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5)
배드 본 블러드-15화(15/197)
015
나는 간만에 키누안을 찾아갔다. 투기장을 다녀온 이후로는 첫 방문이었다.
키누안은 요즘 시대에 종이책을 읽고 있었다.
“새로운 전투 논리가 몸에 익은 모양이지?”
키누안이 날 보며 말했다. 그는 책의 표지가 보이지 않게 덮어서 내려놓았다.
“교관님에게 배운 덕분에 강해졌습니다. 다른 생도와 대련하면서 확실히 알 수 있었어요.”
“원래 자네가 가지고 있던 힘이야. 그 활용법을 바꾼 것뿐이지. 일종의 재배치와 최적화라네.”
나는 키누안을 보며 기대하고 있었다. 고작 한 달 사이에 눈에 띄게 내 역량이 올라갔다. 몸이 근질거리면서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습니다.”
“……내가 읽다가 덮은 책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나?”
키누안이 뜬금없이 말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모르겠습니다.”
책의 색깔이 푸른색이었던 것만 기억났다. 내 말을 들은 키누안이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날카로운 눈동자 모양의 문양이 홀로그램으로 떠올랐다.
“옛 언어로 아키에스는 날카로운 눈을 말하네.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
“통찰력이군요.”
내 대답은 준비한 것처럼 빨랐다. 키누안이 살짝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간단한 추론이다. 아키에스 전투술은 통찰력을 극대화해 주변 환경을 비롯한 나와 적을 점검하고 최적화하는 전투체계다.
“……아키에스 전투술의 핵심은 언제나 통찰이었으니까요. 줄곧 시작과 끝이었죠.”
내가 말을 덧붙였다.
“완벽하게 파악했군, 루카.”
키누안은 아키에스 전투술의 실체에 대해 직접 말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은유와 행동으로 간접적 언급만 했다.
그 파편만으로 아키에스 전투술을 익히고 접근하는 게 입문과 습득의 자격이었다.
나는 아키에스 전투술의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키누안의 질문이 이어졌다.
“내가 홀로그램을 작동시키기 위해 몇 번 탁자를 두드렸는지 기억하나?”
이것도 모르겠다. 주의를 기울인 적이 없었다.
“모르겠습니다.”
내 대답에 키누안은 탁자를 재차 두드려 홀로그램을 껐다. 그는 눈을 슬며시 감더니 말을 내뱉었다.
“자네는 왼쪽 안주머니에 단말기를 넣고 있지. 그리고 오른쪽 다리는 신경계 동기화가 오차가 있을 거야. 그건 나중에 정비를 받게. 내 집무실로 들어올 때는 자네는 왼손잡이가 아닌데도 왼손으로 문을 열었지. 왜냐하면, 오전 대련에서 오른팔 출력을 급작스럽게 높인 적이 있어서 아직 저릴 테니까.”
나는 자신도 모르게 내 윗옷 위를 매만졌다. 키누안의 말대로 왼쪽 주머니에 단말기가 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오른팔은 신경계 혹사 때문에 아직도 저렸다.
‘오른쪽 다리의 동기화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도 맞겠지.’
나조차도 나 자신의 불균형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 며칠이 더 지나야 오차가 커지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키누안의 눈썰미는 대단했다. 나보다도 내 몸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엔 관찰력의 극대화입니까?”
“사소한 것도 놓치지 말게. 우린 작은 단서를 모아서 전체의 윤곽을 볼 수 있지. 자네가 저번에 내게 했던 질문이 기억나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아직 듣지 못했다.
“알레프의 사무실에서 싸움이 일어나더라도 교관님은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다고 말씀하셨죠.”
당시 알레프 사무실에선 총을 든 갱들이 내부와 바깥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는 비무장이나 마찬가지였고,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부상을 입지 않고 빠져나오긴 힘든 상황이었다.
“전투가 시작되면 나는 몸을 낮춰서 사선에서 벗어났겠지.”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납득 가지 않았다.
“총을 가진 쪽은 알레프와 갱들입니다. 첫 행동이 숨기라면 공격할 기회조차 놓치고 벌집이 되겠죠.”
“공격 기회는 자네가 살리겠지. 자네는 그 상황이라면 총까지 맞아가며 눈앞의 갱과 알레프를 제압할 테니까.”
나는 솔직히 키누안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원했던 대답은 그 상황을 멋지게 타개할 재기였다.
“제가 없었다면 어쩌실 생각이셨습니까? 만약, 제가 갱을 공격하지 않고 숨거나 도망친다면요?”
“자네가 없었다면 애초에 그런 상황 자체를 피했겠지. 사람이 많은 곳에서 이야기를 나눴을 거야. 그리고 자네가 도망치거나 숨는다는 전제는 말도 안 돼. 자네는 강한 공격성을 갖도록 훈련받은 군인이야. 보신주의적 판단과 행동을 하지 않지.”
맞는 말이다. 나는 부상을 감수하며 어떻게든 갱과 알레프를 제압했을 터다.
