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85)
배드 본 블러드-185화(185/197)
185
-루카 씨, 당신은 앙귀스 레지나를 보호하는 걸 최우선시해 주세요. 자세한 사정은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만…… 이번 습격의 목표는 접니다. 앙귀스 레지나는 부차적인 대상이죠. 그럼 이쪽 상황이 해결되면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나는 쟈파의 녹음을 들었다. 녹음 끄트머리에는 폭발 소리도 들렸다. 쟈파도 공격을 받고 있었다. 여러모로 긴급 사태인 듯했다.
-보더시티 요식업의 지배자, 쟈파 상사가 공격당했습니다. 과연 누구의 사주일까요?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짚이는 바가 너무나 많습니다! 쟈파 씨가 살아 있을지부터 의문이군요. 지금 여러분께서 보시는 불타는 건물이 바로 쟈파 상사의 사옥이고, 저는 상황 중계를 맡은 원 브라이트입니다! 만약…….
앙귀스 레지나가 단말기로 뉴스를 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그녀의 외투 모자를 잡아서 더 깊게 내렸다.
“얼굴을 남에게 드러내지 마라. 땅을 보면서 걷고, 내 다리만 보고 따라와.”
“이런 일에 익숙하신가 보군요.”
“일상이지.”
나는 벽에 기대 둔 더플백을 가볍게 찼다. 더플백 밑에는 피가 고여서 뚝뚝 떨어졌다.
더플백 안에는 내게 패배한 암살자가 담겨있었다. 전투복을 벗겨서 사람을 구겨 넣으니 가방에 용케 들어갔다. 사실 다리도 없으니 부피도 크게 줄어서 어렵지 않았다.
일단은 안전가옥까지 암살자를 데려가서 심문할 생각이었다.
난 골목길에서 숨을 돌리며 상황을 살폈다. 저 멀리서 석양과도 같은 붉은 아지랑이가 보였다. 진짜 석양은 아니고 화마의 기세였다. 저 너머에서 쟈파 상사의 사옥이 불타고 있었다. 보더시티의 관심은 그쪽으로 쏠렸을 것이다.
……가브리엘과 보얀은 현재 쟈파 상사의 사옥에 머물고 있지 않았다. 그나마 신경이 쓰이는 사람은 라피스였다. 그녀가 없으면 내 의체를 정비할 사람이 없으니까.
나는 엄지를 깨무는 앙귀스 레지나를 보았다.
“쟈파가 걱정이 되나?”
앙귀스 레지나가 나를 힐끗 보다가 뒤늦게 입을 열었다.
“에퀘시안들과 엔이 있으니 괜찮겠죠.”
“흠, 아까 에퀘시안이 맥없이 당하는 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이번에 제게 붙은 에퀘시안들은 하급 전사예요. 당신까지 있으니 상급 전력을 경호에 쓰는 건 낭비라 생각한 거겠죠. 다른 때 같았으면 엔이 제 경호로 붙었을 거예요.”
앙귀스 레지나는 에퀘시안 용병들을 상당히 믿고 있었다. 그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신뢰일 것이다. 그간 그들이 일 처리를 잘하긴 한 모양이다.
하기야 내 경험을 돌이켜 봐도 에퀘시안 용병 중에 뛰어난 이는 대단한 실력자였다. 그런 이들이 서넛만 있어도 어쭙잖은 습격은 막아낼 것이다.
“앙귀스으으으! 레지나아아아!”
“어디 계십니까! 안전한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앙귀스 레지나를 찾아다니는 팬들도 있었다. 그들은 앙귀스 레지나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으나 정작 방해만 될 뿐이다.
“이동하지.”
나는 소란스러운 인파가 지나가는 걸 확인하고선 움직였고, 해가 뜨기 전에 안전가옥에 도착했다.
난 안전가옥을 올려다보았다. 겉은 보더시티에 널린 거주용 빌라였다.
들어가 보니 복도는 청소부도 따로 없는지 수년은 지난 듯한 쓰레기로 지저분했고, 다른 방을 지나칠 때마다 이상한 냄새도 났다.
