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22)
배드 본 블러드-122화(122/197)
122
지젤의 실력은 훌륭했다. 의체의 말단부터 따끔따끔한 느낌이 일더니 감각이 선명해졌다.
물론, 오늘 내가 지젤을 호출한 까닭은 정비와 조율 때문이 아니다.
나는 아까보다 반응성이 좋아진 손가락을 움직이다가 입을 열었다.
“넌 병기고 출입이 가능하지?”
쿠스토리아 가문의 병기고에 단독으로 출입 가능한 사람은 몇 없었다. 그중 한 명이 지젤이다.
“가능하지. 어머니 부재 시의 병기고 책임자가 나니까.”
지젤은 자질구레한 정비 도구를 정리하며 대답했다. 집중력이 요구된 작업을 하고 난 뒤라 그녀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병기고에 잠깐 들르고 싶어.”
“너도 쿠스토리아 가문의 일원이니 안될 건 없지. 하지만 구경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닐 거고, 목적이 뭐야?”
가끔은 지젤이 바보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여자였다면 마음이 가지도 않았겠지.
“말해야 해?”
“네가 잘난 척하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도 슬슬 지긋지긋해.”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말할 수 없어.”
그녀에게 복잡한 어둠을 토로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지젤은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네 입이 무겁기 때문에 아버지가 널 신뢰하는 거겠지. 쥬페는 너처럼 행동하지 못할 거야.”
“니콜라오스라면 했겠지. 하지만 니콜라오스는 이제 없어.”
난 그의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의무감을 나름 느꼈다. 니콜라오스의 죽음은 쿠스토리아 가문의 큰 손실이었다.
‘니콜라오스는 제국의 어둠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인재 중 하나였지.’
상관인 바오 자카난의 마음을 농락한 걸 보면 자질도 충분했다. 그러나 황실의 음모에게서 자신을 지킬 힘은 없었다. 그 힘을 가지기 전에 그는 죽었다. 어쩌면 그래서 죽었을 수도 있다.
지젤이 무표정하게 나를 응시하다가 일어섰다. 그녀의 불만이 침묵에서 느껴졌다.
“따라오시죠, 잘나신 가주 대행님.”
나는 한숨을 쉬며 외투를 챙겼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 방을 나섰다.
밤이 깊어져 가고 있기에 저택은 고요했다. 저택 밖으로 나온 나는 헤일라스의 방을 응시했다.
커다란 창문 너머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헤일라스와 에바의 그림자가 드문드문 보였다. 다정하게 어깨와 뺨을 맞대며 춤을 추고 있었다.
‘금실이 좋군.’
나도 귀족 사회에 대해 제법 안다. 헤일라스와 에바는 귀족 부부치고는 사이가 매우 좋은 편이었다. 후사만 만들고 남남처럼 지내는 부부도 많았다.
“그나저나 안나가 좀 덤벙대도 귀엽지 않아? 은근히 인기가 많아.”
한 걸음 앞서가던 지젤이 앞만 보며 말했다.
“뭐, 그런 부류의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도 있겠지.”
따라가던 내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너는 아니라는 거야?”
“나는 싸가지가 좀 없는 여자가 좋더라고.”
“너도 취향이 참 이상하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리는 옆이 아니라 앞뒤로 거리를 두며 걷고 있다.
그러나 난 지젤이 웃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건 아키에스 빅티마의 직관 따위가 아니다. 그딴 게 없어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
“딸은 아버지를 닮은 남자를 좋아하게 된다는 말이 있어.”
지젤의 걸음이 느슨했다.
“미신이야? 과학이야?”
“나도 몰라. 예전에 얼핏 들은 거니까. 어쨌거나 나는 그게 개소리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가 봐.”
난 헛웃음을 짧게 내뱉었다. 지젤의 어깨도 작게 들썩였다.
세상에는 의지로 어쩔 수 없는 게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감정이다.
저 앞에 쿠스토리아의 병기고가 보였다. 먼저 나아간 지젤은 병기고 문 앞에 섰고, 나는 그녀 뒤에 서서 병기고의 보안절차가 끝나길 기다렸다.
철컥.
잠금장치가 풀리면서 병기고가 열렸다.
끼익.
지젤이 문을 밀며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뒤를 따랐다. 병기고 내부의 조명이 자동으로 켜졌다.
