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50)
배드 본 블러드-150화(150/197)
150
나는 이반을 들쳐 멘 채로 프란세크의 진영에 도착했다. 분위기는 내가 떠날 때보다 훨씬 군대스러웠다. 기갑병력도 다수 합류한지라 전갑의체나 장갑차가 보였다.
기갑병력의 쇳덩이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섬뜩하리만큼 차가웠다. 내 심리 상태의 영향 때문인지 청각 시야의 윤곽이 청백색으로 보였다.
프란세크의 세력은 군대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제대로 된 병력은 오백여 명 남짓이었으나 어차피 도심지 내에선 이보다 많으면 움직이기 힘들었다.
‘이쪽 지구도 점령이 끝나가고 있다.’
나는 잔열로 이글거리는 건물과 반파된 차량을 보았다. 전투의 흔적이었다. 그리고 폭도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프란세크의 부대는 순환도로를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부대 중심에는 지휘차량으로 쓰는 대형 장갑차가 보였다. 지휘차량은 이십 명 넘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내부도 넓었고, 방호력도 훌륭해 폭격이 떨어져도 버틸 것이다.
나는 의아해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다. 그들은 내가 포로로 잡은 이반이 누군지도 모른다.
‘기세를 몰아야 한다. 내일만 지나도 사람들이 정신을 차릴 거야.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닫겠지.’
프란세크가 황제와 협상을 하든 양위를 받든 간에 오늘 밤 내로 끝내야 한다. 이성의 빛이 떠오르면 프란세크의 세력은 와해된다.
기이잉.
나는 지휘차량 가까이 접근했다. 도보와 같은 속도로 움직이던 차량의 문이 열렸다.
차량 내부에 있던 프란세크가 나를 보았다. 그는 다른 귀족과 부사관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 군부의 협력을 받아낸 전령이 왔군! 다들 잠시 자리를 비켜주게.”
프란세크의 말에 사람들이 전부 일어섰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불안과 기대가 있었다. 프란세크가 성공한다면 권력의 중추에 설 것이다. 실패하면 모든 게 끝장이었다.
‘군부의 협력.’
그 말에 사람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대부분 전신의체일 텐데도 감정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저들 대다수가 젊은 귀족이기 때문일 것이다.
프란세크는 군부와 협력 관계인 척하고 있다. 마치 오랫동안 혁명을 준비한 것처럼 이야기를 포장했을 것이다.
‘황태자와 군부.’
명분과 군사력이 따라온다면 프란세크에게도 가망이 있었다. 그게 진짜라면 말이다.
‘헤일라스를 제외하고선 전부 죽었다. 아크바란의 곳곳에 퍼진 군대를 움직일 명령권자가 없어.’
아크바란에는 주인을 잃은 군대가 많았다. 황제도 고민이 클 것이다.
‘프란세크를 반역자로 지정해 토벌하려고 했다간, 역으로 군대가 프란세크에게 흡수당할 수도 있다.’
지금은 프란세크의 기세가 대단히 올라있었다.
내일이면 몰라도 오늘은 프란세크의 밤이었다. 프란세크의 부대 뒤에는 하층민의 행렬이 수천 명이나 따라붙고 있었다.
그러나 프란세크의 불길은 거센 만큼 금방 꺼질 것이다.
불꽃이 정점인 건 지금이다. 오늘 밤이 마지막 기회였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여섯 시간 남짓했다.
군대는 아크바란 내부에만 있는 게 아니다. 제국군의 대다수는 국경지대와 요새화된 변방 도시에 있었다.
황제와 키누안의 역량을 생각해 보면…… 반나절 만에 우릴 토벌할 명분을 만들고 병력까지 준비할 터다.
‘결정적으로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시간도 몇 시간 남지 않았다.’
이미 내 사고와 감각이 둔해지고 있었다. 약효가 정점에 이르렀다가 떨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기이잉.
내가 생각하는 사이에 장갑차의 문이 닫혔다.