나와 앙귀스 레지나는 안전가옥으로 지정된 호실 앞에 섰다.
달그락.
자물쇠와 쇠사슬로 감긴 문이 보인다. 누군가가 끊으려고 한 흔적도 있었다. 그러나 녹슨 외향과 달리 고강도 합금으로 만들어진 자물쇠와 쇠사슬이었다. 민간인이 용을 쓴다고 자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난 정해진 순서대로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복잡하게 얽힌 듯한 자물쇠와 사슬이 하나씩 풀렸다.
끼이이익.
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의 두께만 내 검지 길이 수준이었다. 이 정도면 중화기로도 관통하지 못할 터이고, 이중문 구조라서 안쪽에는 더 두꺼운 금속문이 하나 더 있었다.
‘수준급 방호력을 가진 시설이로군. 벙커나 마찬가지야.’
벽과 바닥도 엄청나게 두꺼웠다. 그 때문에 중문까진 단차가 있어서 계단 네 개를 올라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벽, 천장, 바닥을 보강한 만큼 방의 내부는 작았고 창문도 없었다. 바깥에서 창문이라 생각했던 건 가짜였다.
‘외부와 단절된 구조다. 물도 천장의 물통에서 끌어오고,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만들고 있어. 선반에는 압축 식량과 생필품이 가득하고.’
나는 내부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여긴 그냥 안전가옥이 아니었다. 단독으로도 몇 주, 길게는 두어 달까지 생존할 수 있는 시설이었다. 빌라가 폭격에 맞아서 대파하더라도 이 방만큼은 버틸 것이다.
‘보더시티는 혼란하고, 쟈파에겐 적이 많아. 대비가 이상하진 않지. 그러나 과할 정도의 설비다. 한두 푼이 들어간 게 아닐 거야.’
그리고 쟈파는 이번 습격에 당황하지 않았다. 올 것이 왔다는 듯이 차분히 지시를 내리며 움직였다.
나는 압축 식량이 담긴 봉투를 뜯어서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그거 물 넣어서 먹는 거예요.”
앙귀스 레지나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난 건치라서 괜찮아. 소화 능력도 좋고.”
“……그렇군요.”
앙귀스 레지나는 한숨을 쉬며 딴지를 거는 것도 포기했다. 그녀는 생각할 게 많은지 내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보다 쟈파의 적이 누군지 알고 있어?”
“저는 몰…….”
난 그녀의 말을 자르며 웃었다.
“거짓말 마. 너도 이번 습격을 당황하기보다 걱정이나 하고 있잖아.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던 거지? 숨기고 싶으면 숨겨도 돼. 하지만 내 도움을 받고 싶다면 뭐라도 말해야 할 거다. 이래 봬도 난 쟈파에겐 마음의 빚을 제법 지고 있어. 부탁하지 않아도 먼저 나서서 도와주고 싶을 정도야. 내 호의가 신선할 때 써두라고.”
“갑자기 달변가가 됐군요. 설득력이 있어요.”
“내 재활이 끝나간다는 거겠지. 난 원래 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야.”
말하는 나조차도 헛웃음이 나오는 걸 겨우 참았다. 논리적이고 이성적, 그래, 음, 하지만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어떤 면에선 꽤 적확한 말이지.
“하,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요? 잠시 그간 있었던 일을 되돌아볼게요. 무릎이 갑자기 아파지네요.”
앙귀스 레지나는 옅게 웃었다. 내 말을 농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어쨌든 쟈파가 죽으면 나도 곤란해.”
나는 앙귀스 레지나의 기색을 살피며 말했다.
“유머로 분위기를 녹이고 은밀한 대답을 유도하는군요. 마음만 먹으면 여자를 잘 꾀어내겠어요.”
“여자만 꾀어내진 않겠지.”
앙귀스 레지나는 어깨를 떨며 웃음을 참았다. 남자를 좋아한다고 말한 내 모습이 떠올랐을 것이다.
