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59)
배드 본 블러드-159화(159/197)
159
-넌 전투용 팔다리가 없으면 제대로 싸우지 못한다면서? 나약한 몸뚱이는 번거롭고 피곤하군.
엔이 기계정비실 앞에서 말했다. 그는 문을 살짝 두드렸다.
치익.
기계정비실의 문이 열리면서 어린아이 같은 외계 종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키도 내 가슴 정도였고, 체구도 작았다. 머리카락 사이로는 한 쌍의 뿔이 앙증맞게 치솟아 있었다.
‘타르파.’
나는 이 존재를 잘 알고 있다. 노엘의 기억에서도 보았다.
‘아크레시아 제국에게 과학기술을 전수한 종족.’
제국의 기계공학은 타르파 종족의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지금도 타르파 중 일부가 제국의 기업 내에서 기술자로 일하고 있을 정도였다.
“아, 이분이 그 의체 이식을 받을 손님이군요.”
타르파가 하늘색 얼굴을 들어 올리며 나를 훑어봤다. 흰자위가 없는 검은색 눈이지만 섬찟한 느낌은 없었다. 타르파는 인간과 생김새가 비슷한 편이기에 난 그녀가 여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인간이 싸울 수 있게 만들어줘, 라피스.
에퀘시안과 타르파가 나란히 서니 키가 두 배 차이 나는 것 같았다.
“들어오세요, 인간 남자분. 이름이?”
“루카.”
“좋은 이름이네요.”
“흔한 이름이야.”
“제 이름은 아까 들으셨겠지만 라피스입니다. 라피스 라줄리요. 제 원래 이름을 인간 쪽 단어로 바꾼 거죠.”
나는 안으로 들어가며 피식 웃었다.
“흠, 벨라토가 다종족 국가라지만…… 다들 인간의 마음에 들려고 안달인 것 같군. 이름도 인간이 부르기 편하게 바꾸고. 이쪽 언어도 익히고.”
빈정거리는 것처럼 들릴 것이다. 왜냐하면, 빈정거린 게 맞기 때문이다.
“벨라토만이 아니라 노바스 행성의 국가는 모두 인류 기반이니까요. 여기서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죠. 타행성에선 인류가 우리와 똑같이 굴 겁니다.”
라피스는 화조차 내지 않고 부드럽게 응대했다. 엔은 전투 헬멧 안쪽으로 코웃음을 치며 자리에 앉았다.
-속 좁은 놈. 친절함을 아부라고 생각하는가 보지? 성격이 제대로 삐뚤어진 걸 보니 어떻게 자랐는지 뻔히 보이는군.
엔의 독설이 내 뒤통수에 박혔다. 그리고 저 말은 맞기에 난 대꾸하지도 못했다.
“시술대에 편히 앉아주세요.”
나는 머쓱하게 목을 매만지며 시술대에 비스듬하게 앉았다. 주변에는 복잡한 전자기계와 모니터가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었다. 바닥에 엉킨 케이블은 움직일 때마다 발에 툭툭 걸릴 정도였다.
철컹! 키잉!
시술대 양옆으로 기계 팔 두 쌍이 올라왔다.
“혼자서 해?”
내가 묻자, 라피스가 부드럽게 웃었다.
“혼자 작업하는 게 편해서요. 인공지능 기계 팔도 있고요. 우수한 조수죠.”
라피스는 시술대에 달린 기계 팔을 쓰다듬었다. 기계 팔이 그녀에게 반응하며 까딱까딱 고개를 끄덕였다.
라피스가 벽에 기대 둔 의족과 의수를 낑낑거리면서 하나씩 들고 오고 있었다. 내가 쓸 물건인 듯했다. 그녀의 체구로는 상당히 벅차 보였다.
-도와줄까?
의자에 앉아있던 엔이 말했다.
“아뇨. 일은 전부 제 손으로 하는 게 좋아요.”
-고집쟁이 같으니. 알아서 해.
엔은 다시 의자에 등을 붙이더니 창밖을 쳐다봤다. 기계정비실도 고층이기에 도시의 아래가 잘 보였다.
보더시티는 아크바란의 하층 구역 못지않게 대단한 난개발이었다. 온갖 종족의 건축양식이 뒤섞여 더 심한 것 같기도 했다.
덜컹.
의족과 의수를 시술대 옆으로 옮긴 라피스가 땀을 닦았다.
라피스가 가져온 의족과 의수는 인공 피부를 덧대지 않아서 기계와 금속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제국처럼 딱딱한 느낌은 없었다.
우우웅.
표면은 근육 모양의 결을 따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비치는 회로에서 푸른빛이 간헐적으로 흘렀다. 마치 예술품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어느 회사 물건이지? 벨라토의 회사는 잘 몰라서 말이야.”
“굳이 회사를 말하자면, 라피스 라줄리사죠.”
