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65)
배드 본 블러드-165화(165/197)
165
앙귀스 레지나의 매니저는 자주 바뀌었다. 얼마 전에도 해고해서 현재 매니저 자리가 공석이었다.
‘해고 사유는 앙귀스 레지나의 변덕.’
하지만 해고한 매니저와는 악감정 없이 완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앙귀스 레지나의 매니저를 한 명씩 찾아갔다.
“앙귀스 레지나? 나한테 안 왔어. 무슨 사이라고 물으면…… 전 매니저 겸 애인이며 친구? 가끔 외로운지 나를 자기 맨션으로 부르긴 해. 여러모로 안타까운 애야. 당신도 담배 줄까?”
야광도료의 색조 화장으로 얼굴을 뒤덮은 여자가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그녀의 무릎에는 털이 무지개색으로 반짝거리는 고양이가 앉아있었다.
난 시큰둥하게 그녀의 흡연 제안을 거절했다. 괜스레 일레이가 떠올랐다.
“비흡연자야.”
“술 담배 약물 다 하는 것 같은 우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비흡연자라니 웃기네.”
여자가 키득키득 웃었다. 그녀는 심리상담가 출신이었다. 그 때문인지 매니저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일했다. 그래 봐야 일 년이긴 하다.
앙귀스 레지나의 매니저들은 제각기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갱, 심리상담가, 요리사, 전직 군인 등등 다양했다.
나는 여자의 언행을 관찰했다.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다.
“회사에 말도 안 하고 이렇게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잦나?”
“종종 이렇게 연락을 끊고 멋대로 행동해. 대부분은 에퀘시안이 찾으러 다니고, 아주 가끔 당신 같은 사설탐정이 앙귀스 레지나를 찾으러 다녀.”
사설탐정은 쟈파가 고용했던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를 말하는 것일 터다. 그들도 나처럼 앙귀스 레지나를 찾으러 다닌 적이 있는 듯했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이런 일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일을 관두고 도망가겠군.”
“그건 아니야. 앙귀스 레지나는 그 정도로 철없는 아가씨가 아니거든. 일에 대해선 진지하게 임해. 직업정신이 있는 프로지. 아마 일정도 당분간 비어있을걸? 찾지 않아도 적당한 시기에 돌아올 거야.”
“심리상담가 출신이라며? 앙귀스 레지나의 고민도 자주 들었을 텐데?”
여자가 웃으면서 볼이 홀쭉해질 정도로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곧 연기가 내 얼굴로 쏟아졌다.
“그 애는 피상적인 인간관계만 맺으며 깊은 이야기는 마음의 금고에 넣어두고 꺼내지 않아. 심지어 육체적 관계를 맺는 사람에게도 속내를 털어놓지 않지. 타인에게 내뱉는 고민은 기껏해야 저녁 메뉴 고르기 정도야.”
“1년간 가까이 있었을 거 아니야. 짚이는 게 없다고?”
“내가 초능력자도 아니고 속을 털어놓지 않는 사람의 내면을 어떻게 꿰뚫어 봐?”
여자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맞는 말이다. 나도 바보 같은 말을 내뱉었다.
“혹시라도 앙귀스 레지나를 발견하면 이쪽으로 연락해.”
그녀의 집을 나오면서 말했다. 나도 별다른 기대를 하고 하는 말은 아니다.
다른 매니저들도 앙귀스 레지나에게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오히려 나를 적대하며 입을 열지 않는 자도 있었다.
물론, 폭력 앞에서 입을 다물 정도로 긴밀한 사이인 매니저는 없었다. 말 그대로 ‘피상적인 관계’였기 때문이다.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앙귀스 레지나를 보호하는 사람은 없었다.
쾅!
군인 출신 매니저의 집을 방문한 내가 침대를 걷어찼다. 그 밑엔 여자의 속옷이 있었다.
속옷에선 앙귀스 레지나의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어디까지나 앙귀스 레지나의 향수와 화장품 냄새를 말하는 거다.
“너한테 여장하는 취미가 있는 게 아니면 이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내 무력시위를 본 군인 출신 매니저가 한숨을 쉬었다.
“바다를 보고 싶다고 했어. 보더시티 동쪽엔 항구가 있으니까, 그쪽으로 가봐. 반나절 전에 여길 나갔어.”
“별다른 말은 없고? 결혼이라던가 그런 거 말이야.”
“결혼?”
“아니, 뭐, 됐어.”
“아, 이런 말은 했었어. 어린 시절의 꿈이 우주비행사라고 하더군. 예전엔 의사가 꿈이라고 말한 것 같은데…… 만날 때마다 말이 바뀐단 말이지.”
이야기를 들은 나는 계속 이동했다.
