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62)
배드 본 블러드-162화(162/197)
162
나는 화광예도에 대한 설명을 쟈파에게 들었다. 그 이야기가 내 흥미를 끌었다.
“……보더시티에는 기술에 대한 낭만이 있습니다.”
“기술에 대한 광기가 아니고?”
쟈파가 부정하지 않고 웃었다. 짧은 체류로도 난 보더시티의 존재의의를 알 수 있었다.
검증되지 않은 신기술을 동경하는 자가 보더시티에는 득실거리고 있었다.
보더시티에선 삼국의 인간을 비롯해 온갖 종족이 뒤섞여 아무런 검열과 규제도 없이 한계에 도전하고 있었다.
무한한 자유는 몹시 위험하다. 그 어떤 국가도 자신의 수도 한복판에 불안정한 폭탄을 놔두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크바란도 하층 구역을 텃밭으로 놔둔 거지. 혼돈에서 잉태한 과실이 가장 달콤한 법이니까.’
보더시티는 노바스 행성의 발전에 필요한 도시였다. 백 번을 실패하더라도 한 번의 결과물이 훌륭하다면 이득이다. 실패로 인한 희생과 혼란은 보더시티가 치를 것이고, 각 국가와 종족의 수장들이 결과물을 가로채듯 가져간다.
“은하도공도 그런 낭만주의적 장인 집단이었죠. 은하도공은 부유한 전사와 수집가에게 막대한 투자를 받았고, 그 자본을 바탕으로 이그니움이란 독특한 불련금속(Unobtanium)을 사들여 칼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게 화광 시리즈죠.”
뒤집힌 벽에는 유리 장식장이 달려 있었고, 그 내부에는 한 자루의 외날검이 유려한 곡선을 뽐내고 있었다. 그 밑에는 같이 장식된 칼집도 보였다.
“그래서 이 무기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거지?”
내가 장식장에 다가가며 말했다.
“불련금속이란 말 그대로 인위적인 제련과 합성이 불가능한 금속들을 뜻합니다. 완전히 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레어메탈이라고도 부르죠. 이그니움의 가장 큰 특징은 열 증폭입니다.”
“쓸데없는 설명 빼고 기능만 말해.”
난 쟈파의 말이 길어질 것 같아 한마디 내던졌다.
“플라즈마 에너지를 칼날에 두를 수 있습니다. 요령만 있다면 초심자조차 금속을 벨 수 있죠. 하지만 일단 미숙한 사용자가 휘둘렀다가 자신의 팔다리를 베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났습니다. 칼을 놓치면서 일어난 사고들도 하나같이 끔찍했고요.”
헛웃음이 나왔다.
“그건 절삭력 강화 무기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야. 단분자 칼날도 마찬가지고. 발열 통제에 문제가 있는 건가?”
나는 빠르게 핵심을 짚었다.
“……실사용에서 가장 큰 문제는 열 축적으로 인한 파손과 폭발이었습니다. 은하도공의 장인들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죠. 열을 버티지 못한 칼날이 깨지면서 비산해 얼굴을 갈기갈기 찢고, 때론 무기 자체가 폭발하며 사용자까지 같이 삼켰습니다.”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칼을 응시했다.
“방열 관리는 열 무기에서 가장 기본적인 설계잖아. 장인 집단이라면서? 보더시티에는 말만 장인인 놈들이 천지인가 봐?”
“은하도공에서도 내부 시험을 마치고 실전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엔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관점이 달라 놓치는 맹점이 있는 법이죠. 이게 다방면의 전문가를 모아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어쨌든 은하도공의 문제는 전사가 없었다는 겁니다.”
-정확히 말하면, 일류 수준의 전사가 없었던 거지. 그래서 터무니없이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지른 거야.
엔이 뒤에서 거들었다. 제법 잘 알려진 이야기인 듯했다.
“호요옷……. 엔의 말이 맞습니다. 이런 고성능의 근접 무기를 사용할 사람은 초인의 영역에 도달한 전사들이죠. 은하도공은 그 초인들이 얼마나 격렬하게 싸우는지 몰랐던 겁니다.
총알과 폭탄, 에너지 투사체조차 칼 한 자루로 튕겨내는 자들이 이런 무기를 사용했죠. 그 때문에 제조사의 예상보다 열 축적이 몇 배는 빨랐습니다. 심지어 사용자들은 플라즈마 효과가 더 강해지니까 좋아했죠.”
“하하, 예정된 파국이로군.”
