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74)
배드 본 블러드-174화(174/197)
174
첨벙.
나는 욕조에 몸을 담그며 몸을 이완했다. 의체도 물에 잠기며 둔해졌다.
의체 사용자에게 입욕은 권장 사항이 아니다. 모든 제조사가 입욕 시에 성능을 보장할 수 없다는 문구를 설명서에 집어넣는다. 설명서를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만 말이다.
기계는 물에 취약하다. 그래서 입욕은커녕 샤워조차 하지 않는 이들이 하층 구역엔 허다했다. 물에 적신 천으로 몸을 닦는 게 그들에겐 목욕이었다.
다행히 나는 그 정도로 비위생적인 생활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내 의체는 맞춤이며 신품이기에 방수 처리도 꼼꼼하게 되어있을 것이다. 이십여 분 정도 욕조에 몸을 담근다고 망가지진 않는다. 심지어 고장이 나면 수리해 줄 사람이 같은 건물에 있다.
‘살인마와 만나면 전투가 있을 수도 있다. 신경계의 피로를 해소하고 가야 해.’
나는 눈을 느슨하게 감으며 지난밤의 피로를 빠르게 해소했다. 눈을 감자마자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눈을 뜨니 이십 분이 찰나처럼 지나있었다. 욕조 표면에선 따스한 김이 피어오르고 있다. 이 정도면 휴식은 충분하다.
촤아악.
나는 욕조에서 걸어 나오며 수건으로 몸을 듬성듬성 닦았다. 난 깔끔하고 쾌적한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병에 걸리지 않을 정도의 위생 상태면 만족한다.
끼릭.
옷을 걸치며 장비를 챙겼다. 그리곤 단말기의 통신망을 열어서 가브리엘이 입원한 병원에 연락했다.
-아, 무슨 일이시죠? 환자의 안부를 매일 묻는 다정한 보호자 같진 않으신데 말입니다.
가야가 느긋한 목소리로 내 연락을 받았다.
“가브리엘은 활동이 가능한 상태인가?”
-안정되긴 했습니다. 가능 여부는 어떤 부류의 활동이냐에 따라 달라지죠.
“일단 연락을 그쪽으로 돌려. 가브리엘에게 할 말이 있다.”
-주치의로서 당신이 무슨 말을 할지 묻고 싶군요.
“가브리엘이 좋아할 일이 생겼거든.”
-흠, 제 느낌상 지금 당신의 용무가 환자의 정신건강에 그리 좋지 않을 듯합니다.
“가브리엘의 보호자는 나야.”
건물 밖으로 나간 내가 곧장 가야의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비는 이미 납부됐습니다. 치료 기간 중엔 환자분의 신변도 제 소관입니다. 자칫하면 치료가 허사가 되거든요. 참고로 환불은 안 됩니다.
“짜증 나는군. 가브리엘을 퇴원 준비시켜. 지금 찾아갈 테니까.”
내가 사납게 말했는데도 가야의 목소리에는 주눅 드는 기색이 없었다.
-일단 오셔서 이야기하시죠.
가야의 병원은 쟈파 상사의 사옥에서 멀지 않았다. 애초에 가까우니까 쟈파가 추천해 주기도 했을 터다.
나는 가야의 병원을 보았다. 골목 끝에 위치한 3층짜리 건물은 아담하고 안정감이 있었다.
끼이익.
내가 들어가기도 전에 병원의 입구가 열렸다. 가야가 펑퍼짐한 백의를 입은 채로 날 보고 있었다.
“가브리엘 씨는 4주 동안 제 소관입니다. 그때까진 그 누구도 방해하지 못합니다. 설사 보호자일지라도 말이죠.”
“웃기고 있네. 날 막고 싶으면 경찰이라도 불러보던가. 경찰이 이 동네에 있긴 한가?”
“……당신을 다치게 하고 싶진 않습니다.”
“유머 감각이 풍부한 줄은 몰랐네. 방금 웃을 뻔했어.”
“웃을 일이 있으면 웃으시는 게 좋습니다. 웃음은 정신건강에 좋죠.”
가야가 문틀에 비스듬하게 몸을 기대며 말했다. 그는 새파란 눈동자로 날 보고 있다. 그의 눈동자는 원래 갈색이었다.
‘인위적인 안광.’
안광은 옅었기에 동공만 착색된 듯이 파랬다.
“알량한 재주라도 있는 모양이지?”
나는 코트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보더시티에서 경호원도 없이 병원을 운영하긴 쉽지 않죠.”
가야가 정문을 가리듯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의사 선생, 당신은 나를 몰라. 그냥 물러나는 게 좋을걸.”
“당신도 저를 모르죠.”
“적어도 전투의 전문가가 아니라는 건 알아. 예전에 한가락 했을지 모르지만…… 그것도 한때겠지. 난 현직이다, 며칠 전에도 사람 여럿 죽이고 왔어.”
