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66)
배드 본 블러드-166화(166/197)
166
나는 수술실 바깥의 복도에서 쟈파를 기다리고 있었다. 창문으로 건물 외부를 내려다보니 인파가 득실득실 모여있었다. 앙귀스 레지나의 부상 소식 때문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호욧……이 아니라, 앙귀스가 총을 맞았다고요?”
쟈파가 새하얀 복도에서 뛰어왔다. 그 뒤로는 에퀘시안 용병이 따라붙었다.
“자살하려고 하길래 내가 쐈어. 잘했지?”
내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쟈파는 충격을 먹었는지 비틀거렸다.
“앙귀스는 아이돌입니다! 아이돌!”
“요즘 기술이 좋아서 생체 재생은 일도 아니잖아. 돈이야 충분히 많을 거고.”
나는 말하면서 쟈파를 관찰했다. 흥분한 그는 긴 손톱을 들어서 내게 삿대질했다.
“저는 사람을 찾는 일을 부탁한 겁니다. 부상을 입히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상식적으로…….”
“상식적인 판단이 필요하면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찾았어야지. 키누안을 쫓으려면 상식 따윈 땅바닥에 묻어두고 움직여야 해.”
쟈파는 수술실 밖에서 안절부절못했다.
“앙귀스가 잘못되면…….”
“고작 무릎에 총상을 입은 거야. 잘못되고 자시고도 없어. 흉터 하나 없이 말끔하게 나을 거고. 참나, 이렇게 걱정할 거면 경호를 붙이고 감시했어야지.”
내가 짜증을 냈다. 쟈파가 눈을 날카롭게 떴다.
“저는 앙귀스 레지나의 사생활을 존중합니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연락이 된다는 조건하에서요.”
“저 여자는 내가 자신을 찾으러 올 거라고 예상했더라고.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를 고용할 때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된 거지? 아이돌은 가출하고, 탐정은 찾아다니고. 마치 내 능력을 검증하듯이 말이야.”
쟈파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뺨이 씰룩거릴 정도로 입꼬리를 비틀었다.
“……댁들 사정은 내 알 바 아니야. 날 고용해 키누안을 쫓는 이유도 더는 묻지 않을 거고. 복잡한 인간사는 나도 제국에서 겪은 거면 충분해. 그러니까 당신도 내 일 처리에 토 달지 말고, 약속한 보수나 내놔.”
“다음에 비슷한 일이 생기면 비폭력적인 방법을 써야 할 겁니다. 이건 부탁이 아니라 경고입니다…….”
쟈파가 사납게 말했다. 욕설로 예상되는 타지룬어가 몇 마디 따라붙었다.
“나도 하나만 경고하지. 난 그쪽 부하가 아니야. 앞뒤 사정 다 잘라먹고 일을 맡겼다간 오늘 같은 일이 또 벌어질 거다. 앙귀스 레지나가 그쪽에게 ‘중요한 상품’이 아니라 ‘소중한 존재’라면 미리 말했어야지.”
쟈파는 혀만 날름날름 내밀었다. 방금 내 말이 정곡이었던 모양이다.
“제가 당신을 이 세상으로 다시 끌어냈죠. 최소한의 존중은 갖추셨으면 합니다.”
“이딴 세상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부탁한 적 없어.”
“루카 씨는 제 생각보다 훨씬 망가진 사람이군요. 어쨌거나 여기 보수입니다. 전 약속은 지킵니다. 당신도 그랬으면 합니다.”
쟈파가 내게 데이터칩을 건넸다.
나는 데이터칩을 받아 들고선 쟈파의 곁을 지나쳤다. 쟈파는 앙귀스 레지나의 수술이 끝나길 기다리듯 그 자리를 지켰다.
“호욧, 루카 씨. 바깥은 소란스러우니 뒷문으로 조용히 나가시면 됩니다. 차량은 준비해 뒀습니다.”
쟈파는 어느덧 평소의 목소리로 말했다.