그 어떤 대단한 이론과 촘촘한 계획조차 결국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현실은 언제나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한 달도 되지 않아서 구매자는 절반 넘게 사망하거나 재기불능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결함제품을 팔았던 은하도공도 보복을 당했고요. 이그니움이란 불안정한 물질을 통제할 수 있다 믿은 오만의 결과였죠. 남은 화광 시리즈는 실사용하지 않는 수집가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말이 끝났다. 팔을 든 내가 주먹 밑바닥으로 장식장을 내리쳤다.
쨍!
유리가 깨지면서 균열이 일었다. 균열은 얼음 입자처럼 촘촘하게 번졌고, 장식장은 응력을 잃고선 와장창 무너졌다.
“무기란 장식용이 아니라 쓰라고 있는 거야. 파멸이란 무기의 숙명이지. 생명을 빼앗고 파괴하려고 태어난 녀석들이잖아.”
……나도 마찬가지고. 파괴를 일삼는 주제에 안전한 물건만 찾겠다는 것도 어지간히 못된 심보다.
나는 칼자루를 잡았다. 유리 파편이 우르르 떨어졌다.
“더 좋은 무기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소용없어. 딱 봐도 타르파만큼이나 고집이 세잖아. 한번 결정했으면 자기 목이 떨어지더라도 바꿀 놈이 아니야.
엔이 몸을 들썩이며 웃었다.
“이게 다 당신 때문이잖아요, 엔! 웃, 웃을 때가 아닙니다. 하필이면 화광 이야기를 꺼내서…….”
난 칼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칼집을 낚아채듯 잡았다.
키잉!
날이 매끄럽게 칼집으로 들어갔다. 무게 배분도 좋고, 만듦새도 훌륭했다. 흔히 말하는 명검이었다.
“난 이게 마음에 들어. 결함 원인도 알았으니 열 축적만 통제하면 문제가 없다는 거잖아?”
내 모습을 본 쟈파는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난 전투의체와 무기를 갖췄다. 권총도 괜찮은 녀석으로 하나 받아뒀다.
쟈파의 지원은 내 생각 이상으로 훌륭했다. 쟈파 상사가 어지간히 부자라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쟈파와 나는 고급스러운 응접실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바닥은 발소리를 삼키는 카펫이었고, 벽에는 비싸 보이는 미술품과 이름 모를 짐승의 머리 박제가 걸려 있었다.
“쟈파, 그쪽은 키누안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지?”
내가 소파에 앉은 채로 물었다. 이 자리에는 엔도 없었다. 나와 쟈파 둘뿐이다.
“루카 씨, 전 당신에 대해 사소한 것 하나하나 묻지 않았습니다. 우리 정도 되는 사람들이라면 숨기는 게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중요한 건, 무얼 베풀고 무얼 얻느냐입니다.
전 당신에게 충분한 호의를 베풀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절 믿지 못하겠다며 약점과 다름없는 비밀을 캐내려 한다면, 저도 화가 날 수밖에 없죠. 제가 당신을 한없이 믿고 신뢰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음, 말문이 잠시 막혔다. 키누안이라면 뭐라 대꾸했을까. 난 언변에서 밀린 기분을 느꼈다.
난 손을 위로 들며 항복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 말이 맞아. 서로에게 과하게 간섭할 필요는 없지. 당신은 키누안을 찾고 싶어서 내게 투자했어. 그리고 나도 개인적으로 키누안을 찾고 싶다. 이게 중요한 거겠지.”
“키누안을 죽여선 안 됩니다. 살려서 제 앞에 데려오세요. 제가 당신에게 요구하는 건 이거 딱 하나입니다.”
나는 쟈파의 감정을 읽으려 했다. 그러나 인간이 아닌 종족의 감정 신호를 낚아채는 건 여전히 힘들었다. 타지룬 종족에 대한 경험과 학습이 필요하다.
“키누안을 찾는 것 말고도, 난 개인적인 목적이 있다.”
“지젤 쿠스토리아의 행방불명 때문입니까?”
난 놀라지 않았다. 이 정도는 쟈파도 파악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쟈파는 나에 대해 많이 찾아보고 공부했다. 정황상 지젤이 내 치료비를 내고 있었다는 걸 눈치챘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쟈파의 말을 기다렸다.
“호욧, 사실 당신과 거래하려고 지젤 쿠스토리아의 행방에 대해서도 조사했습니다만…….”
쟈파는 허술한 언행과 달리 심계가 깊다. 그가 항상 나보다 앞서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저는 아키에스 빅티마에 대해서도 수소문했습니다. 굉장히 특이한 전투술, 아니, 사고법이라고 해야 할까요?”
“둘 다 맞는 말이야.”