내가 천천히 가야를 향해 걸어갔다. 가야의 동공에 머무는 청백색 빛이 강해졌다. 이젠 안광처럼 보일 정도였다.
포스는 아케인 문명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코라 신성국은 아케인 문명에 가장 깊게 관여하고 있는 집단이다. 그러나 코라 내부에서도 포스 사용자는 극소수였다.
‘가야도 포스 사용자였나?’
포스는 몹시도 희귀한 능력이다. 전투로 범벅된 내 인생에서도 포스 사용자와 마주할 일은 거의 없었다.
‘이름도 모를 코라인, 코라의 성기사, 그리고 아케인 유물로 제한적인 순간이동을 사용한 릭 카이저.’
전부 보통내기가 아닌 인물이었다. 근위대 교전 수칙에서도 포스 사용자는 지극히 위험한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
‘물리 법칙에 벗어난 능력.’
포스 능력은 셀 수 없이 다양하고, 물리 법칙을 기반으로 하지 않기에 예측하는 게 어려웠다. 그 강점만으로도 전투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수천 년 전부터 인류의 전투 교리에서 빠지지 않는 내용이 있다.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다.’
포스는 자신의 전력을 숨기면서 허를 찌르기 쉬운 능력이다.
포스 능력이 전조 의식과 촉매도 없이 ‘의지’만으로 발현 가능했다면 무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포스 사용에는 동작의 전조가 있고, 촉매라는 특수한 도구도 있어야 한다.
찰랑.
가야가 양 소매 아래의 팔찌를 드러내며 가볍게 부딪쳤다. 금속성 팔찌가 청명한 소리를 냈고, 그게 신호하라는 듯이 오라 형태의 포스가 그의 몸을 얇게 덮었다.
우우웅.
가야의 몸을 감싼 포스가 낮게 깔린 안개처럼 흘러내렸다.
‘촉매는 팔찌.’
어떤 부류의 능력인지는 미지수다. 몸을 감싼 포스 오라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 내 안의 경계심이 적색경보처럼 치솟았다.
난 눈을 옅게 뜨며 가야를 관찰했다. 미진한 경험을 최대한 발휘해서 예측해야 한다. 가야의 ‘무기’가 무엇일지 말이다.
“그 담담한 반응을 보니 포스 능력을 몇 번은 본 적이 있군요. 그리고 당신은 제국 출신일 거고 모난 성격을 보아하니…… 포스 능력자와 사이좋게 이야기한 건 아니겠죠.”
난 남을 분석하는 게 특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분석 당하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간파당하니 기분이 더럽다.
나는 침묵하면서 정보를 노출하지 않는다.
……날 막아서면 죽인다, 아니, 제압 정도로 하자. 가야는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지고 가브리엘을 치료하고자 한다. 자퍄에게 소개받은 거니 실력도 확실할 거다.
‘팔찌가 촉매이니 팔을 자르거나 분질러버리면 되겠지.’
가야도 날 죽일 정도의 공격을 퍼붓진 않을 거다. 우린 서로를 죽일 정도로 갈등이 깊지 않다.
말랑하게 생각해라, 말랑하게. 죽일 것까지야 없잖아.
나는 치미는 공격성을 제어하려 했다. 전두엽이 있는 이마가 지끈거릴 정도로 뜨겁다.
“후우.”
호흡을 짧게 내뱉었다.
온몸이 근질거린다. 가야를 찢어 죽일 수 있는 수만 가지 방법이 내 머릿속에서 둥실둥실 떠오른다. 포스 사용자? 그래서 까짓 게 얼마나 강하다는 거지? 내가 아는 강자들의 발끝만큼이라도 따라올 수 있나? 잔재주 한두 가지 있는 게 전부겠지.
뭐든 보여봐라, 파훼해서 박살 내주마. 그 고고한 태도를 잘근잘근 밟아주지.
“하…….”
난 웃음을 내보이려다가 억눌렀다. 미지의 적수를 맞이해서 싸울 생각을 하니 벌써 즐거웠다. 내 전투 신경계가 가닥 하나하나 곤두서며 자극을 기다리고 있었다.
덤벼라, 뭐라도 좋아. 내 팔다리 하나 정도를 날릴 정도로 강했으면 좋겠네. 난 강자를 꺾을 때의 전율을 알고 있다.
카랑!
가야가 양 손목의 팔찌를 재차 부딪쳤다. 아지랑이처럼 흐르던 포스의 빛이 실타래처럼 허물어졌다. 이윽고 그 자취조차 사라졌다.
가야는 전투를 포기했다.
“야, 이, 뭐 하자는 거야?”
맥이 풀린 내가 짜증스레 말했다. 가야는 한숨을 깊이 내쉬다가 이내 웃었다.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진짜’를 상대로 제가 어쭙잖은 재주를 내세워 봐야 의미가 없죠. 제가 가진 힘은 얼치기 부랑배 상대로나 쓸만한 수준입니다.”
“그렇다고 싸우기 전부터 포기해? 썩어빠진 근성이야.”
