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57)
배드 본 블러드-157화(157/197)
157
난 순순히 라자루스의 검사 절차를 받기로 했다. 적어도 당장 내게 해를 끼치려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나는 알몸으로 원통형 검사기기 안에 1시간 동안 들어가 있었다.
“……결과가 놀랍네요. 대부분 뇌 기능이 기준치 이상입니다. 코마 상태에서 막 회복한 사람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군요. 보통 예후를 보면 두서너 달은 반쯤 죽어지내거든요.”
의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제법 제대로 된 의료진인 듯했다.
“라자루스는 뭐 하는 곳이지?”
누운 채로 질문을 던졌다. 내겐 정보가 현저히 부족하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내 치료를 맡긴 게 지젤이 맞을까?’
‘폭풍기 이후로 아크바란과 제국은 어떻게 됐지?’
궁금한 게 많지만 일단은 주변의 환경 정보부터 습득해야 하고, 내 주변에 대한 인지를 끝내고 천천히 확장해야 한다.
“뉴젠의 산하 병원 중 하나입니다.”
뉴젠은 또 뭔지 모르겠군. 어감상 생명공학 관련 기업인 듯했다.
의사는 내 상태를 점검하면서 라자루스에 대해 떠들었다. 가볍게 말하는 걸 보니 특별한 비밀은 아닌 듯했다. 이곳 사람에겐 상식인 정보겠지.
“라자루스의 모토는 ‘죽음은 극복해야 할 병이다’입니다. 극한치료 전문이죠. 신기술을 가장 먼저 도입해 통상의 의료기술로는 가망이 없는 환자를 치료하고 있습니다.”
“흠, 인체 실험소라는 걸 돌려서 말하는군.”
“누군가는 그렇게 말하죠. 하지만 당신처럼 살아난 사람도 많습니다.”
내 머리를 감싼 의료헬멧이 부드럽게 열렸다. 내가 등을 대고 있던 침대도 스르르 움직이며 바깥으로 빠졌다.
“아까부터 그럴싸한 말을 하는데 간호사들 질이 좋진 않더라고. 누가 봐도 제대로 된 의료인력은 아니었잖아.”
내가 툴툴거리며 침대에서 일어섰다. 내 움직임은 눈에 띄게 안정화가 된 상태였다. 내 뇌에서 보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라자루스의 간호사는 사망률이 높아서 고급인력을 투입하기 힘들거든요.”
난 굳이 그게 무슨 의미인지 묻지 않았다. 인체실험을 하다 보면 별별 일이 다 생기는 법이지.
‘진가우가 좋아할 시설이네.’
과거의 기억이 가깝게 느껴진다. 사고와 기억이 연결되면서 연상이 부드럽게 이어졌다. 좋은 신호로군.
“간단히 설명하자면, 당신은 극심한 뇌 손상을 입었습니다. 초재생 기술이 발전해도 뇌는 언제나 예외였죠. 뇌의 특수성 때문인데…….”
“더 간단하게 설명해. 내가 과학자처럼 보여?”
“뇌세포의 인위적 재생은 인격의 변화와 기억의 왜곡을 일으킵니다. 큰 부작용만 이 정도고, 자질구레한 부작용은 예상조차 할 수 없죠. 아, 참고로 10년은 사후관리가 무료입니다.”
내가 코웃음을 흘렸다.
“사후관리가 아니라 실험 데이터를 모으고 싶은 거잖아. 나 같은 경우가 많이 없을 테니까. 내게 배경이 없어 보였다면, 너흰 당장 마취제를 내 목덜미에 꽂았겠지.”
내가 목을 손가락 끝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의사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명석하시군요. 말씀대로입니다. 당신처럼 뇌세포 재생에 성공하더라도, 대부분 첫날부터 환각이나 정신분열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몇 달도 버티지 못하고 자살하죠. 아마 당신은 정신 강화와 관련된 특수한 훈련을…….”
“거기까지만 말해. 아직 죽고 싶진 않을 거잖아.”
내가 시큰둥하게 말하며 벽에 걸린 옷을 응시했다. 너저분하고 펑퍼짐한 환자복이지만 이거라도 입어야 했다.
끼릭, 끼릭.
의수와 의족의 소음이 귀에 거슬렸다. 이렇게 싸구려를 써본 적은 처음이었다. 새삼스레 근위대의 사이버네틱 복지가 얼마나 괜찮은지 깨달았다.
‘꼴이 엉망이군.’
난 거울 너머의 낯선 청년을 보았다. 그간 육체적 성장도 일어서 예전보단 얼굴이 각지고 골격도 커졌다.
