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44)
배드 본 블러드-144화(144/197)
144
나와 카서트 중령은 무릎을 꿇은 채로 프란세크가 일어서길 기다렸다.
프란세크 주변에는 호위조차 없었다. 단신으로 위험지역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슈웰 카서트, 검문소를 개방해 제국 신민을 보호해라.”
프란세크가 일어서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확성기 없이도 널리 퍼졌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말하는 듯한 울림이 있었다.
“전하의 명입니까? 폐하의 명입니까?”
카서트 중령이 무릎과 머리를 숙인 채로 말했다.
“내 명이면 따르지 않겠다는 소리인가?”
“……그저 궁금할 뿐입니다.”
“자국의 신민조차 보호하지 못하는 군대에게 무슨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더 많은 사람을 지키기 위한 결단입니다.”
“말은 바로 하게. 더 많은 사람이 아니라 소수의 특권층을 지키는 거겠지!”
프란세크의 호통에 시위대는 아크바란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일부는 과감하게 경계선을 밟고 있었다.
카서트 중령은 막다른 길에 몰렸다. 황태자가 나타났으니 폭력 사태를 일으킬 수도 없었다.
그리고 프란세크의 등장은 시위대라는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제국 하층민 중에선 귀족을 싫어하는 이는 많아도 황실까지 싫어하는 이는 드물었다.
특히 프란세크는 대중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하층에서만 따지면 황제보다도 더 인기가 많을 것이다.
프란세크가 자신들의 편에 섰으니 시위대는 무서울 게 없어졌다는 듯이 과감하게 움직였다.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일어서서 날 지키게.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명을 받은 내가 일어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위대 내부에서도 수상한 움직임이 많았다. 당황하는 자들이 보였다. 저들은 순수한 시민이 아니라 바람잡이일 것이다.
‘프란세크가 조금만 늦었어도 유혈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프란세크는 기다렸다가 일부러 극적인 연출을 노린 거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돋보이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내니까.’
나조차도 프란세크가 오지 않는가 싶어서 조마조마했다. 그가 왕림했을 때, 그 누구보다 안도한 사람은 나였다.
‘일레이가 프란세크에게 잘 설명했을까.’
나는 일레이를 프란세크에게 보내 내 의사를 전달했다. 네트워크상에서 말할 수 없는 내용이 많았다.
‘프란세크에게 이 혼돈을 삼킬 정도의 비위가 있기를 바라야지.’
프란세크는 어두운 모략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철저히 양지의 인간으로 교육을 받은 사내다.
‘황제와 동생이 합심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걸 들은 프란세크는 어떤 심정일까…….’
난 프란세크가 공황에 빠져 내 부름에 답하지 않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프란세크도 건성으로 제왕학은 배운 건 아니었다. 그의 위풍당당한 모습에는 그 어떤 불안조차 보이지 않았다.
황태자의 목소리는 웅장했고, 신체는 완벽했다. 망토와 옷자락도 길게 늘어지더니 비바람에 짓눌리지 않고 펄럭거렸다.
신성을 느낀 이들은 뒤늦게라도 무릎을 꿇으며 건국의 혈통을 향한 예를 취했다.
촤아아아.
프란세크가 한 발자국 내디뎠다. 그의 발아래에서 황금빛 파장이 원형으로 번졌다. 어떤 물리적 위력조차 없는 단순한 빛. 호사스러운 장식 기능 중 하나였다.
그러나 군인들은 감히 그 빛조차 밟아선 안 된다는 듯이 뒤로 물러났다.
저벅.
프란세크는 천천히 계단으로 이어진 입구로 걸어갔다. 원형 파장이 발자국을 따라 번지다가 사라졌다.
그 누구도 프란세크를 건드리지 못했다. 나도 그의 뒤를 따랐다.
척!
카서트 중령이 우릴 따라잡더니 앞을 막아섰다.
“전하, 차라리 여기서 저를 죽이고 문을 여시지요. 이러시면 저는 두 눈을 뜨고도 임무에 실패한 머저리가 됩니다.”
“평화롭게 해결하고 싶네, 카서트 경.”
프란세크가 눈을 낮게 뜨며 말했다. 그의 표정이 언뜻 쓸쓸하게 보였다.
“의지를 관철하시려면 피를 흘리셔야 할 겁니다.”
“제왕은…….”
프란세크의 팔이 움직였다. 그의 소매 안쪽에서 팔 길이보다도 긴 칼이 물리 법칙을 거스르듯 나왔다. 어떤 원리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끼이이익!