차량의 널찍한 내부에는 나와 프란세크, 그리고 턱이 박살 난 이반만 있었다. 중앙에는 종이 서류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리고 차량의 벽면 모니터에는 도시 곳곳의 상황이 실시간으로 나오고 있을 것이다. 이건 내 추측이다. 모니터 화면은 청각 시야로는 확인 못 하는 영역이다.
“루…….”
프란세크는 날 보더니 말을 잇지 못했다. 멀어버린 내 눈 때문일 것이다. 그는 침착하게 마음을 다잡더니 말을 이어갔다.
“자네의 재주는 항상 놀랍군. 그나저나 내 동생의 턱은 왜 이 꼴이지?”
“제 정신건강에 해로운 소리를 해대서요. 짜증이 좀 났습니다. 전하의 부탁이 아니었으면 머리통을 날렸을 겁니다. 그러니 봐주시죠.”
평소라면 절대 내뱉지 못할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무서울 게 없었다. 어차피 내일이면 끝장나는 인간이다.
쿠웅.
나는 이반을 회의실 탁자에 던졌다. 팔다리가 부러진 이반은 자력으론 아무것도 못 했다. 발성 기관도 턱과 같이 부서져서 맥 빠진 소리만 목구멍에서 흘러나왔다. 속되게 말하자면 벌레나 다름없었다.
“……헤일라스도 없이 혼자 왔군. 우리 계획은 실패한 건가?”
프란세크의 목소리에는 불안이 섞여 있었다.
“헤일라스는 늦게 합류할 겁니다. 저와 이반을 빼내려고 미끼를 자처했습니다.”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단 소리군.”
“거기서 죽을 양반이면, 어차피 우리와 합류해도 별 도움이 안 될 겁니다.”
난 허세를 부려봤다. 걱정하거나 기도한다고 바뀌는 건 없다.
“군부와 나 사이의 거래가 끝났다고 말해 뒀네. 군부 세력이 합류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당장 날 배신할 자들이 저 밖엔 수두룩해. 우린 뿌려 둔 거짓말을 진실로 만들어야 하네.”
“헤일라스를 제외한 장성들은 전부 죽었습니다. 우린 당장 군부 세력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지금 프란세크의 안색은 창백할 터다. 그는 떨리는 손을 탁자 밑으로 숨겼다.
“그럼 우리의 혁명은 끝난 건가?”
“헤일라스는 군부의 장성이 죽는 걸 보고도 저를 구했습니다. 아무리 절 아껴도 가문과 식솔을 버려가며 행동할 사람은 아닙니다. 실제로 가문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에 저를 두 번이나 죽이려고도 했고요. 즉, 헤일라스에겐 다른 방책이 있다는 겁니다.”
그 방책이 무엇인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가망이 아주 낮은 최악의 선택지일 것이다. 차선으로도 고려하지 않을 그런 선택지.
우린 헤일라스의 연락이 오길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행동 방침을 정할 수 있다.
쉬이이, 쉬이익.
탁자에 누운 이반이 나를 쳐다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미적으로 완벽한 의체이다 보니 그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곧 연결해 줄 테니 가만히 있어라, 라일리.”
프란세크는 이반을 라일리라고 불렀다. 그게 원래 이름인 듯했다.
꾹.
프란세크가 이반의 목덜미를 더듬었다. 인공 피부밑의 단자가 열렸다.
끼릭.
단자에 선을 꽂자마자 단말기와 이반이 연결됐다.
우우웅.
이반의 목소리를 형상화한 잡음이 단말기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왔고, 이반의 동공은 시스템에 적응하듯 점멸했다.
-형님은 루카에게 속고 있습니다. 군부와 헤일라스는 이미 황궁으로 진군 중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발이 묶이면…….
나는 한숨이 나왔다. 당장 연결된 선을 뽑아버리고 싶었다.
“이반, 프란세크 전하는 네 꼭두각시가 아니야.”
내가 차갑게 내뱉었다.
