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41)
배드 본 블러드-141화(141/197)
141
‘지젤…….’
나는 비척거리는 몸을 이끌고 저택 2층으로 올라갔다. 거기엔 일레이와 지젤이 있었다.
일레이는 창밖을 보며 서 있었고, 침대에는 곤히 잠든 지젤이 보였다. 그녀의 몸에도 붕대가 감겨 있었다. 팔다리에는 수리한 흔적도 있었다.
“루카,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너 일단 뭘 먹고 와라.”
일레이가 날 보자마자 말했다. 그는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그 정도로 심각해?”
“그래, 한 달은 굶은 것 같아. 지젤도 놀라겠다.”
그러나 난 회복보단 바로 움직이고 싶었다.
“일레이, 내겐 시간이…….”
“내 사람을 거리에 뿌려 뒀어. 내가 정보를 모으고 있으니 넌 일단 쉬어. 지금은 군부와 근위대가…… 아크바란 전역에서 일어난 폭동을 진압하고 있다. 바깥은 지금 지옥이야. 자신을 보호할 힘도 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다간 죽어.”
일레이가 말을 끝내자마자 팔을 움직였다.
휘릭!
어느새 일레이의 단검이 내 목젖을 노리고 있었다. 난 평범한 사람처럼 당했다. 할 말이 없어질 정도로 둔감했다.
“내 몸이 엉망이긴 한가 보네. 네 무딘 칼에도 반응하지 못한 걸 보니.”
나는 일레이의 단검을 손가락으로 밀었다. 녀석의 말이 맞다. 내 상태는 최악이다. 아직 목숨을 겨우 건진 것에 불과했다.
“입만 살았긴. 가서 먹고 자고 휴식을 취해. 움직이는 건 적어도 내일이나 모레야.”
나는 물러났다. 재생치료가 끝난 뒤에 내 살은 홀쭉하게 빠져 있었다. 갈비뼈가 손가락으로 잡힐 정도였다.
나는 일레이의 조언을 받아들이며 식당으로 내려갔다.
마침, 진가우가 정비 안드로이드와 함께 식당으로 들어왔다. 샤워를 막 끝낸 그는 알몸에 가운만 걸치고 있었다. 다가온 그는 내 상태를 이리저리 살피며 지시를 내렸다.
“이것도 먹고, 저것도 마시게. 체력 회복이 우선이야. 그리고 나중에 암 검사를 받아보고. 이야, 그래도 이번엔 성공했군. 예전에는 물에 불은 만두 꼴이 됐는데 말이야. 흠, 무슨 차이가 있었던 걸까?”
물에 불은 만두 꼴이 된 사람이 어떤 모습인지 솔직히 좀 궁금하다, 그 당사자가 될 생각은 결코 없지만.
나는 식당에 차려진 음식을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먹자마자 영양분이 몸에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치직, 치직.
정비 안드로이드가 내 팔다리를 순서대로 수리하고 있었다. 안드로이드의 손끝이 열릴 때마다 정밀한 정비 도구가 나왔다.
딸깍.
왼팔의 수리가 끝났다. 폭발로 인공 피부가 녹아내려서 내 의체는 쇳덩이만 드러나 있었다. 내 상태가 얼마나 끔찍했을지 가늠이 됐다.
“호환규격이 맞지 않아도 어떻게든 돌아갈 정도로는 망가진 부품을 대체했어. 오차와 보정은 자네의 뇌에 맡기겠네. 그 정돈 할 수 있을 거야.”
나는 방금 수리가 끝난 왼손으로 컵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손이 허공을 저었다. 조율이 무너져서 인지와 행동에 괴리가 생긴 탓이다. 타인의 것처럼 팔다리가 낯설었다.
“……제게 잘 대해 주시는군요.”
“잘 대해 줘서 나쁠 건 없으니까. 자네가 고난을 이겨 내고 훗날 출세한다면, 오늘의 빚을 잊지 않겠지. 무엇보다 자넨 재미있는 사람이야.”
진가우가 벗어둔 안경을 쓰며 말했다.
‘통찰력과 처세술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내 예상과 다른 사람이었다. 난 진가우가 자신의 능력만 믿고 멋대로 구는 줄 알았다.
사람은 단면으로 파악할 수 없다. 표면은 일부일 뿐이다. 더 깊게 들어가면 온도조차도 달랐다.
스륵.
난 손을 뻗다가 그릇이 빈 걸 느꼈다. 잔뜩 쌓였던 음식이 온데간데없었다. 내가 지금 미친 게 아니라면 전부 먹은 게 맞을 것이다. 그러나 실감이 가지 않았다.
“자네의 신진대사가 활성화된 탓에 식욕이 왕성할 거야. 평소보다 많이 먹어도 배부른지조차 모를 거고. 대식은 히드라의 흔한 부작용이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거네.”
“히드라?”
“자네에게 투여한 배합 약물의 명칭이야. 벨라토의 과학자가 개발한 거고 초재생 기술 중 하나네. 히드라는 특히 과잉증식으로 인한 실패 사례가 많아서 데이터가 많이 필요해.”
