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75)
배드 본 블러드-175화(175/197)
175
나와 가브리엘은 보더시티에 널린 무기상 중 한 곳을 들렀다.
느슨하게 앉아있던 주인장이 우릴 보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우리의 험악한 분위기를 보고선 제대로 된 손님이 왔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가브리엘, 손에 맞는 놈으로 골라봐.”
내가 주인장에게 크레딧칩을 내밀며 가브리엘에게 턱짓했다.
“진짜 아무거나 골라도 돼? 도대체 물주를 어디서 구한 거야? 12년 만에 깨어났다면서?”
가브리엘이 벽에 걸린 총기를 매만지며 말했다. 그간 폐인 생활을 했는데도 총기를 다루는 손재간이 날렵했다. 나름 경호원으로서 훈련을 열심히 한 모양이었다.
“설명하자면 길어.”
나는 구차하게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가브리엘도 당장은 총기를 고르는 데 집중했다. 그의 눈동자에선 복수의 열망이 후끈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의욕이 돌아왔다.’
무기력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내가 아는 가브리엘이 드러났다. 뚜렷한 목적의식과 각성제의 보조 덕분이었다.
“정말로 시렌을 죽인 놈을 찾은 거지?”
“거의 확실해. 그보다 문제는 쉽게 건드리기 힘든 녀석이라는 거지.”
“흠, 그러면 나중에 보복이 생길 수도 있으니 실행은 내가 할게. 넌 안내만 해주고 빠져 있어.”
가브리엘이 산탄총을 한 손으로 돌리며 말했다. 그는 탄창을 결합하며 조준점을 잡았다. 총기를 점검하는 법도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복수 실행은 너에게 맡기겠지만…… 문제가 생기면 너 혼자 감당하기 힘들걸.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잖아.”
“지금 상태로도 여자와 아이에게 손을 대는 쓰레기 정도는 상대할 수 있어.”
우리 이야기를 듣던 주인장이 방긋 웃었다. 그는 손을 비비더니 찬장에서 보관함을 꺼냈다.
“고객님들, 혹시 사적인 복수를 하신다면 이걸 추천합니다. ‘비루스’라는 신경독인데 통증 수용체만 과민하게 만들어주죠. 이 세상에서 다신 경험하지 못할 고통을 맛보게 할 수 있습니다. 날에 발라서 써도 되고, 특수탄으로도 주입이 가능하죠.”
주인장이 보관함을 열었다. 앰풀에 담긴 칙칙한 액체는 불길한 녹색을 띠고 있었다.
“하, 루카. 방금 들었어? 이거 멋진데? 비루스라고?”
가브리엘이 도검류를 고르다가 주인장 앞으로 걸어왔다.
“대신에 가격이 좀 있습니다. 순전히 복수를 위한 사치품이거든요. 고문용으로도 쓰기가 힘듭니다. 중독되면 30분도 되지 않아서 죽을 테니까요.”
주인장이 나를 힐끗 봤다.
장사를 좀 할 줄 아는 사내였다. 나와 가브리엘의 대화를 듣고, 복수와 물주라는 단어를 잡아챈 것이다.
“가격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하나 줘봐.”
난 가격도 묻지 않았다. 그저 추가 크레딧칩을 탁자에 올려두고선 점주 쪽으로 밀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지금 덩치가 큰 고객님이 고르신 도검류는 서비스로 드리겠습니다.”
도검류를 서비스로 준다니…… 어지간히도 비싼 물건인 모양이다. 난 혹시라도 쟈파에게 연락이 오지 않을까 싶어서 살짝 긴장했다. 이 감정은 내게 양심이 있다는 증거로군.
철컥.
가브리엘은 권총과 산탄총을 하나씩 챙겼다. 그리곤 마체테와 단검도 허리와 허벅지에 달았다.
“훨씬 보기가 좋네.”
난 무장한 가브리엘을 보며 입술 한쪽을 씰룩였다.
“나도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끼고 있어.”
가브리엘은 총포상의 지하 사격장에서 시험 사격을 했다. 약물 중독과 공백기의 후유증으로 사격 동작이 버벅거렸으나 못 써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젠장, 엉망진창이네.”
그러나 가브리엘은 자신의 몸뚱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상관없어. 재활은 나중에 해. 어차피 코앞에서 총구를 들이밀 거니까.”
“그야 그렇지.”
우린 총포상을 나왔다. 나는 가브리엘을 힐끗 바라봤다. 그에겐 생기가 돌고 있었다.
“가브리엘, 그간 있었던 일은 나중에 묻겠다. 지금은 네 복수부터 하자고.”
