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3)
배드 본 블러드-13화(13/197)
013
루카라는 이름은 제국에서 흔하다. 내가 있던 보육원에서도 루카는 두 명이었다.
난 어렸을 적엔 작은 루카라고 불렸다. 나이가 찬 후에야 루카라고 불렸다. 그즈음에 루카라는 이름의 아이가 또 들어왔다. 녀석은 작은 루카라 불렸다, 과거의 나처럼.
옛 기억이 떠오른다. 생도 생활 내내 보육원의 기억은 닫고 있었다. 다시 돌아가지 않을 곳이었으니까.
‘음식을 배불리 먹었던 적도 없어.’
한 달에 두어 번, 제국의 관료가 보육원을 방문했다. 차량에는 배급품이 잔뜩 실려 있었지만, 그중 절반은 다음날 사라졌다. 그렇게 빼돌린 배급품은 하층 구역 곳곳에 퍼져 있었다.
배가 고파도 나는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무도 읽지 않아 먼지만 쌓인 책을 마구잡이로 읽어댔고, 녹슨 쇳덩어리를 들며 체력을 키웠다.
‘바보냐? 힘 빼는 짓 하지 마. 배만 더 고파지잖아.’
나를 비웃는 아이들이 처음에는 많았다.
나는 그 녀석들의 안면에 주먹을 꽂아 넣고 식사를 빼앗았다. 체력을 키우려면 남들보다 더 먹어야 했다. 패배자들의 위장에서 썩어가는 것보다 내 살과 피가 되는 편이 낫겠지.
‘네가 그런다고 뭐라도 될 줄 알아? 너도 우리랑 똑같은 두 자리 숫자잖아. 정말로 네가 대단한 새끼라면 진즉 한 자리 숫자 보육원에 갔겠지!’
코피가 터져 질질 짜는 새끼가 끝까지 내게 악담을 퍼부었다.
결국, 나는 놈들이 틀렸다는 걸 증명했다. 열두 살이 되던 해에 제2차 선별검사를 받았다. 근위대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열다섯에는 정식으로 생도가 되었다.
‘나는 패배자가 아니야, 앞으로도 그럴 거고.’
나는 중얼거리며 감았던 눈을 떴다. 현실이 보인다.
‘암시장의 투기장, 상대는 철권의 가브리엘. 지금 내 의체는 출력이 낮은 비전투용 팔다리.’
훌륭할 정도로 최악인 조건이다.
“……알레프가 오늘 약을 과하게 한 모양이군. 이딴 애새끼와 매칭이라니, 나야 돈만 받으면 그만이지만 말이야.”
가브리엘이 그리 말하며 내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대꾸 없이 그를 관찰했다.
‘대칭과 균형이 무너진 개조 신체로군. 밤마다 진통제 없이는 잠도 못 잘 정도로 괴롭겠지.’
가브리엘의 팔다리 의체는 전부 제조사가 달랐다. 어떻게든 조율해서 작동하는 모양이지만 임시방편일 뿐이다. 특히 비대하게 큰 팔과 주먹 때문에 어깨가 앞으로 빠져서 구부정했다. 척추도 그만치 휘었을 터다.
내부만큼이나 외면도 좋진 않았다. 무게중심이 무너져서 걸음걸이가 한쪽으로 쏠려 있었다. 과한 무게를 버티느라 피부는 늘어지다 못해 여기저기 찢어져 있었고, 생체와 기계의 결합 부분은 만성적인 염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강하다.’
오로지 강해지기 위해서 몸을 뜯어고친 사내다. 어쩌면 나도 저런 부류의 인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흥, 입도 뻥긋 못 하고 있군. 겁이라도 먹은 거냐? 얼굴은 제법 반반하게 생겼는데 내 밤 시중이나 들지 그래?”
가브리엘이 관중의 환호에 손을 흔들며 내 앞에 섰다. 그는 내 몸을 훑어보더니 비릿하게 웃었다. 내 팔다리가 전투용이 아니라는 걸 알아챘을 터다.
“확실히 너는 시중이 필요하겠네. 오늘 넌 불구가 될 테니까. 모아둔 돈이 많길 바라마.”
나는 관중석을 살피며 말했다. 전면이 통유리인 별실에서 알레프와 키누안이 같이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 도발에도 가브리엘은 눈썹만 씰룩였다. 이 정도는 인사말 수준이다. 화낼 정도도 아니지.
“하하, 제발 내 시중을 들게 해달라고 빌 때까지 잘근잘근 짓밟아주마.”
가브리엘이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그의 등에는 천사 날개 문신이 있었다. 저런 흉한 몰골로 천사 날개라니 웃길 따름이다.
나도 어깨를 으쓱하며 다섯 발자국 물러났다.
띠리리릭!
경기장을 둘러싼 디스플레이 벽에서 도박의 배율이 표시됐다. 예상한 대로 내 승리 배율이 오십 배 정도였다. 내기 성립이 힘들 정도였다.
