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80)
배드 본 블러드-180화(180/197)
180
폭력은 야만의 상징이다. 문명사회에선 없어져야 할 악이다.
……라는 말에 동의하는 머저리는 많지 않을 것이다.
폭력은 야만이 아니라 강제력이자 억제력이다. 폭력의 울타리가 없다면 사회와 집단은 와해된다.
문명사회의 질서는 힘의 논리를 정교하게 우회한 것에 불과하다. 껍데기를 한 꺼풀씩 벗기다 보면 드러나는 진실은 언제나 하나였다.
폭력을 막을 수 있는 건 더 큰 폭력뿐이다.
철퍽.
바닥에는 피가 고여 있다. 어린 크롤러의 피가 바닥의 홈을 따라 번져나갔다.
쿵, 쿵.
바깥에서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잠금장치가 걸려 있어서 열지 못하고 있었다.
“크륵, 끅.”
피 웅덩이에 잠긴 보얀이 신음했다.
나는 손에 묻은 피를 닦으며 보얀을 내려다봤다. 녀석의 몸은 성한 마디가 없을 정도로 박살이 났다. 입과 코에서도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내 폭력으로 보얀은 죽기 직전까지 내몰렸다. 제때 치료를 받지 않으면 사망할 것이다.
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거셌다.
나는 방을 둘러봤다. 정갈했던 상담실은 엉망진창이었다. 부서진 가구와 비품이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문을 여십쇼!”
“이봐, 이것 좀 부숴봐!”
바깥에선 상담실의 문을 강제로 열어젖히고 있었다.
철퍼덕!
나는 보얀의 머리를 잡아서 피가 고인 바닥에 안면을 짓뭉갰다. 더 처참한 꼴을 연출하려면 피를 고르게 발라야 한다.
보얀이 부러진 팔다리로 꿈틀거리며 흐릿한 호흡을 내뱉었다.
‘이 정도로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나는 보얀의 뒷덜미를 잡아서 끌었다.
끼이이이!
잠겼던 문이 우그러지면서 강제로 열리고 있었다. 잠금장치가 부서질 듯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지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선생이 외쳤다. 그도 내부 꼬락서니를 얼추 보고 있었다.
“교육.”
내가 그리 대답하며 문으로 걸어갔다. 보얀도 내 손아귀를 따라 질질 끌렸다.
깡!
내가 손가락을 튕겨서 잠금장치를 깨부쉈다. 문이 화들짝 열리면서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도 나와 보얀을 보았다.
“우읍, 읍.”
비위가 약한 이들부터 보얀의 꼴을 보곤 황급히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다. 전투 경험이 있는 경호원들도 눈살을 찌푸렸다.
특히 가장 뒤에 있던 학생들은 경악에 찬 눈으로 나와 보얀을 보고 있었다. 곱게 자란 놈들에겐 이런 광경은 처음일 것이다. 차라리 총에 맞아 죽은 시체가 충격이 덜할 것이다.
휙!
내가 보얀을 그들 앞에 던졌다. 보얀이 미끄러지며 흐트러졌다. 핏자국도 길게 이어졌다.
“다신 다른 학생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게 교육했다. 보얀이 한 번이라도 더 사고를 치면 퇴학이 아니라 내 손에 죽을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니, 이건…….”
선생이 말문을 잇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모양이다.
“이런다고 내 아들의 팔이 부러진 사실이 사라지는 건…….”
금발 보호자가 목소리를 짜내며 말했다. 이대로 물러나기엔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다.
스륵.
내가 보얀의 곁에 쪼그려 앉았다.
“아들의 부러진 팔이 왼쪽이야? 오른쪽이야?”
“오른…….”
금발 보호자가 말을 하다가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닫았다.
나는 보얀의 너덜거리는 오른팔을 들어서 흔들었다. 뼈가 부러져서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눈에 눈, 이에는 이. 난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아. 복수에는 이자가 붙어. 보얀의 팔이 부러진 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으면 방법은 하나뿐이겠지.”
내가 소매를 걷으며 보얀의 오른쪽 어깨를 발로 누르며 팔을 잡았다.
“잠, 잠깐!”
선생이 빈약한 힘으로나마 필사적으로 나를 잡아당기며 말렸다. 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름이…… 에르겐 윌터? 그래, 당신이 원한다면 여기서 이 아이의 팔을 잡아 뜯겠다. 이 정도면 치료가 아니라 의체로 갈아 끼워야 할 거야. 이걸로 보얀을 용서해 줄 건가? 아니면 이래도 만족할 수 없나? 뭐든 말만 해. 얼마나 큰 고통을 이 아이에게 주고 싶은 거지? 내가 직접하지.”
“나, 나는…….”
금발 보호자의 기세가 줄고 있었다. 나는 몰아붙이듯 말을 이어갔다.
우드득!
내가 보얀의 어깨를 반 바퀴 비틀었다. 근육과 인대가 뒤틀리며 끊어지고 있다.
