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14)
배드 본 블러드-114화(114/197)
114
프란세크의 가두행렬은 하층 구역을 무사히 통과해 상층으로 돌아왔다.
근위대 영내에 진입하자 사람들의 긴장이 풀리고 있었다. 영내에 도착한 가두행렬은 소속과 부대 단위로 해산되고 있었다.
“전하, 이쪽입니다.”
이스칸이 근위대원 두 명과 함께 프란세크 호위를 위해 다가왔다.
근위대원과 나는 프란세크를 호위하며 비행장까지 움직였다. 근위대의 비행장에는 프란세크의 전용기가 있었다. 호화 사양의 6인승 공중차량이었다.
“오늘은 여러모로 자네들에게 미안하게 됐어.”
앞서 걷던 프란세크가 우리를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저흰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할 뿐입니다.”
이스칸이 공손히 대답했다.
“사정상 급작스럽게 예정을 바꿀 수밖에 없었네. 준비된 사람들이 아니라 진짜 하층 구역의 사람들과 마주하고 싶었거든. 내 고집 때문에 오늘은 피를 많이 흘렸겠지.”
역시 그 정도는 알고 있는 모양이다. 프란세크의 일정 변경으로 사람이 불필요하게 죽었다.
“연설은 훌륭하셨습니다. 전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계시더군요. 그럼 황궁까지…….”
이스칸은 프란세크의 공중차량으로 따라 들어가려 했다.
“아니, 괜찮네. 여기서부터는 혼자 가고 싶군.”
공중차량의 문이 열리면서 계단이 내려왔다. 프란세크는 계단에 한 발만 걸치며 말했다.
“황궁까지의 호위가 저희의 임무입니다.”
“내 사생활과 관련된 문제네. 정 그렇다면…… 루카우스 쿠스토리아만 데려가도록 하지.”
프란세크가 한 발짝 양보했다. 이스칸이라도 황태자의 사생활을 침해하면서까지 자신의 주장을 강요할 수 없었다.
이스칸의 시선이 잠시 내게 향했다가 프란세크에게 닿았다.
“알겠습니다.”
이스칸은 내키지 않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프란세크만 붉은 공중차량에 탑승했다.
치이익.
공중차량의 문이 닫혔다.
털썩.
프란세크는 의자에 주저앉으며 웃옷의 첫 단추를 풀었다. 그의 입에서 지친 숨이 나왔다.
나도 답답한 헬멧을 벗으며 숨을 가볍게 내뱉었다.
끼릭.
프란세크가 좌석 옆에 설치된 냉장고를 열더니 술과 잔을 꺼냈다.
“한잔 마시겠나?”
“임무 중이라서요.”
나는 자리에 선 채로 대답했다. 앉을 생각도 없었다.
“딱딱하긴. 이건 지구의 포도 원종으로 만든 와인이네. 무슨 말이냐고? 자넨 엄청난 기회를 놓쳤단 소리야.”
프란세크가 와인을 잔에 따르며 말했다. 붉은 액체가 출렁거렸다. 독특한 향취가 실내에 퍼졌다.
기이잉.
공중차량이 서서히 떠올랐다.
“이스칸과 다른 근위대원을 대동하지 않으신 이유가 있습니까?”
내가 노골적으로 물었다.
프란세크는 잔을 흔들어 붉은 액체를 빙빙 돌렸다. 그는 손가락으로 팔걸이 끝을 툭툭 때렸다.
“따지듯 묻는군. 이래 봬도 난 황태자네.”
“오늘 제게 많은 잘못을 하셨으니까요. 반귀족적 발언을 하시면서 절 상징으로 내세우셨죠. 그리고 아크바란에선 제 신상을 모르는 이가 없게 됐습니다. 그 때문에 제가 누군가에게 죽을 확률이 대폭 올라갔죠.”
