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0)
배드 본 블러드-10화(10/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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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대련한 키누안은 정좌한 채로 안정을 취했다. 나는 입을 다문 채로 그를 가만히 지켜봤다.
‘키누안의 전투 기술…….’
내 예상이 맞았다. 키누안은 제국 교범에 없는 전투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루카, 방금 대련에서 뭘 느끼고 배웠지?”
키누안이 눈을 감은 채로 내게 물었다.
“뭐에 홀린 것 같았습니다. 제 몸이 통제에서 벗어나 멋대로 움직이는 느낌이었죠.”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내가 지금까지 배운 것은 철저하게 자신의 신체를 통제하는 방법이었다. 그게 피와 살로 된 육체든 기계로 만든 의체이든 말이다.
키누안과 대련하자, 자금까지 배운 기술이 무의미해지는 느낌이었다.
“아키에스 빅티마라고 부른다. 보통은 아키에스 전투술이라고 말하지.”
키누안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맞대고 있던 양 손가락의 떨림도 멎었다. 신경계 안정화가 끝났다는 뜻이다.
‘아키에스 전투술.’
나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의문이 더 커졌다.
“……생도가 되기 전에 배우신 거로군요.”
내 말에 키누안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나는 남들보다 서너 살 늦게 생도가 되었지. 당시에는 근위대의 소모가 심했던 터라 선별 기준이 느슨했거든.”
키누안의 말을 듣던 나는 의문을 정리해 입 밖으로 꺼냈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알기론 아키에스 전투술은 길거리 부랑배나 쓰는 호신술입니다. 제대로 된 전투술이 아니죠.”
나는 최대한 순화해서 말했다. 속된 말로 삼류나 쓰는 잡기술이다.
“자네 말이 맞아. 사람들은 하층 구역의 갱들이나 익히는 전투술 중 하나 정도로만 알고 있지. 지금은 말이야.”
하층 구역의 치안은 좋지 않다. 자기 자신은 스스로 지켜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 의체를 이용한 전투술이 유행처럼 다양하게 번져 나갔으나 대부분은 실전성이 없는 쓰레기였다.
뒷골목의 갱들도 접할 수 있는 아키에스 전투술이 저 정도로 뛰어날 리가 없었다. 깊이가 상당한 전투술이었다.
“교관님이 보여주신 아키에스 전투술은 제국의 제식 전투술 중 하나로 채용해도 될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키누안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실제로 상부에서도 고려했었지. 하지만 아키에스 전투술에는 세 가지 문제가 있다.”
키누안은 검지로 위를 가리키다가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그는 내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습득이 어렵다는 것 말입니까?”
잠깐의 대련만으로도 습득이 얼마나 어려울지 가늠됐다.
“수재답게 총명하구나, 루카. 나머지 둘은?”
남은 둘 중 하나는 추측이 쉬웠다.
“교관님이 겪고 있는 뇌의 기능 이상 원인이 아키에스 전투술입니까?”
“……그래.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지금 네가 알 수 없을 거다.”
키누안은 마지막 문제를 말하지 않았다. 나도 캐묻진 않았다. 내 관심사는 그게 아니었으니까.
“지금보다 강해질 수만 있다면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할 생각입니다. 어차피 저희가 받은 신경계 화학 처리의 부작용 중 하나로 뇌의 기능 이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위험도가 조금 높아진다고 해서…….”
나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키누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자네가 결정할 일이 아니지. 자네는 이미 제국의 재산이야. 지금까지 자네에게 들어간 비용이 얼마라고 생각하나? 생도 훈련과정이 위험천만하고 거친 것 같아도 자네들이 극복할 만한 수준으로만 구성하고 있네.”
죽음이 곁에 있어야 감각이 날카로워진다.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얻은 경험은 겉핥기가 아니라 낙인처럼 새겨진다. 그렇기에 생도 훈련은 실수하면 사망자가 나오는 수준의 위험도를 유지했다.
“그렇다면 바로 거절하지 않고…… 여기까지 절 데려오신 이유가 뭡니까?”
다소 공격적인 말을 내뱉은 나는 키누안의 눈치를 살폈다.
“아키에스 전투술을 배우고 사용한다고 바로 기능 이상이 오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늦고 빠르고가 있을 뿐. 누구보다 먼저 본인이 뇌의 이상을 느낄 거네. 그때가 되면 사용을 멈춘다고 맹세할 수 있겠나?”
나는 입술을 달싹였다. 습관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할 뻔했다.
‘거짓으로 대답하면 안 된다.’
키누안의 동공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나보다 수십 년을 앞선 선배 이레귤러다. 내 윗사람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통찰력을 지닌 자에겐 약아빠진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
나는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꽤 건방지며 욕심도 있는 놈이다. 조금만 재능이 부족하거나 엇나갔어도, 하층 구역의 뒷골목에서 버러지처럼 죽어서 나자빠졌을 인간이지.
“……맹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노력은 하겠습니다.”
이게 최선의 대답이다.
“내일부터 이 시간에 날 찾아와라.”
다행히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키누안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하려 했다.
휘릭!
내 시야가 한순간에 빙글빙글 돌았다. 어느새 키누안이 내 다리에 발을 건 것이었다. 아무리 출력이 좋아도 발이 허공에 뜨면 힘을 쓰지 못한다.
‘허를 또 찔렸네.’
나를 넘어뜨린 키누안은 내 머리맡을 지나가며 입을 열었다.
“루카. 내 앞에선 항상 공격에 대비해라. 감각 확장을 상시 유지한다는 느낌으로.”
“알겠습니다.”
나는 누운 채로 대답했다.