일종의 박물관 같은 개념인지라 내부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때도 지젤의 안내를 따라왔지.’
지금도 그랬다. 상황이 좀 다를 뿐이다. 그땐 낮이었고, 지금은 밤이다. 그리고 흐르는 감정의 색도 달랐다. 생각해 보니 좀이 아니라 꽤 많이 다르군.
나는 눈을 느슨하게 감았다. 시각을 끄고 청각에 집중했다.
딱.
가볍게 혀를 튕겼다. 병기고 구석구석까지 인식한 나는 눈을 떴다. 우리 말곤 아무도 없었다.
“뭘 한 거야?”
내 행동에 지젤이 의아해했다.
“혀에 뭐가 나서.”
난 두리뭉실하게 넘기며 병기고 안쪽으로 걸었다. 쿠스토리아의 역사를 나타내듯 다양한 장비가 배경으로 지나갔다.
뚝.
내가 걸음을 멈췄다. 가장 안쪽까지 조명이 켜지면서 골동품이나 마찬가지인 전갑의체가 위용을 드러냈다.
‘전갑의체 스킬라.’
시조 아가타 쿠스토리아의 전갑의체다. 투구에는 외뿔이 달려 있었고, 오른팔이 왼팔보다 더 길고 컸다.
저벅, 저벅.
난 스킬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지젤, 이건 내가 처음으로 너에게 보여주는 비밀 중 하나야. 아버지도 이건 몰라. 너와 나만 알게 될 비밀이지.”
“루…….”
지젤이 내 이름을 다 내뱉기도 전에 상황은 끝났다.
철컥, 끼릭.
나는 스킬라의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일정한 각도로 비틀어서 꺾었다. 스킬라의 오른쪽 팔꿈치 일부가 총구처럼 열리더니 손톱만 한 칩이 위로 치솟았다. 숨겨진 장치였다.
키릭.
스킬라의 비틀린 엄지가 잽싸게 제자리로 돌아갔다.
끽!
팔꿈치도 언제 열렸냐는 듯이 닫혔다. 팔꿈치의 관은 원래 압력과 열을 배출하는 기관인 듯했다.
‘아가타의 말은 사실이었군.’
나는 떨어진 칩을 낚아챘다. 지금은 쓰지 않는 형식의 칩이었다. 굉장한 골동품이다. 하기야 이백 년도 지난 물건이니까 말이다.
이 칩은 아가타가 죽기 전에 내게 속삭인 비밀이었다. 그녀는 스킬라에 숨겨둔 칩이 있다고 말했다.
“방금 뭘 한 거야? 나도 모르는 걸 네가 어떻게…….”
지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은월관의 원로가 말해준 거야.”
“그러니까 그걸 왜 네게 알려준 거냐고. 말이 안 되잖아!”
“날 믿을 수 있다고 판단한 거겠지.”
……아니면 노망이 들었거나.
지젤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도 괴로울 것이다. 주변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건 그녀도 잘 알 터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꾸욱.
지젤은 주먹을 쥐듯 내 옷을 움켜잡았다.
“루카, 정말로 내가 널 믿어도 되는 거야?”
바보 같은 질문이다.
내가 지젤을 속이고자 한다면 날 믿으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그녀를 위하더라도 날 믿으라고 말할 것이고.
어느 쪽이든 같은 대답이 돌아오는 질문이었다.
지젤도 자신의 질문이 멍청하다는 것 정도는 알겠지. 하지만 나는 고심 끝에 대답했다.
“……날 믿어도 되는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나는 널 믿고 있어. 네가 지금 본 걸 아버지에게 이야기한다면, 나도 성치 못할 거야.”
남녀 간의 감정은 휘발성이 강하다. 수어 년도 가지 못할 확률이 높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토록 가벼운 감정을 이유로 상대를 믿어선 안 된다.
난 지금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알았어, 믿을게.”
지젤이 발꿈치를 살짝 들어 입을 맞췄다. 이걸로 모든 불안이 해소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젤은 내게 무리한 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녀는 믿음으로 불안을 메꿨다.
* * *
나와 헤일라스는 근위대로 복귀하는 공중차량을 탔다.
예전에 나는 이 시간을 좋아했다. 헤일라스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물론, 지금은 불편하다.
