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76)
배드 본 블러드-176화(176/197)
176
나는 어니스트를 인적이 없는 골목으로 몰아갔다. 여기선 쥐도 새도 모르게 일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어니스트도 불안감을 느꼈는지 드문드문 걸음을 멈추며 내게 말을 걸었다.
“돈이 필요한 건가?”
“공부도 많이 했으면서 멍청한 소리나 지껄이는군. 세상에 돈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도 있나?”
“……그렇긴 하지만, 돈이 필요하다면 날 노리는 게 정답이 아닐 텐데?”
어니스트는 침착하게 대응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공황에 빠지지 않았다.
‘살인을 그렇게 저지르고도 잡히지 않을 정도니까. 어느 정도 예리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가 정답인지 아닌지는 나도 몰라. 어차피 다 똑같은 부잣집 아니야?”
“우리 집안은 정치인 집안이다. 영향력은 있어도 당장 현금이 많진 않지. 돈이 필요하다면 나보다 더 쉽고 노리기 편한 자들이 많아.”
“쉽게 말해서 너는 돈이 안 되는 인질이라는 건가?”
“날 납치하는 위험성에 비하면 말이지. 여기서 그냥 물러난다면 내가 가용할 수 있는 현금을 전부 주겠다. 잠깐 일한 것 치고는 짭짤하지 않아?”
헛웃음이 나오는 걸 참았다. 난 정말로 돈을 노리는 납치범처럼 연기하며 뜸을 들였다.
“이후에 내게 복수하지 않겠다고 어떻게 장담하지?”
“믿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넌 아직 내게 해코지도 하지 않았어. 그렇게 집요하게 널 쫓을 정도로 원한을 가질 이유는 없잖아. 네 말대로 난 안일했다. 오늘 내가 네게 지불하는 돈은 일종의 수업료인 셈이야.”
어니스트의 대응은 제법이었다. 어리벙벙한 납치범이면 이 말에 홀렸을 수도 있다.
“흐음…….”
내가 생각하는 척하며 턱을 매만졌다. 걸어가던 어니스트가 힐끗 고개를 뒤로 돌려 나를 쳐다봤다.
콰직!
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주먹을 뻗어서 어니스트의 안면을 때렸다. 그의 코뼈가 찌그러졌다.
“앞만 보라고 했잖아. 아차, 이를 어쩐다. 널 해코지해 버렸네. 쯧, 이러면 원한이 있으니 너도 날 집요하게 쫓겠지?”
어니스트가 신음하며 피가 줄줄 흐르는 코와 입을 감쌌다. 그는 고통으로 분노하기보다 머리를 빠르게 굴리고 있었다.
“커억, 컥, 아니, 이건 내 실수지. 괜, 찮다. 카악!”
내가 손바닥으로 어니스트의 뺨과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쿵!
어니스트가 충격으로 땅바닥까지 얼굴이 처박혔다. 놈의 얼굴이 단숨에 퉁퉁 부어올랐다.
“젠장, 또 손이 나가버렸네. 이야, 이 정도면 너도 내게 원한이 없을 수가 없겠네.”
내가 빈정거리며 쓰러진 어니스트에게 다가갔다.
어니스트는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시뻘건 피가 손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그 사이의 눈동자는 표독스러웠다.
“너, 이 새끼, 뭐 하는 놈이야?”
“납치범.”
“돈을 노린 게 아니잖아.”
“입 다물고 걸어가. 시끄럽게 굴면 턱을 박살 내버릴 테니까.”
어니스트가 힘겹게 일어섰다. 우린 골목을 지나서 칙칙한 굴다리 아래로 걸어갔다. 해가 지고 있어서 이쪽은 빛이 없어 어두웠다.
‘반대편에서 가브리엘이 차를 타고 기다리고 있을 거야.’
준비해 둔 차에 어니스트를 태우고 이동하면 된다. 그러면 이번 일은 끝이다. 이동 경로를 다 짜뒀다.