“……흠, 자네에게 사과할 일이 더 생길 예정이네. 오늘 밤, 우린 습격을 받을 거야. 그 때문에 이스칸을 떼어 놓고 온 거지. 아, 술이 적당히 잘 풀어졌군.”
프란세크는 습격받는다는 사람치고는 태연하게 술을 마셨다.
난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헤일라스와 공중차량을 탔을 적의 일이다. 우린 테러리스트의 습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의 헤일라스도 침착했다. 자신의 계획 중 하나였기 때문이지.’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생각을 마친 내가 입을 뗐다.
“자작극을 꾸미셨군요.”
“감시자인 자네에겐 말할 수 있어도, 이스칸과 근위대원에겐 내 자작극을 말할 수 없지.”
“어떤 귀족의 숙청을 위한 일입니까?”
프란세크가 와인이 묻은 입가를 엄지로 훔치며 웃었다.
“당장 누군가를 숙청할 생각은 아니네. 단지, 하층민에게 귀족에 대한 반감만 들게 만들면 충분해. 반귀족적 발언을 한 황태자가…… 그날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했다는 시나리오네.”
황제 유리 크라치아, 황태자 프란세크, 그리고 이반.
내가 만나 본 세 명의 황족은 각자 미묘하게 목적이 달라도 공통점이 있었다.
‘황권의 강화.’
그들은 뜻대로 제국을 경영하기 위해 귀족을 끊임없이 견제하며 때론 숙청조차 감행했다.
“귀족을 제물로 삼아 하층 구역의 단합과 지지를 끌어내실 생각이군요. 하지만 모든 귀족을 적으로 돌리실 생각이십니까?”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줄어든 귀족만큼 여백이 생긴 이권은 황실의 독점이 아니네. 분배를 약속받은 또 다른 귀족이 있지.”
귀족이라고 다 같은 귀족은 아닌 모양이다. 난 눈을 살짝 찌푸렸다.
‘쿠스토리아는 황실의 선택받지 못한 가문인가.’
황실에게 권세와 존속을 허락받지 못한 귀족 가문은 멸망하거나 쇠락한다.
“그리고 오늘의 시나리오에서 중요한 건 자네가 목숨을 걸고 나를 구한다는 거네.”
“‘하층 구역 출신의 이레귤러가 황태자를 구한다.’ 흠, 아주 멋지군요.”
“하하, 빈정거리는 걸 보니 차라리 마음이 놓이는군. 자네 말대로 멋진 이야기가 완성될 거야. 내가 말했지? 자네를 내 통치의 상징으로 삼을 거라고. 영웅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거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팔짱을 꼈다.
“습격 시나리오는 어떻게 진행되는 겁니까? 제가 재검토해 보겠습니다.”
“나는 황궁으로 곧장 가지 않을 거네. 오늘을 대비해 애인을 만들어 뒀어. 이타노리 가문 말석에 있는 어여쁜 아가씨지.”
프란세크가 팔걸이를 두드리며 홀로그램을 띄었다. 이타노리 가문의 여자 얼굴이 홀로그램 형상으로 나왔다.
“하지만 전하의 위치가 노출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겁니다.”
지금 우리가 탄 공중차량도 추적을 피하기 위해 색상과 외형이 계속 바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아가씨를 선택한 거네. 허영심이 많고 입이 아주 싸거든. 자신이 나와 교제하고 있다고 사방팔방 떠들고 다녔겠지. 오늘도 가두행렬이 끝나자마자 찾아갈 거라고 일주일 전부터 이야기해 뒀어. 내 동선이 노출되는 원인으로 적절하지.”
프란세크도 뛰어난 인간이었다. 심지어 계략과 모략에도 능했다. 그렇기에 자신이 처분당할 거라고 상상도 못 하는 것이다. 황제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럴싸하군요. 훌륭하십니다. 전하 덕분에 오늘 제 칼이 피를 마시겠군요. 언제나 피를 묻히고 흘리는 건 저 같은 인간들이죠.”
