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43)
배드 본 블러드-143화(143/197)
143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그…… 이레귤러? 잠깐.”
검문소 입구의 군인들이 당황했다. 뒤에 서 있던 베테랑 군인이 날 알아보고선 눈을 찌푸렸다.
“상층 구역으로 올라갈 거면 혼자서 조용히 올라가시오,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나와 안면이 있는 군인이 노란 경계선까지 다가왔다. 물론, 그와 말을 섞어본 적은 없었다. 말 그대로 얼굴만 안다.
“미안하지만, 난…… 문제를 일으키려고 왔어.”
내가 삐딱하게 그를 응시했다. 군인이 눈을 찌푸리더니 안쪽으로 들어갔다.
검문소 입구에선 혼란이 일었다. 군인들이 바삐 상부에 연락하고 있었다. 나에 대한 조치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다.
“와아아아아아아! 루카다! 진짜 루카가 나타났어!”
“우리의 편일 줄 알았다니까!”
내 등 뒤에서 시위대의 함성이 쏟아졌다. 날 알아본 자들이 내 이름을 입에서 입으로 옮겼다. 그들은 파도가 번지듯 내 이름을 연호했다.
그래, 요즘 화제의 인물이 바로 나다. 가십에 관심이 있는 자라면 내 이름 한 번 정돈 들어봤을 것이다.
“귀족 사냥꾼!”
“루카! 루카!”
저들은 날 루카우스가 아니라 루카라고 불렀다.
-내 이름은 루카우스 쿠스토리아다. 제국 신민은 누구나 제국의 방패 아래에서 정당한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으며…… 이는 초대 황제 디노 크라치아 폐하께서 천명하신 제국민의 권리다.
갑자기 시위대 안쪽에서 중형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누가 내 언행을 촬영해 홀로그램으로 재생한 것이다.
등신대 비율의 내가 반복해서 제국민의 권리를 천명하고 있었다. 내 목소리는 넓게 퍼져 나갔다.
용기를 얻은 시위대가 점차 경계선으로 가까이 이동했다. 그때마다 발포하겠다는 경고가 사납게 퍼졌다.
타- 앙! 탕!
군인들이 허공에 총을 쐈다. 시위대가 일시적으로 움츠러들었다.
저벅, 저벅.
검문소 안쪽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나는 그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상위 네트워크에 접속하려 했다.
치직.
내 망막 디스플레이에선 잡음만 일었다. 내 상위 네트워크의 접속 권한이 사라졌다. 벌써 키누안이 손을 본 모양이다. 이젠 완전히 찍힌 셈이로군.
‘슈웰 카서트 중령, 아마도 제7검문소장.’
난 사내의 명찰과 계급을 보았다. 여기서 중령이라면 검문소장 직위일 것이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 달린 휘장 중 하나는 금색 칼 문양이었다. 근위대 출신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선배님을 만나는군.
척.
내가 짧게 경례했다. 카서트 중령도 내 경례를 받으며 경계선까지 걸어왔다.
“명망이 높은 자네라도 이건 월권행위네. 자네가 잘나 봐야 일개 생도에 불과해. 검문소 통행에 관여할 위치가 아니지. 뭐, 쓸데없는 말이로군. 자네가 이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보는 아닐 테니까, 그렇다면 하극상이라도 벌일 생각으로 온 건가?”
슈웰 카서트는 이 사태에 대해 어디까지 관여하고 있을까?
군부와 근위대 전원이 황실을 향한 반기를 든 건 아니다. 오히려 대다수는 지금 상황에 대해 모른다.
극소수가 조심스레 주동하는 것이다. 일단 쿠데타만 성공하면 중립 세력은 알아서 승자의 편에 설 테니까.
‘대다수 사람은 지금의 상황을 단순한 소요와 폭동으로 이해하고 있겠지.’
그러나 쿠데타가 성공하도록 상황을 은밀하게 조작하고 있는 협력자가 여기저기 있을 터다. 카서트 중령도 그런 협력자일 수 있다.
