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45)
배드 본 블러드-145화(145/197)
145
나는 프란세크라는 새로운 흐름을 유도해 기존의 흐름과 부딪칠 생각이었다. 그러면 혼란은 더 커질 것이고, 내겐 기회가 생긴다.
……그러나 여기에 나보다 더한 사람이 있다. 내 예측과 예상을 번번이 뛰어넘는 괴물 같은 인간. 겨우 같은 높이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착각에 불과했다.
아키에스 도미니, 키누안.
키누안이 시위대와 인파 사이로 모습을 문득문득 드러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볼 수 있었다.
‘왜?’
의문이 내 머릿속에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키누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신은 황제의 편이잖아!’
소리를 질러서 묻고 싶었다.
황제는 통제 가능한 수준의 혼란을 원한다. 프란세크의 돌발 행동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내 시선이 인파 사이를 빠르게 오갔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누군가가 갑자기 털썩 쓰러졌다. 그 뒤엔 또다시 키누안이 서 있었다.
‘프란세크와 나를 노리는 암살자를 키누안이 제거하고 있어.’
키누안은 다시 사람들 틈으로 몸을 숨겼다. 그가 나타날 때마다 수상한 자들이 죽어 나갔다.
키누안이 우리를 위해 위협을 제거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눈치채기 전부터 계속 나와 프란세크를 보호했을 것이다. 어쩐지 이상할 정도로 방해가 없긴 했었다.
‘키누안은 내가 움직이기 쉽도록 돕고 있다.’
믿기 힘들지만 명백한 사실이었다. 저게 황제의 뜻인지 키누안의 독단행동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키누안은 내가 만든 흐름에 끼어들어서 또 다른 혼돈을 집어넣었다. 그가 얼마나 멀리 내다보고 움직이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수만 명이 모였기에 한둘이 죽는 건 티도 나지 않았다. 인파에 밀려 압사당하는 사람도 있고, 지금은 시체가 밟혀도 신경 쓰는 이가 없었다.
외부의 방해가 없기에 흐름은 알아서 흘러가고 있다.
나와 키누안은 까마득한 고차원의 추론 영역에서 서로를 탐색하며 우위를 점하려고 움직인다. 보통 사람들은 우리의 계획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싸움에선 이해당하는 쪽이 진다.’
목적과 행동 원리가 명확할수록 예측이 쉽다. 그리고 키누안은 내 목적을 알고 있다.
‘내가 고뇌 끝에 내린 판단조차 키누안의 예상범주 안에 있었던 건가?’
나는 목 테두리를 매만져서 헬멧을 썼다.
푸핫!
헬멧을 쓰자마자 내 코와 눈에서 피가 터졌다. 충격으로 다리의 힘이 풀릴 것 같았다. 난 필사적으로 버티며 태연한 척했다.
‘눈이 망가졌다.’
내 생체 안구는 뇌가 보내는 신호 과잉을 버티지 못했다. 시야는 붉다 못해 앞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아마 조만간 적출해 의안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난 키누안의 사고를 따라갈 수 없다.’
키누안을 따라잡으려면 더 많은 사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난 물리적 한계에 봉착했다. 정보도 부족하고 뇌도 망가지고 있었다. 키누안을 따라가려다간 내가 먼저 죽을 것 같았다.
‘키누안의 의도를 배제해. 일단은 내가 해야 할 일부터 하자. 키누안의 손아귀에서 움직이더라도 어쩔 수 없어.’
나는 재차 인파 틈에서 나타난 키누안을 보았다.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도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아챘을 터다.
키누안이 여유로운 미소를 짓더니 자신의 입가에 검지를 올렸다.
‘쉿.’
내게 의사를 표명한 키누안이 사람들 틈바구니로 사라졌다.
“루카, 이제 내 동생을 만나러 가고 싶군.”
급조한 세력을 끌어모은 프란세크가 내게 속삭였다. 그는 방금 나와 키누안의 싸움을 전혀 모를 것이다.
프란세크는 흐름의 주축 중에서 가장 약하다. 충돌을 견뎌낼지 장담할 수 없다.
‘프란세크가 쓰러지려고 하면, 내가 받쳐줘야 한다.’
정신 차려라, 루카.
* * *
헤일라스와 군부의 장성들이 어디에 모여 있는지는 모른다. 그들은 본격적으로 쿠데타를 준비하기 위해 통신을 끊고 숨어들었다. 극소수만이 그들과 연락될 것이다.
쿠데타는 굵고 짧아야 한다. 시간이 끌리면 끝장이다.
반역자들은 자신들의 혁명이 성공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을 터다. 지금까지 방해도 받지 않고 순조롭게 계획을 진행했으니까.
황제는 군부의 힘을 깎고 권세 귀족을 축출하는 게 목적이다.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나아가 이반을 옹립하려고 한다.
헤일라스는 가문과 근위대의 존속을 위해 쿠데타 세력을 황제에게 바칠 생각이다.
그리고 프란세크는 황실의 음모에서 살아남기 위해 혁명 세력을 급조하고 있었다. 솔직히 단독 세력으론 거의 무의미한 수준이었다. 지금이야 시위대와 대중이 붙어서 커 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앙상한 뼈대만 있는 세력이다.