“자넨 빈정거릴 때 말재주가 좋아지는군. 얼마든지 비난해도 좋네. 하지만 사리사욕이 아니라 제국을 위한 일이야. 우리가 노바스 행성에 정착하는 동안, 귀족의 힘이 비대하게 커졌어. 제국의 팽창도 끝나고 안정기에 이르렀으니 정리할 필요가 있지.”
내 입이 간질간질했다.
‘쿠스토리아 가문이 황제의 숙청 명단에 있다는 걸 프란세크가 알고 있을까?’
프란세크는 단순한 허수아비 황태자가 아니다. 그러나 진짜 밑바닥을 보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저 제왕학적 정론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했다.
‘황제나 이반만큼의 끈적끈적한 느낌이 프란세크에겐 없어. 욕망과 악의가 부족해.’
나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사고가 깊어졌기에 호흡도 길었다.
‘쿠스토리아 가문을 보존하려면 프란세크와 손을 잡아선 안 된다. 이 남자는 황제나 이반에 비하면 약해.’
프란세크는 자신을 둘러싼 악의를 깨닫자마자 버티지 못하고 절망할 사람이다.
“루카, 습격자로는 전문 암살자가 올 거네. 세상에는 살인을 업으로 삼는 자가 꽤 많지. 아키에스 빅티마를 익힌 자네라면 무리 없이 대비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생포하지 말고 죽이게, 머리까지 파괴해서.”
“으음, 아무리 돈에 미친 암살자라도 황족 암살 의뢰를 받아들이진 않을 거고, 원래라면 이타노리 가문의 아가씨가 암살 대상이겠군요. 그리고 그 의뢰주는 전하일 거고요.”
프란세크는 술잔을 쥔 손으로 나를 가리키더니 턱을 살짝 끄덕였다.
“정답이네, 감시자 소년.”
* * *
프란세크와 내가 탄 공중차량이 고급 거주지의 빌딩으로 다가갔다. 계기판의 안내선을 따라 72층까지 다가서자 외벽이 위로 열리면서 착륙 가능한 내부 차고가 드러났다.
기이잉.
공중차량이 착륙하자마자 외벽이 닫혔다. 어두운 차고에 빛이 들어왔다.
“아, 벌써 도착했군.”
눈을 잠깐 붙였던 프란세크가 눈을 떴다. 그도 피로가 상당히 쌓인 모양이었다.
덜컹!
프란세크가 공중차량에서 내리자마자 집안과 이어진 문이 열렸다.
“전하! 오늘 연설을 봤어요. 정말, 정말로!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그토록 당당한…… 아, 아, 잠, 잠깐만요!”
이타노리 가문의 여자가 프란세크를 향해 뛰어오다가 황급히 도망갔다.
‘도대체 저게 옷이긴 한 건가?’
나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하늘하늘하다 못해 속이 훤히 비치는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속옷도 상당히 과감하면서도 화려했다.
“혼, 혼자 오시는 게 아니었나요?”
문 뒤에 숨은 여자가 얼굴만 내밀며 말했다.
“꼭 경호원 하나는 붙여야 한다고 말해서 말이야. 오늘은 행사가 있었잖아. 바로 온다고 어쩔 수 없었어.”
“부, 부끄러워 죽겠어요! 방, 방금은 전, 전하만을 위해 준비한 거였다고요!”
여자가 눈을 질끈 감으며 얼굴을 붉혔다.
“미안하게 됐어. 이쪽은…….”
내 소개가 끝나기도 전에 여자가 내게 삿대질했다. 그러고는 감히 황태자 말을 잘랐다.
“아! 저, 가두행렬 방송에서 봤어요! 당신은 루카우스 쿠스토리아죠? 저는 렌 이타노리에요. 프란세크 전하의…… 여자죠.”
렌 이타노리는 마지막에 자신을 뭐라 불러야 할지 고민한 모양이었다.