진가우가 설명을 덧붙였다. 듣다 보니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황실 의료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과 비슷한 겁니까?”
“초재생이라는 결과는 같지만, 원리와 과정이 좀 달라. 지향하는 바가 다른 탓이지. 내가 자네의 몸에 상처를 낼 테니 잘 보게.”
진가우가 식사용 나이프를 들더니 내 어깨에 그었다.
찌익.
진피가 보일 정도로 벌어진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다. 내가 봐도 기이한 속도였다.
“며칠 정도는 회복력이 남다를 거야. 실제로도 지금 자네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있네. 뺨에 살이 벌써 차오를 정도지.”
나는 그 말을 듣곤 내 얼굴을 더듬었다. 정말이었다. 아까 전만 해도 광대뼈 아래가 허전했는데 지금은 살이 잡혔다.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진가우의 말이 뇌리에 맴돌았다.
내 머릿속의 아키에스 빅티마도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무의식 단계에서 고집중 수준의 통찰과 추론이 저절로 이뤄졌다.
“황실 의료원의 초재생은 단순한 치료 용도이고…… 소장님의 방식은 전투용이군요.”
“슬슬 머리가 돌아가는 모양이군. 정답이네. 히드라를 피하임플란트 형태로 삽입해 약물의 혈중 농도를 일정량 유지하는 거지. 그럼 어지간한 부상으론 전투 불능에 빠지지 않을 거야. 개발된 지 꽤 됐는데도 최적의 배합과 비율은 찾지 못하고 있네. 생물은 기계와 달리 변수가 너무나 많거든. 같은 종 내에서도 편차가 크고.”
“자칫하면 불어 터진 만두가 되는 거군요.”
“찌르면 육즙이 많이 나와.”
진가우가 만두가 담긴 그릇을 앞으로 당기더니 젓가락으로 쿡 찍었다. 안에 고인 물이 새어 나오더니 그릇을 적셨다.
“하지만 제국에게 어울리는 기술은 아닌 듯합니다. 우린 강철의 세례를 받으니까요.”
진가우는 히쭉히쭉 웃었다. 광대처럼 과장된 미소는 종종 섬뜩하게 보였다.
“……아무래도 그렇지?”
나는 더 묻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폭풍기 동안은 여기에 계시는 겁니까?”
“혼란이 생길 때마다 날 죽이려는 자가 많거든. 이런 시기에는 상층 구역이 오히려 내게 더 위험할 수도 있어. 바짝 엎드려 몸을 숨겨야지.”
“은신처가 갱단의 저택이라니 기묘하군요.”
진가우는 만두의 꼭지를 잡아들더니 입안에 떨궜다. 그의 목구멍이 꿀렁거렸다. 전신의체는 식도의 움직임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었다.
“라비앙로즈는 흥미로운 집단이야. 누구도 이들을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하층 구역에서조차 특출나게 강한 세력은 아니지. 그렇기에 라비앙로즈의 뿌리는 은밀하고 깊네.”
나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라비앙로즈는 ‘생존’이라는 목적으로만 본다면, 그 어떤 귀족 가문보다도 더 강할 수 있었다.
특출나게 강하지 않기에 심한 견제를 받지 않는다. 시대에 따라 유연히 변화하면서 강자에게 들러붙었다. 그렇다고 강자의 변덕과 발길질 한두 번에 무너질 정도로 나약한 것도 아니었다.
“……아, 손님이 왔군. 노인네는 이만 가보겠네.”
진가우가 한쪽 눈을 찡긋하더니 식당을 나섰다. 그를 대신해서 들어온 사람은 그레이스였다.
나는 그레이스의 왼쪽 눈을 보았다. 안대가 달라붙어 있다.
“빌린 물건을 돌려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레이스가 개조한 루이나를 식탁에 올렸다. 이젠 충격권총이 아니라 저격총이었다.
“내가 알던 루이나와는 다르네.”
“반동이 커서 제 의체의 성능으론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이왕 건드리는 김에 제 특기를 살리는 편이 좋을 것 같기도 했고요. 모듈식 개조이니 공방에 의뢰하면 금방 원상복구 될 겁니다.”
“특기가 저격일 줄은 몰랐어.”
“특기를 숨겨야 적이 방심하니까요. 루카 님은 우수합니다. 그런 당신이 제게 도움을 청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제 모든 역량을 끌어내야 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명석한 그레이스는 정답을 찾아냈다. 그녀는 루이나를 저격총으로 바꿔 두고선 장거리 저격을 준비했다.
그녀가 이스칸을 저격하던 상황이 떠올랐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상황이었고, 충격탄은 애초에 저격에 적합한 탄종도 아니었다. 근위대원조차도 저격이 특기인 사람이나 성공했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레이스는 멋지게 성공했지.’
나는 그레이스가 나약해서 근위대를 그만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레이스, 너는 상부의 예상보다도 더 뛰어난 인재였기에 스스로 근위대를 벗어난 거야.”
“성격이 삐뚤어진 건 알고 있었지만, 칭찬도 희한하게 하시네요.”
“내 나름의 극찬이야. 그리고 루이나는 네가 가져. 나보단 네게 맞는 무기인 것 같다.”