낯선 청년이 턱을 매만지고 있다. 수염과 머리카락이 지저분하게 자라있었다. 대충 밀었다가 놔두길 반복한 모양이다.
찌익!
나는 환자복 소맷자락을 앞니로 물어서 찢었다. 찢은 천을 끈으로 삼아 머리카락을 뒤로 끌어내 묶었다.
“요즘 삼국의 정황은 어떻지?”
내가 넌지시 물었다.
“뭐, 불안과 긴장의 줄다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협력하고 다투면서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죠.”
본격적인 전쟁은 일어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끼이익.
나는 검사실의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에퀘시안 용병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됐으면 따라와.
에퀘시안이 고갯짓하더니 앞장서서 걸었다.
나는 말없이 따라가며 에퀘시안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그들의 평균 신장은 2미터 초중반으로 인간보다 월등히 컸고, 길쭉한 팔다리에는 밀도 높은 근육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전투 훈련을 비슷하게 받았다는 전제하에 에퀘시안은 인간보다 전투력이 우수하다.
‘체내의 열 순환을 통제하는 특수한 줄무늬.’
저들의 푸른 피부에 새겨진 희미한 줄무늬는 격렬한 상황에서 주황색으로 빛난다.
줄무늬는 에퀘시안의 특유의 신체 기관이다. 덕분에 에퀘시안은 쉽게 지치지 않으며 전투 지속력이 우수했다.
‘그리고 체취도 옅다.’
같은 인간이라도 서로의 체취를 느낀다. 다른 종족이면 낯선 냄새를 더 잘 느낄 것이다.
그런데 에퀘시안은 기이할 정도로 체취가 옅었다. 줄무늬로 열을 배출하는 터라, 땀 자체를 잘 흘리지 않기 때문이리라.
‘사냥꾼과 전사로 진화한 종족.’
문명화 이후에도 지성체는 짐승이었던 시절의 흔적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 신체적 특징을 보면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생존투쟁에서 살아남았는지 알 수가 있었다.
‘옅은 체취, 긴 팔다리, 뛰어난 지구력, 높은 수준의 호전성을 가졌으나 동시에 냉철한 집단주의적 사고방식도 지녔다.’
사냥꾼과 전사의 특징과 덕목이었다. 나열해 보니 우리 인간도 크게 다르진 않군.
저벅, 저벅.
라자루스의 건물 내부와 시설은 너저분했다. 고가의 의료행위가 이뤄지는 곳으로 보이진 않았다.
‘치료받는 사람보다 죽어가는 사람이 더 많을 테니까.’
부패의 냄새가 희미하게 공기 중을 떠돌았다. 아까부터 느꼈는데 여긴 외부로 이어지는 창문이 없었다. 확실히 라자루스는 정상적인 의료시설이 아니었다.
여긴 소중한 사람을 보내는 곳이 아니다. 나라면 지젤을 여기에 보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젤이 여기에 나를 맡겨야 했던 이유가 있을 거야.’
내 의료 기록부터 이상한 점이 많았다. 냉동 수면이 5년이나 있을 이유가 없었다. 실질적인 치료 기간은 냉동 수면 전후로 2년씩 나누어서 2번이었다.
‘네 고용주가 지젤 쿠스토리아인가?’
난 에퀘시안에게 섣불리 묻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일이다. 만약, 에퀘시안의 고용주가 지젤이 아니라면 애꿎은 정보만 노출하는 것이다.
신중하고 침착해야 한다. 낯선 환경일수록 조급하게 굴면 안 된다. 내가 조급해한다는 걸 안다면 그 점을 이용하려고 들 터다.
덜컹!
건물의 정문이 열렸다. 칙칙한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갔다.
처음 보이는 건 태양 빛이었다. 자연광에 적응하느라 눈이 아려왔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여긴 벨라토 연방의 보더시티다. 소속만 연방령이고, 사실상 무국적 중립도시지. 뭐, 제국이나 신성국이 아닌 연방령이니까 이런 자유가 가능한 거겠지만.
에퀘시안은 의외로 친절하게 설명했다. 아마 고용주에게 사전 설명에 대한 명령을 받은 것일 터다.
‘보더시티.’
릴리안 라모네스가 오고 싶었던 도시. 그리고 일레이도 종종 보더시티를 동경하듯 입에 담았지. 웃기게도 내가 그들보다 먼저 여기에 왔다.
저벅.
나는 건물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보더시티를 직시했다.
웅성, 웅성.
