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52)
배드 본 블러드-152화(152/197)
152
헤일라스의 통신은 근위대 네트워크로만 흘러가는 게 아니었다. 그는 가용한 회선과 네트워크에도 똑같은 영상을 시차를 두고 보내고 있었다.
무작위 네트워크를 통해 헤일라스의 영상을 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프란세크 진영 내부에서도 다들 숙덕숙덕 떠들어 댔다.
‘헤일라스가 이쪽으로 오지 않은 까닭은 네트워크 복구 때문이었군.’
헤일라스는 전자전 전문가가 아니다. 그는 물리적 방법으로 네트워크를 살려냈을 것이다. 아크바란의 시스템에 대해서 그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근위대의 존속은 프란세크 황태자에게 달려 있다. 나와 뜻을 함께하는 자는 황태자에게 합류해라. 황제 폐하께 계속 충성하고자 하는 자도 막진 않겠다. 망아의 충성 또한 근위대의 덕목이니까. 오히려 그 편이 더 근위대다운 것이겠지. 너희들은 날 배신자라 여겨도 좋다.
근위대 통신이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무너진다면, 근위대만이 아니라 제국군에 인간은 남지 않을 거다. 인간이었던 무언가들이 우리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로 군인인 척하겠지. 우리가 어떤 보답을 원하고 싸우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명예와 자부심을 느낄 자아조차 사라진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헤일라스의 말은 끊어졌다. 잡음만 공허하게 울렸다.
“남은 건 근위대원들의 판단이로군. 아버지 곁에 있는 자들은 전 근위대원이었나…….”
프란세크가 그리 말하며 군인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나도 그의 뒤를 따랐다.
개선문에서도 혼란이 일었다. 그 묵직한 근위대원들조차 하층 구역의 시정배들처럼 떠들어 대고 있었다. 때론 삿대질까지 오가기도 했다. 특히 결정권을 쥔 상급 근위대원과 백부장 사이의 언성이 높았다.
의견 충돌은 당연했다.
프란세크의 혁명은 ‘황제의 수호 의무’와 ‘제국민의 보호’를 기치로 세웠다. 그리고 헤일라스는 ‘근위대의 비인간화’를 막자고 말했다.
‘프란세크가 근위대 존속을 약속했다는 건 누가 봐도 급조한 내용.’
꼼꼼하게 맥락을 따지지 않아도, 그림의 조각이 깔끔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충분한 정보를 확보한 채로 곰곰이 생각해 보면, 헤일라스의 선동이 이상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모든 게 불투명하고 혼란스럽기에 명석한 근위대원들도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거야.’
그렇기에 제국과 황실은 거짓 사이로 진실을 숨기며 은밀하게 정보를 독점했고, 이를 바탕으로 공고한 감시사회를 만들었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데다가 가진 정보마저 부족하다면 우수한 인간조차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모두가 이성을 되찾기 전에…….’
길게 생각할 여유가 없을 때나 먹히는 선동이다. 저들이 냉정해질 틈을 주면 안 된다.
“……근위대장 헤일라스 쿠스토리아와의 약속은 지키겠다. 그 동맹의 증거로 루카우스 쿠스토리아가 여기에 있다!”
프란세크가 날 옆에 둔 채로 소리를 질렀다. 그의 목소리는 확성기에 댄 듯이 널리 울렸다.
맹인이 된 나는 프란세크의 안광과 빛을 보진 못한다. 하지만 범상치 않은 이채로 근위대원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을 것이다.
‘타고난 연기자.’
아까 전까지 공황에 빠진 사내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프란세크는 당당했다.
‘대중을 휘어잡기 위해 존재하는 사내.’
언변과 행동거지 하나하나까지 극도로 계산된 카리스마적 존재다. 심지어 의체조차 장식적 기능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프란세크에게 제국은 하나의 무대였고 본인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저벅, 저벅.
근위대원의 두 명이 프란세크를 향해 걸어오더니 예를 취했다. 그걸 시작으로 근위대의 분열이 일어났다.
비가 일시적으로 얕아졌다.