‘앙귀스 레지나와 쟈파는 모종의 관계가 있다. 단순한 아이돌과 고용주 사이가 아니야.’
둘의 관계를 당장 캐낼 필요는 없었다. 내 일과 엮여있다면 자연스레 밝혀질 것이고, 같이 지내다 보면 싫어도 알게 될 것이다.
그보다 내 관심사는 ‘데이터칩’에 있었다.
‘지젤이 행방불명될 당시의 경호 책임자.’
그 경호 책임자는 아직도 보더시티에 있다.
삑.
난 데이터칩을 단말기에 꽂았다. 사진 한 장이 내 눈앞에 떠올랐고, 그 밑으론 이력이 자글자글하게 올라왔다.
……의외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예상했던 인물이었다.
* * *
앙귀스 레지나는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탓에 다리가 부러진 것으로 알려졌다. 쟈파가 여기저기 입막음을 잘한 덕분이었다. 인기 아이돌이 총상을 입었다고 한다면 온갖 억측이 쏟아졌을 것이다.
나는 보더시티의 슬럼가로 향했다. 슬럼가는 차량 진입이 가능한 도로가 없었다. 촘촘하게 세워진 건물 사이의 골목이 전부일 뿐이었다.
대낮인데도 노숙자나 부랑배 따위가 거리를 침대 삼아 쓰러져 있었다.
쿵! 쿵!
일부는 벽이나 바닥에 머리를 찢고 있었다. 머리가 찢어지고 피가 나도 그 짓을 반복했다. 약물 중독자에게 흔히 일어나는 행동 장애였다.
“키릿, 카랏, 꾸르르르…….”
난 낯선 소음을 들으며 옆을 보았다. 빛이 없는 눅눅한 골목에서 그림자가 흔들거렸다.
철퍽, 철퍽.
누더기를 둘둘 만 노숙자가 내게 걸어왔다. 발아래로는 끈적거리는 체액이 과할 정도로 흘러나왔다. 이를 시작으로 누워있던 노숙자들이 하나둘씩 내게 접근했다.
철컹.
나는 코트에서 자동추적 권총을 꺼냈다. 매끈한 첨단무기가 나오자마자 내게 들러붙으려던 이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슬럼가 중심부로 갈수록 오히려 길이 넓어지고 공터도 보였다. 거리에도 활기가 있었다. 나쁜 의미로 에너지가 넘치는 갱들이 시시덕거리며 나를 힐끗힐끗 쳐다봤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여기로군.’
색깔을 정의하기 힘든 연기가 픽픽 새어 나오는 건물이 보였다. 창문을 비롯해 모든 틈새에서 알록달록한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심지어 벽면의 금에서도 연기가 흘러나왔다.
‘마약굴.’
어느 도시에나 있는 최악의 장소 중 하나였다. 파멸을 예약해 둔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다. 그 옆에는 병원 건물도 있었으나 사람을 치료하기 위한 시설이 아닐 것이다.
난 마약굴 건물로 들어갔다. 입구에는 문짝도 없었다. 도망치는 사람이 없기에 문을 닫을 필요가 없는 거겠지.
“입실이요?”
카운터의 사내가 나를 훑어보며 말했다. 그는 복잡한 기계식 필터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여기서 일하려면 필수품이긴 하겠다.
“사람을 찾고 있다.”
“여긴 사람은 없습니다. 산송장만 있지.”
나는 복도를 응시했다. 다닥다닥 붙은 문만 봐도 방이 얼마나 좁은지 알 수 있었다. 천장에선 공조 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용무가 끝나면 조용히 떠나지. 소란은 없을 거야.”
난 크레딧칩 대신에 금 조각을 꺼냈다. 금은 보더시티 내에서 현물화폐로 통용된다.
사내가 금 조각을 챙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벅, 저벅.
차분히 복도를 걸었다. 문마다 작은 창이 나 있어서 내부가 보였다.