‘보더시티의 특성상, 한번 자취를 놓치면 찾기 힘들다.’
오늘 이 자리에서 어니스트는 유령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날 죽일 생각인 거냐?”
어니스트가 말했다. 이 녀석은 감이 좋고 머리도 돌아갔다.
나는 침묵하며 어니스트를 앞으로 밀쳤다. 놈은 어떻게든 시간을 벌려는 듯이 느릿하게 걸으려고 했다.
퍽!
내가 어니스트의 등을 앞으로 밀듯 걷어찼다. 어니스트가 크게 비틀거리며 다섯 걸음 나아갔다.
“움직여. 억울할 건 없잖아? 넌 너보다 약한 사람들을 무수히 많이 죽였지. 오늘은 네가 남보다 약한 날일 뿐이야.”
어니스트의 동요가 느껴진다. 그의 감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내가 어디까지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일반인치고는 훌륭했다, 어니스트. 하지만 금방 벗길 수 있는 갑옷이었어.’
어니스트의 다리가 떨리고 있었다.
‘내 폭력이 두려움의 쐐기를 박아 넣었다.’
내 폭력은 망설임이 없다. 언제든 상대를 죽일 수 있다고 온몸으로 경고를 보낸다. 공격적인 허세에 익숙한 부랑배조차 내 폭력에 겁먹을 정도다. 난 허세가 아니라 언제나 진심이니까.
‘어니스트는 군인이나 전사가 아니다. 타인의 폭력에 저항해 본 적이 없지. 언제나 안전한 곳에 선 일방적인 가해자야.’
위안을 가지자, 루카. 넌 적어도 강자를 찾아다니는 놈이니까. 안전한 곳에서 폭력을 휘두르며 살인하는 걸 즐기는 건 아니잖아.
‘난 어니스트와 다르다.’
적어도 이놈보단 더 나은 사람이다. 난 내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선을 넘진 않는다. 내겐 나름의 선이 있다.
그렇게 생각해야 자의식의 중심을 잡을 수 있다.
……여러 근위대원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정신을 유지한 근위대원들은 자신만의 선이 있었다. 선은 폭풍우 속의 닻과 같다. 그걸 잃어버리면 흐름에 휩쓸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잃고 만다.
지금 나는 죽여도 될 만한 사람을 찾아다니고 있다. 생도 시절에는 제국과 근위대가 죽일 사람을 ‘임무’라는 명목하에 정해 줬다. 제국의 적은 내가 무참히 죽여도 되는 상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내게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하는 자가 없다.’
모든 게 내 의지였다. 사람을 죽인다면 오롯이 내 판단과 결단에 의한 일이다.
‘좀 더 신중해져라. 맛탱이가 가고 있긴 해도, 아직 난 나를 통제할 수 있다.’
나는 가야를 떠올렸다. 가야와 충돌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난 그에게 불필요한 적개심과 공격성을 쏟아냈었다.
좋아, 나도 회복하고 있긴 한 모양이다. 이성적 사고가 점차 밝아지고 있군.
“어니스트 보렐, 왜 사람들은 죽인 거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
복수는 가브리엘의 몫이지만 손가락 한둘 정돈 내가 가져가도 괜찮으리라.
우득!
내가 손가락을 튕겨서 어니스트의 검지 마디를 가격했다. 놈의 검지가 부러지면서 덜렁거렸다.
“크억, 끕.”
“똑바로 대답해.”
내가 재빨리 단검을 꺼내서 어니스트의 눈 밑을 쿡쿡 찔렀다. 날 끝이 눈 밑 피부를 뚫고 안구를 살금살금 건드렸다.
“……알았어, 그, 그만! 어떻게 안 거지?”
내가 천천히 단검을 집어넣었다.
“알긴 어떻게 알겠어. 조금 추적이 까다롭긴 해도 흔적을 넷에 올려댄 게 너잖아.”
내 말을 들은 어니스트의 반응이 이상했다. 나도 말하다가 위화감이 들어서 눈을 크게 떴다. 내 직관이 이상을 감지했다.