“네, 오늘은 전하의 전담 경호를 맡게 됐습니다.”
나는 상체를 숙이면서 가슴에 손을 올렸다.
“와! 지금 넷에서는 당신 때문에 난리인 거 아세요? 죽이겠다고 벼르는 사람도…….”
“렌, 렌, 렌. 그런 네 순진무구함이 참 사랑스럽긴 한데, 여기까지만 해둬.”
프란세크가 다가가더니 렌을 부드럽게 껴안았다.
“아잉, 참. 다른 사람도 있는데…….”
렌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배배 꼬며 바닥을 보았다.
우린 차고를 지나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에는 거주하지 않는 집인지 생활감은 없었다. 나는 방을 하나씩 확인하고선 프란세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 자네는 거실에 있게. 난 렌과 시간을 보낼 테니까.”
프란세크가 렌을 껴안아 들며 말했다. 렌은 프란세크의 목을 감으며 연신 뺨에 입을 맞췄다.
“경호원 씨, 훔쳐보면 안 돼요!”
방에 들어가며 렌이 장난스레 말했다. 남녀의 웃음소리가 화사한 꽃처럼 피어오르다가 문이 닫혔다.
‘……지젤.’
웃기게도 지젤이 생각났다. 렌과 지젤은 닮지 않았다. 그러나 저들의 행동을 보고 있자니 그녀가 보고 싶었다.
까득.
나는 앞니로 손톱을 깨물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일을 앞두고 있잖아, 루카. 잡념은 집어넣어라.’
습격을 알고 있다면 대비하는 건 어렵지 않다.
거기다가 지금 나는 완전하게 무장한 상태다. 품에는 루이나도 있었고, 크루시스는 든든하게 내 허리를 지키고 있다. 반대편엔 그라켄 부트도 있었다.
휘릭, 휘릭.
나는 그라켄 부트를 손아귀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흰색 단검. 그라켄 부트가 섬세하게 내 오른손과 왼손을 오갔다.
곡예의 칼날은 내 피부를 스치지도 않았다. 거짓말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며 그라켄 부트가 가속했다.
난 등 뒤로 그라켄 부트를 튕겨서 내 얼굴 쪽으로 떨궜다.
휘리리릭!
고속으로 회전하는 그라켄 부트가 내 눈앞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기잉.
난 집중력을 끌어 올렸다. 주변의 사물이 일시적으로 멈춘 듯이 느껴졌다. 그라켄 부트는 아주 느릿하게 회전했다.
시간을 오랫동안 잡아당길수록 내 뇌는 미칠 것처럼 뜨거워진다. 무리하진 말고 적당히 달구는 편이 좋지.
끼릭!
난 두 손가락으로 그라켄 부트의 칼날을 붙잡았고, 회전이 붙은 손잡이가 내 손아귀에 감기듯 들어왔다.
오늘은 일이 많았는데도 신경계 상태가 훌륭했다. 전투가 벌어져도 괜찮을 것이다.
솔직히 상급 근위대원 수준의 적이 아니라면 누구든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흠.”
방음이 나름 잘된 집이다. 그러나 내 청력으론 안쪽 방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듣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
어디까지나 경호 업무다. 안에서 이질적인 소리가 들리면 바로 들어가야 한다.
……그나저나 제법 절륜하다. 벌써 두 시간이 넘은 듯하다.
삐걱.
잡음이 들렸다. 지금까지 들리던 열띤 소음과 다른 차갑고도 어두운 소리였다.
난 머리를 고요히 어둠을 응시했다. 어둠이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사람의 형상이었다.
“하, 하.”
나는 낮게 웃었다. 연인만큼이나 기다리던 습격자가 왔다.
정말 최악의 인간이나 할 법한 생각이지만, 쌓인 욕구와 스트레스를 해소할 기회였다. 그래, 나도 어지간히 저질이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