“황송하군. 개인이 제작한 맞춤의체라니.”
내 신체 정보는 애저녁에 넘어간 모양이었다. 개인 공방의 맞춤의체는 하루 이틀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적어도 수개월, 길게는 연 단위의 시간이 걸린다.
이반의 가변의체나 프란세크의 화려한 의장의체가 기성품이 없는 맞춤의체에 속했다.
“지금 쓰시는 건 감각 신호가 없는 기종이라 바로 제거해도 통증은 없겠네요. 시작할게요.”
라피스가 내 사지를 하나씩만 천천히 교체했다. 한꺼번에 팔다리를 떼면 내가 불안해할까 봐 그런 것이었다. 섬세하고 배려심이 넘치는 작업이었다.
“의안은 남는 거 없어?”
내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라피스의 기계정비실에는 이런저런 잡동사니 의체가 많았다. 의안 하나 정도도 있을 것 같았다.
“의안은 왜요?”
라피스가 내 오른팔을 제거하며 말했다. 그녀는 기계 팔의 도움을 받아 공구를 바꿔 쥐었다.
“생체 눈은 기능이 떨어지잖아. 뇌를 치료하다 보니 눈도 같이 재생된 모양이야.”
내가 왼손으로 오른쪽 눈 밑을 두드렸다. 물컹한 눈이 낯설었다.
“강해지려고 멀쩡한 육신을 버리는 건 미치광이나 하는 짓이에요.”
난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딱 나네. 그러니까 이쪽 눈알을 빼고 전투용 의안 하나만 넣어줘.”
라피스의 미소가 처음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전 멀쩡한 육체를 도려내고 기계를 이식하는 일은 하지 않아요. 의안이 필요하면 암시장이나 가보세요. 그리고 다신 절 찾지 말고요. 쟈파 님의 지시라도 당신과 상종 안 할 겁니다.”
우리 이야기를 듣던 엔이 웃었다.
-만난 지 십 분도 안 돼서 라피스를 화나게 만들다니 대단하네. 너 재능이 있어, 인성 쓰레기의 재능.
“벌써 내 정체가 들켰군.”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제국 출신이 다 그렇지. 너흰 타고난 육체를 헌 옷처럼 버린다지?
“나도 에퀘시안이 이렇게 말이 많은 줄 몰랐네.”
-아키에스인지 뭔지 몰라도, 쟈파는 헛돈을 쓰는 거야.
라피스가 나와 엔의 대화를 듣다가 더더욱 눈을 찌푸렸다.
“제 정비실에선 싸우지 마세요. 정신이 사나우니까요. 엔도 자꾸 그럴 거면 나가서 기다리고요. 집중이 엄청 필요한 작업입니다.”
-알았어. 아, 그리고 이건 네 단말기다, 루카. 네 방과 일정이 나와 있으니 확인해.
엔이 단말기 하나를 탁자에 내려 두더니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나와 라피스 사이에 대화도 멎었다. 라피스는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의체를 이식하고 점검했다.
* * *
의체 이식이 끝났다. 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한 시술이었다.
난 새로운 팔다리를 응시했다. 민망할 정도로 고급제품이었다. 혈관과 같은 회로에선 피 대신에 빛이 흘렀다. 별다른 조율을 하지 않아도 사용감이 무척 가벼웠다.
“그럼 출력 조절을 위한 신호 대역폭을 측정…….”
라피스가 허리에 매단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모니터 앞에 섰다. 홀로그램 인터페이스가 그녀 앞에 떴다.
“최대치로.”
“네? 이거 보통 물건이 아니에요. 신경계가 다 탄다고요.”
“대충 느낌이 와. 최대치로 넓혀도 문제없어.”
나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 어둠 속에서 푸른빛이 회로를 따라 꺾이는 상상을 했다.
기잉.
동력이 세게 걸린 손가락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내가 인위적으로 출력을 높인 탓이다. 금세 프로그램으로 막아둔 대역폭 한계에 닿았다.
‘어떻게 집중하면 뚫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느낌이 묘했다.
“아, 뭐, 뭐 하는 거예요!”
라피스가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나도 그제야 눈을 뜨며 집중을 풀었다.
삑, 삑, 삑.
모니터에는 오류 메시지가 파다하게 올라왔다. 그 옆에 있는 복잡한 그래프와 숫자는 멋대로 치솟아다가 떨어지길 반복했다.
“봤지? 어차피 강제로 신호 대역폭을 올릴 수 있으니까, 내부 프로그램이 꼬이기 전에 해제해둬.”
내가 허세를 부렸다. 사실 나도 처음 해본 거였다.
‘난 방금 생체 신호로 기계를 해킹했다.’
이런 게 가능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전자전 전문가 중에선 뇌를 컴퓨터로 삼아 네트워크에 직결하는 자가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난 전자전 전문가가 아니다.
