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37)
배드 본 블러드-137화(137/197)
137
나는 근위대 본부 지하의 감옥에 갇혀 있다. 독방은 어둡고 침침했다. 장비도 전부 빼앗겨서 바지만 덜렁 입고 있는 꼴이었다.
다행이라면 내 사지가 아직 붙어 있다는 것이다. 팔다리를 빼앗긴 채로 독방에 갇힌 사람이 얼마나 추해지는지 내 입으로 말하고 싶진 않다.
‘날 쉽게 죽이진 않을 거야.’
나는 여러 가지로 이용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오만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이다. 쓸모가 없었다면 진즉 내 목을 벴을 것이다.
‘헤일라스와 이반이 손을 잡았다.’
내 예상을 한참 넘어선 협력 관계였다.
‘이러면 헤일라스의 도박에 승산이 생겼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군부와 이반이 손을 잡고 쿠데타를 일으킨다.’
성공한다면 이반은 황제가 될 것이다. 군부와 쿠스토리아는 그 공을 인정받아 숙청을 피하고 권세를 유지한다. 성공 여부는 둘째치고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다.
‘군부와 함께하는 쿠데타는 이반 입장에서도 도박이야. 설사 황제가 되더라도 군부 세력에 짓눌려 허수아비 황제가 될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반은 자연스레 황제가 될 것이다. 나는 그가 이런 과감한 수단을 쓸 줄은 몰랐다.
‘통치의 불안정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아버지를 축출하고 서둘러 황제가 되고 싶은 건가?’
내가 보기에 이반의 욕심은 과하다. 쿠데타에 실패하면 황족이라도 끝장이다. 운이 좋게 목숨은 건지더라도 후계자 지위는 박탈이다.
‘헤일라스와 이반도 패를 다 뒤집었다.’
황제와 키누안의 남은 패가 뭔지가 중요했다. 그러면 나도 전체적인 그림을 명료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일이 꼬여 붙잡혔으나 화조차 나지도 않았다. 머리가 한없이 차갑게 식어갈 뿐이었다.
‘지젤은 괜찮을까.’
걱정되는 건 한 사람뿐이었다. 음, 로맨티스트가 다 됐군.
지젤은 다른 근위대원에게 붙잡혀 감금을 당했다.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 그녀는 나오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까지 나를 걱정하던 그녀의 모습이 내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또각, 또각.
발자국이 들렸다. 보폭과 울림으로 봐선 이반 크라치아였다.
“넌 날 우습게 봤어, 루카.”
이반이 금속문 너머에서 말했다.
“우습게 본 적은 없습니다. 그 상황에서 프란세크를 암살하는 건 올바른 판단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통치자라면 더욱이요.”
다가온 이반은 금속문 앞에 섰다. 그의 얼굴이 좁은 창문으로 보였다.
“제왕학과 정치를 나와 논하자는 거야?”
“전쟁을 피하는 건 논쟁거리가 아니라 상식의 영역이죠.”
문 너머의 이반이 웃었다.
“루카, 넌 나보다 가진 정보가 적어. 아키에스 빅티마로 추론해 봐야 협소한 정보 내에서 하는 판단일 뿐. 그래서 감시자의 역할은 거시적 판단이 아니라 미시적 판단이야. 너희 감시자가 아무리 뛰어나 봐야 결국은 땅을 기어다니는 짐승에 불과해. 날개 없인 세상을 넓게 볼 수 없지.”
“전쟁이 일어나면 죽는 건 땅을 기어다니는 우리입니다. 날개가 없으니 누구처럼 도망갈 곳도 없죠.”
이반은 요염하게 느껴질 정도로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내가 키누안을 싫어하는 건 주제를 몰라서 그래. 루카, 너도 결국은 키누안처럼 행동하는구나. 하지만 나는 감시자에게 과도한 권한을 주지 않아. 아버지와 나는 다르거든.”
“당연히 다르겠죠. 당신은 황제 폐하보다 식견도 짧고, 인내심도 부족하니까요. 어릴 때부터 고생을 안 해봐서 그런 것 같군요.”
이반이 화를 냈으면 좋겠다. 그럴 리는 없지만 말이다.
이반과 키누안 같은 자들은 내 발언에 동요하지 않는다. 이런 규격 외 존재를 상대하다 보니 내 유치한 도발에 걸리던 자들이 보고 싶어질 정도였다.
“도발을 열심히 하는구나, 루카. 내게서 감정적 실수를 끌어내고 싶은가 보지? 헤일라스와 나는 합리적 거래를 끝냈어. 도발에 넘어가 널 죽이지도 않을 거고. 헤일라스는 널 제법 아끼는 듯하니까.”
이반의 동공이 알록달록한 빛깔을 띠며 회오리치듯 빛났다.