-자, 죽고 죽이는 잔혹무도한 우리의 세상, 그 축소판이 이제 시작된다! 짓밟힐 것인가! 짓밟고 일어설 것인가!
알레프가 마이크를 잡으며 소리를 질렀다. 키누안은 팔짱을 낀 채로 경기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삐-익!
낡은 비프음이 싸움의 시작을 알렸다.
“후우.”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세를 취했다. 팔다리를 적당히 벌리고 가브리엘과 마주했다.
‘막으면 난 죽어.’
출력의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저 주먹에 맞으면 난 즉사한다. 덩치가 크다고 가브리엘이 느린 것도 아니었다.
투웅!
사람이 뛰는데 저런 소리가 난다. 가브리엘이 단박에 뛰어올라 주먹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았다. 날 찌부러뜨릴 기세였다.
‘격투기나 전투술을 배운 움직임은 아니야. 동작이 크고, 허점투성이야.’
내 원래 의체라면 1초 뒤에 가브리엘은 죽었을 것이다. 옆으로 살짝 피하면서 주먹을 뻗으면 가브리엘의 머리가 물컹한 과일처럼 터졌겠지.
‘주어진 것에 순응하라.’
나는 키누안의 지침을 떠올렸다. 없는 것을 바라선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간절히 빈다고 갑자기 하늘에서 총이 떨어지진 않을 것이다.
지금 내가 가진 힘만으로 가브리엘을 상대해야 한다. 가진 게 얼마나 빈약하든 말이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경기장은 좁아서 무작정 뒤로 피하진 못한다. 옆으로도 빙빙 돌아야 했다.
콰직!
내가 있던 자리가 움푹 파였다. 파괴력만큼 대단했다. 질량과 속도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나는 키누안 밑에서 한 달을 훈련했다.’
그동안 나는 키누안의 몸에 손도 대지 못했다. 그는 내 공격을 번번이 흘렸다. 그걸 여기서 내가 재현해야 한다.
후웅!
가브리엘의 주먹이 내 앞을 무섭게 스치고 지나갔다. 풍압만으로도 내 몸이 흔들릴 정도였다.
“도대체 뭐 하는 거냐! 술래잡기라도 하는 거야? 장난해?”
“이럴 거면 환불이나 해줘! 이런 거나 보려고 온 줄 알아?”
관중의 야유가 쏟아졌다. 그들이 보고 싶은 건 폭력과 살육이다.
나는 가브리엘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서커스의 광대가 아니다. 저 인간들이 뭘 보고 싶어 하든 내 알 바 아니지.
그리고 내 탐색도 방금 끝났다.
‘……키누안이 날 죽이려고 데려온 건 아닌 모양이로군.’
싸우면서 누군가를 완전히 분석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내 눈에는 가브리엘의 움직임이 미리 보였다. 그는 내 예상과 정확하게 똑같이 움직였다. 균형을 무시한 채로 출력만 높인 가브리엘은 복잡하게 움직이지 못한다.
눈앞의 덩치와 파괴력을 짓눌리지 않고 냉정하게 본다면, 가브리엘은 그저 느려터진 포탄에 불과했다.
“이거로군.”
여유가 생긴 나는 미소를 흘리고 말았다. 그게 가브리엘을 잔뜩 자극한 모양이다. 주먹을 휘두르는 놈의 동작이 거칠었다.
기이한 공방이 이어졌다. 가브리엘의 어깨가 움찔거리면 나도 같이 움직였다. 내가 주먹을 피한 게 아니라 가브리엘이 빗맞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뭐가 철권이냐! 드디어 머리까지 쇳독이 오른 거냐?”
“그냥 뒈져! 등신 새끼!”
“앞이 안 보이면 병원부터 가! 병신아! 뭐 하는 거야?”
관중의 야유가 가브리엘에게 쏟아졌다.
나는 가브리엘이 공격을 뻗기도 전에 미리 피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나는 감각을 최고조까지 끌어 올리면 탄도조차 예측할 수 있었다.
어깨의 미묘한 떨림이 방아쇠이고, 시선의 방향이 총구다. 팔의 길이는 유효거리. 총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예비 동작도 길고 사정거리도 짧으며 궤도도 뻔했다.
탁!
나는 가브리엘의 팔을 옆으로 밀어서 쳐냈다. 지금까지 대련에서 키누안이 내게 한 것과 똑같았다.
힘의 방향을 완벽하게 읽고 이해한다면, 작은 힘으로도 큰 힘을 밀어낼 수 있다.
휘청!
가브리엘이 자신의 힘에 이끌려 땅바닥에 주먹을 꽂았다. 그의 몸은 넘어질 듯이 비틀거렸다. 안 그래도 아슬아슬했던 균형과 대칭이 무너졌다.
어딜 건드려야 가브리엘이 무너질지 훤히 보였다. 힘을 많을 쓸 필요도 없었다.
‘키누안은 항상 이런 느낌으로 날 보고 있었군.’
젠장, 그러니까 내 공격이 닿지 않았던 거지!
퉁!
