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73)
배드 본 블러드-173화(173/197)
173
나는 라피스의 정비실에서 하루 동안 살다시피 했다. 여긴 안 쓰는 모니터와 단말기, 컴퓨터가 많았다.
드륵, 드륵.
나는 선이 주렁주렁 달린 모니터들을 탁자 한 곳에 끌어모았다. 장시간 자료를 취합하려면 물리 디스플레이가 있는 모니터가 홀로그램보다 나았다.
난 어젯밤 동안 모은 자료를 모니터에 여럿 출력했다. 남은 건 반복적인 검토와 대조였다.
지난 몇 년 동안 살인마는 꾸준히 살인 현장을 게시했다. 나는 사진의 날짜와 시간이 일치하는 학교의 일정표만 추려냈다. 특히 방학 기간은 공시 사항이기에 여기서 불일치하는 학교를 대거 걸러낼 수 있었다. 이런 작업은 컴퓨터에 내장된 인공지능칩에게 맡기면 된다.
나는 추려낸 학교를 살폈다.
‘보더시티의 상류층이 다니는 엄격한 사립학교겠지. 게시물이 올라오는 날은 빠르면 일요일, 길어야 월화. 주말에 살인을 저지르고 올린 거다. 외출 통제가 있는 기숙사를 다니는 벨라토의 고위층이나 부유층의 자제. 살인 주기와 날짜를 보니 방학 때는 참았던 욕구를 마음껏 터트렸군.’
내 머릿속에서 살인마의 윤곽이 드러났다.
놈은 자신만의 미의식을 추구하고 허영심이 많다. 게시글의 짧은 문장에서도 정갈한 문법이 돋보였고, 고급 어휘 사용도 드문드문 드러났다.
학생의 시간표라고 가정하니 살인 주기도 몹시도 규칙적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식사하듯 말이다. 자신만의 규칙이 있을 것이다.
딸깍.
정비실의 전등이 켜지면서 내 집중이 흐트러졌다. 자러 갔던 라피스가 출근한 것이다.
“밤새도록 여기에 있었죠? 이거라도 먹고 해요. 그러다가 몸이 축나요.”
라피스가 쟈파 버거 봉투를 내 옆에 내려놓았다.
“거의 막바지 작업이야. 난 중간에 일을 놓으면 잠도 제대로 못 자.”
난 버거를 꺼내며 한쪽 손으로는 모니터 화면을 조작했다.
“아키에스 빅티마 때문에?”
라피스도 자신의 버거를 꺼내며 말했다. 그녀도 아키에스 빅티마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하기야 쟈파 상사에게 고용된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는 내가 처음이 아니니까.
“그것도 그렇지만 내 성질머리가 그래.”
나는 버거를 으적으적 구겨 넣듯 먹었다. 빵은 고소하고 고기는 부드럽다. 복합적으로 얽힌 맛이 두텁게 내 혀를 감으며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급하게 먹는데도 맛이 잘 느껴진다. 괜히 쟈파가 요식업으로 보더시티를 휘어잡은 게 아니었다.
“쟈파 님에게 고용된 탐정들이 무슨 일을 하는진 모르지만…… 다들 그 끝이 좋지 않더라고요.”
“난 다르다고 말하고 싶지만, 세상만사를 장담할 순 없지.”
내가 중얼거리며 빨대를 입에 물었다. 맛이 기이해서 겉면을 보니 뱀뱀 음료 신제품 출시라고 적혀 있었다. 뱀을 100시간 이상 달여서 짜낸 진액을 희석한 자양강장 음료라고 한다.
“그래도 지금까지 온 사람 중에선 당신이 실력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지금 일하는 것도 그렇고요. 하룻밤에 처리할 분량이 아니잖아요.”
라피스가 미니 버거를 베어 물며 말했다. 그녀는 탁자에 앉은 채로 다리를 휘휘 흔들었다.
바삭.
나는 뱀 껍질 튀김을 하나씩 집어서 씹어 먹으며 모니터를 보았다.
……짜증 난다. 뱀 껍질 튀김은 맛있었다. 튀김 자체는 특이할 게 없지만, 양념 가루의 맛이 탁월했다.
나는 엄지를 빨며 집중했다. 게시물을 살피던 내 눈에 띄는 건 1년의 공백기였다.
‘1년의 공백기 이후에 다시 살인을 꾸준히 저질렀다. 이때부턴 주기와 패턴도 완전히 달라졌어. 느슨하고 자유분방해졌다. 자신만의 시간이 많아졌다는 소리야.’
예상 가능한 건 ‘졸업’이다. 놈은 보더시티 내의 학교를 졸업해서 1년간 여길 떠나 있다가 돌아왔다. 타지에선 살인을 저지르기 쉬운 보더시티가 그리웠을 터다.