“결국, 싸움이 벌어졌다면 어떤 식으로든 저는 부상을 입었겠군요.”
키누안은 내 부상을 당연하다는 듯이 전제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그의 얼굴이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루카, 뭔가 착각하고 있군. 아키에스 전투술은 현실 논리를 뛰어넘는 기적이나 마술이 아니네. 불가능을 가능케 만들 순 없지. 나는 자네보다 경험도 많고 판단력도 뛰어나지. 그 상황에선 자네가 방패 역할을 하는 게 옳네. 자네는 알레프의 손가락이 총으로 개조된 것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고, 왼쪽 벽장 너머로 비밀 통로가 있는 것도 몰랐겠지.”
내 불만을 눈치챈 키누안이 말을 이어서 쏟아냈다.
“자네는 호위부터 제압한 후에 총을 뽑는 알레프를 상대할 생각이었겠지. 하지만 그 순서대로라면 자넨 뒤통수에 총을 맞았을 거네. 알레프는 손가락을 접는 동작으로도 총을 쏠 수 있으니까. 내가 숨으면서 표적에서 벗어나야 자네가 갱을 제압하는 틈을 타서 알레프를 막을 수 있네. 이제 이해했나?”
나는 찍소리도 못했다. 알레프가 손가락을 총으로 개조했다는 사실을 난 몰랐다. 그건 내 계획에 없는 변수였다. 비밀 통로가 있는 것도 당연히 모르고 있었다.
“……이해했습니다.”
키누안의 관측과 인지 능력은 초인적인 수준이었다. 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도 그는 나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인지 능력의 과도한 확장이 뇌의 기능 이상을 유발하는군요.”
키누안은 자신의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알아두게, 루카. 아키에스 전투술은 뇌의 가용자원을 모두 끌어서 혹사하는 방식이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나? 근위대의 제식 전투술로 쓰지 못한다는 뜻이지.”
나는 그 말을 듣다가 움찔했다. 간담이 서늘했다. 내가 무언가를 여태 놓치고 있었다. 곧 키누안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나는 깨달았다.
“레기온을 입고선 아키에스 전투술을 쓰지 못하는군요! 망할…….”
나는 욕을 참지 못했다. 언젠가 나도 근위대원이 되면 전갑의체 레기온을 부여받는다. 중요한 전투가 있을 때면 레기온으로 전장에 나설 터다.
레기온을 입은 내게 아키에스 전투술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제국의 첨단기술이 집약된 전갑의체 레기온은 그 누구도 상시 착용이 불가능하다. 고대역폭 신호를 쓰는 의체인지라 뇌의 가용자원을 모두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렇게 하고도 보조 연산장치를 덕지덕지 붙여야 레기온을 통제할 수 있었다. 평생을 훈련받은 엘리트 군인조차도 말이다!
진작 이걸 생각했어야 했다.
내 한 달이 무의미해진 것 같았다. 갑자기 키누안이 미워지기까지 했다. 흥분한 나는 호흡이 가빠질 것 같아서 나직이 심호흡했다.
“레기온을 부여받은 근위대원에게 아키에스 전투술은 쓸모가 없는 기술이군요.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요.”
아키에스 전투술의 습득과 숙련에는 재능과 시간이 둘 다 필요했다. 터무니없이 비효율적인 전투술이었다. 기껏해야 전투 논리의 다양성에만 조금 도움이 되는 수준이다.
“큭큭…….”
키누안이 어깨를 들썩이며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찡그린 내 얼굴을 보고도 저런 웃음이 잘도 나오는 모양이다.
“레기온과 양립할 수 없다는 걸 처음부터 알았다면 배우려고 하지 않았을 겁니다. 전부…… 제가 우둔한 탓이죠.”
키누안을 탓할 건 없다. 내가 조금만 더 명석했더라면 아키에스 전투술의 실체를 더 빨리 알아챘을 것이다.
“자넨 정말 우수하군. 아까울 정도로 뛰어나. 적어도 두어 달은 더 있어야 알아챌 줄 알았는데 말이야.”
허심탄회한 칭찬에도 나는 웃지 못했다.
“근위대원이라고 상시 레기온을 착용하는 건 아니니 아키에스 전투술을 배워둔다면 도움은 되겠죠. 하지만 뇌의 기능 이상 확률을 올리면서까지 숙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울화를 가까스로 억누르며 말했다.
“그럼, 여기까지인가?”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키누안 교관님.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나는 경례하며 말했다.
“루카,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환영이네.”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 * *
난 보름 넘게 키누안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근위대장 헤일라스의 호출이 날아왔다.
근위대장과 대면하는 건 석 달 만이었다. 그는 몹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듯했다.
‘일레이는 제국 내에서 반란의 낌새가 있다고 했었지. 그 때문에 근위대장이 바쁜 것이라고…….’
기억을 곱씹던 나는 근위대장의 집무실 앞에 섰다. 근위대를 상징하는 금색 칼 문양이 보였다. 화려하진 않지만 정교했다.
치이익!
내가 조작하기도 전에 문이 좌우로 열렸다. 나는 경례하며 앉아있는 근위대장을 보았다.