“전하, 제 칼은 당신의 것입니다.”
“위버-라트리 가문은 전하의 대의를 따를 겁니다.”
귀족 일부가 프란세크를 찾아와 충성을 맹세했다. 프란세크와 교우가 깊은 귀족이 대다수였고, 낯선 이들은 어중간한 위치의 약소 가문이었다. 그들은 실패하면 망명할 각오로 프란세크의 편에 붙었다.
비바람이 여전히 분다. 사람들의 외투는 젖어서 음침했으나 그들의 열기만큼은 사나웠다.
민심을 추스르듯 프란세크는 지시를 내려 사람들을 보호했다. 쓸만한 군인도 제법 붙어서 명령체계가 잡히고 있었다.
“폐하께서 이를 아시곤 계십니까? 오늘의 행동을 후회할 거요!”
“하하, 황태자가 드디어 미쳐버린 것인가? 우리와 척을 지고도 제국을…….”
몇몇 귀족이 포박당한 채로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하층민의 야유를 받으며 어디론가 질질 끌려갔다.
프란세크는 강압적으로 귀족 소유의 건물을 연거푸 점령해 하층민의 쉼터로 제공했다. 불과 반나절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프란세크가 점령한 지구의 치안이 빠르게 안정됐다. 네메시스의 폭도들도 명분이 없기에 쉽사리 폭력적인 분위기를 형성하지 못했다.
‘황실, 귀족, 반군.’
모두 마찬가지다. 사람들의 지지가 있어야 힘을 받을 수 있었다. 힘으로 억누르는 통치는 한계가 있다.
황실이 범인은 이해하기 힘든 수준의 계략과 모략을 짜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부도덕한 악행을 대중에게 들켜선 안 된다.
“……반드시 경들의 믿음에 보답할 것이오.”
프란세크가 필사적으로 이상적인 혁명 군주 흉내를 냈다.
진홍의 황태자, 프란세크는 카리스마를 뽐냈다. 그림에 그린 듯한 군주의 모습이었다. 사람을 홀리는 힘만큼은 탁월했다. 교육을 잘 받은 탓도 있지만 타고난 기질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프란세크는 현 황제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지.’
나는 프란세크의 곁에 바짝 붙어 있기에 알 수 있었다. 동요와 불안이 계속 새어 나오고 있었다. 황제나 이반에 비하면 마음의 강도가 낮았다.
“일레이에게 연락이 왔네, 루카.”
프란세크가 팔을 앞으로 뻗으며 말했다. 처음 보는 형태의 드론이 프란세크의 팔뚝에 앉았다. 아니, 드론이 아닌 무언가였다.
‘기계수.’
매 모습의 기계수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날개를 퍼덕일 때마다 떨어지는 깃털조차 얇은 금속이었다.
기계 매의 발목에는 서신이 묶여 있었다. 서신의 내용을 먼저 확인한 프란세크가 내게 건넸다.
“……이러니까 헤일라스와 이반을 찾기 힘들었군요.”
내가 중얼거렸다.
헤일라스와 군부는 가장 먼저 봉쇄당한 지구에 있었다. 폭동이 시작된 지점이기도 했다.
‘뉴스에선 폭도의 저항이 거세서 해당 지구의 진입이 힘들다고 했지. 폭도 사이에 근위대가 섞여 있을 거야. 그러니 어지간해선 뚫지 못했겠지.’
헤일라스와 군부는 혼란을 위장막 삼아 그 아래에 숨었다. 그들에게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폭풍기에는 제국의 통제와 감시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위성 시야와 공중의 군사자원도 무용지물이 된다.
우린 지상으로 다니며 입과 입으로 의사를 전달하고, 전령을 보내 연락을 취했다. 이천 년은 퇴보한 것 같다.
덜, 덜덜.
프란세크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그의 손을 가리듯 섰다. 주변 귀족과 군인들이 황태자의 동요를 봐선 안 된다.
황태자의 무기는 오로지 카리스마다. 그걸 잃으면 벌거숭이나 다름없었다.
주모자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면 따르던 이들도 떠날 것이다.
“고맙네, 루카. 추태를 보였군.”
프란세크가 망토 사이로 손을 숨기며 말했다.
“추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난 아직도 현실을 믿기 힘드네. 아니, 아버지와 동생을 믿고 싶어. 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기 전까진…….”
하지만 프란세크는 내가 내민 증거를 외면하기엔 지나치게 총명한 사내였다. 그는 일레이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들었다. 그건 지어낼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그게 제가 전하를 선택한 이유입니다. 이반, 키누안, 헤일라스 같은 이들은 조그마한 의심이라도 들면 상대를 절대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하는 설사 의심이 가더라도 믿어 보려고 노력하고 있죠. 누군가는 그걸 나약하다고 말하겠지만, 저는 그러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프란세크가 나를 보았다. 그의 동공에서 광채가 흐트러지고 나풀거리는 옷자락도 잠잠해졌다.
신성한 건국의 혈통이 나와 똑같은 인간처럼 보였다.