보더시티에선 ‘경호업체 계약’이 없는 하층민이 죽어도 조사할 사람이 없다. 그러나 보더시티가 아닌 곳이라면 이야기가 다를 것이다. 예컨대 연방의 수도인 벨라토시티의 경찰과 치안은 보더시티처럼 만만하지 않을 터다.
나는 조건을 입력하고 나머진 인공지능에게 맡겼다.
짝!
난 손뼉을 치며 의식을 전환했다. 이젠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의체 사용감은 어때요?”
라피스도 식사를 마치곤 벽에 걸어둔 고글을 목에 걸었다. 그녀도 작업을 시작할 모양이었다.
라피스는 쟈파 상사에게 필요한 여러 기계장비를 주문 제작하고 수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제국으로 따지면 ‘전용무장 공방’ 역할을 하는 셈이었다. 종종 에퀘시안들조차 방문해서 그녀에게 무기와 장비를 정비 맡기곤 했다.
“훌륭해. 감각이 가벼워. 그렇다고 위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경쾌하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든 의체니까요. 하지만 다루기가 어려운 의체예요. 쟈파 님에게 의체 사용이 ‘굉장히’ 능숙한 사람이 쓸 거라는 말을 들어서 그렇게 만들 수 있었어요.”
라피스가 ‘굉장히’라는 말을 강조했다.
“확실히 이 정도로 신호 교환이 빠르고 반응성이 좋은 데다가 출력까지 높으니…… 일반인은 신경계가 전부 타버리겠지.”
인간은 가끔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근육이 파열할 정도의 신호를 몸에 보내 초인적인 힘을 끌어내곤 한다. 고출력 의체는 그 정도의 강도 높은 신호를 상시 주고받아야 한다. 보통 인간의 중추신경계는 감당하지 못할 일이다.
“의체의 내부 기록을 뽑아봐도 될까요?”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팔목 안쪽과 발목의 단자를 열어서 칩을 네 개 꺼냈다. 내 의체 사용 기록이니 딱히 보안이나 비밀일 것도 없다. 오히려 이 데이터를 정비사에게 보여줘야 의체를 더 최적화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이버네틱 의체는 극도로 폐쇄적인 보안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무선 신호를 쓰지 않고, 오로지 뇌의 신호로만 움직인다. 기껏해야 정비용으로 유선 단자 몇 개를 남겨두는 게 전부다.
‘물리적으로 간섭 자체가 불가능하니 일일이 보안 업데이트를 할 필요도 없고, 아무리 날고 기는 전자전 전문가도 의체를 해킹하진 못하지.’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라피스가 내 의체 기록을 홀로그램으로 확인했다. 내가 보기엔 무슨 뜻인지도 알 수 없는 숫자와 그래프가 요동치고 있었다.
“역시 우수하시네요. 몇 년은 쓴 듯이 출력 조절이 자연스럽고, 신호 증감 그래프 곡선이 특히 굉장히 흥미로워요. 인지적으로 출력을 올리기 전부터 신호는 강해지고 대역폭도 넓게 사용하고 있어요. 그래서 급출력치곤 신호가 완만해서 신경계와 의체의 부하가 적어요. 0.2초를 내다보는 예지 능력이라도 가진 것처럼요.”
“예지 능력 같은 게 아니야. 내겐 포스 같은 초능력이 없어.”
“그래서 ‘가진 것’처럼이라고 말했잖아요. 의식적으로 싸워야 한다고 인지하기 전에 본능과 직관의 영역에서 상황을 해석하고 전투 신호를 의체에 보내는 거겠죠. 이건 의체를 타고난 생체 수준으로 다룬다는 뜻이에요. 여러모로 제국은 끔찍하네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요.”
라피스가 커다란 눈을 찡그렸다. 흰자위가 없이 검은 동공만 있지만 오밀조밀한 얼굴인지라 섬뜩한 느낌은 없었다.
“제국도 생각보다 괜찮은 곳이야. 보더시티에서도 잘 사는 사람이면 문제없을걸.”
내 뒤틀린 애국심이 입 밖으로 나왔다. 내 태생과 환경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루카의 나이에 의체 순응도가 이 정도라는 건 성장기 때부터 팔다리를 제거하고 기계로 대체했다는 소리잖아요. 나아가 멀쩡한 육신을 버리고 전신의체로 대체한다니…….”
라피스는 본인이 의체 제작자면서도 전신의체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제국을 제외하고선 대체로 이런 모양이다.
“관점의 차이야.”
“언젠가 제국은 그 대가를 치를 거예요. 타고난 육신을 함부로 버린 대가요.”
“이미 치르고 있어. 전신의체가 정신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는 그 누구보다 제국이 잘 알고 있다.”
내가 입술을 비틀면서 웃었다. 나는 제국의 귀족들을 잘 안다.
전신의체인 제국 귀족은 자연적 수명의 두 배를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에겐 생기가 없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감정은 무뎌지고 인간성도 건조하게 마른다.