‘예상 가능한 건…… 한계까지 의체를 다루다 보니 정말 내 몸처럼 통제하게 된 거지.’
내 뇌에서 하달된 생체 신호는 사이버네틱 신호로 변환된다. 그 신호가 의체를 움직이는 것이다.
‘신호의 강도가 프로그램보다 강하다면 내 명령을 우선시한다.’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아마 근위대에는 나 같은 경험을 해본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헤일라스라도 곁에 있다면 바로 물어봤겠지. 그는 모르는 게 없는 군인이니까.
……새삼스러운 사실이지만, 헤일라스는 죽었다.
생각만으로도 닫아둔 감정의 상자가 열릴 것 같다. 그래서 쟈파 앞에서 쿠스토리아 가문의 이야기를 삼갔다.
고요했다. 라피스도 내 분위기를 보고 기다리다가 침묵을 천천히 깼다.
“손수건 빌려줄까요?”
난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처음에 몰랐다. 그러다가 왼쪽 눈 밑을 매만지곤 허탈하게 웃었다.
“머리가 고장 난 게 아직 덜 나은 모양이야.”
“눈물을 흘리는 건 고장 난 게 아니에요. 흘리지 않는 게 고장 난 거지.”
“맞는 말이긴 하네.”
라피스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방긋 웃었다. 인간의 미적 기준으론 귀엽긴 해도 예쁘거나 아름다운 얼굴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도 그녀의 미소가 마음에 들었다.
“대역폭 제한은 해제했어요. 그 의수 의족 세트를 라줄리 21호라고 부를게요.”
라피스가 홀로그램 인터페이스를 이리저리 만지며 말했다. 내 팔다리가 더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키- 잉!
그리고 팔다리에서 짜릿한 신경통과 과잉신호가 밀려왔다. 유리 조각과 바늘로 팔다리를 쑤시는 느낌이었다. 훈련받지 못한 사람이면 기절했을 터다.
“아, 많이 아프죠?”
“아파서 좋아.”
내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농담이 아니다. 드디어 제대로 된 몸을 가진 기분이었다. 힘을 거머쥐었다는 희열이 고통을 가볍게 짓눌렀다.
“……변태.”
“변태, 미친놈, 사이코. 그런 건 자주 듣는 말이니까 상처받진 않아. 그래서 특별한 기능은 있어? 느낌상 기본기에 충실한 의체 같은데?”
내가 팔다리에 달린 케이블을 하나씩 떼어내며 일어섰다.
파- 앙!
주먹을 가볍게 뻗으니 공기가 울렸다.
‘훌륭하군.’
반응성과 속도가 우수했다. 라피스의 실력은 장인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감이 좋으시네요. 전 당신에 대해 신체 정보 말곤 아는 게 없어서 부가기능보다 기본에 충실했어요. 동체급 중에선 이보다 괜찮은 걸 찾긴 힘들 겁니다.”
“그리고?”
장인은 기본적으로 단순한 물건을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뭐 하나라도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가벼운 손상은 스스로 메꿔요. 이중압착 공법으로 금속층 사이에 삽입해 둔 액체 금속이 외부에 노출되면 굳어서 틈을 보강합니다. 피가 흘러서 굳는 것과 같은 원리죠.”
“비싸고, 까다롭고, 사치스럽군.”
“그래서 특별한 거죠.”
나는 라피스를 지나치며 탁자에 놓인 단말기를 집었다. 내가 제국에서 쓰던 물건과 기본 기능은 비슷했다.
삑.
단말기가 첫 작동이라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에 광고 영상이 작은 화면에 떠올랐다.
-뱀, 뱀, 뱀! 뱀을 갈아 만든 패티로 만든 버거! 어쩌면 독이 들어가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짜릿해요, 좋아요, 맛있어요, 즐거워요! 뱀, 뱀, 뱀! 오세요, 쟈파 버거로!
뱀이 꾸물꾸물 기어가더니 프라이팬을 향해 몸을 던졌다. 화면이 꺼지더니 곧 여러 종족이 해맑게 웃으며 버거를 먹는 장면이 나왔다.
-넷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르는 맛! 먹다가 죽으면 인생역전 할 정도의 크레딧으로 보상해 드립니다!
누군가 거품을 물더니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쟈파 버거는 보더시티 내에 12개의 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난 단말기를 내던져 부수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 라피스를 바라보며 어떤 해명을 요구했다.
“쟈파 님은 보더시티에서 요식업의 대부로 시장을 꽉 잡고 계시거든요. 쟈파 피자 광고도 보시겠어요?”
“혹시 단말기를 재시동할 때마다 이런 광고를 봐야 하는 건 아니겠지?”
“예리하시네요, 뱀, 뱀, 뱀.”
라피스가 리듬에 따라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미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