이반을 보는 프란세크의 얼굴에는 동요가 없었다. 프란세크는 깍지를 낀 손을 턱에 대며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묻겠다, 동생아. 날 죽여서라도 황제가 되고 싶었던 것이냐?”
노련한 질문이다. 그는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숨기며 친족살해 시도를 확신하듯 말했다. 마치 모든 걸 안다는 듯이 말이다.
‘프란세크는 아버지와 동생이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걸 아직도 믿기 싫을 거야.’
하지만 믿기 싫다고 사실이 바뀌진 않는다.
-……끝까지 발뺌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네. 프란세크, 넌 내 꼭두각시야. 그저 잠시 내 자리에 앉아있던 거지. 그랬던 네가 스스로 실을 끊고 멋대로 움직이고 있구나. 차라리 아무것도 모른 채 행복한 꿈을 꾸지 그랬어?
진실이 가볍게 나왔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반은 초조해하고 있어.’
이반은 제국을 탈출하고 싶어 한다. 질질 끌었다간 아크바란에서도 나가지 못할 것이다.
“어째서냐, 왜, 나를, 아버지, 라일리, 왜, 아니, 내가 무얼…….”
나도 살짝 놀랐다. 이반의 말이 끝나자마자 견고하던 프란세크의 얼굴이 무너지고 있었다.
‘젠장.’
돌변한 이반의 발언이 프란세크에겐 충격적인 모양이다. 마음의 준비를 했어도 감당하기 힘든 수준인 듯했다.
-고작 이딴 말 몇 마디로 흔들리니까 넌 황제의 자격이 없는 거다. 손위 형제인 척할 때마다 가당찮더군. 난 널 형제라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살갑게 굴 때마다 널 어떻게 죽일지 머릿속으로 상상하곤 했지.
“루, 루카, 뭔가 잘못된 것 같, 같아. 이건 라일리가 아니야.”
-차라리 방계의 키리시와 미토바 가문의 사람이 나와 더 가깝다고 느낄 정도였어. 어떻게 너 같은 등신이 내 형제인지 늘 의문이었지.
이반은 이때다 싶었는지 독설을 퍼부었다. 프란세크의 상태가 위험했다. 이건 나도 예상치 못한 사태였다.
‘프란세크와 이반의 유대가 내 생각보다 깊었던 거다. 프란세크는 이반이 저렇게 냉소적인 사람이라고 상상도 못 한 거야.’
나는 이반의 목소리를 막으려고 했다. 선을 뽑으면 떠벌리지 못할 것이다.
꾹!
프란세크가 내 손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뺨과 턱을 따라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울어? 어쩔 수 없는 이유가 내게 있었을 거라 믿고 싶었던 거지? 사랑스러운 동생의 입에서 그럴싸한 변명이 나오길 말이야.
이반은 프란세크의 마음을 제대로 후벼 팠다.
“폭언은 여기까지다, 이반. 지금부터 넌 우리가 묻는 말에만 대답해. 한 마디라도 프란세크 전하를 더 조롱했다간 머리가 납작해지는 체험을 할 수 있을 거다.”
내가 이반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힘이 들어가면서 이반의 관자놀이부터 균열이 일었다.
“루…….”
프란세크가 날 말리려 했다.
쿵!
나는 앞발을 뻗어서 프란세크를 걷어찼다. 그가 벽까지 밀려나며 철퍼덕 넘어졌다.
내 손바닥은 이반의 머리를 더 거세게 짓눌렀다. 그의 안구에서도 금이 가고 있었다.
“알량한 형제애가 널 보호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마라. 이 자리에선 내가 네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으니까.”
-드디어 맛이 갔구나, 루카. 광기가 보여. 진작 이랬으면 널 더 좋아했을 텐데…….
이반은 그리 말하면서 프란세크를 더는 조롱하지 않았다. 내 경고를 받아들인 거다.
