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63)
배드 본 블러드-163화(163/197)
163
나는 방에서 휴식하면서 ‘전임 탐정들’의 조사 기록을 살폈다.
전임도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긴 했다. 이들은 일반인이라면 감지 못했을 요소까지 연결고리로 삼아서 키누안을 추적했다.
키누안은 모순으로 자신을 숨긴다. 그는 다른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일부러 고른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키누안을 놓치는 것이다. 합리성으로 무장한 논리로는 그를 찾지 못한다.
의도적인 비합리성과 비논리가 키누안의 무기였다. 그는 결코 타인의 예측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비합리성과 비논리.’
멀리 갈 것도 없다. 내가 황제를 궁지에 몰아갈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웃기는 일이지. 상위 인지와 고등 사고 능력을 가졌기에, 오히려 정교한 논리와 계획이 필요가 없는 거다.’
단순한 사실관계와 명백한 이득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일반인과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의 판단은 동일하다.
그러나 사실관계가 불명확하고 무엇이 이득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의 판단은 일반인과 완전히 달라진다.
심지어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조차 어떤 결과를 완벽하게 예측하고 기대하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변수와 혼란’이 많아질수록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걸 알기에 그걸 무작정 가속할 뿐이었다.
그러니 당장 상황이 내게 유리하지 않다면 더 혼란스럽게 만들면 된다. 내가 폭풍기에 그랬듯이 말이다.
……이젠 이해가 된다.
키누안이 프란세크를 노리는 암살범들을 손수 처리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저 아크바란에 더 큰 혼란을 불어넣고 싶었던 거야. 예측 불허한 혼란이 커질수록 자신의 선택지가 많아지고 영향력이 강해지기 때문이지. 혼돈의 화신 같은 행동이로군.’
그리고 막바지에 이르러서 키누안은 자신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선택을 골랐을 것이다.
피가 쏠리듯 미간과 콧잔등이 욱신거린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달그락.
나는 손을 뻗어서 차가 담긴 보온병을 들었다. 맛이 없는 찻물이 일렁거렸다. 차는 몹시 비싸지만 쟈파 상사에서 다루는 품목 중 하나였다.
후룹.
눈을 감은 내가 차를 마셨다. 그걸 기점으로 달아오른 신경계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차에는 신경안정에 효과적인 성분이 있다. 그러나 그 생리적 효과는 사실 미미하다.
내가 느끼는 안정 효과는 심리적 기제였다.
‘사고 중지 루틴.’
아키에스 빅티마에 숙련될수록 의식적으로 사고를 멈추기 힘들다. 난제에 맞닥뜨리면 사고 중지가 힘들다.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머리를 쓰다가 탈진하고 만다. 기력이 바닥나야 멈출 수 있는 것이다.
매번 그렇게 머리를 쓰다간 미쳐버릴 것이다. 나도 폭풍기 동안 똑똑히 경험했다.
‘키누안이 차를 자주 마시던 것도…… 사고 중지를 위한 루틴이었겠지.’
나는 키누안을 따라 하고 있었다. 진정제가 효과는 제일 좋겠지만, 사고 중지를 할 때마다 약을 투여하다간 부작용을 감당하지 못할 터다.
미약한 진정성분이 있는 차를 마시는 행위로 뇌에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지금은 쉬어야 한다고 말이다. 다행히 내 뇌는 내 의도를 알아먹었다.
‘여전히 나는 키누안에게 배우고 있군.’
옛 기억 때문에 웃음이 나왔다. 아키에스 빅티마의 입문 조건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훔쳐서 배울 것.’
키누안이 내가 올 때마다 차를 권했던 것도 이유가 있었다.
‘의도야 어쨌든 간에, 날 제대로 가르치긴 했네.’
나는 일주일 동안 무리하지 않았다. 나의 불안정한 상태는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휴식하며 전임자의 기록을 살피며 보더시티에 대한 정보를 습득했다. 제국의 동태와 소식도 알아볼 수 있는 선에서 확인했다.
그리고 라피스를 찾아가 신형 의체의 점검도 받았다.
기계정비실의 구석에는 고물 모니터가 있었다. 라피스는 작업할 때마다 텔레비전 방송을 자주 틀어 놓았다. 보더시티에는 방송 채널만 수백 개였다.
-뱀, 뱀, 뱀, 건강에 좋은 뱀고기, 맛도 좋아요, 뱀, 뱀, 뱀. 무균실 농장에서 키운 뱀이랍니다. 껍질도 튀겨서 과자로 먹어요. 그거 아세요? 저는 뱀과 같은 남자가 좋아요, 라라라랄라.