방의 구조는 전부 똑같았다. 침대와 변기, 그리고 무의미한 방송이 나오는 텔레비전이 전부였다.
무기력한 중독자들이 시체처럼 앉거나 누워있었다. 약물의 생리작용은 꽤 범종족적인 듯, 중독자의 절반은 외계종족이었다. 물론 대부분은 인간과 생물학적으로 겹치는 점이 많은 포유류 계통 외계인이었다.
끼이익.
나는 다음 층으로 올라갔다. 녹슨 철 계단을 발로 누를 때마다 불쾌한 소리가 났다.
다음 층의 복도를 걷던 나는 걸음을 멈췄다. 긴가민가해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내부를 자세히 확인했다. 익숙한 그림자가 보였다.
덜컹.
내가 문을 열었다.
머리를 숙인 사내가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덩치는 컸고, 팔다리는 의체였다.
스륵.
사내가 기척을 느끼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험상궂은 얼굴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했다.
-저는 뱀이 좋아요. 뱀과 같은 남자를 만나고 싶어요. 얽힌 뱀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아요.
앙귀스 레지나의 노래가 낡은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왔다. 화면도 흐릿했고 잡음도 심했다.
드르륵.
난 의자를 끌어서 사내 앞에 앉았다.
“가브리엘.”
내가 사내의 이름을 불렀다.
지젤 쿠스토리아를 마지막까지 경호한 사람은 가브리엘이었다. 그는 지앤지 사이버네틱스의 경호4팀의 책임자이기도 했다.
하층 구역의 갱치고는 출세했네, 가브리엘.
가브리엘의 눈동자는 흐리멍덩했다. 그는 정신을 쉽사리 차리지 못했다.
“나다. 루카,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날 기억해?”
마냥 몽롱하던 동공에서 빛이 잠시 스쳤다.
나는 차분하게 가브리엘의 반응을 기다렸다.
“루, 카?”
가브리엘이 나를 보았다. 그의 머리카락과 수염은 야만인처럼 길었다. 너저분한 털 사이로 이름도 모를 기생충이 톡톡 튀어 다녔다.
“……일단 여길 나가자.”
“굿, 보이.”
가브리엘은 쇠약해진 상태였다. 나는 그를 잡아서 일으켜 세우려 했다. 내 의수에 힘이 걸리면서 진동이 일었다.
“날, 놔, 둬, 난 살, 자격이 없다. 나는, 나는…… 비겁, 아니, 비열, 해.”
“그건 이야기를 듣고 내가 판단할 일이야.”
“넌 환, 상이잖아. 내 양심이 네 모습으로…….”
가브리엘의 입가에서 침이 뚝뚝 떨어졌다.
“난 현실이야. 물이라도 좀 마시고 정신 차려. 각성제라도 없어?”
나는 일어서며 방을 뒤적였다.
“거짓말. 날 살리기 위해 천, 천국에서 내려온 거지? 흐흐흐…….”
내가 천국에 있겠냐. 지옥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있겠지.
난 그 말이 내뱉으려다가 말았다. 가브리엘의 입에서 어떤 파열음이 났기 때문이었다.
으적.
가브리엘의 몸이 갑자기 진동하듯 떨렸다. 그의 안색도 급격히 창백해졌다.
“야, 이…….”
나는 가브리엘의 턱을 잡고 아래로 당겼다. 입안에선 깨진 캡슐이 툭 튀어나왔다. 보랏빛 색깔만 봐도 위험한 액체였다.
‘젠장, 젠장!’
내가 손가락을 가브리엘의 목구멍까지 집어넣어서 구토를 유도했다.
“우웨엑, 윽. 컥, 컥.”
가브리엘은 몸을 구부리며 희멀건 위액에 희석된 약물을 게워냈다.
그러나 약물 흡수가 상당히 빨랐는지 가브리엘의 맥박과 고동이 점차 약해지고 있었다. 더 짜증 나는 건 그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마저 걸려 있다는 점이다.