“아키에스 빅티마를 익힌 사람은 대개 조사 능력이 남들보다 탁월하더군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정보를 취합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일 뿐. 정보 자체가 공백이라면 무에서 유를 만들진 못하죠. 물리 현상을 초월한 포스 같은 게 아니니까요. 어디까지나 이해의 영역에 있는 현실 능력이라는 게 마음에 듭니다.”
쟈파는 아키에스 빅티마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다.
딱, 딱.
나는 자신도 모르게 발로 바닥을 두드리고 있었다. 초조한 감정이 내 신체로 드러났다. ‘그래서 지젤에 대한 정보는?’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
‘예전의 나라면 보편적인 감정 신호를 밖으로 쉽게 드러내지 않았을 거다.’
내 행동을 되돌아보며 자기 점검을 했다.
확실히 예전 같지 않았다. 체화를 통해 사용하던 능력이 자연스레 나오지 않았다. 책을 보며 하나하나 연습하고 재학습하는 느낌이었다.
‘예전엔 어떻게 감정 신호를 감췄더라…….’
너무나 당연히 쓰던 능력이라 잊고 있었다.
“저는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를 지금까지 다섯 명 고용했습니다.”
쟈파가 사진을 탁자에 내밀었다. 처참하게 손상된 시체가 차례대로 보였다. 살점과 기계가 뒤엉킨 꼴은 기괴했다. 심약한 자가 보면 기겁할 만한 사진이었다.
“키누안을 쫓다가 죽은 자들이로군.”
“이건 키누안의 경고입니다. 자신을 쫓지 말라는 거겠죠. 제가 조사한 키누안에 대한 정보를 당신에게 넘기겠습니다. 전임자들의 기록도요.”
“그리고?”
나는 손깍지를 무릎에 올리며 쟈파의 언행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관찰했다.
“당신이 지금부터 지젤 쿠스토리아에 대한 조사를 하더라도 제가 가진 단서와 정보까지 도달하려면 한참 걸릴 겁니다.”
“내 성과급으로 지젤 쿠스토리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당신은 재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닌 것 같으니까요.”
쟈파는 나와 지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지젤을 향한 내 감정은 타인이 이용하기 딱 좋았다.
난 그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다.
스륵.
내가 손을 앞으로 뻗었다.
“거래는 성립됐다, 쟈파.”
쟈파도 손톱을 조심하며 내 손을 잡았다. 적갈색 피부는 변온동물답게 차갑고 소름이 돋았다. 이성으로도 억누르기 힘든 생리적 혐오감이 치솟았다.
“쟈파 상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가족 같은 기업이 우리 회사 모토죠.”
* * *
내겐 재활이 필요하다.
‘키누안은 황제를 왜 죽인 걸까?’
나는 밤거리를 홀로 걸으며 생각했다.
‘마지막 남은 의문.’
다른 이의 목적과 행동 원리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키누안만큼은 나를 아직도 괴롭히고 있었다.
‘황제를 죽인 게 키누안이 맞긴 할까?’
눈으로 내가 직접 본 게 아니다. 황제의 공식 사인은 노환이었다.
그러나 심증적으론 확실했다. 키누안이 황제를 죽인 게 아니라면 그것 또한 그의 노림수인 셈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거겠지.
내 안의 키누안은 비대한 괴물이다. 생각할수록 더 커져만 간다. 그가 지금도 날 내려다보며 웃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스산한 거리를 보았다. 어느 도시에나 이런 우범지대는 있다.
음험한 거리, 범죄가 발이 달린 것처럼 모여드는 곳. 나는 일부러 망가진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캉, 캉.
내 발에 버려진 깡통이 걸렸다. 깡통 소리에 이목이 쏠리고 있었다.
위험을 감지하자, 내 오감이 점차 곤두섰다. 누가 나를 공격할지 모른다. 골목길과 창문 사이로 날 바라보는 시선이 늘어만 갔다.
남들의 시선이 실로 이어진 것처럼 선명하게 느껴졌다. 살의와 적의의 농도마저 이어진 실의 색깔로 구분되는 것 같았다.
만족스러울 만큼 내 정신이 날카롭다. 지금 날 바라보는 자들이 총알을 퍼부어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내 머리통이 쓸모가 있는 모양이다.
‘키누안은 왜 보더시티에 있는 거지?’
그는 제국을 벗어나 벨라토 연방령에 있다.
‘왜?’
깊게 사고하니 머리가 아프다. 나는 콧잔등이 욱신거리는 걸 느꼈다.
‘천천히 생각해.’
오늘은 재활이다, 루카. 뇌를 길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지.
나는 바닥을 보던 시선을 들었다. 골목길 중앙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캉!
맞부딪치는 주먹에 쇳소리가 났다. 사내의 주먹은 망치처럼 단단했고 덩치도 컸다.