나는 정비 의자에 앉은 채로 눈살을 찌푸렸다. 모니터에선 광고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중요 부위를 뱀 가죽으로 가린 인간 여자가 춤추며 노래하고 있었다. 보더시티의 방송은 제국 출신인 내가 보기엔 처참할 정도로 자유로웠다.
속된 말로, 모든 채널이 사창가 광고 같았다. 규제가 없다는 게 제대로 느껴졌다.
“라라랄라, 뱀, 뱀, 뱀…….”
라피스가 내 의체를 점검하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타르파는 인간으로 따지면 어린애 체형이기에 앉은 나와 키가 비슷했다.
“그 노래를 들으면 정신 나갈 것 같으니 방송 좀 꺼줘.”
“듣기 싫어도 익숙해질걸요. 앙귀스 레지나는 요즘 보더시티에서 제일 잘 나가는 가수예요. 쟈파 상사가 키운 간판 아이돌인데요…….”
라피스는 앙귀스 레지나의 팬인 듯이 구구절절 떠들어댔다.
“그보다 망막 디스플레이는?”
내가 말을 잘랐다. 라피스가 탁자에 놓인 금속 상자를 가져왔다.
“요청하신 대로 전투용 사양으로 주문했어요. 하지만 의안만큼 반응성이 좋진 않을 거예요.”
라피스는 상자에서 나노머신 액체가 담긴 앰풀을 꺼냈다. 나노머신은 상당한 고가 시술 방식이었다.
똑, 똑.
라피스가 내 양쪽 눈에 나노머신 액체를 세 방울씩 떨어뜨렸다. 액체가 각막에 얇게 도포되면서 파직거리는 소리가 났다.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내 시야가 빛 왜곡으로 일그러졌다.
“흐음, 자리를 잘 잡는 것 같네요. 칩도 삽입할게요. 조금 따끔할 수도 있어요.”
칩 주입기를 든 라피스가 내 오른쪽 관자놀이의 머리카락을 들어 올렸다.
퓻!
얇은 칩이 내 피부 아래로 들어갔다. 피하임플란트 형태로 들어간 칩이 망막 디스플레이의 통제를 맡을 것이다.
스르르.
칩과 나노머신이 연결되면서 시야의 왜곡도 사라졌다. 곧 가상 인터페이스가 시야에 주르륵 떠올랐다.
여러모로 그리운 광경이었다.
“제거법은?”
“시술하자마자 제거법을 물어봐요? 조금 섭섭하네요.”
“해킹당하면 시야가 내 통제에서 벗어나잖아. 무작정 믿을 순 없지.”
사이버네틱 의체와 달리 칩은 해킹에 취약하다. 뇌의 신호와 통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무선 연결을 완전히 배제한 독립 장치가 아니라면 해킹의 위험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관자놀이에 삽입한 통제칩을 부수면 같이 떨어져 나가요.”
내 동공은 현란하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확인해야 할 정보가 많았다. 망막 디스플레이 시스템과 내 소지품의 무선 연동도 끝나가고 있었다.
연동이 오래 걸리는 자동추적 권총과 단말기도 마무리됐다.
삑.
나는 시야 구석에 메시지가 뜨는 걸 확인했다. 쟈파의 호출이었다.
* * *
나는 건물 꼭대기에 있는 쟈파의 집무실을 찾아갔다.
쟈파는 뒷짐을 진 채로 보더시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뒷모습은 평소보다 우울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 하나 해주셔야겠습니다, 루카 씨.”
“난 키누안을 찾는 일만 하는 게 아니었어?”
나는 소파에 털썩 앉으며 대꾸했다.
탁자의 과자 바구니에는 맹독맛 사탕이 한가득 담겨있었다. 1/1000 확률로 사망하는 맛이라고 적혀 있다. 무슨 맛인지 궁금하긴 하다. 인정하기 싫지만 쟈파 상사의 제품은 도전 욕구와 호기심을 자극한다. 내가 열 살만 더 어렸어도 환장했을 것이다.
“사람을 찾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에겐 어려워도 당신에겐 산책처럼 쉬운 일이겠죠. 재활에도 도움이 될 거고요.”
쟈파는 천천히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역광이 드리운 그의 얼굴은 어두웠다.
“계약 외 업무로 사람을 부리려면 보상도 있어야지.”
