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53)
배드 본 블러드-153화(153/197)
153
‘미치광이 전략.’
그 단어가 내 뇌리를 관통했다.
나는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행동을 이어갔다. 내 안위조차 위태롭게 만드는 충동적인 선택들이었다. 그 때문에 아크바란은 위정자의 예상보다 더 큰 혼돈에 빠졌다.
‘목숨까지 저울 위에 기꺼이 올려두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목숨을 아낀다. 목숨보다 귀한 가치를 추구하는 자들조차 자신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건 아니었다.
‘내가 쌓아온 지위와 경력.’
난 출세 지향적인 인간이었다. 출세를 위해서 과감하게 행동했다. 밑바닥 인생인 내가 여기까지 오려면 매번 목숨을 걸어야 했다. 실패하면 죽는 도박에서 몇 번이나 승리했기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목숨을 걸어 가면서 쌓아온 지위조차 기꺼이 버리는 판단을 했다.
‘나조차도 내가 이렇게 행동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폭풍기가 시작되고 나서도 나는 끝없이 고민했었다.
‘그렇기에 황제조차 내 행동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공멸을 향한 선택지만 골랐다. 황제에겐 아주 껄끄러운 선택지였다.
내 행동과 판단이 황제에겐 막대한 손해로 작용한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긴 했다. 내 동기가 그러했으니까.
……이 모든 상황이 내겐 아니꼬웠다. 온갖 거창한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본질은 그러했다. 나는 황제의 의도대로 상황이 흘러가는 게 싫었다.
‘반골.’
내 안에 줄곧 있던 못된 기질이다.
나도 합리적인 판단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합리적인 선택지들은 전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미치광이 전략을 취한 것이다. 내 존재가 황제에겐 얼마나 못마땅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전신의체를 사용하는 그림자는 황제의 보루 중 하나겠지.’
이반이 경고한 황제의 힘이 뭔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그 힘을 제외하면 그림자가 황제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황제는 외부에 공개하고 싶지 않은 그림자들을 사람들 앞에 내보냈어. 그만큼 궁지에 몰렸다는 거다.’
황제는 정예병력을 짜내 요격에 나섰다. 오늘 밤의 승자가 황제가 되더라도, 비밀스러운 친위대에 대한 소문은 막지 못한다.
편제에도 없는 황제의 직속 부대. 그 존재가 드러나면 ‘군인의 비인간화’가 황제의 목적이라는 것도 설득력을 얻게 된다. 앞으로 통치에 어려움을 겪겠지.
‘하지만 아직 내가 성공한 건 아니다. 그러니 성공을 축하하기엔 일러.’
……아직 수세에 몰린 건 나다. 이대로 가면, 황제도 타격을 입겠지만 전멸하는 건 이쪽이다.
“루카, 혹시라도 숨겨 둔 방책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전부 꺼내는 게 좋을 거다. 난 지금 저들을 막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구나.”
프란세크가 소매에서 칼을 뽑아 들며 말했다. 그도 싸울 준비를 했다. 이미 프란세크 진영은 바깥쪽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전갑의체는 인정사정없이 군인들을 베고 찌르며 우리에게 접근했다. 허약한 총화기는 전갑의체를 뚫지 못하고 힘없이 튕겨 나갔다. 묵직한 폭발조차 그들의 발을 머뭇거리게 만드는 게 전부였다.
‘나와 프란세크는 포위당했다.’
웃기는 말이지만 사실이었다. 22기의 전갑의체가 군대와 프란세크를 사방에서 압박했다. 하늘 말고는 도망갈 곳이 없었다.
“이 날씨에 호출 가능한 공중차량이라도 없습니까? 황실 전용으로 뭐 특별한 거요.”
“있으면 진작 불렀지. 황궁에서 내 시중을 들던 자들도 전부 아버지의 사람이야. 내 사람은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전부다.”
프란세크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 생각이 없던 인간이다. 예상 밖의 상황이 일어나면 대비할 수가 없었다.
“항, 항복하겠습니다! 항복!”
“나, 나는 협박당한 거요! 내 충성은 폐하를 향해…….”
싸우지도 않고 전의를 상실한 이들이 소리를 질러대며 투항을 밝혔다. 분위기에 휩쓸려 만들어진 세력이니 조금만 무너져도 끝장이었다.
그리고 교활한 배신자도 생겼다.
타- 앙!
난 권총을 냅다 뽑아서 쐈다. 내 총알은 프란세크의 뒷덜미를 노리던 귀족의 안구에 박혔다.
“커, 억, 컥!”
프란세크를 습격하려던 귀족은 부서진 눈을 감싸며 헐레벌떡 도망갔다.
프란세크의 세력은 건조한 모래처럼 바스러졌다. 용맹한 척 굴던 병사들은 벌벌 떨며 주저앉거나 살길을 찾아 도망가기 바빴다.
귀족과 장교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약삭빠른 이들은 프란세크를 노리다가 내 존재를 인지하곤 조심스레 도망가려 했다.
콰직!
그러나 그림자들은 도망가는 귀족과 장교를 골라내 죽였다. 전갑의체의 센서는 인파 사이에서도 중요한 인물만 딱딱 찾아냈을 것이다.