“거기 앉아서 잠시만 기다리게.”
근위대장의 동공이 쉴 새 없이 다른 색깔의 빛으로 바뀌었다. 통신 대상이 수시로 바뀐다는 뜻이었다. 거기다가 보안 등급이 낮은 정보와 통신은 홀로그램으로 다수 띄워놓고 있었다.
‘정말로 반란이 일어나는 건가?’
근위대장이 저렇게 바쁜 건 나도 처음 봤다. 근 1, 2년 정도는 생도 훈련에 자주 나오길래 어지간히도 할 일이 없는 건가? 라는 생각마저 했을 정도였다.
나는 의자에 앉은 채로 근위대장의 업무가 끝나길 기다렸다.
“루카,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근위대장이 숨을 돌리더니 말했다. 그의 주변을 에워싸던 홀로그램이 일제히 사라졌다.
내 안부를 묻다니 별일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움직였다.
“개인 훈련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임무 배치를 장시간 받지 못했거든요.”
“당분간은 실전 임무는 받지 못할 거네. 우린 자네의 기량이 이미 충분하다고 판단했거든. 실전 경험을 더 쌓지 않아도 언제든 즉각 전력이 될 수 있는 수준이야. 특히 유적지에서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끝까지 수행했지.”
좋은 건지 다행인 건지 모르겠다. 인정받았다는 건 좋지만, 임무 배제는 은근히 뼈아팠다. 실전 경험을 쌓을 기회를 잃는 셈이었다.
“인정받은 건 좋지만, 임무 투입에서 배제된 걸 좋아해야 할지는 모르겠군요.”
“실전 경험이 더 필요한 다른 생도들에게 임무가 우선 배치될 테니 자네가 이해해 주면 좋겠네.”
“군인은 상부의 결정에 따를 뿐입니다.”
나는 근위대장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귀를 기울였다. 슬슬 본론이 나올 때가 됐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고 날 부른 건 아닐 것이다.
“자네가 키누안 교관과 자주 접촉하고 있다고 들었네.”
상부에선 생도의 활동을 샅샅이 알고 있다. 내가 하층 구역의 암시장에 방문한 것, 그리고 투기장에 참가한 것도 이미 알 것이다.
‘나 같은 생도는 제국의 재산이니까.’
나는 대답하려다가 말았다. 근위대장이 먼저 말을 이어갔기 때문이었다.
“키누안 교관 밑에서 아키에스 빅티마를 익히고 있나?”
근위대장이 아키에스 전투술의 정확한 명칭까지 언급하며 말했다. 제국 교범에 없는 전투술을 배우는 건 모범적인 행동이 아니다.
‘아키에스 전투술을 배우는 걸 지적하려고 부른 건가?’
다소 껄끄럽긴 해도 문제는 없었다. 어차피 아키에스 전투술을 더 익힐 생각이 없었다.
“더는 배우지 않고 있습니다.”
근위대장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내가 벌써 관둔 줄은 몰랐던 것 같다.
“지금까지 키누안 교관 밑에서 아키에스 전투술을 배우려는 생도가 여럿 있었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키누안이 먼저 가르치길 포기했지.”
아마 내 눈동자가 미미하게 흔들렸을 것이다. 그 낌새를 근위대장은 놓치지 않았다.
“……내 추측건대, 이번에는 키누안이 포기한 게 아닌 것 같군. 자네가 먼저 관둔 게 아닌가?”
“아키에스 전투술은 레기온과 양립이 불가능합니다. 근위대가 될 사람에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벌써 거기까지 알아낸 건가? 웃기는 일이지 않나? 자질이 부족한 이가 아키에스 전투술을 배우려고 하면 키누안이 먼저 내치지만, 정작 자질이 충분한 자는 아키에스 전투술을 익힐 이유가 없다는 걸 금세 깨달으니 말이야. 그래서 키누안을 제외하고선 아키에스 전투술을 익힌 자가 없네.”
불안하다. 내키지 않는 명령이 내 앞에 떨어질 것 같았다. 이런 예감은 대체로 틀리지 않는 법이다.
“제가 계속 아키에스 전투술을 익히길 원하십니까?”
“정확히 말해서 키누안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그러기 위해선 아키에스 전투술을 계속 배우는 게 좋겠지. 이건 명령이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일종의 감시였다. 근위대장은 키누안을 경계하고 있었다. 하고 싶지 않아도 수많은 추측이 내 머릿속에서 오갔다.
그러나 질문을 던져선 안 된다. 의문을 접어두고 명령에 따라야 한다. 그게 제국의 군인이다.
무엇보다 내막을 알게 된다면 내 목숨이 위험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기밀을 지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을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이니까.
“알겠습니다. 아키에스 전투술을 계속 배우겠습니다.”
내 입에서 나올 대답은 이것뿐.
“루카, 내가 자네를 주시하고 있다는 걸 알아두게. 자네는 출세할 타입이거든.”
근위대장이 말했다.
출세할 타입이라…… 키누안에게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