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34)
배드 본 블러드-134화(134/197)
134
아가타가 전갑의체를 끌고 노엘 앞에 도달했다. 노엘을 호위하던 반군은 스킬라에게 찢겨 나가 고철 더미로 변한 지 오래였다.
반군을 제국에서 몰아낼 절호의 기회였다. 노엘이 죽으면 반군도 와해될 것이다.
카드드득!
아가타가 커다란 도끼창으로 노엘의 옆을 찍었다. 땅이 부서지면서 먼지가 크게 일어났다. 전갑의체 스킬라의 오른팔은 왼팔보다 컸다. 아마도 고중량의 도끼창을 한 손으로 휘두르기 위한 개조일 것이다.
먼지 더미에서 노엘은 무표정하게 아가타를 응시했다.
“전갑의체에 손을 댔구나.”
-네가 카트린을 죽였으니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야. 죽일 생각은 없었어.”
-너…… 장난해? 네가 카트린을 죽음까지 몰아세웠잖아! 네가 죽였어! 이 쓰레기 같은 새끼야!
아가타의 기계음에선 감정이 맹렬하게 솟구쳤다.
“아가타, 전갑의체를 사용하지 마. 지금은 몰라도 머지않아 기계에 잡아먹힐 거야.”
노엘은 아가타를 타이르듯 말했다.
파직!
아가타가 도끼창을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다. 노엘의 왼쪽 팔이 처참하게 부서졌다.
노엘은 잠깐 비틀거릴 뿐이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은 난 여기서 쓰러져선 안 돼. 부탁이야. 날 보내줘.”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너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노엘. 넌 이런 사람이 아니잖아. 도대체 왜…….
아가타는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흘렸을 것이다. 그러나 전갑의체 스킬라는 찡그리지도 못하며 울지도 못한다.
“난 바뀐 게 없어. 바뀐 건 주변의 상황이지. 믿어줘.”
-내가 널 어떻게 믿지? 넌 카트린을 배신했잖아. 그럴 거면 왜 결혼한 거야? 왜 카트린에게 갔냐고!
“내가 수많은 사람을 배신했지만…… 너만큼은 배신하지 않을 거야. 내게 너는 특별한 사람이니까.”
노엘의 시점이 아니라도 나는 알 수 있었다.
‘노엘은 아가타의 마음을 이용하고 있다.’
노엘은 아가타의 감정적 약점과 동요를 파고들었다. 자신을 향한 감정이 애증이라는 걸 알기에 가능한 심리 장악이었다.
“내 일이 끝나면, 그땐 네게도…… 모든 걸 말해 줄게.”
-닥쳐! 말하지 않아도 돼! 난 널 잊을 거야. 다신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 내가 알던 노엘은 이제 죽었어.
그리고 아가타가 도끼창을 휘둘렀다.
콰지직!
노엘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갈라졌다. 전신의체이기에 이 정도로 죽진 않는다.
-잘난 부하들이 널 구하러 오길 기다려 봐. 운이 좋으면 제국군에게 잡히지 않겠지. 이게 내 선택이다.
* * *
아가타는 군에서 퇴역했다. 명목상으론 전갑의체의 부작용으로 인한 재기불능이었다. 그녀가 세운 공적이 많기에 상부에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자, 노엘의 반군은 규모가 커졌다. 반군과 부딪힌 귀족의 사병부대는 족족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그리하여 참다못한 황제가 군을 이끌고 친정을 나섰다. 황제의 군대와 맞부딪힌 반군은 대패했고 그 이후로 빠르게 쇠퇴했다.
이게 대외적인 흐름이었다. 결론적으로 황실은 부강해졌고 귀족은 약해졌다.
‘노엘과 황제의 계획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어느 정도 소모전을 끝낸 반군은 게릴라 형태로 아크 행성 전역으로 퍼졌다. 그들은 대도시에 은거하며 테러와 암살을 시행했다. 때론 무리를 이뤄 제국의 주요 시설을 공격하기도 했었다. 그때마다 유력 귀족이 많이 죽었다.
유난히 귀족들이 많이 죽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반군의 기치 중 하나가 계급 사회 타파였으니까.