* * *
“너, 잠은 제대로 자고 다니는 거냐?”
어제까지 임무를 다녀온 일레이가 내게 말했다. 보름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확실히 일레이는 눈치가 빠르다. 근래 자는 시간을 줄였다. 사나흘도 아니고 보름이나 잠을 적게 잤다.
전부 키누안의 훈련 때문이었다. 여러모로 내 상태가 나쁠 수밖에 없었다.
“일이 좀 있어서 그래. 그나저나 이번 임무는 어땠어?”
나는 화제를 돌렸다. 일레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오작동을 일으킨 폭주 안드로이드를 처리하는 일이라 싱거웠어. 요즘 나가는 임무는 죄다 이래. 애들 장난 같지.”
“저번 유적지 정찰 때문에 위에서도 사리는 거지. 대장님이 근래 안 보이는 것도 그 일 때문이지 않을까?”
근위대장 헤일라스는 훈련소에 간혹 얼굴을 비췄다. 그러나 지금은 그를 보지 못한 지 석 달은 넘은 것 같았다.
일레이가 한 호흡 정도 입을 다물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야. 다른 일이 있겠지. 나도 본가 연락망에서 들은 게 좀 있어.”
일레이의 카르티카 가문은 고위직 군인이 많았다. 어지간한 일은 카르티카 가문의 귀에 전부 들어갈 터다.
“뭐, 근위대장이 그렇게 나설 정도의 일이라면…… 반란이라도 터진 거야?”
나는 농담 삼아 내뱉었다. 사실은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일레이와 있다 보면 경솔한 말이 자주 오갔다.
“……어.”
일레이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말을 삼켰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곤 일레이의 얼굴을 관찰했다. 그가 드물게 당황하고 있었다.
“진짜야?”
일레이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정확한 건 아니지만, 반역을 꾸미는 무리가 있다고 하더라고. 조사가 끝나면 조만간 숙청이 시작될 거야.”
나조차도 말문이 막혔다. 반란 자체가 불경한 단어다. 실제로 그런 움직임이 있다면 더욱 가벼이 언급할 말이 아니었다.
‘반란.’
내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었다.
국경 너머로는 명백한 적대국이 있었다. 국경의 긴장은 여전했고, 언제 전면전이 일어날지 모른다.
제국에겐 철인 황제와 단결된 군대가 필요했다.
“어처구니없네. 적을 앞에 두고 내란이라도 일으킬 셈인가?”
나는 분노와 경멸을 담아 툭 내뱉었다. 아무리 사상이 불온한 일레이라도 이건 동조할 터다.
그러나 내 예상이 빗나갔다. 일레이는 생각에 잠겼다가 신중히 입을 열었다.
“마냥 어이가 없다고만 치부한다면 내부에서 곪아…….”
일레이의 말을 끝나기도 전에 내 손이 움직였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멱살을 붙잡았다.
“일레이, 제국의 이단아까진 내가 넘어갈 수 있어. 하지만 네가 제국의 적이라면, 나라도…… 널 그냥 둘 수 없어. 이건 최소한의 선이야. 난 제국의 은혜를 입고 있으니까.”
놀라울 정도로 충직한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 나도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멱살이 잡힌 일레이는 당황하는 기색조차 없이 나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눈을 반쯤 감은 채로 나를 관찰했다. 그 시선이 시리도록 차가웠다.
“진정해. 나도 근위대 적성을 통과한 사람이야. 제국의 적이 될 것 같아?”
일레이가 내 손목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머리가 식은 나는 움켜잡았던 옷깃을 놓았다.
“그러니까 오해를 살 만한 말은 하지 마. 반역자 명단에서 네 이름을 보기 싫으니까.”
“나도 알아. 네 앞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것 정돈.”
풀려난 일레이가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웃었다.
“짜증 나니까 웃지 마.”
나는 일레이를 어깨로 밀치며 자판기 앞으로 걸어갔다. 날 따라온 일레이는 넉살 좋게 자기 것도 뽑아달라고 말했다.
“그나저나 클로드의 여동생이 널 찾아왔다면서? 나도 릴리안을 알고 있어. 꽤 괜찮…….”
“이상한 여자였어.”
나는 일축해서 말했다.
“그쪽에서 네게 관심 있다고 하면 잘 해보는 게 좋을걸. 라모네스 가의 아가씨잖아. 출세할 기회야.”
나는 듣기 싫어서 막 뽑은 음료를 일레이에게 던졌다.
“됐어. 여자한테 빌붙어서 출세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그 이후로 면회는 전부 거부했어. 부잣집 아가씨의 호기심 때문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건 질색이거든.”
“어, 음, 그래도…….”
“내가 됐다고 말했잖아.”
일레이가 묘하게 끈질겼다. 나는 그 주제에 대해 언급하기 싫다고 단언했다.
나는 일레이를 무시하며 자판기 앞에서 음료를 고르려 했다.
툭툭.
음료를 마시던 일레이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가 손끝으로 면회실 방향을 가리켰다. 나는 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면회실 창문 너머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그녀가 날 보고 있었다.
‘릴리안 라모네스.’
릴리안이 면회실 내부에 있었다.
아무리 귀족 가문의 아가씨라도 허가 없이 군사시설로 들어오진 못한다. 생도 면회실도 엄연한 군사시설이다.
누가 릴리안을 들여보냈는지 알 만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일레이를 쳐다봤다.
“……염병.”
내 욕지거리를 들은 일레이가 머쓱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미안, 루카. 릴리안이 간곡히 부탁하더라고. 라모네스 집안하고는 옛날부터 교류가 있어서 거절하기 힘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