“아, 루카. 자네와 지젤이 병기고에 출입한 기록이 있더군.”
헤일라스가 홀로그램으로 업무를 보다가 말했다.
“원로가 말해준 무구가 생각나서 가본 겁니다. 역시 골동품이더라고요.”
이상할 건 없다. 원로와 오랫동안 이야기했으니 과거의 무구가 보고 싶을 수도 있다.
헤일라스도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손으로 홀로그램 서류를 밀어냈다. 다음 안건이 빽빽한 글자로 떠올랐다. 카타콤 광산에 관한 내용이었다.
“어젯밤, 처음으로 에바가 자네에 대해 칭찬했네. 점수를 땄나 보더군.”
헤일라스가 미간을 꾹꾹 누르며 머리를 뒤로 기댔다.
“처음이라는 말은 지금까지 좋은 말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군요.”
“뭐,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매섭게 후벼 파고 있으니 말이야. 에바를 너무 미워하진 말게. 좋은 여자거든.”
“미워한 적은 없습니다, 정말로요.”
“그렇다면 자네가 지켜야 하는 사람의 범위에 에바도 있다고 이해해도 되겠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헤일라스는 안심하듯 숨을 픽 내뱉으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탄 공중차량은 근위대의 비행장에 도착했다. 나는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하층 구역으로 향했다.
헤일라스도 자신의 업무를 보러 사라졌다. 우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시작했다.
비행장에서 출발한 지라 검문소가 금방 보였다. 날 알아본 군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지나가자 유명 인사라도 본 듯이 떠들어댔다.
“저 애가 루카우스 쿠스토리아지? 이쪽으로 자주 지나간다는 게 사실이었네.”
“저 애라니, 뒈지고 싶지 않으면 말조심해. 걸어 다니는 살인 병기라고. 황태자의 총애도 받고 있으니 하급 군인 한둘을 즉결 처형해도 끄떡없을걸.”
“하기야 귀족도 쓱쓱 죽일 정도니…….”
다 들린다. 그리고 너희들을 죽일 생각도 없다.
검문소를 통과한 나는 한숨을 쉬며 품에 손을 넣었다. 손바닥 크기의 마스크가 잡혔다.
치이익.
나는 눈 밑까지 전부 가리는 전자식 마스크를 썼다. 마스크를 쓰면 감각이 둔해져서 선호하진 않지만 어쩔 수 없다.
프란세크의 돌발행동 때문에 나는 맨얼굴로 하층 구역에 다닐 순 없었다.
공식적인 검문소 출입도 사실 위험하긴 했다. 날 노리는 귀족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기록과 흔적을 지우고 다녀야 안전하다. 그럴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지만.
‘지금만큼은 키누안의 감시자 권한이 부럽네.’
키누안은 제국의 각종 보안 장치도 무력화할 수 있다. 어딜 다녀도 기록이 남지 않는다.
위이이잉.
내가 탄 고속 승강기가 빠르게 하층 구역에 도달했다.
띵.
문이 열리자마자 난 눈을 찌푸렸다. 복도 너머의 소란이 압박감처럼 느껴졌다.
“진범을 밝혀라!”
“황태자를 해하려 한 귀족들에게 엄벌을!”
“이렇게 넘어가면 안 됩니다! 결코!”
검문소 통로 좌우로 시위대가 팻말을 들고 소리를 질러댔다. 평소라면 어림도 없는 짓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좀 특수했다. 군데군데 잘 차려입은 이들도 섞여 있었다.
“디노 크라치아를 찬양하라! 황제 폐하 만세! 프란세크 전하 만세!”
저들은 황실과 황태자를 지지하는 무리다. 관료 입장에선 이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기 껄끄러울 것이다.
“무능한 귀족에게 철퇴를!”
나도 방금은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과감한 발언이 시위대 내부에서 흘러나왔다.
“철퇴를!”
내 시선은 시위대 인파의 중심에서 멈췄다.
‘망할…….’
목구멍까지 욕설이 나왔다.
-진정한 제국민의 모습.
그 글자가 적힌 팻말 위로 내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이 있었다.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우스꽝스럽게 표현됐지만, 분명히 나였다.
그리고 그림 속의 나는 누군가의 머리를 들고 있었다. 잘린 머리에선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귀족을 죽인 루카.’