나는 가브리엘의 무릎을 앞발로 걷어찼다. 원래라면 먹히지 않을 공격이다. 내 빈약한 출력으론 가브리엘의 단단한 다리를 무너뜨리지 못한다.
그러나 놈의 균형이 무너진 지금은 통했다.
쿵!
가브리엘이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당혹감이 그의 얼굴에 스쳤다. 그가 다시 일어서며 방비하려 했다. 하지만 내 후속타가 먼저다.
콰직!
나는 재차 다리를 뻗어서 가브리엘의 안면을 무릎으로 후려쳤다. 그의 오른쪽 안구가 깨졌다. 아직 놈에게 한쪽 눈이 남았지만, 거리 감각은 흐려졌을 것이다.
내 몸이 물처럼 가브리엘을 따라 흘렀다. 움직이고 행동하는 주체는 가브리엘이다. 하지만 지배하는 건 나다.
‘이 경기장에선 모든 게 내 예측 아래에 있어.’
가브리엘과 나 사이의 공간은 완전히 내 것이었다. 투기장이라는 특수한 환경 덕분에 외부의 개입과 변수조차 없었다.
여기가 전장이라면 이 정도의 집중력을 보이지 못할 것이다. 진짜 전장에선 무수히 많은 변수와 개입이 존재하니까. 통제된 환경이기에 나는 예지에 가까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키누안은 훌륭한 스승이었다.
‘이쯤이었나.’
나는 눈동자를 굴리며 움직이다가 벽을 등졌다. 가브리엘이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뛰어왔다.
“으아아아아아-!!”
고함을 지르며 가브리엘이 크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의 팔꿈치에서 추진체가 작동하면서 가스가 새어 나왔다. 나름대로 회심의 기술일 것이다.
휙!
나는 의도적으로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가브리엘이 마지막 순간까지 전력을 다할 수 있도록 말이다.
콰지지직!
철벽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내가 등지고 있던 철벽에 가브리엘의 주먹이 깊게 박혔다.
‘이쪽만 유독 녹슬고 찌그러져 있었어.’
나는 몇 걸음 물러서며 가브리엘의 팔이 철벽에 박힌 걸 확인했다. 거칠게 찢어진 철벽이 가브리엘의 팔을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
“이, 쥐, 쥐새끼가아아아아아-!!”
가브리엘이 팔을 빼려고 했다. 완력만큼 대단한지라 철벽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연결된 나사가 흔들리고 있었다.
“모아둔 돈이 많길 바란다고 했지?”
나는 가브리엘의 뒤로 붙으며 말했다.
“이 개…….”
가브리엘은 말을 잇지 못했다. 뛰어오른 나는 그의 머리를 다리로 감싸며 비틀었다. 전신의 회전을 이용한 비틀기였다.
우드드드득-!!
목뼈가 차례대로 어긋나면서 좋은 소리가 났다. 지금 나는 웃고 있을 것이다. 난 전투를 즐기도록 개량된 인간이니까.
“굿보이! 굿보이!”
관중의 환호성이 경기장을 부술 듯이 메우고 있었다. 그들은 승자를 칭송하며 패배자를 향해선 욕설과 저주를 퍼부었다.
긴장이 풀리자, 막아왔던 피로가 몰려왔다. 날밤을 며칠이나 샌 것처럼 머릿속이 탁하고 뻑뻑했다.
나는 대기실로 가는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의료진이 뛰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목이 꺾인 가브리엘에게 단단히 돈을 뜯어낼 생각인 듯했다.
“잘했다, 굿보이. 아키에스 빅티마에 입문한 걸 축하하네.”
어느새 대기실로 내려온 키누안이 날 보며 말했다. 굿보이라는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다가 한숨을 쉬었다.
“……순응한다고 패배하는 건 아니더군요.”
“그리고 이건 가브리엘의 치료비로 주고 와라. 네게 돈을 걸어서 딴 거다.”
키누안이 크레딧칩을 내게 넘기며 말했다. 나는 칩에 표기된 금액을 보곤 눈을 크게 떴다.
“그래 봐야 가브리엘은 저를 싫어할 겁니다.”
“그건 가서 만나보고 판단할 일이지. 환심을 살 기회가 있다면 굳이 불필요하게 적을 만들 필요는 없어. 우습게 보이지 않을 정도의 친절을 남에겐 베푸는 게 좋네.”
“저는 전사이자 군인이 되고 싶은 거지, 선인이 되고 싶은 게 아닙니다.”
키누안이 내 머리에 손을 얹으며 속삭였다.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어리구나, 루카. 내가 말하는 친절이란 선행이 아니라 투자다. 훗날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쌓아두는 거지. 오늘 나는 토라에게 투자한 걸 회수한 거고.”
키누안의 웃음이 서늘했다. 나는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키누안이 내 재능을 높게 사서 가르치는 것이리라 은연중 생각하고 있었다. 출신도 같다는 동질감도 있으니 말이다. 참으로 오만한 생각이었다.
언젠가 내게도 때가 올 것이다. 키누안의 회수가 날 찾아오겠지. 아마도 내가 거부할 수 없는 방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