기이잉.
현실의 시간이 늘어지면서 이명이 들리는 것 같다.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있다. 뭔가가 어긋나 있어.’
어니스트가 망가진 얼굴로 나를 보고 있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복잡한 신호를 읽었다.
‘의아함.’
나도 눈을 찡그렸다. 정황을 파악하자마자 흩어진 조각이 순식간에 이어 붙었다.
“빌어먹을, 넷에 살인 사진을 올린 건 네가 아니로군. 네가 살인마라는 걸 또 누가 알고 있지?”
“사진이 올라가 있다고? 그럴 리가 없…….”
“멍청한 놈. 네 살인의 뒷정리를 해주는 사람 있지? 그놈이 네 흔적을 넷에 뿌리고 다녔어. 그게 아니라면 내가 널 찾지도 못했겠지.”
나는 눈을 옅게 떴다. 관련이 없어 보이던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사람은 없어! 난 언제나 혼자였다고!”
어니스트도 당황하며 소리를 질렀다.
‘미지의 지평선.’
한 가지 정보가 들어오자 미지의 영역이 활짝 열렸다.
정보가 부족한 탓에 난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인지가 닿지 않은 미지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즐겁다. 온갖 위험이 실체를 가지고 내 뒤를 덮치려고 한다. 짜릿한 감각이다.
난 과거에 항상 이런 기분을 느끼며 살아왔다. 드디어 무료함이 가시고 있었다.
휙!
난 어니스트의 팔을 잡아당겨서 벽으로 내던졌다. 나도 왜 그랬는지 이유는 당장 모른다. 예지에 가까운 본능이었다.
퓻!
조용한 총알이 어니스트의 머리가 있던 자리를 지나갔다. 내가 방금 어니스트를 던지지 않았다면 놈이 죽었을 것이다.
훌륭하다, 아키에스 빅티마의 직관. 오늘도 한 건 해냈군.
난 총격이 날아온 방향을 보았다. 굴다리 끝의 모퉁이에서 총구가 반짝이고 있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군.’
나는 자동추적 권총을 꺼냈다. 전자장비가 총신 하단에 달린 권총이 묵직하게 내 손에 끌려 나왔다.
탕!
나는 총구를 엉뚱한 방향으로 겨누며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충분히 휠 궤도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포물선을 그린 총알이 모퉁이 안쪽의 사각지대에 꽂혔다. 하지만 나는 상대가 이딴 공격에 당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쭙잖은 잔재주를 부리지 말고 나와.”
내가 어니스트를 지키듯 그 사선을 가로막았다. 적은 어니스트를 죽이려 했다.
“……멋진 판단력이군요. 자동추적 권총을 주무기로 써본 적도 없을 텐데 벌써 응용을 이렇게 할 줄이야. 평생 전투와 싸움만 하고 살아왔다는 게 느껴집니다.”
적이 나를 잔뜩 칭찬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팅.
적은 손아귀에 쥐고 있던 자동추적 권총의 탄두를 떨어뜨렸다. 손으로 날아온 총알을 막아낸 모양이다.
난 새로이 나타난 사내를 관찰했다. 정장을 입은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딱히 노려보는 게 아니라 평상시에도 저런 눈매인 듯했다.
‘전신의체. 그것도 출력이 높은 전투용.’
난 그가 전신의체라고 단번에 확신했다. 전자회로의 빛이 손등과 목덜미를 따라 문신처럼 잔뜩 드러났기 때문은 아니었다.
‘느낌.’
생체와 의체는 미묘하게 다르다. 뭐라 형용하기 힘들지만, 그 작은 차이가 모여서 큰 차이로 나타난다. 특히 전투의체는 출력이 높아서 이질적인 느낌이 더 컸다.
‘만만치 않다.’
