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10)
배드 본 블러드-110화(110/197)
110
심상치 않은 기류가 근위대에 흐르고 있었다.
‘카타콤 광산의 이권을 군부와 근위대가 가졌다.’
명목상으론 상이군인을 위한 기금이다. 제국을 위해 싸우다가 죽거나 다친 군인과 그 유가족을 위한 돈이었다. 원래도 기금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만성적인 적자 때문에 제대로 된 지원이 힘든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이번 기금 결정이 황실의 판단이라 생각했다. 잘 모르는 이들은 제국과 황실을 찬양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군부와 근위대의 결정이다.’
어떻게 헤일라스가 군부까지 설득했는지는 모르겠다. 그의 영향력이 그 정도였던 걸까, 아니면 군부에서도 황실에게 도발할 정도의 강심장이 많은 것인가?
어쩌면 내 예상과 달리 황실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지 않을 수 있었다. 아직 나는 제국을 움직이는 고위 각료와 장성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나는 지금 키누안과 함께 있었다. 키누안은 늘 그렇듯 차를 마셨다.
“황실도 체면이 있으니 기금 결정을 번복하지 못하겠지. 노련한 수였어.”
키누안이 말했다. 나는 그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카타콤 광산의 이권이 그리 중요한지 몰랐습니다.”
내가 보기엔 기껏해야 귀족 가문 하나를 지탱할 정도였다.
“채굴권과 관련된 잘못된 계약을 청산하고 군부가 직접 광업을 운영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네. 재정이 상당히 넉넉해지지. 연관된 기업이야 갑작스레 채굴권을 빼앗기니 불만이겠지만, 군부나 황실의 결정이라 생각할 테니 반발하긴 힘들 거고.”
“그런 카타콤 광산의 소유자인…… 코로부스 가문을 축출할 빌미가 때마침 제공됐군요.”
“그저 우연일 수도 있고,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모략이 있었을 수도 있지.”
난 이게 우연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앞뒤가 너무 잘 맞물리고 있었다.
‘그러나 황실과 키누안의 짓은 아닐 거야.’
만약 황실과 키누안이 코로부스 축출을 준비했다면 이렇게 이권을 빼앗기지 않았을 것이다.
‘……잠깐.’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눈을 크게 떴다.
‘그럼 군부와 헤일라스가…….’
코로부스 가문을 유인하기 위해서 나와 이스칸의 정보를 넘겼다면?
코로부스 가문원은 근위대 자체 조사명단에 있었다. 내가 없었더라도 근위대는 코로부스 가문에 도달했을 것이다.
‘헤일라스가 날 위험에 노출시켰다고?’
믿기 싫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믿지 않더라도 가능성만큼은 남겨둬야 한다.
‘말만 하면, 난 기꺼이 미끼 역할을 했을 거야. 그런데도 내게 말하지 않고 습격을 유도한 거라면…… 헤일라스는 날 믿지 않는다는 뜻인가?’
내 사고는 빠르게 꼬리를 물었다. 헤일라스가 내 뒤통수를 쳤을 거라곤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기도 싫었다.
지금까지 헤일라스는 나를 신뢰로 대했다.
“루카, 지금 폐하의 심기가 그리 좋진 않네. 일정이 빨라질 수도 있어. 때가 되면, 자네도 움직여야 해.”
“헤일라스는 황실이 자신을 견제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준비도 하고 있겠죠. 폐하께선 내전을 각오하신다는 겁니까?”
“제국의 진짜 적은 바깥에 있어. 그렇기에 내전을 피하고 싶어서 황실도 빙빙 돌아서 가는 중이야. 루카, 지금 자네가 보기엔 황실이 애꿎은 군부를 들쑤시는 것처럼 보이겠지. 충성스러운 헤일라스를 팽하려는 것처럼 보일 거야.”
“솔직히 그렇습니다.”
부정하긴 힘들다. 부정해 봤자 믿지도 않을 거고.
“이쪽에도 확고한 근거가 있네. 이대로 군부의 인사를 정리하지 못하면 10년 내로 반란이 일어날 거야. 그리고 해마다 타국과의 전면전이 시작될 확률이 올라가고 있네. 반세기 내로 피할 수 없는 전쟁이 찾아오겠지.”
“미래를 예지하듯 말씀하시는군요.”