그러나 노엘의 세력은 와해 직전에 이르고 있었다.
“코소바와 힌덴도 죽었어. 정보가 새 나간 것 같다.”
“조직을 개편해야 해. 우린 더는 군대로 활동할 수 없어.”
“솔직히 말합시다. 우린 무너지고 있습니다. 내부의 동요도 커지니 배신자는 더 많아질 겁니다.”
간부들의 조언이 이어졌다. 노엘은 상석에 앉은 채로 침묵했다.
노엘은 멈출 수도 없었다. 이미 쌓아온 죽음이 너무나 많았다. 여기서 멈춘다면 그간의 인고조차 무의미해진다.
“……개편안은 내가 짜겠다.”
노엘의 의도에 따라 반군은 작은 규모의 점조직으로 흩어졌다. 몇몇 핵심 간부만 조직의 윤곽을 알고 있었다.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야. 끈질기게 저항하는 게 목적인 형태의 개편.’
꼬리가 잡혀도 잘리는 건 말단이었다. 몸통은 끈질기게 이길 수 없는 투쟁을 지속할 것이다.
아키에스 빅티마가 대외적으로 퍼진 것도 이때부터였다. 반군의 간부가 현지인을 모아 아키에스 전투술을 가르쳤다. 얼치기로 배운 아키에스 전투술은 뒷골목에 빠르게 퍼졌다.
“노엘, 이 시기에 자리를 비우겠다고?”
“이틀이면 충분해. 부탁한다, 우베.”
노엘은 측근에게 조직을 맡기곤 자리를 비웠다. 바람처럼 사라진 노엘의 자취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황제의 감시자.’
그 권한이 이 시기의 노엘에게도 있는 것이다.
노엘은 수배범의 신분으로 도시로 들어갔다. 그는 신원을 위장해 결혼식에 참석했다. 테러를 위한 건 아니었다.
‘아가타의 결혼식.’
은퇴한 아가타의 결혼식이었다. 성대하진 않았으나 아담하고 따스한 식이었다.
아가타의 배우자는 군인이 아니었다. 제국의 관료였고 평판도 좋고 성실한 사내였다. 여러모로 이상적인 배우자였다.
노엘은 멀리서 아가타의 결혼식을 지켜봤다.
나는 지금 노엘이 느끼는 생각과 감정을 모른다. 그러나 추측은 할 수 있다. 그는 분명히 아가타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랐을 것이다.
……그리고 십 년이 더 흘렀다.
제국은 반군 진압을 명목으로 사람들을 감시하고 억압했다. 반군에 의한 피해와 테러가 무서웠기에, 사람들은 강압적 통치를 스스로 받아들였다.
노엘과 황제의 계획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제국 각지에서는 대규모의 이민선이 건조되고 있었다.
‘행성 이민 계획.’
제국의 국력을 대다수 쏟아 넣는 막대한 계획이었다. 척박한 아크 행성을 떠나 살기 좋은 이상향을 찾는다는 의도였다.
안정된 귀족 사회가 이민 계획을 반길 리가 없었다. 귀족들은 아크 행성에 적응했고 산업을 독점해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었다. 이민으로 인해 새로운 이권과 혼란이 발생하면 신흥 세력이 생길 것이고 기존 귀족이 누리는 특권도 나눠야 한다.
‘그리고 행성 개척과 이민 선단을 건조하는 건 제국에게도 엄청난 출혈이지.’
현세대의 제국민 대다수는 이민과 개척으로 인한 부를 누리지 못한다. 미래 세대를 위해 착취만 당하다가 죽을 것이다. 일이 잘 풀려도 2, 3세대 뒤의 후손이나 그 이득을 누릴 수 있다.
확실치 못한 미래를 위한 막대한 투자와 현재의 고통을 반기는 세력은 귀족과 평민 그 어디에도 없다.
‘그 모든 불만을 잠재우는 건 강력한 황권.’
노엘의 반란은 황실의 권력 집중으로 이어졌다. 그렇기에 강제력을 가지고 이민 계획을 추진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게 이민 선단을 위해서였군. 훗날, 이 이민 선단을 통해 제국은 노바스 행성에 정착했겠지.’