눈앞의 상대는 어니스트에게 신경 쓰면서 상대할 만한 수준이 아닌 듯했다. 그렇다고 어니스트를 도망가게 놔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가브리엘, 일이 생겼다. 네가 와서 어니스트 보렐을 데려가.”
내가 옷깃으로 입을 가리며 통신기에 대고 말했다. 곧 가브리엘의 대답이 들렸다. 온갖 욕설을 내뱉으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너, 너는? 발, 발렉? 네가 왜?”
벽에 부딪혔던 어니스트가 정신을 차리고선 사내의 이름을 읊조렸다.
사내의 이름은 발렉. 정보가 들어왔다. 저 사내와 어니스트는 아는 사이였다. 내 머릿속의 조각이 채워지면서 앞뒤가 이어졌다.
“어니스트는 날 꾀어내기 위한 미끼였나 보네. 어니스트의 살인 행적을 쫓아다니며 사진을 찍어서 올린 게 너로군. 아마 대외적인 신분은 보렐 집안의 경호원이나 수행원이겠지. 그 편이 어니스트를 따라다녀도 위화감이 없을 테니까. 그리고…… 어니스트가 가브리엘의 여자친구를 죽이도록 유도한 것도 너지?”
아키에스 빅티마 숙련자, 가브리엘의 지인. 이 두 가지가 겹쳐야 어니스트에게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이라곤 이 세상에 나밖에 없다.
‘내가 보더시티에 나타나면 필연적으로 어니스트를 찾아올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만들어둔 설계였다.
“손뼉을 힘껏 치고 싶지만 참겠습니다. 과연 대단하군요. 단서와 정보를 이토록 빨리 취합해 그럴싸한 결론에 도달할 줄이야.”
그리고 나는 다시 확신했다.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
화법에서 보였다. 놈은 아키에스 빅티마에 대한 이해가 있었고 본인도 사용자였다.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끼리의 대화는 논리적 비약이 잦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 거라고 생각하며 내용을 생략하기 때문이다.
‘놈은 날 잘 알고 있고, 심지어 기다리고 있었지.’
한 가지 결론만 남았다.
“키누안은 어디에 있나?”
물론, 답변해 줄 거라고 기대도 하지 않는다. 말을 던져서 반응을 보기 위한 절차일 뿐이다.
“예전부터 스승님에게 자주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재능 하나만큼은 자신보다 더 뛰어난 불세출의 천재가 제자로 있었다고요. 그리고 그 능력으로 자신의 기대보다 더 크게 제국을 한바탕 휘저었다고 늘 칭찬했죠. 그자 이름은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나 대신 설명을 해줘서 고맙군, 수다쟁이.”
난 칼자루를 잡았다. 오늘은 이걸 써야 할 것이다.
치익, 칙!
화광예도가 칼집에서 나오면서 불티가 튀었다. 칼집 내부는 마찰계수가 높아서 거칠게 끌려 나왔다. 보통 사람은 칼을 제대로 뽑지도 못할 것이다.
키이잉.
그리고 마찰로 달아오른 열선이 칼날을 따라 은은한 빛을 띠고 있었다. 열 증폭이 시작되고 있었다.
발렉이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음, 화광? 그걸 쓰다니 정신이 나갔군요.”
“놀랐나?”
내가 이죽거렸다.
“아뇨. 생각보다 우리 두 사람의 공통점이 많은 것 같아서요. 저도 정신이 나갔거든요.”
발렉이 허리춤에서 쌍검을 뽑아냈다. 팔 길이의 칼날은 뾰족했고 무엇보다…….
카아앙! 키이잉!
발렉은 쌍검을 긁어내듯 부딪쳤다. 열선이 반응하며 붉은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제가 쓰는 건 화광자검 1호와 2호입니다.”
흠, 이번 전투는 상당히 어려울 것 같았다. 거의 곡예에 가까운 싸움을 해야겠지.
……무슨 소리냐 하면, 칼날끼리 부딪치면 우린 둘 다 죽는다. 플라즈마 폭발이 일어나며 고열의 칼날이 사방팔방 비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