내가 바닥에 떨어진 깡통을 걷어찼다.
“저는 투사도 아니고, 무엇보다 싸움을 앞두고 흉흉하게 웃는 남자를 상대로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폭력이라는 관념이 현실로 현현한 느낌이었습니다.”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쪽 포스 능력은 도대체 뭔데?”
“그건 비밀입니다. 안으로 들어오시죠. 힘으로는 제가 안 되니 말로 합시다.”
“능구렁이처럼 구는군.”
“연륜이라고 해주시죠.”
가야가 소맷자락을 내리며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식어버린 목을 매만지며 그를 따라갔다.
병원 복도는 정연하다. 가야의 가지런한 성격을 보여주는 듯하다. 간혹 있는 장식도 의미조차 불분명한 도형과 곡선이었다.
“가브리엘 씨의 상태는 매우 나쁩니다. 최악의 상황이 몇 개나 중첩됐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약물 중독, 그리고 사이버네틱 의체 과용으로 인한 신경계 과부하 등등 하나같이 정신건강을 해치는 것들이죠.”
가야가 그리 말하며 걸음을 멈추곤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왜?”
“당신도 아마 적잖게 겹쳐있겠죠.”
“누구나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살아. 정신이든 육체든 간에 말이야. 좀 다쳐서 아프다고 징징거렸다간 밑도 끝도 없지.”
“그 말도 맞긴 합니다. 고통을 회피해선 안 되죠. 불행을 완전히 배제한 안락한 삶은 약물 중독만큼이나 인간을 망칩니다. 오히려 고통의 크기가 좀 더 커야 건강한 삶이라 할 수 있죠…….”
가야가 벽 선반에 놓인 천칭을 가볍게 튕겼다. 천칭이 맑은 소리를 내며 기울었다가 균형을 되찾았다.
“……그러나 지나치게 큰 고통은 우리를 부숩니다. 영구적인 장애가 남고 삶을 불편하게 만들죠. 지금 가브리엘 씨는 그런 상태입니다. 고통의 총량이 회복탄력성을 넘어섰기에 자력으론 일어설 수가 없습니다. 그걸 치료하는 게 저 같은 사람이고요.”
“빙빙 돌려 말하지 마. 가브리엘을 지금 만나야겠으니까.”
“전 당신을 말릴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 경고하겠습니다. 가브리엘이 여기서 더 무너진다면 그땐 돌이킬 수 없을 겁니다. 물리적으로 목숨을 끊지 않아도 사람은 죽을 수 있습니다.”
나는 웃었다. 가브리엘의 병실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 정신건강에 아주 좋은 일을 하러 갈 거니까.”
내가 병실의 문을 열었다. 환자복을 입은 가브리엘이 멍한 얼굴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는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서 나를 보았다.
“루, 카? 나, 음, 너, 진짜지? 젠장, 역시 꿈이 아니었네.”
도대체 이 말을 몇 번이나 듣는지 모르겠다. 가브리엘의 인지와 기억력에도 다소 문제가 있는 듯했다.
“정신 차리고 나갈 준비해.”
“여, 여기서 나가?”
“네 여자와 양녀를 죽인 새끼를 찾았어. 같이 잡으러 가자.”
가브리엘의 흐리멍덩한 눈이 커졌다. 그가 벌떡 일어나더니 옷장을 깨부수듯 열었다.
“정, 정말이지? 그, 그 새끼를 찾은 거야? 어떻게?”
가브리엘은 옷을 거꾸로 입으며 말했다.
“발품 좀 팔았어.”
그리고 돈도 썼다. 쟈파의 금전 지원이 없었다면 나도 이렇게 쉽게 찾지 못했을 것이다.
쿵!
가브리엘은 균형 감각도 흐릿한지 바지를 갈아입다가 넘어졌다. 그는 욕지거리를 내뱉더니 가야에게 삿대질했다.
“이봐! 의사 선생! 얼음물에 뇌를 씻듯이 정, 정신 번쩍 드는 거 하나 시, 시원하게 놔줘 봐. 지금, 아, 젠장, 머리가 돌지 않는다고!”
가브리엘이 각성제를 요구했다. 나는 가야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트라우마의 원인이 되는 대상에게 복수하러 가는 겁니까?”
“반대해도 소용없어. 이미 결정했거든. 가브리엘도 저렇게 신났잖아.”
가야가 팔을 괸 채로 턱을 매만지다가 대답했다.
“반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복수는 의외로 회복과 극복에 도움이 될 겁니다. 한 가지 조언하자면 복수는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곰팡이처럼 들러붙은 트라우마를 완전연소해야 하죠. 어중간하게 태웠다간 그을림만 커지며 더 검게 착색될 뿐입니다.”
“복수를 권장할 줄은 몰랐네.”
나는 휘파람을 살짝 불며 말했다.
“효과적인 치료법이 윤리적으로 옳아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인간은 원래 그렇게 윤리적인 동물이 아닙니다. 보더시티에선 더욱 그렇고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