 금빛은 너무 찬란해져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였다.
옆에서 전력을 다해 흑룡을 묶어두던 소녀가 떠오른 금광전을 확인하더니 원래 긴가민가하던 마음이 사라졌다.
황풍곡 녀석이 과장을 한 것이 아니라 정말 저 정도 부보라면 요수의 방어를 뚫고 들어갈 만 했던 것이다.
흑룡도 심상치 않은 위력을 감지했는지 두 발을 버둥거리며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거세졌다. 소녀의 주작환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어서! 곧 탈출한다!”
이에 한립도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부보를 향해 손가락을 휘둘렀다. 동시에 흑룡에게 날아들기 시작한 금광전은 어마어마한 크기로 변해 작은 동산이 움직이는 듯했다.
누가 봐도 엄청난 기세로 금광전이 흑룡을 내리누르려는데 요수가 입을 벌려 한립이 치를 떨었던 자색 단액(丹液)을 내뿜었다. 단액이 뿜어지자 놀랍게도 벽돌이 공중에서 멈춰 섰다.
소녀와 한립이 모두 경악했으나, 그는 금광전을 조종하느라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녀가 붉은 입술을 깨물며 품에서 노란 구슬을 꺼내 요수를 향해 날려보냈다.
‘펑’
그리 크지 않은 소리와 함께 흑룡의 머리 위에서 구슬이 터지자 잠시 후 노란 운무가 요수의 머리를 휘감았다. 놀란 흑룡이 으르렁거리며 동시에 자색 액체의 분출을 멈췄다.
자색 액체의 방해를 받지 않고 곧장 떨어져 내린 금광전은 요수의 머리를 내리누르며 세상이 놀랄만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그 후 거대한 빛이 지하 세계를 모두 감쌌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시야를 회복할 수 있었다. 다시 작아진 벽돌이 금빛으로 변해 한립에게로 돌아왔다.
공중에는 숨을 헐떡거리는 요수만이 남아있었다. 흑룡의 머리는 완전히 뭉개져 눈 한쪽은 어디로 날아가 버렸고 남아있는 나머지 눈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정말 참혹한 몰골이었다.
소녀가 신이나 저물대에서 수정으로 만든 병을 꺼내 들었다. 무어라 주술을 외며 수정 병의 입구를 흑룡을 향해 두니 그 안에서 검은 기운이 나와 요수의 전신을 감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흑룡과 완전히 똑같이 생긴 작은 녹색 뱀이 흑룡의 몸에서 뽑혀 나왔다.
뱀은 병에 들어가지 않으려 발톱을 새우고 발버둥 쳤지만 결국에는 서서히 병 안으로 흡수되었다.
병을 잘 봉하고 투명한 병 안의 갇힌 뱀을 쳐다보는 그녀의 얼굴에선 기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활짝 웃던 그녀가 완전히 숨이 끊어진 흑룡의 본체를 쳐다보고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가만히 그녀의 행동을 보던 한립은 흑룡의 원신(元神)이 어디에 쓰이는지는 모르나 소녀의 표정만으로도 무척 가치 있는 것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손을 뻗어 주작환을 회수하자 흑룡의 몸뚱이가 딱 한립의 눈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내가 원신을 거두었으니 뱀의 몸은 네게 남겨주마. 어쨌든 우리 둘이 함께 죽인 것이니!”
선심을 베푼다는 식으로 말하는 소녀의 모습에 한립을 울적하게 흑룡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말은 잘하네. 요수의 껍데기가 얼마나 단단한지 알면서 이렇게 나오시겠다. 망신 한 번 당해보라 이건가? ’
한립의 손에서 차가운 기운이 어리더니 은색의 거검이 손에 들렸다. 맨발의 사내에게서 빼앗은 법기였다.
두말 한 것 없이 거검을 휘두르니 놀랍게도 흑룡의 단단한 껍데기에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사실 보잘것없는 성과였지만 어쨌든 굳세기 이를 데 없는 흑룡의 껍데기를 뚫은 셈이었으니 옆에서 지켜보던 소녀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의 표정이 마음에 들어 그는 속으로 웃음을 흘리며 계속 작업을 해나가려 했다.
“잠깐! 그 검 좀 이리 내 보거라.”
정신을 차린 소녀가 느긋이 하는 말에 한립이 움찔했다.
“무엇을 걱정하는 게냐. 결단기 수사인 내가 접해보지 못한 보물이 거의 없는데 그저 모양이 특이해 살펴보려는 것이다.”
의심 어린 눈빛을 확인한 소녀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겉모습은 어렸으나 표정이나 말투에 위엄이 있어 그를 놀라게 만드는 소녀였다.
“확실히 이상하기는 합니다. 검을 손에 넣고 구동해 보려 했으나 도저히 다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방금 흑룡과의 일전에서 유용하게 사용했을 터인데요.”
소녀가 저렇게 까지 말하니 한립도 검을 내주며 자신의 궁금하던 바를 물었다.
긴장감 없는 그녀를 보니 여기서 어찌 빠져나갈 계획이 있음이 분명했다.
게다가 자신을 경계하지 않는 모습에서 그녀가 자신을 기습할 가능성은 낮았다.
“하하! 정말 네겐 과분한 물건이구나!”
소녀가 은색 검을 받아 살피더니 아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무슨 말이죠?”
이상한 기색을 감지하고는 한립이 자기도 모르게 대답을 재촉했다.
“별 건 아니고, 은검이 이리 날카로운 것은 법보를 제련할 때나 쓰는 은정(銀精)을 섞어 만들었기 때문이야. 게다가 그 비율도 적지 않아서 웬만한 법보에 버금가는 재질이란 말이지.”
“은정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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