도로로 나온 내가 이륜 택시를 잡았다. 동쪽 항구까진 멀지 않았으나 교통망이 좋지 않아 삼십여 분이 걸렸다. 내가 뛰어가는 게 더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
보더시티의 도로망은 지독한 난개발로 인해 엉망진창이었고, 대형차량이 지나다닐 만한 도로가 드물었다. 그 때문에 소형차량과 이륜차를 통한 물류 이동이 잦았다. 효율성이란 눈곱만큼도 찾기 힘든 도시였다.
나는 항구 주변을 서성이며 출렁이는 파도를 보았다. 곶 안쪽에 자리 잡은 선착장에는 물류 노동자가 오가고 있었다.
바다 너머로 실려 오는 비릿한 공기가 낯설다.
‘바다.’
바다 구경을 이렇게 할 줄은 몰랐다. 아크레시아 제국에선 호수조차 볼 일이 별로 없었다. 하물며 수평선이란 사진과 영상에서나 보던 것이다.
‘생각보다 크군.’
보더시티의 동쪽 항구는 규모가 컸다. 물류 이동이 많은지라 그만큼 번화한 지역이었다.
‘증언을 모아 보면 앙귀스 레지나는 복잡한 여자다.’
앙귀스 레지나가 계획 없이 무작정 뛰쳐나온 거라면, 나도 막막했을 것이다. 보더시티는 대도시다. 위성 시야나 감시 시스템도 없는 상황에서 사람을 찾기란 힘들다.
그러나 앙귀스 레지나는 적당한 단서를 뿌리며 움직였다.
‘결혼, 우주비행사.’
앙귀스 레지나가 잠자리를 가진 매니저 두 명에게 각각 내뱉은 말이다. 이 두 단어를 취합하니 건물 하나가 나왔다.
나는 해안 절벽 위에 세워진 고층 건물에 도착했다. 여러 여행사의 사무실이 모여있는 건물이었다. 그중 하나가 ‘허니스페이스’였다.
허니스페이스는 대기권 바깥에서 궤도 호텔을 운영하고 있었다. 부유층에게 신혼여행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여행사 전용 건물답게 전망이 아주 좋았다. 해안 절벽에 건물을 세운 이유일 것이다.
건물 입구에서도 시야도 탁 트여서 바다가 환히 보였다. 옥상에서 본다면 굉장히 풍경이 멋질 것이다.
난 로비의 안내판을 보며 건물 구조를 확인했다. 건물 옥상은 정원이었다. 특별한 날에는 연회 공간으로 따로 쓰는 듯했다. 결혼식 예약도 받는다는 문구가 보였다.
덜컹, 덜컹.
나는 비상계단을 통해 옥상 정원까지 올라갔다.
‘녹슬고 낡았군.’
옥상 정원의 입구는 내 예상과 달랐다. 제대로 관리하던 시기는 수년도 전의 이야기인 듯했다. 문은 잠금장치와 경첩조차 훼손되어 휘청거렸다.
안내판 광고 포스터에 나왔던 꽃과 나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지저분한 잡동사니와 신발이 종종 보였다. 오래 방치된 듯하다.
건물 옥상은 정원이 아니라 스산한 폐허였다.
“앙귀스 레지나?”
나는 옥상 벤치에 앉아있는 여자를 보며 말했다. 수평선을 보던 그녀가 나를 돌아봤다.
모자와 마스크로 자신의 정체를 가리고 있어도 앙귀스 레지나의 흔적이 보였다. 눈동자는 과할 정도로 반짝거리며 광택이 넘쳤다.
“……이틀 만에 날 찾아내다니. 최단기록이네.”
앙귀스 레지나가 마스크를 내리며 말했다. 미용 시술을 꼼꼼히 받았는지 피부는 비정상적으로 하얗고, 입술은 물감이 번진 듯한 분홍색이었다.
“내가 좀 유능해서.”
내가 문틀에 어깨를 기대며 말했다.
역시 앙귀스 레지나는 의도적으로 단서를 남겼다. 그리고 ‘새로운 탐정’을 쟈파가 고용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당신의 능력은 알았으니까 이제 돌아가. 활동할 때가 되면 알아서 복귀한다고 쟈파에게 말해둬.”
“쟈파가 널 찾아서 데려오라 했다. 거기까지가 내 일이지.”
“악덕 고용주의 간섭을 피해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 것뿐이야. 한 번만 눈을 감아줘. 그러면 나중에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앙귀스 레지나가 요염하게 웃었다. 난 저런 부류의 영업용 미소를 익히 알고 있다. 마르티나 디바가 생각나는군. 물론, 앙귀스 레지나의 내면에는 노파가 없었다. 생체 육신을 가진 진짜 아가씨다.
난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앙귀스 레지나는 신발을 벗고 있다.’
그녀가 맨발로 벤치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두 발자국 정도만 나아가면 아래로 떨어진다. 안전난간이 있으나 허리 정도까지라서 가뿐히 넘을 수 있는 높이다.