이건 빚을 지워두는 거다. 오래전에 내가 가브리엘의 치료비를 대납했듯이 말이다.
이번 일이 끝나면 가브리엘은 그 누구보다 충직하게 날 도와줄 것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날 배신하지 않겠지.
“나도 네게 궁금한 게 많아. 난 네가 보더시티에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 그 우울한 저택의 휠체어에 앉아서 여생을 보내다가 죽은 줄 알았다고.”
“내가 죽은 줄 알았다고?”
“지젤은 네가 죽었다고 했어. 공식적으로 발표만 하지 않았다고 말했지. 네 이름값이 쿠스토리아 가문에겐 제법 중요했거든.”
대충 짚이는 감이 있다. 지젤은 날 보더시티로 빼돌리기 위해 주변인에게 내가 죽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과거를 검토하는 건 나중에 하자. 코앞에 다른 일거리가 있으니까.
내가 걸어가면서 가브리엘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의 단말기 화면에도 내가 공유한 정보가 떠올랐다.
“……이름은 어니스트 보렐이다. 보더시티의 설립자 중 하나인 알렉스 보렐의 손자야. 보더시티 내에선 상당한 거물이지.”
“정치인 집안이라는 소리잖아. 그 새끼를 죽이면 후폭풍이 심하겠지?”
“그러니까 몰래 납치해서 따로 끌고 와야 해. 자기 아버지 밑에서 비서를 하고 있다. 현재는 중요한 인물이 아니니 경호가 엄중하진 않을 거야. 그리고 은밀한 욕구 충족을 위해서라도 경호 인력을 곁에 두진 않겠지.”
내가 어니스트 보렐의 일정표를 가브리엘에게 전송했다. 우리가 노릴 만한 시간대는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어니스트 보렐의 신상정보를 본 가브리엘이 이를 바득 갈았다. 그리곤 곧 서글프게 얼굴을 찡그렸고, 눈가도 살짝 젖었다.
“루카, 왜 좋은 집안에서 나고 큰 놈이 이딴 짓을 하는 거야? 살인을 저지르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는 새끼잖아. 왜, 왜…… 사람을 죽이는 거야? 그것도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이잖아. 사람을 죽이는 데 쾌락을 얻어? 그게 왜 즐겁냐고? 사람이 그러면 안 되잖아. 난 도저히 이해가 안 돼,”
가브리엘이 끝말을 흐느꼈다. 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나는 어니스트 보렐이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놈은 살인 말곤 자극과 즐거움을 얻지 못하는 거다. 살인할 때만 삶을 실감하는 것이고, 살아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살인을 계속 저지른다.
그런 사람이 군인과 용병, 전사라면 그래도 괜찮다. 그런 특성이 때론 장점으로 작용하는 업이니까. 그러나 일반인이 그런 기질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
* * *
나와 가브리엘은 골목길에서 어니스트 보렐의 거처를 응시했다. 보더시티의 관료들이 무리 지어 사는 건물이었다. 모여 사는 이유는 치안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도 이 주변은 치안이 굉장히 좋았다. 사설 경비원이 아니라 벨라토 연방의 경찰이 순찰을 다니고 있었다. 무장의 수준도 훌륭해서 전신 전투복에 중화기까지 갖추고 있었다.
“루카, 여기서 기다리면 놈이 나오는 게 맞아? 후우.”
가브리엘은 처방받은 앰풀을 주사기에 끼우고선 목덜미에 주사했다. 그제야 기운이 나는지 녀석이 히쭉 웃었다.
“살인 주기상 지금은 사냥감을 찾아다닐 때니까 저녁엔 혼자서 활동할 거야. 그리고 너는 이번 일이 끝나면 약물이고 술이고 다 끊고 재활부터 해.”
“알고 있어. 나도 그럴 거야. 지금은 어쩔 수 없잖아.”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녀석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국가의 고위층과 상류층이 타락하더라도…… 쾌락 살인을 대놓고 방조하진 않는다.’
어니스트 보렐의 연쇄살인은 떳떳하지 못한 행위다. 자칫하면 집안의 정치적 생명조차 끊을 수도 있었다. 반드시 혼자서 거리를 배회하며 사냥감을 노릴 것이다.
우린 자리를 계속 옮기며 어니스트 보렐이 나오길 기다렸다.
해가 질 무렵이었다. 운동복 차림새의 사내가 건물에서 나왔다. 후드를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놈의 체형과 보행습관만으로 어니스트 보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니스트 보렐은 건물 경비는 물론이고 순찰하는 경찰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선 운동하듯 뛰어갔다.
“가브리엘, 계획대로 움직여라.”