프란세크의 칼날이 카서트 중령의 머리를 가르며 지나갔다. 목을 벤 게 아니라 머리를 벴다. 단분자 코팅이 됐는지 절삭은 부드러웠다.
칼날이 지나가자 뇌의 단면이 드러났다.
“……피를 두려워해선 안 되지, 그게 내 손에 묻을 피라도.”
검문소의 군인들은 상관의 죽음에도 침묵했다. 그들은 어찌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군인의 의무와 황족을 향한 충성심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훈련 기관은 없다.
‘혼돈 속에선 오로지 자신의 의지로 판단해야 할 뿐.’
나는 카서트 중령의 결단에 가장 놀랐다.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카서트 중령은 프란세크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사내다. 그러나 기꺼이 자신의 발언을 지키듯 죽음을 받아들였다.
‘아마도 카서트 중령은 지금 사태와 전혀 관련이 없는…… 충직하기 짝이 없는 군인이었겠지.’
카서트 중령은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고결히 수행했다. 제국은 인재를 잃은 셈이다. 이래서 내란이 위험한 것이다. 이번 폭풍기 동안 죽어 나갈 인재가 얼마나 될까. 오히려 간악한 기회주의자들이 승자의 편에 붙어서 카서트 중령의 자리를 꿰찰 것이다.
‘혼란을 가중한다는 내 판단 때문에…….’
인명 피해도 커질 것이고, 제국은 더 약해질 것이다. 프란세크의 비위가 아니라 내 비위가 문제였군. 지금부터 나는 내가 저지를 악덕을 토하지 말고 삼켜야 한다.
“루카, 멍하니 있지 말고 문을 열어라.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제국 신민을 위한 방패가 우리라는 걸 보여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내 칼이 경쾌하게 움직였다.
카- 앙!
크루시스가 복잡한 잠금장치를 간결하게 갈랐다. 그리고 나는 팔을 뻗어 철문을 좌우로 잡아당겼다.
솔직히 힘이 부치는 일이었다. 내 의체의 출력을 최대치까지 끌어 올린 채로 한참이나 유지해야 했다.
그러나 문이 느릿하게 열리기에 연출적인 효과는 대단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나를 보고 있었다.
끼이이이이이이이!
문이 질질 끌려 나왔다. 문의 끄트머리에 연결된 개방장치의 부품이 하나둘씩 내 힘을 이기지 못하고 차례대로 부서지며 튕겨 나갔다.
쿠웅! 쿵!
상층으로 통하는 계단이 활짝 열렸다.
“우오오오오오오오!”
“프란세크 전하 만세! 만세!”
“영원할지어라! 제국의 수호신 크라치아여!”
시위대는 프란세크와 황실을 찬양하며 계단을 밟았다. 이젠 경계선을 넘는 걸 두려워하는 이들은 없었다. 프란세크란 든든한 배경조차 얻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한 여인이 연신 고개를 숙이다가 인파에 휩쓸리듯 올라갔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안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약자.’
약자들은 절박했다. 폭풍기 내내, 그들은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집 안이 안전한 것도 아니었다.
상층 구역을 제외한 모든 구역이 무법지대로 변했다. 하층 구역에선 지금도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나와 프란세크도 계단을 걸어서 올랐다. 먼저 올라가던 시위대도 길을 비키며 선두를 우리에게 넘겨줬다.
“전하를 암살하려는 자들이 사방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저 혼자선 호위가 힘들 수도 있습니다.”
내가 옆에서 속삭였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아크바란, 아니 제국 전역에서 보고 있을 거네. 섣부른 짓은 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자네의 경고가 사실이라면…… 난 내 주변의 사람 그 누구도 믿기 힘든 상황이네.”
“제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
“아니, 아직은 반신반의하고 있네. 하지만 내 동생 라일리, 아니, 지금은 이반인가? 그 아이가 정말로 아버지께 반역을 준비하고 있다면, 자네의 말을 믿을 수 있는 거겠지. 그러나…….”
프란세크의 말투는 담담했다.
“……만약 자네와 일레이가 날 기만한 거라면, 그 죗값은 자네가 뭘 생각하든 간에 그보다 더 끔찍할 걸세.”
“전하는 이미 제가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걸 아실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까지 오신 거겠죠.”
프란세크의 가면에 금이 갔다.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키에스 도미니는 참 피곤한 존재야.”
“그 직위는 박탈당했습니다.”
“그러면 자넨 무엇이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 바라는 새 시대의 상징이 되겠죠.”