앞뒤 가리지 않던 노엘의 사나운 기세도 누그러졌다.
“곧 모든 게 끝난다.”
어두운 방에서 노엘은 홀로 중얼거렸다. 사랑하는 이들을 배신했다. 자신을 믿고 따르던 이도 죽게 내버려뒀다. 이미 그의 정신은 만신창이일 것이다.
노엘은 오명으로 점철된 고통스러운 삶을 버텼다. 차가운 피와 철의 정신을 가진 이조차 영혼이 깎이는 걸 막을 순 없을 것이다.
“아가타, 이건 너를 위한 기록이다. 아마 다시 마주했을 땐 설명할 기회조차 없겠지.”
노엘이 갑자기 천장을 보며 말했다. 그 시선이 내게 박혔다. 이건 시뮬레이션에서 노엘이 남기는 편지였다.
“모두를 구할 방법은 이것뿐이었어. 상처를 입혀 미안하다. 그 어떤 말로도 사죄할 수 없겠지. 네게만 그런 게 아니야. 카트린에게는 죽음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짓을 했어.”
노엘이 굵직한 케이블을 뒷덜미에 꽂았다. 케이블에 새겨진 회로와 홈에서 흐르는 빛이 컴퓨터로 빨려 들어갔다. 빛은 호흡하듯 점멸했고 노엘의 동공도 동기화된 듯이 같이 빛났다.
노엘은 자신의 기억을 시뮬레이션 데이터로 변환하고 있었다.
“내가 좀 더 현명했다면, 더 뛰어난 사람이었다면……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었을까? 밤마다 생각해 봤지만, 결론은 바뀌지 않았어.”
노엘은 찬찬히 기억을 정리했다.
“네게 모든 걸 말했다면, 넌 기꺼이 나와 같이 오명을 뒤집어쓰고 죽었겠지. 그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야.”
노엘은 아가타에게 말하고 있었다. 이 기록을 가장 먼저 볼 사람이 아가타일 거라고 확신했다.
“부디 살아남아라, 아가타. 이게 네게 잔인한 짓이라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난 누구에게도 이 일을 말할 수 없어.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너뿐이다. 너만이라도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해 준다면 난 구원을 받을 수 있어.”
내가 앉아 있는 방이 떨렸다. 아래층에서 굉음이 일었다.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 누구의 인정도 필요 없어. 너만 기억해 주면 충분해. 그리고 내가 저지른 악행이 어떻게 사람들을 구원하는지…… 내 삶이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걸 네가 확인해줘.”
노엘의 눈꺼풀이 빠르게 깜빡였다. 기억의 시뮬레이션 변환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아가타만큼은 살리기 위해서…….’
계획의 마무리는 노엘의 죽음이다. 그리고 그 집행인으로 선택받은 자는 아가타였다.
전갑의체로 뇌와 의식을 옮긴 아가타가 여기로 오고 있었다. 아래층부터 끔찍한 비명이 이어지고 있었다. 듣기만 해도 손속이 매섭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노엘은 홀로그램을 통해 뉴스를 계속 반복해서 들었다. 반군의 테러로 인한 사망자 명단이었다.
‘테러로 아가타의 남편과 딸이 죽었다.’
그 증오와 분노가 아가타를 전장으로 불러들였다.
‘아마도 그건 황실의 짓…….’
노엘의 추론이 내게도 느껴졌다.
반군의 모든 테러 행위가 노엘의 통제에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아가타가 휘말리지 않도록 신경 썼을 것이다.
하지만 노엘의 추론을 아가타가 알게 되면, 그녀도 죽는다.
‘말하지 않는다면, 아가타는 노엘을 죽여서 부와 명예를 쥘 수 있다.’
이 상황이 황제의 배려인지 악취미인지는 알 수 없다.
오랫동안 협력하며 지냈지만, 황제의 인간적인 면모까지 노엘이 아는 건 아니었다. 황제가 진심으로 제국민을 위하는 건지도 알 순 없었다. 그저 결과적으로 황제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했기에 손을 잡았다.