“뭐, 저도 당신과 헤일라스가 성공하길 바랍니다. 어쨌든 그게 우리에게 ‘최선’인 것 같군요.”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이반과 쿠스토리아의 쿠데타가 성공하면 내 목적의 대부분이 이뤄진다. 헤일라스와 쿠스토리아의 생존이다. 내 생존 가능성은 조금 위태롭지만 죽진 않을 것 같았다.
“흐응, 솔직히 나는 네가 무척 화낼 거라고 생각했어. 성장했네.”
“성장기라서요.”
이반이 웃음을 터트렸다.
“운이 나빴구나,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이 모든 사건이 수년만 더 뒤에 일어났다면…… 넌 훨씬 중요한 위치에서 역할을 더 잘해 냈을 거야.”
“세상 무엇 하나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없죠. 이런 건 익숙합니다.”
이반이 한 걸음 물러났다.
“즐거웠어, 루카. 내 감시자가 될 뻔한 너를 잊지 않을게.”
나는 이반이 걸어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복도의 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그리고 헤일라스는 사흘이 지나도 날 찾아오지 않았다.
* * *
지하 감옥의 독방에는 당연하게도 창문 하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예민한 감각만으로도 폭풍의 위세가 정점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덜컹.
정해진 시간이면 독방의 천장이 손바닥만큼 열리면서 음식과 물이 떨어졌다.
으적.
나는 딱딱한 빵을 씹어 먹으며 체력을 비축했다.
휙.
내 주먹이 아직은 경쾌했다. 난 가벼운 체조와 단련도 잊지 않았다. 좁은 독방에서 일주일을 보내려니 고욕이었으나 감각을 유지하려면 어떻게든 움직여야 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분명히 흐름은 한 번 더 바뀐다. 내가 끼어들 수 있는 건 그때가 마지막일 것이다.
독방에서 하루가 더 지났다. 식사 시간이 지났는데도 천장에서 물과 음식이 떨어지지 않았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때가 된 모양이다.
나는 가만히 앉은 채로 감각을 곤두세웠다.
끼릭, 끼릭, 철컹!
강제로 문을 열어젖히는 소리가 났다.
“루카? 루카! 어딨어!”
염병,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다름 아닌 지젤의 목소리였다.
‘지젤.’
난 헤일라스와 이반에게 붙잡힐 때조차 동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지젤이 여기에 있단 말인가?
지젤은 독방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녀는 순식간에 내 독방 앞까지 다가왔다.
“뒤로 물러나. 폭탄을 설치할 거니까.”
반갑게 인사할 여유조차 없었다.
지젤은 바로 그리 말하며 문 테두리를 따라서 젤을 꼼꼼하게 발랐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젤 폭탄이었다.
“지젤, 설명하면 바로 들을게. 무슨 상황인지는 몰라도 시간이 넉넉하진 않을 테니까.”
내가 물러나며 벽까지 붙었다.
“바바라에게 연락해서 네 탈옥 계획을 짜서 도와 달라고 했어. 경비의 근무 시간표와 순찰 경로를 바꿨고, 카메라도 더미 영상을 띄워 정지 상태야. 필요한 장비도 근위대 무기고에서 조달할 수 있게 해주더라고.”
“대가는?”
“데이트.”
농담처럼 들리진 않았다. 바바라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그 마녀는 지젤과의 데이트를 위해 상당한 위험을 무릅썼을 것이다.
“그건 괜찮은데 잠자리는 금지야. 상대가 여자라도 안 돼.”
“지금 농담할 때야?”
지젤이 눈을 치켜떴다. 나도 이번엔 웃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농담 아니야.”
“은근히 질투가 많구나. 이런 면은 사내답지 못하네.”
“살면서 내 걸 가져 본 적이 잘 없었거든. 집착을 좀 해도 이해해줘.”
“불우한 성장 배경으로 호소하다니 비겁하네. 그리고 젤 폭탄은 처음이라 용량 조절이 좀 미숙할 거야. 알아서 피해.”
지젤은 옆으로 물러나며 말했다.
딸깍.
지젤도 조급하게 폭탄 스위치를 눌렀다. 그녀가 안전을 도외시하며 서두를 정도니 탈출 계획은 시간상 굉장히 촉박한 듯했다.
피지지짓!
젤 폭탄은 순차적으로 폭발했다. 문의 테두리를 따라서 붙은 젤이 도화선처럼 터졌다. 작은 폭발이 일 때마다 텅텅거리는 소리가 연거푸 났다.
투- 웅! 팅!
금속의 잔해가 폭발에 튕겨서 총알처럼 독방을 튀어 다녔다.
“음, 쓰으읍.”
난 목덜미를 긁고 지나간 쇠붙이에서 섬뜩함을 느꼈다. 잔해가 불규칙하게 튕겨서 피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자칫하면 진짜 여기서 뒤질 수도 있었다.
“루, 루카? 죽, 죽은 거 아니지? 아씨, 너무 많이 발랐나? 바바라가 이 정도는 하라고…….”