인간성과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난 똑똑히 보았다. 끝없는 자극을 갈구하고, 스스로 버린 피와 살을 질투한다. 멀쩡해 보이는 자들조차 인간성에 대해 과한 집착을 했다. 한 마디로…… 인간이 뒤틀린다.
“후회하지 않나요?”
“과거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야. 내 성격에 힘마저 없었다면 뒷골목에 널린 시체 중 하나가 됐겠지. 타고난 육신이고 나발이고…… 죽으면 끝이야. 살아야 후회든 뭐든 할 수 있는 거니까. 얄팍한 도덕적 우월감은 그럴 여유가 있는 자들이나 느끼면 돼.”
“얄팍한 도덕적 우월감인가요…….”
라피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널 탓하는 건 아니다. 그저 내 생각을 말한 거지. 난 누굴 훈계할 생각도 없고 그럴 처지도 아니야. 올바른 인생을 살진 않았거든.”
“그렇게 자책할 필요까진 없어요.”
라피스가 위로했다. 여기서 그녀의 위로에 서글프게라도 웃을 수 있다면 참 좋겠지. 하지만 난 그런 놈이 아니다.
“난 사람을 가볍게 죽여. 죄책감도 느끼지 않지. 필요하다면 무고한 자도 죽이고, 내 심기에 거슬려도 죽이지. 난 불필요한 살생을 수없이 저질렀다. 그리고 앞으로도 저지를 거야. 살면서 내가 배운 건 폭력이고, 이게 가장 빠르고 편하다는 것도 알고 있지. 삶의 방식을 바꿀 생각은 없다.”
“그럼 제가 당신을 돕지 않는다면, 제게도 폭력을 행사할 건가요?”
“그게 더 효과적이라면 기꺼이 하겠지.”
라피스의 활달한 움직임이 멈췄다. 그녀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잘못됐다고 생각하면서도 잘못을 반복하는 건가요?”
“타르파 종족의 라피스 라줄리. 난 이런 이야기가 지겨워. 피차 무고한 척하진 말자고. 넌 의체 제조자야. 그것도 고성능의 전투의체를 만들잖아. 이건 사람을 죽이는 무기야. 맨손으로 사람을 찢어 버릴 수 있지.”
내가 손가락으로 탁자의 끄트머리를 잡으며 출력을 높였다.
끼이이익!
철제 탁자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찌그러졌다.
“저는……!”
난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침 모니터에서 인공지능의 데이터 취합이 끝났다.
“난 적당히 양심 있는 척하며 사람을 죽일 테니까, 넌 자신이 만든 기계가 사람을 죽인다는 사실을 망각하며 잠이나 잘 자면 돼.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이잖아.”
모니터에는 막 성인이 된 청년의 신상정보가 떴다. 난 거기에 집중했다.
“……이젠 일해야 할 테니 다음에 이야기해요, 루카.”
라피스가 우울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래, 난 네가 만들어 준 의체로 여기에 나온 인간을 죽이고 올 테니까. 뭐, 그래도 이번엔 죽어 마땅한 놈이긴 하네.”
나는 칩을 뽑으며 주머니에 넣었다. 모니터가 꺼졌다.
내 등을 보는 라피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녀는 내가 정비실을 나갈 때까지 쳐다봤다. 난 손등만 내보이며 인사했다.
쿵.
문이 닫혔다. 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젠장, 빌어먹을, 루카. 또 저질렀구나.
자괴감이 몰려온다. 굳이 이따위로 말했어야 했나? 그간 억지로라도 익힌 사교성은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모르겠다. 보더시티에서 깨어난 이후로 내 성격이 더 괴팍해진 것 같다. 날 제어할 상관이 없어서 더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불안, 초조, 우울 같은 부정적 감정이 끈적거리는 그림자처럼 내게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나는, 젠장, 나도 무슨 말하는지 모르겠다.
솔직하게 말하자. 난 착한 척하는 인간 아니, 사람이 싫다. 진짜 착한 거라도 상관없다. 친절하고 착한 사람 곁에선 내가 더 나쁜 놈처럼 느껴지니까.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기적이고 사악했으면 좋겠다. 죽어 마땅한 놈만 널려 있는 곳이 내겐 천국이다. 내 추악한 폭력 욕구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으니까.
라피스가 차라리 날 이용하려고 들었다면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호의를 보이며 걱정하고 자빠졌으니 그게 내겐 더 불편했다.
……나도 정말 환장할 정도로 꼬여있는 인간이다.
저벅, 저벅.
내 걸음이 빨라졌다. 사람을 죽이고 싶다. 그것도 아주 쓰레기 같은 새끼일수록 좋다. 자기 엄마 말곤 만장일치로 사형 선고를 내릴 정도의 인간 말종이면 소원이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