“호위에 실패하면 말도 못 할 테니 미리 말하겠습니다. 전하께선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이 사태는 제 과오죠. 미안합니다, 프란세크.”
말하면서도 내 뇌는 마지막까지 살길을 찾으려고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내전 중인 근위대 일부가 우리 쪽으로 오려 했으나 그림자를 막을 정도의 전력은 아니었다.
“내게 미안할 건 없네. 자네가 없었다면 난 그 어떤 진상도 모르고 죽었겠지. 진실이 아플지라도 거짓보단 낫다고 생각해.”
진실이 아플지라도 거짓보단 낫다. 지금 내게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키릭.
프란세크가 근위대원처럼 총과 칼을 하나씩 쥐었다.
내 두뇌는 맹렬하게 달아올랐다. 약물 효과가 떨어져 가기에 머리가 뜨겁다는 느낌도 들었다.
끼릭, 끼릭.
그리고 이물감이 내 사고의 흐름을 막아 세웠다.
‘뭔가 이상하다.’
내 직관이 위화감을 알아챘다. 나는 그게 뭔지 최대한 빨리 해석해야 한다. 판단이 늦으면 끝장이다.
‘도망가거나 항복하는 병사는 죽지 않는다.’
그림자들은 병사들이 적대적 행동만 내보이지 않으면 무시하고 지나쳤다.
‘그러나 귀족과 장교는…… 도망치면 죽이고 있다.’
사격하거나 추격해서라도 도망치는 귀족과 장교는 제거했다. 하지만 모든 귀족과 장교가 죽는 건 아니었다.
‘귀족과 장교는 투항하면 죽이지 않는다.’
이 사실이 이상했다.
‘반기를 든 귀족을 황제가 살려둘 이유가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엔 없었다. 황제의 목적 중 하나가 불온귀족의 색출과 사살이다. 생포해서 재판하기보다 즉결 처형이 나았다.
‘대량 살상 무기도 쓰지 않아. 전갑의체가 저리 모여있으니 분명히 고화력의 살상 무기도 있을 터인데…….’
그림자들은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었다.
“전하, 무기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저항을 포기하자는 건가? 어차피 여기서 구차하게 살아남더라도 잠시일 뿐…….”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내가 소리를 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림자 중 하나가 우리를 향해 총구를 끌어 올리고 있었다.
툭.
나와 프란세크가 무기를 내려놓았다. 내가 먼저 저항할 생각이 없다는 듯이 손을 들었다.
‘내 미치광이 전략이 성공했다고?’
난 키누안의 메시지를 계속 생각했다. 내 사고는 그 주변을 맴돌았다. 뇌리를 스치는 사소한 단서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았다.
‘내가 성공했다는 건 황제가 양보하며 타협하겠다는 뜻이다. 무엇을 양보했다는 거지?’
여기서 사고가 나아가지 않았다. 정보 부족 때문이다.
다른 정보를 습득해라, 루카. 여백에 정보의 조각을 끼워 넣어. 빨리 키누안이 그린 그림을 파악해!
그림자가 총구를 겨눈 채로 나와 프란세크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내 예측이 일단 맞아떨어졌다. 그림자는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전하, 남은 자들에게 명령을.”
내가 중얼거렸다. 뭔지는 몰라도 프란세크의 세력을 최대한 유지해야 한다. 더 줄어들면 안 된다.
“모두 투항해라! 대항하지 마!”
프란세크의 목소리가 단숨에 퍼져나갔다. 병사는 이미 전의를 잃은 지 오래였고, 귀족과 장교는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무기를 내려놓았다.
기이잉, 기잉.
전갑의체의 그림자 하나가 우리 앞까지 다가왔다. 그는 우리를 훑어보더니 프란세크에게 예를 갖췄다.
“전, 하께선 계, 계승서열, 1, 1위이십니다. 옥, 옥체를 보존, 하시길.”
프란세크는 침묵하더니 표정을 구겼다. 그도 뭔가 기이하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왜 계승서열을 갑자기 강조한 거지?’
프란세크가 표면상 계승서열 1위라는 건 당연한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말로 강조할 이유가 있는 걸까?
그리고 그림자들은 나를 보지 않았다. 내게 주목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그저 프란세크의 부하 중 하나인 것처럼 취급했다.
나는 황제의 심기를 단단히 거스른 인물이다. 그러나 그림자들은 날 경계하는 기색도 없었고, 경고도 하지 않았다.
‘나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굴고 있다.’
아크바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너희의 목적은 우리의 토벌이 아니었나?”
내가 그림자의 뒤에 대고 말했다. 그림자가 잠시 우뚝 서더니 대답도 하지 않고 앞으로 걸었다.
다시 생각해라, 루카.
어디서부터 놓친 거지? 단서를 끌어모으고 정답이 나올 때까지 정보를 재배치해.
나는 코에서 흐르는 피를 닦지도 않았다.
뚝!
방금은 의식을 잃을 뻔했다. 머릿속에서 뭔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혈관인지 뭔지도 모르겠다.