지젤이 걱정스레 중얼거렸다. 발을 동동 구르는 소리도 들렸다.
쿠웅!
금속문의 테두리가 전부 부서졌다. 문은 독방 안쪽을 향해 삐걱거리다가 쓰러졌다.
“몇 분 남았어?”
나는 독방에서 걸어 나오며 왼쪽 어깨에 박힌 철심을 뽑았다. 새끼손가락 크기의 철심이 피를 머금은 채로 바닥에 떨어졌다.
“바바라의 계획대로라면 140초 정도? 어깨는…… 뭐, 그 정도면 괜찮겠네. 초보치곤 폭탄을 잘 설치한 것 같지 않아?”
“구해줘서 고맙긴 한데, 괜찮다는 말은 내 입에서 나와야지. 나도 아픔을 느낀다고.”
나는 폭발로 달아오른 금속 조각을 어깨에 대며 구멍 난 상처를 지졌다.
“엄살 피우지 마. 난 그거보다 더 큰 거에도 찔렸어.”
나는 움찔하며 지젤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그녀의 몸에는 상처가 없었고, 난 그녀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거, 귀족 아가씨가 못 하는 말이 없네.”
내가 툴툴거렸다. 그 사이에 단말기를 꺼낸 지젤이 탈옥 계획을 홀로그램으로 펼쳤다.
‘바바라…….’
정성스러운 계획이었다. 급조한 거라 믿기 힘들 만큼 꼼꼼했다.
바바라는 근위대 본부의 보안 취약점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즉석에서 이런 계획을 짜낼 수 있었겠지.
우린 지하를 벗어나 위로 올라갔다. 바바라의 조치 덕분인지 경비는 보이지 않았다.
‘살다 살다 바바라의 도움을 이렇게 받을 줄이야.’
적과 아군은 모호하다. 제국의 최상부로 올라갈수록 더욱 그러했다.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구분하려는 시도가 무의미했다.
적도 아군도 없다. 다르게 말하면 모두가 적이고 아군이었다.
‘유연하게, 뇌가 녹아서 액체로 변할 정도로 더 유연히.’
복도 모퉁이로 나아가던 나는 순간적으로 지젤을 잡아당기며 멈춰 세웠다.
띡!
내가 눈을 감으며 혀를 튕겼다. 키누안은 반향정위의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하지만 난 꾸준히 청각 강화 훈련을 했다.
전신의체가 아닌 내게 반향정위는 유용한 기술이었다.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보는 것.’
청각 정보를 담은 신호가 시각을 담당하는 후두엽에서 처리된다. 흐릿한 직관으로 느껴지던 이질감이 반향정위로 또렷하게 보였다.
……그래,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아무리 바바라의 계획이 있다지만 지젤이 너무나 순조롭게 날 구했다.
‘애초에 헤일라스가 작정하고 나와 지젤을 감금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
내 팔다리도 여태 멀쩡하게 달려 있었다. 지젤도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젤도 모르는 누군가의 조력이 더 있었을 것이다. 멀리 생각할 것도 없었다.
“나오셔도 됩니다, 파이곤.”
인기척이 일었다. 복도 모퉁이가 일렁였다.
위장변색 망토를 두르고 있던 파이곤이 얼굴과 상체부터 드러냈다. 파이곤의 얼굴에는 눈을 대신하는 일자 고글이 여전히 빛났다.
파이곤이 나를 보더니 고개를 까딱였다.
“간만입니다, 도련님. 성장하셨군요.”
난 농담을 한 번 더 쓰고 싶었다.
“성장기라서요.”
“흠, 유머 감각은 떨어지신 것 같습니다.”
실수한 것 같군.
파이곤은 지저분한 차림새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는 내 뒤에 있는 지젤을 보더니 고개를 까닥였다.
지젤은 파이곤을 모르는 눈치였다. 헤일라스는 가족에게도 숨긴 걸 내게는 얼마나 많이 말했던 걸까…….
“그간 지젤을 보호한 게 당신이었군요.”
내가 말했다.
파이곤이 바바라의 광기로부터 지젤을 줄곧 보호했을 것이다. 파이곤은 허름한 외관과 달리 전자전 전문가였고, 인간의 뇌도 주무를 정도로 실력 있는 해커다.
“여전히 영특하십니다. 어쨌거나 이거부터 받으시죠.”
파이곤은 등에 짊어진 보따리를 내게 밀었다. 보따리가 내 앞까지 길게 미끄러졌다.
탁!
난 발로 보따리를 받으며 내부를 확인했다. 크루시스를 비롯한 내 장비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지젤 아가씨. 제 이름은 파이곤입니다. 헤일라스 주인님의 종사죠. 시간이 많이 없으니 주인님의 말씀부터 전하겠습니다.”
파이곤이 절도 있게 인사하더니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