난 여기서 유치한 말을 더 덧붙이고 싶었다.
‘근접전을 좋아하는 내게 홀대받을 바에…… 네 곁에 있는 걸 루이나도 더 좋아할 거야.’
그러나 차마 이 말까진 내뱉지 못하겠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못 할 소리다.
“보상이라면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할 말이 더 있지 않으신가요?”
나는 손등으로 입술을 훔쳤다. 눈을 감았다가 뜬 내가 예의를 갖춰 말했다.
“……도와줘서 고맙다, 여러 가지로 전부.”
요즘 고맙다는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약해 빠진 인간이 된 기분이 들었다.
“흠, 듣기 좋네요. 제가 당신에게 기대한 건 보상인 총이 아니라 감사의 말이었습니다.”
“아, 그럼 루이나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그레이스는 냉큼 대답하며 루이나를 주섬주섬 챙겼다.
정말로 내 곁을 떠나는구나, 루이나. 내가 준다고 말한 거지만 기분이 묘했다.
“그럼 나 때문에 라비앙로즈에 더 묶인 건가? 디바가 그런 말을 하더군.”
“그건 디바가 착각하는 겁니다. 전 라비앙로즈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으니 당신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이번 혼란에서 당신을 돕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죠. 더는 디바의 곁을 비울 수 없으니까요.”
그레이스가 선을 그었다. 나도 이렇게 딱딱 끊는 게 편했다.
역시 그레이스와는 대화가 잘 통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불편한 게 없었다. 일레이나 근위대 동기와 이야기하는 듯했다. 가끔은 지젤보다 편안했다. 아니, 가끔이 아니다. 솔직히 꽤 자주 그런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나는 뜸을 들이다가 입술을 달싹였다.
“내게 남매가 있는 건 아니지만, 손위 누이가 있으면 너 같은 느낌이었겠지.”
침묵이 일었다. 그레이스는 무표정하게 내 말을 듣더니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의문을 표했다.
“혹시 머리를 크게 다치셨습니까?”
“젠장! 너한테 친밀감을 느낀다는 말이잖아! 대충 알아들어 처먹어!”
그레이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미소를 깊게 지으며 일어섰다. 이대로 나가는 줄 알았는데 그녀는 식탁을 돌아서 내 옆으로 다가왔다.
“저는 당신과 남매 같은 사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레이스는 손을 뻗어 내 뺨에 대었다. 난 순간 아찔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음, 지금은 그레이스가 불편했다.
“그레이스, 나는…….”
“저는 누군가에 금방 빠지는 편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쉽게 잊죠. 그러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레이스는 미소를 머금은 채로 손바닥을 내 머리로 옮겼다.
툭, 툭.
그녀가 내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곤 그녀를 올려다봤다.
“확실히 제가 더 어른인 것 같긴 하네요. 그러니까 어른답게 굴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레이스가 내게서 등을 돌리더니 식당을 나갔다. 나는 한참이나 문을 쳐다봤다.
끼익.
그레이스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음 사람이 들어왔다.
“호오, 제법이네, 루카. 죄 많은 남자가 되고 있구나. 지젤에겐 비밀로 할게.”
“헛다리 짚지 마. 아무 일도 없었고 그런 사이도 아니야.”
“아, 그래? 그럼 지젤에게 말할게.”
“아니, 그렇다고 말하진 말고.”
일레이가 밉살스럽게 웃었다. 내 처지를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삑.
일레이는 단말기를 탁자에 두었다.
홀로그램 화면이 우리 사이에 떠올랐다. 우리가 잘 알던 상층 구역의 일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비바람에도 연기와 불꽃이 꺼지지 않았다.
“폭도가 설치고 있는데도, 군부와 근위대의 대응과 진압이 이상할 정도로 늦어. 루카, 내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난 네게 빚이 있고, 이번이 갚을 시기라고 생각한다.”
선택의 시간이 다시 찾아왔다. 일레이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선 진실을 건네야 한다.
일레이는 지젤의 경우와 달랐다. 지젤은 흐름을 바꿀 힘이 있는 자가 아니었고, 그녀에 대해선 나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일레이에겐 내가 모르는 저력이 있다. 본인의 무력도 뛰어났고, 내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카르티카 가문을 장악하며 힘을 키웠다. 그가 이 사태에서 어디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일레이를 신뢰하는 건 위험한 판단이다. 그는 내 정보를 바탕으로 우정이 아니라 다른 목적을 위해 행동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 나는 일레이를 온전히 믿을 수 없었다.
‘노엘도 그랬겠지.’
그래서 그는 주변인을 속이고 기만했다.
‘남을 믿지 못하는 자는 믿음을 얻지 못한다.’
키누안이 내 생각을 들으면 웃을 것이다. 그건 타인을 더 잘 속이면 해결되는 문제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건 키누안의 방식이지, 내 방식이 아니다.
나는 루카다. 노엘이 아니며, 키누안과도 다르다.
지금부터는 내 방식으로 판단하고 결정하겠다. 그게 배신으로 돌아온다면 기꺼이 감수해 주지.
“일레이 카르티카…….”
기나긴 비밀의 운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