“뭐? 벌, 벌써 놈, 놈이 나왔어? 어디 있는데? 어디에!”
가브리엘의 손이 덜덜 떨리더니 권총을 잡고 있었다. 그는 우는지 웃는지 모를 표정으로 이를 드러냈다.
난 눈을 찌푸렸다.
“네 형편없는 실력으로 저격했다간 영영 복수할 기회를 놓칠걸.”
“알, 알았어. 총을 쏠 생각은 없었다고.”
“빨리 움직여.”
내가 가브리엘을 재촉하며 시선을 어니스트 보렐에게 두었다. 곧 놈이 인파에 섞일 것 같았다.
“루카, 여러모로 도, 도와줘서 고, 고, 고맙다.”
가브리엘이 아직도 구길 자존심이 있는지 힘겹게 감사를 표했다.
나는 가브리엘을 보지도 않고 손만 내저었다. 가브리엘의 기척이 사라졌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나도 빠른 걸음으로 어니스트 보렐의 뒤를 따라갔다.
어니스트 보렐은 막 소년에서 청년이 된 사내였다. 체구는 말랐으나 보기 싫진 않고 오히려 준수한 외모 덕분에 지적인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학업 성적도 그만치 우수하고, 주변의 평판도 좋았다.
‘원래는 예술가가 꿈이라고 했지.’
난 어니스트 보렐의 인터뷰를 떠올렸다. 그는 보더시티의 혼란과 사회 문제를 보고 예술 대신 정치를 하겠노라 마음을 바꿨다고 말했다. 흔해 빠진 대외선전이었다.
‘그래도 예술을 하고 싶었다는 말 자체는 사실일 거다.’
실제로 그 편린이 게시물에서 드러났다. 능숙한 거짓말쟁이는 진실과 거짓을 섞어 쓴다.
‘어니스트는 전투 훈련을 받은 인간이 아니다.’
어니스트는 가볍게 뛰다가 자주 멈추며 휴식했다. 덕분에 미행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적절하게 몸을 숨기며 그를 따라갔다.
어니스트가 혼잡한 거리로 들어섰다. 여기서부터는 치안이 서서히 나빠지는 곳이었다. 그는 벽에 기댄 채로 지나가는 이를 훑어보고 있었다.
‘먹잇감을 찾고 있다.’
어니스트의 동공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욕구를 채우려면 약자를 노려야 한다.
스륵.
나도 어니스트에게 다가갔다.
사냥꾼은 사냥감을 노리며 주시할 때 가장 취약해진다. 자신의 모든 감각이 그쪽으로 쏠리기 때문이다.
툭.
내가 어니스트의 옆으로 다가가며 벽에 등을 기댔다. 어니스트가 날 힐끗 보더니 후드를 더 깊게 눌러썼다.
스륵.
어니스트는 등을 벽에서 떼며 자리를 뜨려 했다.
콰직!
내가 어니스트의 발등을 밟았다. 어니스트가 짧은 신음을 흘리며 나를 노려봤다.
인파가 흐르듯 우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난 보더시티에 익숙해졌다. 여기 사람들은 타인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사람이라도 찔러 죽이지 않는 이상에야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
“그 발을 완전히 뭉개버리기 전에 다시 등을 벽에 기대.”
“너…….”
어니스트가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 했다. 나는 한숨을 흘리며 그의 팔을 잡아챘다.
“시답잖은 짓은 관둬. 여차하면 난 여기서 네 목을 찌르고 사라지면 그만이야. 넌 비명도 지르지 못하겠지. 1초 만에 이승을 하직하고 싶어?”
“원하는 게 뭐지?”
어니스트가 내 지시대로 등을 벽에 기댔다. 그의 동공이 불안정하게 움직였다. 온갖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뭐, 나 같은 놈이 부잣집 총각을 노리는 이유가 뭐겠어? 나도 대단한 집안과 원수져서 평생 쫓기고 싶지 않아. 몇 푼만 건지고 보더시티를 떠날 생각이다. 어허, 손을 주머니에 넣지 마. 바깥에 보이게 꺼내놓고 내 지시에 따라 천천히 걸어가.”
“……내가 누군지 알면서 건드릴 생각을 하다니 간도 크군.”
“오늘 보더시티를 떠날 생각이야. 그보다 너도 이런 동네에 올 때부터 이런 일은 각오했어야지. 무슨 깡으로 경호도 없이 혼자 온 거야? 보더시티의 치안이 언제부터 그렇게 좋았다고?”
내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어니스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살인 욕구를 채우려 돌아다닌다고 말할 순 없을 테니까.’
나는 어니스트의 정강이를 발끝으로 툭툭 치며 움직이라는 신호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