콰드드득!
바닥이 부서지면서 전갑의체 스킬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흉흉한 안광에는 살의만 그득했다. 극단적인 증오와 분노, 전갑의체의 과부하, 그리고 갑작스러운 전장 복귀로 인해 아가타는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아가타, 그건 고의가 아니었어. 살려…….”
노엘의 마지막 말은 추악하게 변질한 자의 변명이었다. 그게 아가타의 살의를 더욱 끌어 올렸을 것이다.
아가타는 망설이지 않았다. 노엘의 말을 계속 듣다간 예전처럼 설득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었을 것이다. 아가타 역시 복수심조차 억누를 정도로 노엘을 좋아했으니까.
-생포해야 한다, 아가타!
아래의 외침도 무의미했다. 아가타의 팔이 멈추지 않았다.
콰직!
노엘의 머리가 터졌다. 시뮬레이션 변환도 이걸로 끝이었다.
치지지직!
내 머릿속에서 끔찍한 소음이 일었다. 죽음의 감정 신호 때문이었다.
파직!
현실로 복귀한 나는 가상 시뮬레이션 기기를 부수듯 움켜잡았다. 기기의 겉면이 부서지면서 내부의 부품이 드러났다.
가상 시뮬레이션 후반에는 나와 노엘의 동일성 수치가 낮아서 해리 장애는 생기지 않았다
‘이후엔 어떻게 된 거지?’
아키에스 빅티마의 사고가 자동추론을 시작했다.
‘아가타는 노엘을 처치한 공로로 쿠스토리아라는 이름을 받았다. 생포가 아니라 죽인 거지만…… 황제의 배려겠지.’
하지만 노엘은 생포되어 비공개 처형을 당한 것으로 기록됐다. 가장 현실성이 있는 이유는 ‘붙잡힌 노엘을 구하고자 모이는 반군 세력’을 소탕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행성 간 이민을 앞두고 불온한 세력을 한바탕 정리해야 했을 거니까.’
황실은 마지막까지 노엘을 이용했다.
내가 숨을 가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지젤은 나를 건드리지 않고 기다렸다.
“……아아, 재미난 기억이었어, 루카.”
얼마 뒤에 바바라도 깨어났다. 그녀는 날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우리가 왜 아크 행성을 떠나 노바스로 온 지 알아? 대외적인 이유 말고 진짜 이유 말이야.”
내가 눈을 찌푸리며 침묵했다. 가상 시뮬레이션 몰입과 연속된 인과추론 덕분에 내 신경은 날카로웠다. 일일이 대답하기도 짜증 났다.
“뭐, 좋은 걸 보여줬으니 나도 정보를 제공할게. 난 너를 좋아하니까. 잘 봐, 다른 행성에 있던 코라와 벨라토, 그리고 우리 제국까지 하나의 행성으로 비슷한 시기에 이민을 왔지. 예전부터 떠돌던 하나의 음모론이 있어. 어떤 ‘사건’ 때문에 인류 삼국 전체가 노바스 행성까지 쫓겨났다는 소문 말이야.”
내 뇌리에는 한 가지 장면이 스쳤다.
검붉은 살점으로 이루어진 기괴한 유기체 함선. 빛 대신에 암흑을 내뿜는 엔진 추진체…….
아마 이건 바바라가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만 본 거다. 아가타도 모르겠지.
바바라가 검지를 치켜들더니 자신의 추측을 계속 떠벌렸다.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황제가 닥쳐올 재앙에 미리 대비하기 위해 노엘의 반란을 이용해 대규모 선단을 건조한 거야. 국가 전체가 통째로 이주해야 할 정도의 위협이 있었다는 소리지.”
바바라의 말은 분명 흥미롭다. 하지만 당장 내게 중요한 정보는 아니다. 그저 기억에 담아 두기만 하자.
……나는 노엘과 다른 판단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몇 번을 생각해도 마찬가지였다. 제국에 순응하는 게 최선이다.
황실은 비열하고 잔혹하다. 그러나 명백히 제국 전체의 이득과 생존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