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78)
배드 본 블러드-178화(178/197)
178
나는 시체 처리를 위해 쟈파를 호출했다.
나와 쟈파는 어니스트 보렐의 시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니스트의 머리는 신원 확인이 힘들 정도로 박살 나 있었다.
“키누안과 관련된 일이다. 보렐 가문의 경호원 ‘발렉’에 대해 샅샅이 조사해.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전부. 그 이름조차 가명일 거다.”
내가 쟈파에게 말했다. 쟈파는 긴 손톱을 불안하게 딱딱 쳤다.
“어니스트 보렐을 죽인 겁니까? 이자가 누군지는 아십니까? 호요오오…….”
“정치인 집안의 아들이잖아.”
“그냥 정치인 집안이 아닙니다. 보더시티의 설립자 가문이라고요.”
“설립자가 한둘이 아니라 많던데 그중 하나잖아.”
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꾸했다.
“……당신은 보더시티의 실세 중 하나를 건드린 겁니다. 물론, 저도 실세 중 하나지만요.”
쟈파가 은연중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가 혓바닥을 파닥파닥 내밀더니 어니스트 보렐의 시신 앞으로 걸어갔다.
“쟈파, 네 수완으로 내가 깨어난 건 우연이 아니야. 너는 날 고른 게 자신의 선택이라 생각하겠지만 키누안에게 이용당한 거지. 내가 깨어나면 어니스트 보렐을 찾아가도록 설계되어 있었어.”
이런 짓을 할 만한 사람은 키누안뿐이다.
“제가 당신을 찾아 깨운 것조차 키누안의 의도라는 건 저도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그자에게 휘둘린 건 저도 처음이 아니니까요.”
쟈파는 놀라지도 않고 담담히 말했다.
‘쟈파는 키누안과 꽤 오랜 시간 알고 지냈다. 적어도 연 단위의 시간이겠지.’
방금 대화에서 흘러나온 정보였다.
“키누안을 찾고 싶다면 정보를 숨기지 말고 내게 전부 제공해.”
“그럴 순 없습니다. 돈은 얼마든 써도 됩니다, 호욧, 호욧. 속이 좀 쓰리지만 감당할 만하죠. 하지만 제가 발설하지 않은 사적인 정보를 캐진 마세요. 이건 경고입니다.”
“제일 중요한 정보를 숨기면서 사람을 찾아달라니 웃기는군.”
“그래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잖습니까. 제가 고용한 탐정이 어니스트를 죽였다는 사실을 보렐 측이 알게 되면 저도 상당히 곤란한 입장이 됩니다.”
쟈파가 다리와 허리를 구부리며 어니스트의 시신과 눈높이를 맞췄다.
“곤란하다는 건 해결하지 못할 건 아니라는 거군.”
“당신의 정보에 의하면 어니스트는 연쇄 살인마니까요. 적당히 좋게 좋게 넘어갈 여지가 있다는 거죠. 자식을 잃은 아비의 분노가 매섭긴 할 테지만요. 일단 시체를 정리합시다.”
쟈파가 말하자마자 청소용 안드로이드가 움직였다. 그들은 약품을 뿌리고 청소하며 살인 현장의 흔적을 지웠다.
“일반인 목격자는 없다. 하지만 발렉이 보렐 가문에 어니스트의 행방을 말할지 아닐지는 의문이야.”
“루카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죠? 발렉을 직접 본 건 당신이고, 당신의 직관은 상당히 정확할 테니까요.”
“……당장은 말하지 않겠지. 그리고 발렉은 보렐 가문 내에서도 완전히 종적을 감출 거다.”
우린 시체의 흔적이 사라지는 걸 가만히 지켜봤다. 쟈파도 이런 작업은 수없이 했다는 듯이 평온하게 서 있었다.
“일단 저는 발렉에 대해 조사하겠습니다. 광범위하게 세세히 조사하는 건 자본과 인력이 하는 일이니까요.”
쟈파의 일 처리는 언제나 훌륭했다. 내가 성질머리대로 활개 치고 다녀도 어떻게든 수습이 되고 있었다. 외계종족인데도 솔직히 마음에 든다.
“더 통제하다간 의심을 살 테니 이만 자리를 뜨시죠.”
쟈파가 목덜미의 통신기에 손가락을 올리더니 에퀘시안 용병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사건 현장 주변은 쟈파 상사가 통제하고 있었다. 쟈파 휘하의 용병들은 마치 경찰이나 군 조직처럼 굴었다.
‘경호업체가 거리 통제를 해도 웃길 판국에 요식업 기업이 이런 월권을 벌이다니…….’
하지만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없었다. 공공 치안이 작동하지 않는 보더시티에선 당연한 모양이었다.
기본적으로 보더시티의 기업은 경호업체가 아니라도 자체 무력 집단을 지니고 있었다. 치안의 부재가 아크바란보다 더 심각하니 당연한 거긴 했다.
‘기묘하군. 이런 난잡한 도시가 어떻게든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다.’
보더시티의 체제를 고안하고 설립한 이들은 보통내기가 아니겠지만, 그런 그들조차도 지금의 보더시티가 어떻게 유지되는지 모를 것이다.