“이 등신, 새끼, 넌, 진짜 살아나면 나한테 뒈졌다.”
나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기이잉!
내 손등의 회로까지 빛나며 출력이 엄청난 속도로 올라갔다. 라줄리 21호는 매우 훌륭한 의체다.
난 주먹을 뻗어 벽을 후려쳤다.
콰- 앙!
벽이 폭발하듯 산산이 조각났다. 콘크리트 파편이 바깥으로 튀었다. 거리의 행인들이 잔해에 맞아서 비명을 질러댔다.
마약굴 옆엔 병원이 있었다. 사람을 살리는 병원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의료진과 시설은 있을 터다.
드륵!
난 가브리엘을 등에 짊어지곤 다리의 출력을 끌어 올렸다. 발바닥 주변으로 진동이 일면서 돌가루가 떠올랐다.
퉁!
내가 병원 건물까지 단번에 뛰었다. 이십여 미터는 떨어진 거리지만 문제없다.
쿠르르릉!
난 병원의 외벽을 깨부수며 단번에 안으로 들어갔다.
“커억, 컥! 당, 당신 뭐야!”
“콜록, 콜록.”
충격에 휘말린 사람들이 여럿이었지만 내 알 바가 아니다. 난 내 앞을 가로막는 사람들을 걷어차고 밀치며 복도로 나아갔다.
난 안내판을 보고선 수술실로 들어갔다. 시체인지 산 사람인지 모를 고깃덩이를 해부하는 의료진 네 명이 보였다. 수술대를 힐끗 보니 환자의 배 속이 텅 비어있었고, 그 옆엔 막 꺼낸 장기가 뜨끈뜨끈한 김을 내뿜고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인술을 베푸는 자들은 아니었다. 의료진이라는 단어를 붙여줘야 하는지 의문이지만 당장 생각나는 단어가 없었다.
쾅!
나는 빈 수술대를 잡아당겨 가브리엘을 올려두었다.
“이 남자를 살려내. 마약굴에서 보랏빛 약물을 흡입한 뒤로 급격하게 생명 반응이 저하되고 있다.”
내가 상황을 설명했다. 의료진 중 연장자가 앞으로 나섰다.
“잠, 잠깐, 여긴 일반적인…….”
난 자동추적 권총을 들어서 그의 머리를 겨누었다.
“치료에 실패하면 너희들은 전부 여기서 죽는다. 뭐, 억울할 건 없을 거야. 자식에게 자기 일을 당당히 떠벌릴 수 있는 새끼들은 아닐 테니까.”
“지금 당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고 있는 모양인데…….”
연장자가 따지고 들었다. 그는 의료 지식이 풍부할 것이다. 나는 의료진 중에서 젊어 보이는 사내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머리에 총알구멍이 난 사내의 이목구비에선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가 주춤거리다가 힘없이 쓰러졌다.
“어디 한번 못하겠다고 토를 더 달아봐. 한 명씩 뒈질 줄 알아.”
내가 경고하며 복도로 나가는 문을 걷어찼다.
쾅!
떨어진 문짝이 벽에 부딪히며 찌그러졌다.
난 눈을 슬그머니 감으며 청각 시야를 일시적으로 깨웠다.
덜컹, 덜컹.
계단 아래로는 무장한 갱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 망할 시설을 지키는 경비들이었다. 그들은 총기를 장전하며 벽 모퉁이에 몸을 붙였다.
“후우.”
눈을 뜨면서 숨을 길게 내뱉었다.
……자꾸만 입꼬리가 씰룩였다.
그래, 나도 지금 내가 욕구불만이라는 건 안다. 반쪽짜리 폭력으론 내 갈망을 해소하지 못했다.
난 잘못된 인간이다. 싸움과 폭력, 그건 내게 있어 식사나 성욕과 같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도 참기 힘든 욕구다. 내 정신은 평화를 버티지 못한다.
지금까지 오래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