‘본의 아니게 내 계획은 미치광이 전략이 됐다. 그리고 키누안은 그게 성공했다고 말했지.’
황제는 나 때문에 어떤 타협을 한 거지? 그림자들은 왜 여기에 온 거지? 우리를 죽이지 않는 이유는? 난 중요 인물이 아니었나? 만약 내 전략이 성공했다면, 가장 먼저 나와 대화해야 하지 않아? 왜 프란세크에게 계승서열 이야기를 한 거지?
기이이잉!
나는 소리가 찡하게 늘어질 정도로 집중했다. 그림자들의 동선을 읽고 접점을 확인했다.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보였다.
‘이반 크라치아?’
그림자들은 이반이 갇힌 지휘차량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경악했다.
“아, 아, 설마, 이건, 말도 안 돼…….”
내 추론은 하나의 결과를 가리켰다. 그러나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도대체?
왜?
어떻게 완성된 그림이지?
어째서 이렇게 된 거야?
이게 말이 돼?
지금, 이 순간에?
나는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이 자리의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하나의 결론에 홀로 도달했다.
그리고 그 결론이 우리에게 다행인지 불행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 혼란, 아니 이상하다.
그저 빌빌 꼬인 혼돈만이 내 곁에서 현실을 속삭였다.
털썩.
나는 주저앉았다. 내 이목구비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삐이이이이.
이명이 일면서 청각 시야가 극도로 좁아졌다. 고작 내 주변만 겨우 보이는 정도였다.
“루카? 지, 지금 쓰러지면 안 돼. 아직 끝난 게 아니네. 헤일라스가 뭐라도…….”
프란세크가 날 부축하려 했다.
“……아닙니다. 방금 모든 게 끝났습니다.”
내가 탁한 목소리로 말했다. 목구멍에서 피 맛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콰직! 쾅!
지휘차량을 강제로 열어젖히는 소리가 났다. 내 흐릿한 청각 시야로는 그 장면이 망원경처럼 좁게 보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의문이 멈추지 않는다. 이대로 계속 사고하다간 난 죽을 것이다.
그래,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를 죽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 여기에 있군. 추론은 가능하나 해결과 증명이 불가능한 난제를 눈앞의 현실로 툭 던지면 된다.
아직도 상황을 파악한 자는 나밖에 없다. ‘당사자’인 이반조차 아무것도 모르고 있겠지.
스륵!
그림자가 지휘차량에서 이반을 꺼냈다. 의체가 반파된 이반은 의자에 앉은 채로 밖으로 나왔다.
쿵!
이반을 꺼낸 그림자가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표했다.
아아, 역시 내 추측이 맞았다.
마지막까지 아니었으면 했다. 아니, 이게 차선이 맞는 건가? 내가 만든 흐름이 다른 결과를 낳은 게 맞을까? 이게 내게 더 나은 결과인가?
이젠 사고가 힘들다. 나도 모르겠다. 너무나 많은 게 꼬여있었다.
쿵! 쿵!
그림자들이 하나둘씩 이반에게 도착하더니 무릎을 꿇었다. 전갑의체들이 집단으로 충성을 맹세하는 장면은 꽤 가관일 것이다.
“폐, 하께서 승하하셨습니다. 황, 가의 의, 례에 따라…….”
전갑의체의 무미건조한 목소리에서 놀라운 말이 흘러나왔다. 저 말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은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일그러졌거나 놀라고 있을 것이다.
전갑의체의 말은 느릿하고 길었다.
내용을 정리하자면 간단했다. 황제 유리 크라치아는 죽었다. 그 때문에 긴급히 그림자들이 차기 황제 앞에 나타난 것이다.
제국에 등록된 다음 황제는 프란세크가 아니라 이반이었다.
“……그, 리하여 다음 신, 민의 영도자이자 제, 제국의 수호자는 당신입, 입니다. 이, 반, 크, 라치아.”
“건, 건국의 혈통이 우리의 앞, 앞길을 안, 안내하리라.”
“크, 라치, 아, 만세.”
그림자들이 서늘하게 말했다.
“루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프란세크도 그림자처럼 어눌한 말을 내뱉었다. 달변가조차 바보로 만들 정도의 상황이었다.
나도 프란세크와 같은 심정이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황제가 죽었다고 한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조차 의문이다. 이 상황을 타개하려고 거짓 죽음을 꾀하는 걸까?
‘그럴 리가 없다.’
그 누구보다 통치를 위한 정당성과 명분 확보에 열중하는 게 황실이다. 이런 얄팍한 거짓말로 계책을 부렸다간 이 상황을 모면하더라도 황실은 무너질 것이다.
그림자 중 하나가 일어서더니 이반의 귓가에 뭐라 속삭였다.
-……천명이로다.
황제 이반 크라치아가 첫말을 내뱉었다. 스스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신세이면서도 강렬한 생명력이 넘치듯 흘러나왔다. 청각 시야가 흐릿해진 나조차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역동적인 에너지였다.
이반은 갓 태어난 아이와 같았다. 혼자선 아무것도 못 하는 생명 덩어리. 그러나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