보더시티는 규격과 크기가 제각각인 장난감을 쌓아서 올린 탑 같았다. 복잡하게 얽히면서 맞물렸기에 꼭대기에서 살펴봐도 이게 왜 무너지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계산도 없이 마구잡이로 탑의 높이를 올려대면서 떨어진 건 버리고 올라가는 것만 놔두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상식과 예상에서 엇나간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 만큼 언제 갑자기 붕괴해도 이상하지 않은 도시지.’
당장 내일 어떤 사건이 터져서 도시 자체가 불바다가 되어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발렉은 화광자검을 가지고 있다. 희귀한 무기이니 이쪽으로 습득 경로를 조사해 봐.”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어니스트 보렐을 죽인 건 루카 씨가 아니라 가브리엘 씨죠? 루카 씨라면 분명히 생포부터 하고 조용히 처리했을 테니까요. 당신이 괴팍하긴 해도 이렇게 일을 아마추어처럼 처리하는 자는 아니겠죠.”
부정해 봐야 의미가 없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제 의뢰를 수행하는 동안은 가브리엘 씨를 보조로 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사람이 필요하다면 제가 붙여 드리겠습니다. 몇 번 보셨겠지만, 엔도 무척 유능한 친구죠.”
“어떤 사람을 쓰고 말고는 내 소관이다. 네가 참견할 바가 아니지.”
“가브리엘 씨는 결정적인 순간에 일을 망칠 겁니다.”
나는 한쪽 입술을 비틀었다.
“나도 그런 부류야. 결정적인 순간에 일을 조져 버리지.”
“적어도, 당신은 자신의 실수를 수습할 능력이 있고 노력도 하죠. 하지만 가브리엘 씨 같은 사람은 홧김에 저지르고 끝입니다. 수습은 타인의 몫이죠. 지금 상황처럼요.”
“그럼 그 수습을 내가 하면 되는 거지, 지금 상황처럼.”
난 속이 들끓는 걸 참으며 말했다.
손가락이 근질근질하다. 당장이라도 팔을 뻗어 쟈파의 목덜미를 비틀고 싶었다. 뱀 종족도 인간처럼 목을 비틀면 즉사하긴 할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수습은 당신이 아니라 제가 하고 있습니다만…….”
“널 부려먹는 것도 내 능력의 범주에 있어.”
“호요오오, 색다른 관점이군요. 어쨌든 가브리엘 씨에 대해서는 강경하시니 더는 왈가왈부하지 않겠습니다. 생각보다 물렁물렁한 면모도 있으시군요.”
나는 대꾸하지 않으려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가브리엘보다 뛰어난 놈은 많겠지. 하지만 내겐 다른 면이 더 중요하다. 가브리엘은 내 뒤통수를 치지 않아.”
“당신이 가브리엘 씨를 배신하지 않는 것처럼요?”
이건 정말로 대꾸하기 싫어서 입을 다물었다. 쟈파가 두 갈래 혓바닥과 함께 특유의 웃음을 쉭쉭 내뱉었다.
* * *
어니스트 보렐 사건은 소강에 접어들었다.
쟈파의 말에 따르면, 보렐 가문이 사람을 풀어서 어니스트를 찾고 있지만 별다른 소득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어니스트가 은밀한 사생활을 위해 평소에 홀로 다니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발렉이지.’
발렉은 아키에스 빅티마 숙련자다. 아키에스 전투술이 아니라 아키에스 빅티마 자체를 제대로 익혔기에 싸움만 잘하는 게 아니라 계략에도 능했다.
‘쟈파가 발렉의 뒤를 캐내면 좋겠지만 못하더라도…… 발렉이 알아서 날 찾아올 것이다.’
난 찻잔에 차를 따르며 생각했다.
‘키누안과 발렉이 날 통해 무얼 얻어내려고 하는 거지? 왜 쟈파가 날 깨우도록 유도했을까?’
당연하게도 내가 지금 그들의 목적을 알아낼 순 없다. 한정된 정보와 단서로 그들의 목적을 추론하는 건 불가능했다.
‘발렉이 다시 온다면 생포해야 한다.’
생포만 한다면 어떻게든 정보를 추출할 방법이 있다. 인간성을 적당히 버린다면 말이다.
난 발렉과의 전투를 떠올렸다. 발렉을 생포할 방법을 궁리했지만, 상당히 까다로웠다.
‘발렉도 날 어떻게 상대할지 궁리하고 올 거다.’
객관적인 전투력은 내가 우위에 있지만, 실전에선 변수 하나 때문에 상황이 뒤집히는 게 예사다.
보더시티에 지낼수록 내 상황은 복잡해지고 있었다. 지젤의 행방불명은 키누안과 관련이 있었다.
주어진 단서는 미미했고, 사태의 윤곽은 흐릿하다 못해 그 외곽선조차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겐 이런 환경이 낫지.’
나는 발렉과 만난 뒤부터 활력이 도는 걸 느꼈다.