온갖 잡음과 목소리가 뒤섞여 들렸다. 거리의 행인은 인간과 외계인이 반반, 아니 외계인이 더 많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보더시티의 건축물은 어린아이들이 놀다 간 자리의 장난감처럼 엉망진창이었다. 통일성과 일관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찾기 힘들었다. 심지어 아크바란 상층 구역에서 볼 법한 제국 특유의 기하학적인 일직선 건물도 보였다.
내가 에퀘시안을 따라가는 동안, 환자복을 입은 나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이한 생김새의 종족과 특이한 복식이 수두룩했다.
가판대나 가게에는 여러 언어로 된 간판이 있었고, 그것도 모자란 지 친절하게 그림으로 설명까지 덧붙였다. 잠깐 돌아다녀도 보더시티 내의 종족 다양성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일시적으로 혼란스러웠다. 인간이 아닌 지성체를 동시에 이렇게 많이 본 건 처음이었다. 익숙지 않은 낯선 광경을 받아들이느라 내 뇌가 팽팽 돌고 있었다.
‘공기조차 다르다.’
땅바닥과 가까운데도 공기는 미적지근하지 않았다.
보더시티는 아크바란과 모든 게 달랐다.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여 올려다봐도 상층 구역 같은 특권지구는 보이지 않았다.
5분여간 이동에도 나는 정신적 피로를 느꼈다. 곧 5층 높이의 주차장 건물이 보였다. 그 입구에는 잡상인과 기다리는 이로 인파가 많이 모여있었다.
날 안내하는 에퀘시안은 인파를 몸으로 밀며 길을 열었다.
“왜 밀치고 지……. 아니, 뭐, 지나가시죠.”
짜증 내던 사내가 에퀘시안을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에퀘시안의 사회적 위치를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전투를 업으로 삼는 종족에게 시비 거는 멍청이는 없지.’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에퀘시안은 자신을 피하는 다른 종족을 보며 당연하다는 듯이 걸어 나갔다. 그는 자신도 들어갈 만큼 큰 차량 앞에 서더니 문을 발로 툭툭 찼다. 충격에 반응한 차량의 문이 열렸다.
-타라.
에퀘시안은 그리 말하며 운전석에 앉았다. 나도 옆에 앉으며 숨을 돌렸다.
기잉, 쿵.
문이 닫히니 외부 자극이 줄어들었다. 뇌가 한결 편안했다.
애써 괜찮은 척하지만, 내 상태는 몹시 안 좋았다. 벌써 며칠 치의 집중력을 다 소모한 느낌이었다.
의체 적응, 상황 추론, 환경 파악.
하나만 해도 벅찬데 동시에 이걸 처리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난 치료 전에는 뇌사 직전까지 갔으며 지금도 회복기였다.
현재 내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도 가늠되지 않았다. 예전처럼 뇌를 굴리다간 또 고장 날 수도 있었다. 두 번이나 부활을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지.
“슬슬 고용주가 누구인지 말해줄 때가 되지 않았나?”
-잔머리 굴리지 마라, 인간. 원하는 이름이 나오지 않으면 도망갈 생각이지? 난 시체가 된 너를 고용주 앞에 데려가고 싶지 않다. 분명히 말했다, ‘시체’라고.
도망가면 죽이겠다는 경고로군. 나는 이 짧은 대화로 많은 정보를 얻었다.
‘에퀘시안의 고용주는 지젤이 아니다.’
지젤이라면 싫다 해도 내가 만나러 갈 것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정체를 숨기는 건 지젤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의미 없는 협박은 관둬. 내가 아는 에퀘시안은 죽으면서도 고용주에 대한 신의를 지켰다. 네 고용주가 날 데려오라고 했다면서? 네 손으로 날 죽이진 않겠지.”
운전대를 잡던 에퀘시안의 행동이 한순간 멈췄다.
-……지금부터 난 너와 대화하지 않겠다.
눈치가 빠르군. 내가 일부러 말을 계속 걸어 정보를 캐낸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꽤 유능한 친구였다.
“그럼 난 잠을 잘 테니까, 도착하면 깨워.”
나는 눈을 감았다.
* * *
나는 에퀘시안의 안내를 받아 그의 고용주를 만나러 갔다.
내가 도착한 곳은 고층 건물이었다. 그 꼭대기에는 층 하나를 전부 쓰는 방이 있었다. 귀금속으로 장식된 문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였다.
끼이이이.
문이 좌우로 고풍스럽게 열렸다.
햇살이 쏟아지는 창을 등지고 누군가 서 있었다. 외계 종족인지라 뒤통수만 보고 어떤 종족인지 알기 힘들었다. 그 옆에는 무장한 에퀘시안 두 명이 좌우로 서 있었다. 전투 헬멧 틈새로 안광이 흉흉하게 빛났다.