“생각보다 쪼잔하시군요. 당신이 저한테 받아먹은 게 얼마인데…… 호요오옷호……. 참고로, 타지룬에게 쪼잔하다는 말을 듣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저렇게까지 말하니까 마음 한구석이 찔리긴 했다. 키누안을 찾는 일이 무척 어렵다지만, 쟈파의 물질적 지원도 만만찮게 대단했다.
“내가 바라는 게 물질적 지원이 아니라는 건 댁도 알잖아.”
나는 쟈파의 혓바닥을 보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는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혓바닥을 세 번 내민다. 휙, 휙, 휘리릭이라는 느낌이다.
“지젤 쿠스토리아 행방불명 당시…… 그 곁에는 경호 책임자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아직도 보더시티에 있죠.”
좋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길 잘했다.
‘잘도 여태까지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군!’
……라고 외치며 여길 뒤집을 뻔했다. 쟈파가 말하지 않은 건 당연하다. 정보는 날 붙들 수 있는 중요한 거래 수단이니까.
화낼 건 없다. 쟈파는 상인이고, 나와 거래하는 사이다. 심지어 거래에서 이득을 보고 있는 건 나다.
‘이성적으로, 이성적으로.’
난 짧게 심호흡하며 손가락 깍지를 꼈다.
“의붓남매의 사이가 좋았던 모양이군요.”
내 감정의 결을 느낀 쟈파가 말했다.
“학교를 같이 다녔어. 거기서 지젤을 쫓아다니며 괴롭히던 애가 있었는데 내가 혼내줬지. 그 이후로 친해졌어.”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어쨌든 제 부탁을 들어주시면, 저도 경호 책임자의 소재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수락할 수밖에 없는 거래였다. 쟈파는 노련한 사업가다.
* * *
보더시티에도 부유층 거주지는 따로 있었다. 지금 내가 도착한 곳도 그런 부유층 거주지 중 하나였다.
21층 고급맨션은 1층부터 보안이 철저했다. 과할 정도의 중화기로 무장한 경비들이 전신 전투복을 입은 채로 돌아다녔다. 무슨 군부대 시설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입구에 서자, 무장경비가 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쟈파 상사가 보증한 출입증이다.”
나는 보안 코드가 물처럼 흐르는 액정카드를 내밀었다. 쟈파가 사전에 발급해 준 출입증이었다. 쟈파는 이 고급맨션의 투자자 중 하나였다.
내가 출입증 검사를 받는 사이에 소란이 일었다.
“나느느느느는! 앙귀스의 남자친구라고! 물어봐! 물어보라고! 앙귀스 내가 왔어! 앙귀스으으으으!”
난 뒤를 쳐다봤다. 경비 몇 명이 나오더니 소리치던 인간 남자를 쇠몽둥이로 두들겨 팼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저러다가 사람 죽겠네.”
내가 툭 내뱉자, 내 앞에 있던 경비가 웃었다.
“저래도 다 나으면 다시 옵니다. 그냥 돌려보내면 매일 와요. 저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죠. 우리 경비 업무의 절반은 앙귀스 레지나의 스토커 처리입니다.”
“앙귀스 레지나가 그렇게 인기가 많아?”
내가 묻자, 경비는 헬멧 너머로도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방금 앙귀스 레지나의 인기를 물어본 겁니까? 보더시티 사람이 아니시군요. 뱀, 뱀…….”
“노래는 됐어. 무슨 단체로 최면에 걸린 것도 아니고 도대체…….”
나는 툴툴거리며 경비를 지나치며 나아갔다. 그리고 일시적인 선택 장애에 직면했다.
21층 저택인데 승강기가 스무 개였다. 층마다 개별 승강기를 설치한 것이었다. 돈지랄도 이런 돈지랄이 없다.
치익.
난 19층으로 올라가는 승강기에 탑승했다. 내부 크기는 방 하나 정도였다.
개별 승강기답게 내부에는 개인용품이 가득했다. 선반에는 화사한 장신구와 화장품이 보였고, 승강기 한쪽 벽은 아예 수납이 가능한 옷장이었다.
우웅.
닫히는 승강기 문 내측은 앙귀스 레지나의 사진으로 빼곡했다. 그녀는 쟈파 상사의 전속 아이돌이다. 내가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노래를 부른 여자이기도 하고…….
……내가 찾아야 할 사람이기도 했다.
‘앙귀스 레지나가 행방불명됐다.’
시기는 어제, 혹은 그저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