‘여기가 자살 명소라도 되는 모양이군.’
아까부터 버려진 옷가지와 신발이 눈에 걸렸다. 난간 일부는 망가져 있기도 했다. 아래는 해안 절벽과 이어져 있어서 파도가 시체를 삼킬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장 널 데려가야겠어. 쟈파와 거래한 게 있거든.”
“쟈파가 내게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 쟈파는 끔찍한 괴물이야. 날 학대…….”
앙귀스 레지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녀의 손발이 미미하게 떨렸다.
그러나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저 반응은 모조리 연기였다.
“웃기고 있네. 거짓말하지 마. 너와 나는 지금 처음 만났어. 넌 자신과 오랫동안 같이 지낸 사람들에게도 속내를 터놓지 않아. 이렇게 쉽게 남에게 학대 사실을 말할 정도의 여자였다면 매니저들도 그 낌새를 알아챘겠지. 심지어 쟈파는 몇 번이나 네가 말없이 사라져도 강압적인 구속을 하지 않았고, 추적장치도 심어두지 않았어. 이게 진짜 사실이지.”
나는 말을 쏟아내며 팔짱을 끼듯 코트 안쪽에 손을 넣었다.
스륵.
앙귀스 레지나가 벤치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건물 아래를 슬쩍 보다가 내 쪽을 보았다.
“……지금까지 온 사람과 좀 다르긴 하네. 잘 들어, 이건 쟈파와 나 사이의 일이야. 당신이 끼어들 게 아니지. 그러니까 내 시체가 보고 싶지 않다면 꺼져. 난 정말로 뛰어내릴 수 있어, 농담이 아니야.”
내가 웃었다. 그녀는 환한 미소가 무색할 정도로 표독스러운 말을 태연히 내뱉었다.
“네가 자살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건 나도 알아. 넌 19층 맨션에서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내 한 명만 믿고 뛰어내렸지. 여차하면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백 번 천 번 이해해. 나도 종종 그런 생각으로 몸을 막 굴리거든. 삶이란 나쁜 일의 연속이고, 세상은 우울하잖아.”
내 말에 앙귀스 레지나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녀의 동공은 별빛이라도 담은 듯이 과하게 반짝였다.
“말이 통하네. 이해했다면…….”
앙귀스 레지나의 말이 늘어지게 들렸다.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사고를 가속했다. 여기서 내가 전력을 다해 뛰어간다면 앙귀스 레지나를 붙잡을 수 있을까? 가능하긴 할 것 같았다. 그러나 확신까진 아니다.
‘앙귀스 레지나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면 구할 수 있을까?’
절벽 아래가 얼마나 험한지 난 모른다. 운이 나쁘면 내가 죽을 수도 있다.
여기서 나는 키누안의 조언을 떠올렸다.
‘불순물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으면 결단이 느려지네. 지켜야 할 게 생기고 피해야 할 상황이 많아질수록 사고의 비효율성은 커져. 가장 빠른 정답을 놔두고 빙빙 돌아가야 하지.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니까 말이야.’
가장 빠른 정답을 놔두고 빙빙 돌아갈 필요는 없다.
……앙귀스 레지나는 내 여자친구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다. 생판 모르는 남이지. 그러니 내가 그녀를 위해 위험을 무릅써야 할 이유는 없다.
키잉.
내 망막 디스플레이가 작동했다.
-비살상 모드, 종족 인간, 보행 무력화.
자동추적 권총의 설정은 간편했다. 조준점이 저절로 잡혔다.
끼릭.
난 코트 안쪽에 넣은 손가락을 움직여 방아쇠를 당겼다. 코트를 뚫는 총성이 두 번 퍼졌다.
앙귀스 레지나의 두 무릎에서 핏빛 폭발이 일었다. 고정력을 잃은 무릎이 후들거리더니 기괴한 방향으로 꺾였다.
털썩.
앙귀스 레지나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
앙귀스 레지나의 인지는 늦었다. 이런 부류의 폭력은 처음 겪는 듯했다. 지금은 통증조차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일어서려다가 바보처럼 주저앉았다. 자신의 덜렁거리는 무릎을 본 그녀의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가식이나 연기가 아닌 진심 어린 표정이었고,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기 시작했다.
“아까 네가 말했지? 지금까지 왔던 사람과 달라 보인다고. 그 말이 맞아. 난 지금까지 네가 만난 사람과는 다를 거야. 결코, 네 뜻대로 움직이지 않지.”
나는 코트 안에서 자동추적 권총을 꺼내며 다가갔다. 옷자락이 흔들리면서 탄피가 떨어졌다.
……한 박자 늦게, 앙귀스 레지나의 비명이 이어졌다. 노래하고 춤추는 여자답게 목청이 무척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