“하극상을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그저 제국민의 정당한 권리를 대변하고 있을 뿐이죠. 저들은 안전과 보호를 원합니다. 결코, 폭도가 아니죠.”
정론이 내 입에서 술술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정론은 어디까지나 정론. 현실은 정론으로 헤쳐나갈 수 없다. 당연히 나도 방금 내가 내뱉은 입바른 말 따윈 믿지 않는다. 그저 그럴싸한 명분에 불과하다.
현실은 잔혹하다. 시위대 내부에는 음험한 이들이 숨어 있다. 그들은 시위를 폭동으로 바꿀 기회만 노리고 있다. 저들을 들여보내지 않는 게 현명한 판단이다.
“폭도가 저들 속에 있네. 상층 구역도 마냥 안전하지 않아. 폭동으로 봉쇄된 지구만 3할이 넘어. 이건 유례가 없던 일이야. 그리고…….”
카서트 중령이 말을 머뭇거리더니 어딘가와 통신을 했다. 그는 한 발자국 물러나더니 손을 들었다.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자네의 통행 권한도 방금 사라졌네. 그 선을 넘는다면 발포하겠네. 부디 목숨을 귀하게 여기게.”
상부의 명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검문소의 경계와 방어가 더 단단해졌다. 백여 미터의 경계선을 따라 군인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들 뒤에 있는 승강기와 계단은 성벽처럼 보였다.
기잉, 기잉.
묵직한 쇳소리가 났다. 시위대의 용기조차 잠재우는 소리였다. 시위대 전열에 서 있던 자들부터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뒤로 몸을 뺐다.
‘전갑의체 미르미돈.’
새카만 전갑의체 두 기가 앞으로 나왔다. 레기온과 비교하니까 보급형이나 양산형으로 불릴 뿐이지, 엄연히 저들은 제국 최정예 병종 중 하나였다.
전갑의체 미르미돈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미르미돈이 든 총은 포라고 불러야 할 정도였다. 인간의 머리가 들어갈 정도로 총구가 컸다. 그 화력은 머리를 날리는 수준이 아니라 인간을 통째로 날려 버릴 정도다.
“제국의 검이 정작 지켜야 할 사람들에게 칼날을 들이밀고 있군요.”
내 말에 카서트 중령은 웃기만 했다.
“자네가 무어라 말해도 여긴 우리가 사수할 거네. 그게 나와 이들의 책무야. 제국의 군인이 새파란 애송이의 말에 현혹돼 총구를 이리저리 돌릴 정도로 만만해 보이나? 이상적인 관념으로만 가득 찬 말 몇 마디에 총칼의 방향이 매번 바뀌었다면 제국은 진즉 무너졌겠지. 수많은 위협 속에서도 제국이 견고하게 버틸 수 있었던 까닭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영웅들 덕분이네.”
카서트 중령의 말에 동요하던 군인들의 눈빛이 변했다. 자신들의 사명을 깨달은 것이다. 유능한 지휘관은 병사에게 좋은 명분을 준다.
“마냥 틀어막을 순 없을 겁니다.”
내가 한 걸음 더 다가가며 말했다. 미르미돈의 총구가 내게로 향했다.
“아무리 근위대의 기린아라지만 얼토당토않게 건방지군. 자네가 여길 힘으로 뚫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눈을 감았다.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 뒷덜미의 머리카락이 더듬이처럼 곤두선 듯한 착각마저 일었다. 없던 감각 기관이 생긴 듯했다.
스륵.
난 눈을 뜨고선 뒤를 보았다.
거센 비바람을 뚫고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심지어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던 노약자도 보였다. 하나하나의 사람이 모여들어 거대한 흐름을 형성했다.
“흘린 물은 손으로 주워 담더라도, 넘치는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입니다.”
내 힘으론 기존의 흐름을 바꾸지 못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서 부딪쳐야 한다.