‘가브리엘?’
아니, 착각이다. 가브리엘이라기엔 덜 못생겼다. 그저 덩치와 분위기가 살짝 비슷한 것뿐이었다. 뒷골목 주먹패 특유의 느낌 말이다.
“어이, 형씨. 여긴 통행세를 내야 하는 곳이야. 혹시 길이라도 잘못 들었어? 그럼 내가 안내해 줄 테니까…….”
가짜 가브리엘이 그리 지껄이며 내게 다가왔다. 그는 내 어깨에 팔을 올리더니 씰룩거리며 웃었다.
“내가 길을 잘못 들은 걸까?”
나는 무미건조하게 어둠을 보며 말했다.
“아니, 아니. 그렇게 잘못 온 건 아니야. 날 만났잖아, 형씨. 이야, 신발이랑 코트가 좋아 보이네.”
가짜 가브리엘이 내 가슴팍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그는 굵직한 손가락으로 내 턱을 쳤다.
“길다는 잘 있어?”
“어? 길다? 음, 길다? 그게 누군데? 내 옛날 여자친구 이름인가? 농담이야, 이 친구야. 혹시 실연이라도 당했어? 여자친구 이름이 길다?”
가짜 가브리엘은 실없는 소리를 하며 내 품에 손을 넣었다. 그는 내 코트 속의 권총을 꺼내더니 눈을 크게 떴다. 묵직한 전자부품이 총기 아래에 달려 있었고, 전자회로에선 부드러운 빛이 흐르고 있었다.
“자, 자동추적 권총이잖아? 왜 이런 걸 가지고…….”
가짜 가브리엘은 겁을 먹은 듯했다. 총신 옆에는 자동추적 시스템 인증마크가 달려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 들고 다닐 무기는 아니다.
“다섯 걸음 떨어져서 내 머리를 겨눠. 살상 모드니까, 대충 조준해도 내 미간으로 탄환이 날아갈 거야.”
“아냐, 아냐. 형, 형씨. 이거 돌, 돌려줄게. 아씨…….”
가짜 가브리엘이 내 품에 권총을 걸어두려고 했다.
우득!
난 발을 뻗어서 그의 왼쪽 무릎을 짓눌렀다. 생체 다리의 무릎이 폭발하듯 가볍게 부서졌고, 피가 바닥에 철퍼덕 쏟아졌다.
“으, 으악, 꺽, 잘, 잘못했습니다, 형님, 형님. 살, 살려주십쇼. 허억, 컥.”
주변의 기척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내가 심상치 않은 인물인 걸 알아채고 다들 몸을 숨겼다.
“가브리엘,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날 겨누고 쏴.”
내가 뒤로 물러나며 미간을 톡톡 두드렸다. 가짜 가브리엘도 부러진 다리를 붙잡고 있다가 악에 받친 표정으로 날 째려봤다.
“시발, 이 미친 새끼가! 자살할 거면…… 곱게 혼자 뒈져!”
놈이 자동추적 권총을 들어서 날 겨누었다. 살상 모드에선 자동으로 탄환이 치명적인 급소를 향해 날아간다.
나는 집중력을 끌어 올렸다. 이것도 하지 못하면 여기서 그냥 뒈지는 게 낫지.
타-아아앙!
총성이 늘어지게 들릴 즘엔 모든 게 끝난 뒤였다.
……오늘도 살아남았구나, 루카.
치이이익!
나는 손가락 사이로 탄환을 잡아챘다. 검지와 엄지 사이에 낀 탄환이 회전하면서 매캐한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추적탄의 탄두는 일반적인 탄보다 길쭉했다. 그리고 뒷부분에는 꼬리날개까지 있었다.
깡.
나는 운동 에너지를 잃은 탄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짜릿하다. 세상의 색채가 또렷해진 것 같다. 이제야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나도 글러 먹었다.
가짜 가브리엘은 말문을 잃고선 날 멍하니 쳐다봤다. 그는 고통조차 잊었는지 입만 뻥긋거렸다. 방아쇠를 재차 당길 생각도 못 했다.
“흠, 성능이 좋네. 정확히 미간을 향해 날아와서 잡을 수 있었어.”
나는 놈에게 자동추적 권총을 빼앗아 품에 넣었다.
“저, 저는 가, 가브리엘입니다. 제 이름은 가브리엘입니다!”
놈이 몸을 웅크리며 벌벌 떨었다. 나는 말없이 그 옆을 지나쳤다.
터벅, 터벅.
상쾌한 기분은 잠시였다. 일시적인 자극으로 밝아졌던 세상이 금세 어두워졌다.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은 염병할 우울감이 나를 좀 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