프란세크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부가 늘었군. 하지만 자네가 지금 하는 짓은 감시자가 저지르는 전형적인 월권행위네. 조언자의 역할을 넘어서서 황족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길 바라지.”
“전하의 말씀을 전 다르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지금 전하를 이용해야 할 만큼 절박하고 간절한 상황입니다. 월권이 아니라 발버둥 치는 것이죠.”
나는 미간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사고가 끝없이 흘러갔다.
‘프란세크의 난입.’
이를 통해 가능성이 수십 갈래로 더 흩어졌다. 그리고 다른 변수가 더해질 때마다 가능성의 가지는 두 배씩 증식한다.
인간의 뇌로 처리하기 힘든 무한의 가능성. 가능성의 바다를 헤쳐나갈 도구는 ‘직관’뿐이다.
지금부턴 직관을 믿는다. 논리적 이해가 따라오는 수준의 사고로는 이 앞길을 헤쳐나갈 수 없다.
* * *
상층 구역의 순환도로는 프란세크와 시위대가 빼곡하게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프란세크는 도박에 나섰다. 아버지인 황제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걸 알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프란세크의 무기는 대중의 지지.’
나와 프란세크를 따르는 무리는 수만 명에 이르렀다. 거리마다 사람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눈에 보이는 숫자만으로도 얼추 2만 명이 넘었다.
그리고 그 숫자는 점차 늘어났다.
“……싸움을 멈춰라. 그대들의 권리를 내가 보장하겠다.”
군대와 폭도가 대치 중인 구역이었다. 엄폐물과 장벽 사이로 프란세크가 나아갔다. 나는 극도로 긴장하며 사방을 살폈다.
프란세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지금쯤이면 황제와 이반도 프란세크의 돌발 행동을 파악했을 것이다.
나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다. 폭도 사이에는 네메시스의 조직원도 있었다. 릭을 죽인 나를 향해 당장 방아쇠를 당겨도 이상하지 않았다.
“위험합니다! 전하. 저들은 폭도…….”
대치하던 장교가 프란세크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 입을 조심해라. 저들은 폭도가 아니라 제국 신민이다. 제국민끼리 무기를 겨누는 건 내가 용납하지 않겠다.”
프란세크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는 손을 뻗어 폭도 무리를 가리켰다.
어리둥절하던 이들은 프란세크의 화려한 외형과 후광에 눌려 총구를 내렸다.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크라치아의 이름으로, 저 치들의 지휘권을 회수하고 부대를 재편해라. 지금부터 너희들은 특권층을 위한 번견이 아니라 제국민을 위한 진정한 방패가 될 것이다.”
프란세크가 군대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장교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상부의 지시를 받기 위해 통신을 하고 있었다.
제국군의 장교는 대개 귀족이다. 그러나 군대 구성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병사와 부사관은 하층 구역 출신이었다.
저벅, 저벅.
프란세크의 카리스마에 홀린 부사관급 군인부터 전열을 이탈하더니 프란세크 곁에 붙었다. 가속이 붙은 이탈은 걷잡을 수 없었다.
“……이 모든 잘못된 걸 바로잡고 싶은 자들은 무기를 들고 나를 따라와라. 크라치아의 이름이 그대들과 함께한다. 우리 건국의 혈통은 통치에 앞서 그대들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노라. 수호의 의무를 저버린 자에겐 통치의 권한이 없으니, 그게 초대 황제께서 기치를 세우며 내뱉은 맹세다!”
진짜 디노 크라치아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저 말이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 건 분명했다.
사실, 프란세크의 목표가 무엇인지는 연설에 나오지도 않았다. 말 자체도 두리뭉실했다. 그러나 프란세크는 갈고닦은 카리스마를 발휘해 상층 구역의 군대와 폭도를 흡수해 나갔다.
그러나 이 흐름을 막아서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누구의 사주든 간에 암살과 저격이 몇 번이나 있을 거라 나는 예상했다.
인파의 함성이 느릿하게 느껴졌다. 나는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면서도 저들을 응시했다. 저들 중 누군가가 내 눈에 띄었다.
‘저격?’
창문에서 누군가 고개를 내밀었다. 총구가 보인다. 나는 여차하면 몸을 날려서라도 프란세크를 보호하려고 했다.
그러나 저격수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누군가가 저격수의 머리를 잡더니 비틀었다.
‘키누안…….’
혼돈의 도가니에서 키누안이 나타났다. 그는 프란세크를 노리는 저격수를 죽이고선 유령처럼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