누가 봐도 그런 의미였다.
얼마 전까지 저런 과격한 표현은 제국에서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다가 여긴 하층 구역도 아니고 상층 구역 바로 밑에 있는 검문소다.
‘프란세크, 당신이 바란 게 이런 거야?’
혼란의 소용돌이는 가속이 붙듯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하층 구역에는 프란세크가 풀어놓은 선동꾼이 득실거릴 것이다.
새 시대이고 나발이고, 이런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날 죽이려는 새끼들이 한 트럭씩 나타날 것이다. 싫든 좋든 내가 하층 구역의 상징이 되는 셈이니까.
꾸욱.
나는 두건까지 꾹 눌러쓰며 시위대 사이를 빠져나왔다. 그들의 외침은 한참을 걸어가도 들릴 정도였다.
뒷골목에는 나와 프란세크의 벽화가 군데군데 보였다. 나는 걸음을 잠시 멈췄다. 활을 든 내가 화살을 쏘아 귀족을 죽이는 벽화가 길게 이어졌다. 그 아래에는 휘갈긴 글씨로 ‘귀족 사냥꾼’이라 적혀 있었다.
‘……미치겠네.’
내 예상보다 상황이 더 나쁜 것 같았다.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내가 향한 곳은 갱단 아지트가 아니라 지앤지 공업소였다. 하층의 흉흉한 분위기 때문에 영업하지 않는 듯했다. 간판에도 불이 꺼져 있었다.
난 주변을 살피다가 문을 몇 번 두드렸다.
딸깍.
문의 일부가 열리면서 길다의 눈만 빼꼼 드러났다.
“누구시죠?”
“접니다, 길다.”
내가 마스크를 살짝 내리며 말했다.
“루, 루카?”
길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금장치를 해제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끼익.
문이 열렸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다가 인기척을 느끼곤 한숨을 쉬었다. 길다만 있는 게 아니었다.
‘가브리엘.’
공업소 내부에는 가브리엘이 앉아있었다.
가브리엘은 텔레비전의 격투 경기를 보며 맥주를 마시다가 나를 쳐다봤다. 곧 그가 못생긴 얼굴을 잔뜩 구기며 일어섰다.
“이야, 이게 누구야.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도련님이 아니신가!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가브리엘이 던진 맥주병이 내 곁을 지나 벽에 부딪혔다. 나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벗은 마스크를 품에 넣었다.
“가브리엘, 뒈지고 싶어? 내 신분이 높다는 건 너도 알고 있었잖아.”
“뭐, 이 정도로 대단한 분인 줄은 몰랐지. 마르티나 디바도 네 정체를 알고 있었겠지? 아, 됐어. 이제 뭔 상관이야. 네게 나는 그저 재미난 장난감이잖아. 죽이든 말든 마음대로 해.”
가브리엘은 새로 꺼낸 맥주의 뚜껑을 손가락으로 따더니 입에 쏟아 넣었다.
이래서 가브리엘과 마주치기 싫었다. 놈이 내게 원하는 건 권력이나 돈이 아니니까. 차라리 철저한 사업적 관계였다면 이런 걸로 삐지지 않겠지.
그래, 가브리엘은…… 내 부하가 아니긴 하다.
“미안하다, 가브리엘.”
내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툭.
가브리엘이 마시던 맥주병을 떨어뜨렸다. 그는 입만 쩍 벌리며 나를 응시했다.
“지, 지금 뭐라고 했냐?”
“아, 못 들었으면 됐어.”
“야, 야! 방금 뭐라고 했냐고! 세상에! 맙소사! 길다, 너도 들었지?”
가브리엘이 내 어깨를 잡으며 흔들어 댔다. 음, 나도 더는 참지 못하겠다.
퍽!
내가 손바닥 밑으로 가브리엘의 턱을 가볍게 쳤다. 눈이 뒤집힌 가브리엘이 내 발아래에서 기절했다.
그 꼴을 본 길다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고 있었다. 나는 그녀 앞에 칩 하나를 내밀었다. 스킬라에게서 꺼낸 칩이다.
“이것과 호환되는 단말기나 장치가 필요합니다.”
길다가 칩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 구형이다 못해 골동품인 건 나도 안다.
“……노력은 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