“아키에스 빅타마를 익힌 자네라면 이해할 거네. 미래란 현실의 산물이지. 현실 바깥에서 오는 게 아니야. 황실의 예측은 예지에 한없이 가까운 근사치이네. 우린 불안정 요소를 남긴 채로 외부의 적과 싸울 수 없어. 제국은 황제를 중심으로 싸울 준비를 끝내야 해.”
만약 정말로 키누안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황실의 행동은 합당하다.
‘누가 먼저인지는 중요치 않아.’
이미 대립은 시작됐다.
제국이 벨라토와 코라와의 전쟁을 앞두고 있다면 무리한 방법을 써서라도 내부의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헤일라스의 동태를 계속 살피게. 기회가 있다면 자네의 판단에 맡기겠네.”
“저도 이중 첩자 신세로군요. 예전의 교관님처럼요.”
“이번 숙청이 끝나면 나도 은퇴할 거야. 그때가 되면 내 권한도 자네에게 넘어가겠지. 시간이 지나면 자네도 깨달을 거네. 진정으로 제국과 신민을 위해서 움직이는 건 우리와 황실이라는 걸. 누군가는 자신을 더럽히며 추악한 일을 해야 하네. 세상은 어긋났기에 어긋난 행동으로만 바로잡을 수 있는 일도 있어.”
“알고 있습니다. 그 역할이 제 몫이라는 것도요.”
키누안은 달변가다. 그리고 진실과 거짓의 비율은 몰라도 내게 거짓말만 하진 않는다. 그의 설득은 언제나 진실이 섞여 있었다. 때론 진실만 내뱉기도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키누안이 내뱉은 말은 사실일 것이다.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릭 실바 누네즈 앞에서 난 죽음을 각오했다.
‘내 이름은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제국의 검이자 방패다. 제국의 적은 나의 적이지.’
‘평생 더러운 일이나 맡다가 처분당할 셈이냐?’
‘제국을 위해 누군가 더러운 일을 해야 한다면…… 그게 내 역할이겠지.’
나는 제국의 그림자를 자청했다. 하지만 그건 쿠스토리아 가문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지금 나는 제국을 위해서 쿠스토리아 가문에게 해를 끼쳐야 한다. 내 맹세와 다짐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이번 일이 끝나면 쿠스토리아 가문은 멸족하는 겁니까?”
“구체적인 반란까지 이어지면 확실한 멸족이지. 그러면 자네도 신분과 얼굴을 바꿔서 활동해야 해.”
“그전에 불온 세력을 진압하면 멸족까진 가지 않는다는 뜻이군요. 예컨대, 헤일라스는 재기불능이 되고, 제가 쿠스토리아의 차기 가주가 된다든가 하면 말이죠.”
노골적으로 말했다. 난 쿠스토리아 가문의 멸족을 원하지 않는다.
“자넨 역시…… 굿보이로군. 착하단 말이지.”
저 말을 들을 줄 알았다.
* * *
옛 격언이 떠올랐다. 폭풍이 오기 전날 밤이 가장 고요하다.
그 말처럼 헤일라스도 움직임이 한동안 없었다.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간간이 쿠스토리아 저택을 방문하는 게 보름간의 일상이었다.
‘당신은 나를 신뢰하지 않는 겁니까?’
난 쿠스토리아 저택을 오가는 공중차량에서 그 말만 속으로만 되뇌었다. 그의 대답이 듣고 싶었다.
그래, 조금 유치하게 느껴지겠지만…… 나는 헤일라스와의 유대가 혈육 못지않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헤일라스는 내게 언질도 없이 날 미끼로 썼을까?’
아카데미에서 바바라에게 이용당한 지젤처럼 말이다. 그 일은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있다. 친딸이라지만 지젤은 바바라를 상대로 기밀을 지키지 못한다. 그러니 지젤도 같이 속여야 했다.
‘그러나 나는 달라. 미리 말해주면 미끼 역할도 더 잘할 수 있지.’
내 예상은 이러하다. 헤일라스가 카타콤 광산을 차지하기 위해 코로부스 가문을 축출하려 했고, 이를 위해 코로부스 가문에게 나와 이스칸의 정보를 흘려 습격을 유도했다.
……확실하진 않다. 그래서 나는 내 추측이 틀리길 바란다. 날 여기까지 이끈 사내에게 그 정도 희망은 품고 싶었다.