의견이 갈라진 근위대원들은 서로 악수를 하기도 했다. 의견의 차이인 거지, 서로를 증오하는 게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개선문 경비를 맡은 근위대원은 총 102명이었다. 그중 34명이 프란세크 곁에 붙었다. 나는 귀를 기울여 그들의 소속과 계급을 확인했다.
‘숫자는 적지만 힘으로 따지면 반반으로 나뉜 거나 마찬가지다. 레기온도 우리 쪽으로 넷이나 붙었어.’
프란세크에게 붙은 근위대원들이 더 베테랑이었다. 심지어 다섯 명은 제1백인대 소속의 상급 근위대원이었다. 그들은 하급 근위대원 서넛의 몫을 해낸다.
아마도 상급 근위대원 중 일부는 ‘레기온 과용’으로 재기불능이 된 자들이 어떻게 되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결코 바보가 아니니까.
평화로운 분리가 끝났다.
둘로 나뉜 근위대는 거리를 두고선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하께 지휘권을 맡기는 게 옳겠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닌 것 같으니 자의적 판단하에 움직이겠습니다, 부디 저희의 무례를 용서하시길.”
상급 근위대원 하나가 프란세크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는 나를 잠깐 보더니 턱짓으로 짧게 인사했다.
‘최악의 상황, 아크바란의 내전. 오늘 밤으로 끝나지 않으면 제국 전역이 내전에 휘말린다.’
이 모든 사태에 이르러서 나는 황제의 견제가 옳았다는 것도 깨달았다.
‘근위대는 명분과 기회만 있으면 황제의 등에 칼을 꽂을 수 있는 집단이었어.’
통치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황제는 불안정한 무력 집단을 서서히 교체할 생각이었을 터다. 그림자들처럼 배신하지 않는 완벽한 군인으로 그 공백을 메꾸려 했겠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헤일라스라는 걸출한 인물이 나타나 근위대를 휘어잡았다.
다른 국가와 전쟁을 앞둔 상태에서 헤일라스를 가만히 놔둘 순 없을 것이다. 헤일라스가 마음만 먹으면 근위대의 3할 정도를 이끌고 독자적인 군벌을 만들 수 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3할이라는 소리다. 근위대 장악에 신경을 더 쓰고 시간을 투자했다면 절반 이상도 가능할 터다.
‘헤일라스는 지나치게 우수했던 게 문제다.’
내 개입으로 상황은 내전이라는 최악의 결말로 가고 있었다.
‘제국 전체로 보면 최악의 상황.’
그러나 나는 그딴 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아득할 정도로 멀리 보는 시야와 판단. 그리고 대의.’
그게 옳다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그게 나를 짓눌러도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나는 위정자가 아니라 바닥을 기어다니며 찰나를 살아가는 인간이다.
나는 헤일라스가 죽지 않고 살았으면 한다. 지젤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날 가족으로 받아준 쿠스토리아 가문이 존속했으면 한다.
그렇기에 나는 싸워야 한다.
키잉, 킹.
프란세크의 편에 선 근위대원들은 선두에서 무기를 뽑아 들었다. 근위대원답게 무장은 제각각이었다. 다들 취향에 맞는 근접 무기와 총화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쏴아아아아!
멎었다고 생각했던 비가 쏟아졌다. 지열 발전으로 미적지근했던 아크바란은 폭풍기 동안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쿠르르릉!
번개가 친다.
아마 아크바란 곳곳에서 분열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흩어진 부대의 한두 명은 헤일라스의 통신을 들었을 테니까. 물론, 움직이지 않고 방관하거나 중립을 유지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개선문을 지키는 근위대원들도 전투 준비를 끝낸 채로 우릴 기다렸다. 전투가 아니라 시합이라도 하듯 절도가 있었다.
“루카우스, 너는 전하를 지켜라. 넌 생도에 불과하니 근위대의 내분에 끼어들 필요는 없다.”
상급 근위대원이 내게 말을 남기며 앞으로 나아갔다. 말이 지키라는 거지, 후방에서 대기하라는 소리였다.