군중이란 거대한 흐름은 제어하기 힘들다. 이 흐름이 어떤 이득과 손해로 작용할지는 나조차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만든 난류에 내가 휩쓸려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겐 한 치 앞도 읽기 힘든 혼란이 필요했다. 그로 인해 내가 위험해지더라도 감수해야 했다.
열등한 위치에서 강자의 목에 칼을 들이밀려면 변수가 있어야 한다. 난해한 변수일수록 효과가 크다.
‘……아키에스 빅티마의 대원칙.’
혼돈을 언제나 곁에 둔다.
키누안의 경지가 그러했다. 그는 불확정적인 존재다. 아군이면서도 적이다. 약자이면서도 강자였고, 그의 모든 언행은 진실과 동시에 거짓이다. 그렇게 혼돈의 갑옷을 몸에 두른 키누안은 가능성을 자신의 무기로 삼았다.
키누안에 비하면 난 아직 까마득히 부족하다. 당연한 일이다. 난 이제 첫발을 내디딘 셈이니까.
주륵.
나는 코에서 흘러내린 피를 엄지로 닦아냈다. 두통은 이제 언급이 귀찮을 정도로 만성화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와라, 루카우스. 따로 이야기하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카서트 중령이 옆으로 몸을 틀며 내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두 기의 미르미돈도 총구를 내렸다.
시위대의 규모는 비정상적으로 불어나고 있었다. 내가 검문소에서 군인과 대치한다는 소문을 듣고 모여든 것이다.
군중은 자의로 모였다고 생각하겠지만 내 의도에 따라 이끌린 것이다.
‘일레이가 제 역할을 하고 있어.’
일레이가 아크바란에 뿌려둔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내 등신대 홀로그램 영상도 일레이가 심어둔 사람이 촬영한 것이다.
일레이의 힘과 세력은 그리 크진 않다. 평소라면 일레이의 능력으로는 흐름을 만들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힘으로도 흐름을 만들 수 있었다. 나라는 구심점에 생겼기 때문이다. 살짝만 떠밀어도 눈덩이는 알아서 굴러가듯 흐름이 커진다.
‘이젠 내 역할이 중요하다.’
일레이가 밀었으니 내가 굴러갈 차례였다.
“상부의 명에 의하면, 저는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지 않습니까?”
“……그 정도는 내 재량이지. 들어오지 않겠다면 강제로라도 연행하겠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시위대가 언제 폭도로 돌변할지 모른다. 그리고 시위대의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었다. 곧 넘쳐서 주체하지 못할 정도가 될 것이다.
“절 죽이지 않고 강제로 무얼 하는 건 힘들 겁니다.”
내가 손가락을 칼자루에 올렸다. 그리고 반대편 손은 권총이라도 뽑을 듯이 외투 안쪽에 집어넣었다.
나는 감각의 초점을 바꿨다. 내 오감은 시위대를 무시했다. 그들의 고함과 욕설이 잘려 나가듯 사라졌다.
……고요하다.
내 시각과 청각은 오로지 군인들에게 향했다. 그들의 팔과 손이 계속 움찔거렸다. 언뜻 보면 명령을 기다리는 듯하다.
그러나 군인들의 감정 신호는 명백한 동요와 두려움이었다.
검문소의 군인들에겐 ‘대량 학살’을 할 비위가 없었다. 심지어 시위대 내부에는 아이마저 섞여 있었다. 상층 구역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좇아 노약자들까지 모여든 것이다.
“물이 넘쳐흐른다고, 굳이 주워 담을 필요는 없지. 아니, 오염된 물은 주워 담을 필요가 없네.”
카서트 중령이 중얼거렸다. 그의 동공이 섬뜩하게 빛났다.
젠장, 역시 근위대 출신답게 판단이 빠르다.
척!
카서트 중령이 손을 들더니 사격 준비를 명했다. 군인들은 힘겹게 총구를 들어 시위대에게 겨누었다.