상황이 어려워지고 압박이 강해질수록…… 내 내면의 에너지도 커지고 있었다. 일종의 반발력이었다.
주변 환경이 날 짓누르려고 들수록 나는 더 강해지고 생기가 넘친다. 반대로 평온하고 느슨한 안정은 날 우울하게 만든다. 미칠 노릇이지만 이게 사실이다.
지금은 권총을 보더라도 관자놀이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도 사라져서 커튼을 열고 밖을 봐도 마음이 고요했다.
내 안의 불꽃이 끈적하게 달라붙은 우울감을 불태우고 있었다. 고지식한 말이지만, 열정은 중요하다.
‘오늘은 여기까지.’
나는 차를 마시면서 사고의 속도를 느슨하게 떨어뜨렸다.
톡, 톡.
누군가 예의 바르게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난 일어서서 문을 삐걱 열었다. 보얀이 서 있었다.
“아,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인사라도 드리고 싶어서요.”
성장기 초입인 보얀의 키는 아직은 내 가슴팍까지 온다. 그러나 2미터가 넘는 체구가 평균인 크롤러 종족이니 2, 3년이면 내 키를 훌쩍 넘을 것이고, 별다른 훈련을 받지 않아도 보얀은 일반적인 인간 남성 정도는 우습게 찢어 버리는 신체 능력을 가질 터다.
인간이 크롤러 평균 수준의 신체 능력을 갖추려면 사이버네틱 의체를 덕지덕지 달아야 한다. 그러나 크롤러는 숨만 쉬면서 살아도 누구나 가브리엘 수준의 폭력을 갖출 수 있다.
‘그런 폭력적인 신체 능력을 타고난 놈이 기껏 한다는 게 공부라니…….’
보얀은 나보다 훨씬 더 이레귤러였다. 레고르 같은 놈이 널린 크롤러 사회에선 보얀을 받아들이기 힘든 게 당연했다.
“학교 가는 정도로 일일이 찾아올 필요는 없어.”
내가 보얀의 옷차림을 넌지시 살피며 말했다. 정갈한 맞춤 교복이었다. 그리고 가슴팍 주머니에는 안경도 있었다.
“첫 등교니까요. 쟈파 님의 말로는 좋은 학교라고 해요. 그리고 왼쪽 눈의 시력도 교정하는 겸해서 안경도 준비했어요. 인상이 좀 부드러워진다고 쟈파 님이 추천해 주시더라고요.”
보얀은 레고르에게 자주 맞은 탓에 왼쪽 눈의 시력을 상실하다시피 했다. 양안의 시력 차가 커서 책을 읽기가 그간 힘들었을 것이다.
“뭐, 열심히 해라.”
나는 문틀에 어깨를 기대며 머리를 긁적였다. 할 말이라곤 이것밖에 없었다.
‘보얀이 전투 기술을 배우길 원했다면 도와줄 일과 말이 많이 있었겠지.’
그러나 애초에 보얀이 싸움꾼이 되려고 했다면 나와 만날 일도 없었을 터다.
‘나와 전혀 다른 길을 걷는군.’
보얀은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복도로 걸어갔다. 교복을 입은 크롤러의 모습은 내가 봐도 영 어색했다.
그 후로도 난 종종 보얀과 마주쳤다. 같은 건물에 있으니 만나는 게 당연했다.
가끔은 보얀이 나를 피하듯 복도 너머에서 사라지곤 했었다. 녀석이 날 피하는 이유를 알게 된 건 일주일 정도가 더 지난 뒤였다. 아무리 날 피하려 해도 어쩔 수 없이 마주칠 때가 있었다.
“아, 안, 안녕하세요. 오다가 넘어졌어요.”
보얀이 어색한 거짓말을 해댔다. 난 녀석의 지저분한 교복 가슴팍에서 깨진 안경을 보았다.
언젠가는 녀석의 옷이 찢어질 때도 있었다. 들고 다니는 가방에선 묘한 악취가 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보얀은 몸을 숨기듯 나를 피하려 했다.
‘보얀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누군지는 몰라도 크롤러를 괴롭히다니 대담하군. 그러나 보얀이 자신들에게 손대지 못한다고 확신했기에 저러는 것이리라. 한마디로 우습게 보인 것이다.
난 어깨만 으쓱하며 보얀의 인사를 매번 받았다.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다.’
앞으로 보얀이 겪을 일에 비하면 이 정도 역경은 아무것도 아니다. 참지 못하겠다면 그땐 그냥 싸우는 법이나 배우면 된다.
그리고 어느 날에는 쟈파에게 보얀의 건으로 연락이 왔다.
-학교에서 보얀의 보호자를 호출했습니다.
“후원자인 재단에서 알아서 하면 되잖아.”
-저흰 후원자이지 보호자가 아닙니다.
“나도 학부모가 아니야.”
잠시 쟈파가 침묵하더니 살짝 화난 투로 말했다.
-길거리에 주워 온 고양이도 이것보단 신경 쓰겠습니다. 하물며 보얀은 미물이 아니라 지성체죠.
……맞는 말이다. 나는 일어나서 외투를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