“저도 전하와 똑같기 때문입니다.”
* * *
내 최종 계획은 간단하다.
헤일라스가 ‘공물’을 바치기 전에 찾아간다. 그리고 이반 크라치아를 내치고, 헤일라스가 모아둔 군부 세력을 우리가 가로채야 한다.
결과적으로 군부와 대중의 지지를 얻은 프란세크가 황제를 압박해 황위를 계승하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계승까진 어렵더라도 협상은 가능할 터다. 황제가 정말로 공익을 위해 움직이는 거라면 불필요한 내전을 막기 위해 타협할 것이다.
황제에게 도달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많았다. 지금도 우린 그 산과 부딪힌 상태였다.
터- 엉!
총성이 들렸다. 이번엔 평화적인 방법으로 지나갈 수 없었다. 봉쇄 지구의 과격한 폭도들은 황태자의 등장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프란세크는 급조한 부대를 이끌고 폭도와 대치했다.
진입로를 차단한 폭도들은 잘 훈련받은 군인처럼 엄폐물을 쌓은 채로 전선을 형성했다. 솜씨가 좋은 저격수도 많아서 머리를 내밀었다간 총알이 바로 날아왔다.
“전갑의체? 염병할, 가지가지 하네!”
프란세크 휘하의 장교와 귀족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구형 전갑의체가 폭도 사이사이에 서 있었다.
“우리 쪽 기갑은?”
“지금 가용 가능한 자원을 전부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프란세크의 세력은 꼼꼼하게 준비하고 온 게 아니다. 그들은 필요한 인력과 자원을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끌어오고 있었다. 전갑의체와 같은 기갑 병력까지 현장에 투입하려면 시간이 걸리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지체된다.’
이미 난 시간을 많이 낭비했다.
헤일라스도 프란세크가 이리 온다는 걸 알고 공물 계획을 서두를 터다. 그러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프란세크 전하.”
내가 프란세크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별다른 설명을 듣지 않고도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이해했다.
“루카, 반드시 그 아이만큼은 생포해라.”
그 아이란 이반 크라치아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전선을 벗어나 우회했다. 부대 단위로는 봉쇄 지구의 진입이 힘들지만, 혼자라면 어렵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나머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지. 운이 따르길 바라며 최선을 다할 뿐이다.’
폭풍기의 아크바란은 어둡다. 나는 건물의 그림자 사이를 오가며 몸을 숨겼다. 폭도의 이목은 프란세크의 부대에 쏠려 있기에 봉쇄 지구 잠입이 어렵지 않았다.
나는 의안의 망막에 맺힌 안내와 지도를 따라 이동했다. 미술관을 통과하는 지름길이 있었다.
미술관으로 진입하자 차분하면서도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또각.
대리석의 울림이 맑았다.
미술관의 천장은 유리였으나 지금은 깨져서 바깥바람이 들어왔다. 그 아래에는 멋들어진 회랑이 중앙으로 이어졌다.
회랑 좌우로는 황실과 역대 황제를 찬양하는 조각상과 그림 같은 미술품이 있었는데, 폭도가 지나갔는지 너저분하게 부서지고 찢겨 있었다.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저 끝에서 어둠이 일렁거리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회랑 끝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커먼 사내가 서 있었다. 발끝까지 끌리는 외투는 보기만 해도 답답할 정도로 묵직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비스듬하게 숙이고 있던 사내가 나를 보았다. 두건 아래로 붉은 안광 한 쌍이 빛났다.
기잉.
나를 훑어보는 눈빛이 오싹했다.
난 이 느낌을 기억하고 있다. 처음 보는 상대인데도 그가 ‘황실 소속’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드디어 보는군.’
황제와의 첫 알현이 떠올랐다. 저 묵직한 사내는 내가 줄곧 경계하던 황실의 그림자, 어둠의 근위대였다. 그래, 이쯤에서 명칭을 정해보자.
‘그림자 근위대, 줄여서 그림자. 아니면 황제의 그림자. 나도 작명엔 재주가 없군.’
표면이 아닌 물밑에서 움직이는 진짜 황실의 직속 부대다.
“루, 루, 루카우, 스, 쿠, 쿠스, 토, 리아.”
그림자가 발성이 기이했다. 언어 기능이 퇴화한 듯이 버벅거렸다.
“폐, 폐하께선 헤, 헤일, 라스의 공, 공물을 받, 받아들이셨다. 의식을 방, 방해하지 마라. 네, 네 역할은 차후, 다, 다시 배, 정할 것이다.”
나는 더듬거리는 말을 듣고도 웃지 못했다. 오히려 등골이 차갑게 식는 걸 느꼈다.
“뒤, 로, 돌아서, 왔던, 길을 되, 돌아, 가라.”
그림자가 검지를 뻗으며 말했다.
“뭐, 희소식이로군…….”
내가 억지로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저놈은 방금 결정적인 정보를 노출했다. 보아하니 모략과 계략에 능한 자는 아니었다.
“……헤일라스의 공물을 가로챌 시간이 내게 있다는 뜻이니까.”
헤일라스는 아직 공물을 바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