“쯧, 무리가 더 커지기 전에 몰아내는 게 맞겠지.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카서트 중령이 한숨을 내뱉으며 권총을 뽑았다. 상관이 솔선수범한다면, 제국의 군인은 내키지 않아도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
‘시간을 더 벌어야 한다.’
애초에 나는 대치만 하려고 했다. 이 상태를 유지하며 시위대의 인파를 불리는 게 내 목적이었다.
그러나 카서트 중령은 만만치 않았다.
작은 희생으로 큰 희생을 예방한다. 여기서 수백여 명이 죽더라도 수천, 수만의 폭도가 생기는 것보단 낫다.
이게 카서트 중령의 판단일 것이다.
‘내 단신의 무력으로 부딪쳐 검문소를 돌파하는 건 힘들다.’
검문소를 지키는 건 카서트 중령과 군인들. 그리고 미르미돈 두 기다.
이중으로 분리된 내 전술 사고가 전투 계획을 수립했다. 정면승부는 어렵다. 카서트 중령을 생포해서 인질로 삼아야 했다.
‘그러나 카서트 중령은 인질이 될 바에 죽음을 택하겠지. 자신을 죽이라고 할 거야.’
다음 사고가 계획의 성공을 부정했다. 더 나은 계획을 떠올려야 한다.
‘학살을 막으면서 대치 상황을 이어가야 해.’
당장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난 내게 주어진 시간을 다 썼다.
끼릭.
카서트 중령이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그는 내가 아니라 시위대를 겨누고 있었다.
키- 잉!
내 손도 같이 움직였다. 내 크루시스가 경계선을 살짝 넘어가며 권총을 사선으로 쳐냈다.
텅!
발사된 총알이 허공을 갈랐다. 권총은 부서진 채로 빙글빙글 돌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추가 공격은 하지 않았다. 카서트 중령의 신체를 베었다간 대화할 것도 없이 바로 전투 상황이다.
“명성답게 빠르고 예리하군.”
“근위대 현역에서 은퇴한 사람보단 당연히 나아야죠.”
상황만 이렇지 않았다면 괜찮은 담소가 이어졌을 것이다.
스륵.
카서트 중령은 더 말하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그가 미르미돈 옆에서 손을 들었다. 미르미돈 총구가 전방으로 향했다.
카서트 중령이 손을 내리면 고화력 투사가 시작될 것이다.
‘더는 방도가 없다.’
싸워야 한다. 여기서 시위대가 흩어지거나 무력화되면 나도 끝장이다.
나는 출력을 끌어 올리면서 싸움을 준비했다.
기이이이이잉!
그 찰나에 상공에서 엔진음이 퍼졌다. 공중차량 한 기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공중차량에 쏠렸다.
키이잉!
공중차량은 비틀거리다 못해 흔들렸다. 고층 건물에 부딪히기도 했다.
몹시 불안한 비행이었다. 비행금지령이 괜히 떨어진 게 아니었다. 평소처럼 공중차량이 많았다면 대형 사고가 연달아 났을 것이다.
비바람을 뚫은 공중차량이 육안으로도 자세히 보일 정도로 지상에 가까워졌다. 공중차량은 차마 착륙하지 못했다.
위태로운 비행을 유지하던 공중차량의 하부가 열렸고 누군가가 떨어지듯 강하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진홍빛 망토였다.
나와 카서트 중령은 누구보다 빨리 상황을 알아챘다. 우린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표했다.
쿠웅!
화려한 망토가 묵직한 비와 중력을 거스르듯 펄럭거렸다. 착지한 그의 발아래에는 노란 경계선이 금이 가듯 쪼개졌다.
“진, 진홍의 황태자?”
시위대 전열에서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 댔다. 그들은 예를 갖추는 것조차 잊고 불손하게 삿대질을 해댔다.
프란세크 크라치아가 이 자리에 왕림했다. 그의 동공은 위엄을 드러내듯 황금빛으로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