‘난 자네가 니콜라오스처럼 죽어도 똑같이 행동할 거네.’
이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나는 기뻤다. 지금도 그 말을 믿고 싶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염치가 없긴 하다. 헤일라스가 나를 속인다고 화낼 자격이 내게 있을까? 나도 그를 속이고 있다.
“루카, 다음에 저택으로 올 때는 은월관을 들릴 거네. 자네에게도 중요한 일이니 시간을 비워두도록.”
헤일라스가 근위대 본부로 귀환하는 공중차량에서 말했다.
은월관은 쿠스토리아 가문의 원로가 있는 별관이다. 쿠스토리아 가문의 중대사는 원로를 거쳐 결정된다.
역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
우리가 느낄 수 없는 기저에서부터 차근차근 흐름이 바뀌고 있었다. 나조차도 쉽게 감지하지 못할 어떤 흐름이었다.
“지젤과는…….”
헤일라스가 운을 뗐다. 나는 무표정을 유지하면서도 가슴이 철렁거리는 줄 알았다.
“……무슨 일이 있나? 사이가 꽤 좋다가 근래 안 좋아진 것처럼 보여서 말이지.”
지젤과 나는 되도록 다른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는 걸 피했다. 나는 몰라도 지젤은 감정 통제에 익숙지 않으니까.
“하층 구역의 일로 싸운 적이 있습니다. 자세한 사정이 듣고 싶으시면 말하겠습니다.”
“아니, 남매의 일에 굳이 내가 끼어들 이유는 없지. 지젤을 잘 부탁하네. 그 아이는 똑똑하지만 서툴러.”
똑똑하지만 서투르다. 나도 공감하는 바다.
“신경은 쓰고 있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과도하게 신경 쓰고 있는 게 오히려 문제다. 찾아가고 싶은 충동을 매번 참아야 했다.
“일레이 카르티카와의 약혼은 가짜로 끝나는 건가? 꽤 괜찮은 혼담 같은데 말이지.”
“저도 권유했지만, 성사는 힘들 것 같습니다. 특히 지젤 쪽에서요.”
“나도 크게 기대하진 않았네. 지젤은 배우자를 스스로 선택할 성격이거든. 그래서 여태 혼담도 다 쳐낸 거고.”
“그런 부분을 존중할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살짝 놀란 듯이 말하자, 헤일라스가 피식 웃었다.
“난 내 아이들을 이용한 적은 있어도, 그 아이들의 선택을 억압한 적은 없네. 쥬페가 적성과 맞지 않은 군인이 된 것도 자신의 욕심이었어. 가주가 되고 싶어서 형을 이길 수 있는 직업을 고른 거지.”
이럴 때면 헤일라스가 한없이 좋아진다. 이상적인 아버지처럼 느껴지곤 했다.
‘이대로…….’
내 모든 걸 이 자리에서 털어놓고 싶었다.
불온분자처럼 보이던 키누안은 사실 황제의 충실한 종사이며 감시자다. 쿠스토리아를 축출하려는 황실이 준비한 비장의 수는 바로 다름 아닌 나다. 내가 당신의 뒤통수를 노리고 있다.
내가 아버지란 존재를 조금만 더 갈구했다면 어리석은 말을 내뱉었으리라.
근위대 본부가 가까워졌다. 메시지를 확인하던 헤일라스가 고개를 잠깐 갸웃거리다가 말했다.
“루카, 이틀 뒤에 프란세크 전하의 가두행렬이 있네. 상층 구역에서 하층 구역까지 반나절 넘게 이어질 거야.”
진홍의 황태자 프란세크 크라치아. 하지만 언젠가 희생양으로 죽을 사내다. 그 사실은 황제와 이반, 그리고 나와 키누안만 알고 있다.
“알고 있습니다. 호위는 근위대의 몫이니까요.”
“전하께서 특별 호위로 생도인 자네를 지정했네. 아마 생도 출신으로 여러 가지 공을 세운 자네에게 관심이 있는 거겠지. 그분은 이레귤러를 좋아하거든.”
이레귤러인 탓만은 아닐 것이다.
프란세크는 장차 자신이 왕이 될 거며, 내가 감시자로 오랫동안 자신과 함께하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날 지목한 거겠지.
“준비해 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