‘이반은 자신의 생존을 가장 우선시하고 있다. 당장은 황제가 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생존이 목적이야.’
목적을 알면 행동 원리를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협상도 어렵지 않다.
“보다시피 프란세크 전하는 여전히 널 형제로 생각하고 있다. 프란세크 전하의 승리만이 네가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이지. 우리에게 협력해라, 이반.”
-하하, 너 어떻게 된 거야? 사고 수준이 굉장히 올라갔네. 이런 변화는 단시간에 불가능할 텐데…….
“뭐, 좋아, 계속 딴소리로군. 잘 가라.”
내가 팔에 힘을 줬다. 황실 전용의체답게 내구성은 대단했다. 먼저 부서지는 건 탁자였다.
콰드득!
난 정말로 이반을 죽일 생각으로 그의 머리를 계속 짓눌렀다. 바닥에 부딪치면 그의 머리는 터진다. 소중한 뇌도 곤죽이 되겠지.
으득!
프란세크가 황급히 뛰어들더니 이반의 머리를 팔로 받았다. 충격이 줄어든 탓에 이반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움직일 줄 알았다, 프란세크.’
내가 이반을 죽이려고 한 건 사실이다. 프란세크가 내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면 이반은 죽었을 것이다.
내 살의는 진짜였고 주저함도 없었다.
기잉, 기잉.
이반의 동공이 활짝 열려 있을 것이고, 방금 주마등을 봤을 터다.
“하아, 하아.”
프란세크는 자신이 죽을 뻔한 것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공황에 빠졌으면서도 그는 자신의 동생을 구하려고 뛰어들었다.
“이반, 프란세크는 너보다 나은 사람이다. 네게 인간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부끄러운 줄 알아라.”
이반은 잠시 침묵했다. 연결된 단말기에서 잡음이 몇 차례 일더니 온전한 말을 나왔다.
-크라치아 가문에는 특수한 유전자가 있다. 아케인 문명의 전투 유산을 움직일 수 있는 열쇠지. 아버지가 그걸 사용하면 우린 끝이야. 지금 여기에 모인 군대고 뭐고 아무런 의미가 없어.
이반의 말은 진실 같았다. 나는 프란세크의 반응을 기다렸다.
“나, 나는 그런 걸 들어본 적이 없어.”
-당연히 들은 적이 없겠지! 아버지가 떠벌리는 것만 믿고, 스스론 아무것도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난 네가 정말 싫었다, 프란세크.
단말기의 기계음인데도 묵직한 울림이 느껴졌다. 이반은 프란세크를 혐오하고 있었다.
-네가 아무것도 모른 채로 바깥에서 손을 흔들며 웃는 동안……! 난 밤마다 두려움에 떨었어. 언제 아버지가 날 죽일지 모르니까 말이야. 내가 어쩌면 제2의 프란세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지. 진짜 황태자를 또 숨겨 둔 게 아닐까? 이렇게 두려워하고 벌벌 떠는 내가 황제의 재목이 맞을까? 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어.
이반은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 반동으로 만들어진 게 우리가 아는 이반의 외면이다. 자신이 후계자임을 의심하지 않는 듯한 오만불손한 언행조차 살아남기 위한 가면이었다.
-루카, 너라면 장남조차 태연히 죽이려 하는 아버지를 믿을 수 있겠어? 아득바득 기어다닌 건 나도 마찬가지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 꺼풀만 벗겨보면 모두가 사람이었다.
이반도 헤일라스도 내가 생각하는 만큼 어두운 괴물은 아니었다. 그저 나처럼 가면을 쓰고 괴물인 척하는 인간이었다.
저들이 가면을 써야 했던 이유마저도 나와 같았다. 괴물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동류인 척한 것이다.
진짜 괴물은 여기에 없었다. 인두겁을 뒤집어쓴 이형의 존재는 황궁 깊숙한 곳에 살고 있었다.
인간으로 태어나 기계가 된 자가 있다. 그러니 인간으로 태어나 괴물이 된 자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