“아아……!”
기절한 줄 알았던 보얀이 고개를 들며 끔찍한 비명을 질러댔다. 그야말로 짐승의 울부짖음이었다. 그 울림은 형용하기 힘들 정도였다.
사람들은 눈을 찌푸리며 귀를 막아댔다.
‘참아라, 보얀.’
내 장기는 폭력이다. 그러나 저들에게 폭력을 휘두를 순 없다. 그랬다간 시원한 건 내 마음뿐이다. 보얀의 뜻도 허사가 되고, 쟈파도 곤란한 처지가 된다.
그러니 보얀을 통해 내가 가진 무자비한 폭력을 보여줘야 한다.
‘지금 내가 저들에게 구하는 건 용서가 아니다…….’
금발 보호자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가 주먹을 쥐었다가 펴길 반복했고,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고 있다.
‘……수틀리면 너희들도 이 꼴이 된다고 협박하는 거지.’
피보호자를 이렇게 반병신으로 만드는 놈이 원한 관계인 사람에겐 얼마나 잔혹할까. 저들의 머릿속엔 온갖 생각이 다 들 것이다.
“알았으니까, 그만! 이만하면 됐어!”
금발 보호자가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보얀, 에르겐 윌터 씨에게 감사해라. 네 생체 팔을 건지게 해줬으니까.”
나는 보얀의 팔을 놓으며 말했다.
보얀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신음만 흘렸다. 걸핏하면 주먹질하는 레고르에게도 이렇게 당해본 적은 없을 것이다. 레고르는 보얀에게 화풀이를 했던 거지만, 난 고문을 한 거다.
……어쨌거나 퇴학은 막았다.
* * *
“감…… 사해야 할지는 모르겠네요. 적어도 말은 하고 때리시지 그랬어요.”
보얀이 내게 말했다. 그는 팔다리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로 병실에 누워있었다. 크롤러의 강인한 육체와 첨단 의료기술이 더해져도 한 달은 치료를 받아야 했다.
“말하고 때리면, 뭔가 진짜 같지가 않잖아. 대비하면 티가 나기 마련이야.”
나는 병실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보얀은 눈동자를 굴리며 날 보다가 흠칫했다. 얻어맞은 기억 때문일 것이다. 각인된 공포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보얀, 넌 크롤러야. 아무리 제어하려고 해도 공격성이 다른 종족보다 강하겠지. 그러니 화가 날 땐 나를 떠올려라. 놀림 좀 당하는 게 내게 처맞는 것보단 백 배는 나을 테니까.”
보얀은 나를 겨우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절 괴롭힐 사람은 아마 없을 거예요. 제 보호자가 얼마나 개차반인지 소문이 났을 테니까요.”
보얀이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그게 내 목적이기도 하니까.”
“……생각해 보니 제 퇴학을 막을 방법이 달리 없긴 했네요. 돈이 먹힐 상대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정말로 제 팔을 비틀어서 뽑아버릴 생각이었어요?”
“그쪽이 그 정도로 독하게 나왔다면 그랬어야 했지. 팔 하나 없다고 공부를 못 하는 건 아니잖아?”
“음…….”
보얀은 침음했다.
“문제는 해결됐으니 다 낫거든 학교나 열심히 다녀라.”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난 보호자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잘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게 내겐 최선이었다.
“……와줘서 감사합니다. 학교에도 병원에도요.”
보얀의 말이 내 등을 두드렸다. 난 손만 들어서 인사했다.
나는 외출을 한 김에 가야의 병원도 들렀다. 가브리엘은 복수가 끝난 뒤에도 가야에게 치료를 받고 있었다.
병원 입구에서 초인종을 누르자 가야가 얼마 있지 않아서 문을 열고 나왔다.
“확실히 하라고 했잖습니까.”
가야가 날 보자마자 말했다. 가브리엘의 복수를 말하는 거다.
“원수를 죽였으면 된 거 아니야?”
“가브리엘의 복수심은 불완전연소 상태에서 멈췄습니다. 심지어 이젠 더 태울 방법조차 없죠.”
“가브리엘이 자기 손으로 죽인 거야.”
“심신미약 상태니 올바른 판단을 못 한 거죠. 가브리엘은 자신이 만족할 만큼 상대에게 고통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저 원수와 같이 있는 걸 견디지 못해서 죽인 거고, 복수의 쾌감을 누리진 못했죠”
“그래, 다 내가 잘못했지, 아무렴.”
내가 빈정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가야는 병실이 아니라 지하로 날 안내했다. 처음에는 사람을 가두는 지하 감옥이라도 있는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잠시 딴소리지만, 나는 가야가 숨기고 있는 음험한 면모가 궁금했다. 분명히 자신만의 비밀이 있을 것이다.
지하실 입구를 열자 소리가 들렸다.
쾅! 파직!