여기서부터는 근위대원 간의 내전이었다. 누가 미리 약속한 것도 아닌데 프란세크의 군대는 대기만 하고 있었다.
초인들이 모인 근위대의 내전은 근접과 원거리가 뒤섞인 난전 형식이 된다. 개인 기량이 극도로 뛰어난 그들의 특성 때문이었다. 프란세크의 급조한 부대가 끼어들더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철퍽, 철퍽.
두 진영으로 갈라선 근위대원들이 서로를 향해 걸어갔다.
아아, 이 풍경이 헤일라스가 황제에게 항복한 이유 중 하나다. 그는 근위대가 반으로 갈라져 싸우는 꼴을 그 누구보다 보기 싫었겠지.
이 자리에 모인 백여 명의 근위대원은 혼란의 축소판이었다. 아크바란 곳곳에 흩어진 근위대, 그리고 나아가 제국 변방까지 파견을 나간 근위대원들도 혼란을 겪고 있을 것이다.
투- 웅!
둔탁한 총성이 퍼졌다. 루이나가 생각나는 충격탄이 전열의 근위대원에게 명중했다. 나는 소리의 파장으로 그 파괴력을 짐작했다.
총성을 시작으로 근위대원들이 뛰어나갔다. 제국 공방에서 만들어낸 무자비한 총화기가 불꽃과 에너지를 내뿜었다. 저마다의 전투 형태에 맞는 근접 무기는 의체를 베고 짓뭉갰다.
캉! 텅!
전장 특유의 거창한 고함이나 비명은 없었다. 총성과 병장기 소리, 그리고 단말마만 빗소리에 간간이 실려 들어올 뿐이었다. 제국의 최정예끼리 싸운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고요한 전장이었다.
그러나 명백하게 서로를 죽이고 있었다.
죽어가는 자는 담담히 끝을 받아들였고, 형제의 목숨을 제 손으로 빼앗은 자는 처절하게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난 상상했다. 고작 수년을 함께한 생도 동기를 죽이는 것도 꺼림칙하다. 저들이 느낄 죄악감은 가늠도 되지 않았다.
나는 가슴이 울렁거려서 토하고 싶었다. 사고가 빨라지고 생각이 깊어질수록 내 안에 있는 시커먼 감정이 커져만 갔다.
부의 감정이 커지다가 임계점에 도달했다.
쩍.
내 안의 그릇이 깨진다. 균열 사이로는 피가 주륵 흐른다. 끈적거리는 피는 검게 부패하고 있었다.
타인의 악취에는 그리 민감하면서…… 왜 나 자신이 썩어가고 있다는 건 몰랐던 걸까.
“우읍.”
난 입을 막으며 헛구역질을 삼켰다. 나도 놀랄 정도로 동요가 일었다.
‘이 광경은 내 업보와 죄악이다.’
내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근위대원끼리 저렇게 서로를 죽이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헤일라스는 저 꼴을 보기 싫어서 소수의 희생만으로 끝낼 방법을 찾아냈지. 그걸 내가 망친 거야.’
이건 전부 내가 만든 사태다. 나 때문에 저들이 서로를 죽이고 있다.
내 안의 부채와 죄의식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난 근시안적인 인간이고, 나와 가까운 이들의 죽음에만 슬퍼하는 놈이다.
하지만 근위대는 내가 유일하게 소속감을 느끼는 조직이다. 저들이 나 때문에 허망하게 죽고 있었다. 얼마나 힘든 훈련과 과정을 거쳐 저 자리에 왔는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이게…… 보통 사람의 마음이로군.’
닫아둔 감정이 스멀스멀 깨어나고 있었다. 내가 잊고 있었던 살인에 대한 거부감도 고개를 들었다.
난 강한 게 아니었다. 그저 화학 요법으로 인해 호르몬이 비정상이었던 거다. 인간이 살인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근위대 소속만 나와 같은 인간으로 생각했기에 살인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은 것이다. 그 외의 사람을 비인간으로 여겼기에 살인에 둔감할 수 있었던 거다.
죄의식, 이건 끔찍한 감정적 형벌이다. 무찌르거나 없앨 수도 없다.
우오오오오오!