“호요요욧. 반갑습니다, 케이사 트레스.”
발성이 특이했다. 인간도 아니었고, 에퀘시안처럼 번역기를 쓰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오늘 하루 만에 일반적인 제국민이 평생 만날 외계인을 다 본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에 나타난 종족은 그리 반갑지도 않았다.
‘타지룬.’
에퀘시안의 고용주는 타지룬이었다. 타지룬 종족의 적갈색 피부는 푸른 에퀘시안과 대조되어 더 붉게 보였다.
‘상업 종족 타지룬.’
다행히 아예 낯선 종족은 아니었다. 저들에 대한 지식은 내게 어느 정도 있었다.
바바라와 협상할 때, 저들의 회선을 빌려서 은밀하게 통신한 적이 있었다. 바바라조차 기겁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돈을 받아먹었기에 뇌리에 잘 남아있었다.
타지룬은 금장이 달린 로브를 입고 있었다. 그들의 사치스러운 성향이 엿보였다. 파충류를 닮은 얼굴에선 갈라진 혓바닥이 수시로 튀어나왔다.
‘교활한 뱀.’
첫인상은 이랬다. 로브 사이로 튀어나온 얇은 손가락이 간사하게 흐느적거렸다. 놈의 손톱은 손가락만큼이나 길었는데 자기 손으론 노동하지 않는 자라는 뜻이다.
“일단 앉으시죠. 해야 할 이야기가 무척 많습니다. 그리고 제가 당신에게 투자한 돈이 천문학적이라는 것만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요호홋.”
“그 웃음소리가 거슬리는데 어떻게 해주면 안 될까?”
“습관이 붙어서 어쩔 수 없습니다. 발성 기관이 당신네와 다르거든요. 그래도 번역기의 기계음보단 낫지 않습니까? 인간 언어를 익히는데 제법 고생했다고요.”
“나와 이야기하고 싶으면 일단 경호원부터 물리시지. 내 꼴을 봐. 막 퇴원한 처지라고, 불필요한 중압감에 시달리고 싶지 않아.”
타지룬이 웃음소리를 내며 손을 장난스레 저었다.
“중압감? 농담도 참 잘하시네요, 케이사 씨. 아니면 루카우스 쿠스토리아라고 불러 드릴까요? 당신의 무용담은 익히 들었습니다.”
……뭐, 예상했다. 흥분할 것도 없지. 애초에 내 정체를 몰랐다면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날 치료할 이유가 없었겠지.
‘타지룬과 내가 가진 정보는 대등하지 않다.’
정석적인 협상과 대화를 하면 내가 휘둘릴 것이다. 빨리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내가 제국, 아니, 키누안과 헤일라스에게 배운 걸 써먹을 때가 왔다.
“5초 안에 날 부른 용건을 말해라. 중간에 말을 돌리면 일어서서 돌아갈 거야. 내 뒤통수에 총알을 박든 말든 마음대로 해. 날 안다면 이게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알겠지?”
“호욧? 잠, 잠깐만요. 아직 제 이름 소개도…….”
“4초.”
내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아니, 그…….”
“3초.”
좋아, 오늘이 내 제삿날일 수도 있겠군. 죽을 각오를 하자. 유언은 뭐가 좋을까.
“2초.”
타지룬의 당황이 느껴졌다. 목석같던 에퀘시안들도 술렁거렸다.
“이 빌어먹을! 아키에스 빅티마아아아! 키누안을 잡아주세요! 루카 씨! 그게 제 용건입니다. 호욧, 호욧…….”
“거봐. 하면 되잖아, 코브라 씨.”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러나 내 속은 얼음을 얹은 듯이 한없이 차가워졌다. 어두운 냉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키누안…….’
머리가 차갑다 못해 피가 싹 빠진 기분이었다.
타지룬의 목적을 알았으니 놈의 행동 원리도 파악된다. 이 정도면 협상을 시작할 만하다.
“자, 이야기를 해보자고. 타지룬은 거래와 협상을 좋아한다면서?”
난 동요를 숨기려고 태연한 척 말했다.
키누안은 엄청난 거물이다. 그러니 타지룬이 날 콕 집어서 부른 이유도 뻔했다.
‘키누안과 대등한 수준의 사고를 하면서 추적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흠, 대등은 좀 오만했던 것 같다. 그나마 내가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눈앞의 타지룬에게 나는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다. 내가 무얼 요구하더라도 어지간해선 들어줄 수밖에 없겠지.
놈에게 알아내야 할 건 많고, 나는 그중에 단 한 가지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