가브리엘이 제자리에서 통통 뛰며 타격 주머니를 때리고 있었다. 커다란 몸뚱이로도 제법 잽쌌다. 재활 중인데도 내가 기억하던 가브리엘보다 움직임이 좋았다. 제대로 회복한다면 쓸만한 전투 인력이 될 것이다.
콰- 앙!
굉음이 따갑게 퍼졌다. 가브리엘은 땀을 닦더니 나와 가야를 보았다.
“아, 가야 선생, 그리고…… 루카.”
가브리엘의 상태는 예전보다 좋아 보였다.
“살 만해?”
내가 다가가며 물었다.
“뭐, 그럭저럭. 그리고, 저번 일은 미…….”
“됐어.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진 거니까.”
“하지만 나, 나는…….”
가브리엘의 동공이 떨렸다. 방금까지 활기찼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부정적 감정이 어두운 형체를 가지고 가브리엘을 감싸는 듯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왜, 왜, 죽였는지 물어봐야 했어. 그리고, 더, 큰 고통을, 그놈은 나한테 자신을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 죽은 거잖아.”
안색이 금방 나빠지고 있었다.
“침착하게 심호흡해라, 가브리엘. 복수는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그놈을 네 여자친구에게 이끈 사주범이 있어.”
“그, 널 막아선 이상한 놈?”
나는 잠시 가야에게 자리를 비켜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가야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1층으로 올라갔다.
“……내가 지젤을 계속 찾아다닌다면 분명히 놈이 다시 나타날 거다. 이건 확실해. 지젤의 행방불명과 네 여자친구의 죽음은 연관이 있어. 모두 누군가의 계획에 따라 움직인 거야.”
가브리엘의 거친 떨림이 미동으로 바뀌었다.
“아, 아직 복수가 끝, 끝나지 않았어? 진, 진짜지?”
“그러니까 정신 차리고 재활에 집중해. 내겐 사람이 필요하다. 다른 이해관계의 영향을 받지 않고 나를 위해서만 움직여 줄 사람이 있어야 해.”
나는 지젤에 대해 더 묻지 않고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러나 가브리엘이 내 어깨를 붙잡으며 세웠다.
“루카, 날 도와줬으니 나도 널 도와줘야지. 그래야 공평해. 나는 일방적으로 네게 빚을 지고 싶지 않아. 넌 나한테 듣고 싶은 게 있지? 지, 지젤, 그러니까, 당시에 나는…….”
가브리엘이 말꼬리를 끌며 두려운 기억을 꺼내고 있었다. 그의 언행이 느려지고 있었다.
‘기억이 부드럽게 인출되지 않겠지.’
기억이 표면에 떠오를수록 죽을 것 같은 불안감도 같이 치밀고 있을 것이다. 그는 의식하기 싫은 기억을 강제로 끌어 올려야 한다.
기억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기억에는 감정이 따라붙는다. 가브리엘은 자신을 망가뜨렸던 부정적인 감정들과 다시 마주하고 있었다.
가브리엘의 호흡이 가빠진다. 얼굴도 새빨갛다. 동요와 불안이 전신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공황 상태였다.
나는 가브리엘의 말을 막지 않고 차분히 기다렸다.
“내, 내가 팀장으로 있는 경호4팀은 지젤 전담이야. 인원은 열 명이고…….”
가브리엘은 빙빙 둘러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난 재촉하지 않고 이해하며 기다렸다. 다짜고짜 본론으로 들어가기 힘들 것이다.
“가끔 지젤을 따라 쿠스토리아 저택을 방문하면 널 볼 수 있었어. 난 저택을 방문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 날 무시하는 시선이 느껴졌거든. 오면 안 될 사람이라는 듯이 말이야.”
쿠스토리아 가문이 날 받아주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특별한 경우다. 하층민을 향한 멸시는 쿠스토리아 가문도 마찬가지다.
“넌 의식이 없는 채로 창가에 앉아있었다. 말을 걸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 무의식 영역의 전투 반사조차 사라진 상태였어. 치료를 여러 번 시도했는데도 의미가 없었다고 하더군.”
현재로선 내가 보더시티로 온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제국의 생명공학기술로는 날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진홍의 프란세크가 건사했을 무렵에 난 회복했을 것이다.
‘두 번째는 프란세크가 권력다툼에서 패한 뒤에…… 제국에서 이반으로부터 날 보호해 줄 사람이 없어졌다.’
이반은 날 활용할 방법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놈은 날 가지고 싶어 한다. 그 감정은 악의에 가까운 순수한 소유욕이기에 내 인간성과 자아는 신경 쓰지 않을 터다.
어쩌면 날 그림자 같은 전투 기계로 만들려고 했을지도 모르지.
“차분히 말해봐. 사소한 것도 좋으니까 생각나는 것 전부.”
고요한 분위기와 달리 내 머릿속은 뜨거워지고 있었다. 지금부터 가브리엘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잡아채듯 하나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