레기온끼리 충돌한다. 기계음이 섞인 포효가 서글프게 퍼졌다. 동질의 무기가 부딪치며 깨졌다. 이윽고 그들은 주먹으로 서로의 머리를 노렸다.
레기온이 부서진다. 그 굉음의 파편이 내 뇌를 찌르듯 강타했다.
귀를 막으면 저들의 절망과 슬픔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난 저들을 봐야 한다. 이건 내 책임이다.
“우웨에에엑!”
내가 비틀거리며 손가락 사이로 토사물을 쏟아냈다. 프란세크가 당황했으나 날 보지 못한 척했다.
‘난 방금까지 가족의 배신에 절망한 프란세크를 나약하다 생각했다.’
그러나 나도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내 죄악을 직시할 비위조차 부족한 머저리였다.
그간 잘도 잘난 척했구나, 루카.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난 고작 이 정도의 인간이었다.
‘미안합니다…….’
나 역시 경멸받아 마땅한 끔찍한 인간이었다.
키이이잉!
날카로운 소리가 상공에 울려 퍼졌다. 청각만 극도로 예민해진 내가 가장 먼저 그 소리를 듣고선 고개를 들었다.
다른 이들의 시선도 하늘을 향했다. 찢어지는 소리가 선명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가시적으로 보이는 무언가는 없었다.
‘아마도 구름과 태풍 너머에서…….’
폭풍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초고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리라.
키이이이이이잉-!!
뇌우조차 찢어버릴 기세의 파공성이 들렸다. 나는 청각 시야가 상실될 것 같아서 귀를 일시적으로 막았다. 그런데도 소리가 완전히 묻히지 않았다.
키이이이잉!
찢어지는 소리가 연달아 퍼졌다. 아크바란 상공에서 뭔가가 떨어지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개선문 주변으로 운석이라도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낙하 충격으로 굉음이 일면서 진동이 일 정도였다.
불규칙한 낙하는 스무 번도 넘게 일었다.
으득, 으득.
나는 막았던 귀를 열면서 청각 시야를 최대치로 넓혔다. 충돌 위치에서부터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이 정도 낙하 충격을 버티려면 레기온급 전갑의체 밖에 없었다. 그것도 초고도 강습을 위한 전용설계가 필요하다.
스스스스…….
사방에서 서늘한 기계음이 들렸다.
청각 시야로 잡힌 전갑의체는 레기온과 닮았으나 미묘하게 달랐다. 무엇보다 근위대에는 초고도 강습부대 따윈 없었다. 아니, 제국군의 그 어떤 부대도 저런 초고도 강습 작전을 사용하지 못한다.
편제상 존재하지 않는 특별한 정예부대. 소거법으로 생각하면 황제의 그림자밖에 없었다.
치이이이.
강하한 전갑의체는 공기의 마찰열로 뜨겁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빗물은 외갑에 닿자마자 증발했다.
전갑의체들은 한창인 근위대의 전투를 무시하며 프란세크 부대를 포위하듯 다가오고 있었다.
“전, 전하부터 보호해라!”
적대적 전갑의체의 등장을 뒤늦게 파악한 장교들이 소리를 지르며 병사들을 지휘했다. 그러나 싸우기 전부터 병사들은 전갑의체의 압도적인 위용에 짓눌리고 있었다.
“후우…….”
내가 호흡을 내뱉으며 전투를 준비했다. 저들은 명백하게 프란세크를 노리고 있었다. 내가 용을 쓰더라도 호위에 성공할 가망은 희박하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삑.
이 와중에 내 단말기가 울렸다. 네트워크와 통신이 엉망인 상태라 누가 보냈는지 모르겠다.
난 시각이 없어서 글자를 보지 못했기에 소리로 재생했다. 내 보호구 목덜미에 장착된 통신기로 메시지의 내용이 흘러나왔다.
-네 미치광이 전략은 성공했다, 루카.
중립적인 기계음이었다. 그러나 내용만으로도 난 한 명의 사내를 떠올렸다.
‘키누안…….’
키누안은 마지막 조각을 슬그머니 밀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