“어차피 곧 알게 될 일이긴 할 테니…… 큰 비밀은 아니죠. 쟈파는 추방자예요. 가문에서 쫓겨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신세죠. 음, 아니, 보호를 받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네요. 불명예스러운 자라고 가문에서 쟈파를 죽이려 들었고, 늘 도망치는 신세였죠.”
어디서 많은 들은 이야기다.
‘보얀.’
쟈파는 보얀을 마주하고 동병상련을 느꼈을 것이다. 내가 타지룬 종족에 대해 조금만 더 밝았어도 그 감정의 기색을 알아챘을 터다.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쟈파는 보얀을 계속 도와줄 거야.’
나는 앙귀스 레지나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예전에 쟈파는 자신의 아버지이자 가주를 찾아가 거래한 적이 있어요. 대가를 지불하고 불가침조약을 맺었죠. 오늘 그 협정이 깨졌거나 만료된 거예요. 그래서 다시 쟈파를 죽이려고 드는 거죠.”
“내가 타지룬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보얀과 달리 쟈파는 타지룬답게 우수해. 어지간한 사유로는 불명예의 낙인을 찍고 추방하진 않을 것 같은데 말이야.”
“그건…… 쟈파에게 물어보세요. 절 통해 파고드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탐정 씨.”
앙귀스 레지나가 여유를 되찾았는지 손가락을 입에 대며 말했다. 안전가옥은 말 그대로 안전했다. 아늑한 느낌이 있어 심리적 안정감도 있었다.
‘제일 좋은 상황은 쟈파가 자신의 가문과 재협상에 성공하는 거로군.’
하지만 그 가능성은 머릿속에서 재빨리 지웠다. 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 그게 내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비결이다.
툭툭.
나는 더플백을 발끝으로 두드리며 끈을 풀었다. 더플백이 반쯤 내려왔다.
전투복 없이 검은 내의만 입고 있는 암살자가 꿈틀거렸다. 그녀는 손을 움직이려 했으나 뒤로 단단히 묶여서 어림도 없었다.
“어이, 정신이 들어? 죽은 건 아니지?”
백발의 암살자가 눈을 희미하게 떴다. 그녀의 허벅지 단면에서는 여전히 탄내가 나고 있었다. 앙귀스 레지나는 그 부상을 보기 힘든지 시선을 잠시 피했다.
“너는…….”
암살자가 날 보며 눈을 찌푸렸다. 가면을 벗은 내 얼굴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이 여자의 인지 능력이 많이 떨어졌군. 노화란 어쩔 수 없는 거지.’
전성기의 암살자라면 나를 단번에 떠올렸을 것이다. 지금의 그녀는 내 체형과 외모가 조금 변한 정도로 인물 인식에 버벅거렸다.
“얌전히 있으면 죽이진 않을 거다. 뭐, 어차피 살날이 많이 남진 않은 것 같군. 그 나이 먹고 암살자 노릇이라니…… 노후 준비를 너무 안 해둔 거 아니야? 돈 벌어서 다 뭐 했어?”
난 그녀를 아는 척하지 않으며 말했다. 암살자는 10초는 더 지나서야 눈을 치켜떴다.
“그때 그 소년이로군. 내가 널 죽이지 않았지.”
“아시타비 어쩌고저쩌고.”
내가 구시렁거리듯 말했다. 암살자는 허탈하게 웃었다.
“과거의 오만이 현재의 내 발목을 붙잡고 말았군. 오만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좀먹는 법이지.”
“그러니 죽일 수 있을 때 죽였어야지. 잘난 척하니까 이 꼴을 당하는 거잖아.”
내가 비웃었다. 암살자는 화조차 내지 않고 체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 반응에 이가 아득 갈리는 걸 참았다.
“네 말이 맞아. 그러니 이만 죽여줘. 내가 네게 베푼 오만한 자비를 마음에 담고 있다면, 내 부탁을 들어주길 바란다.”
“……그 전에 아는 게 있으면 전부 말해. 그럼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까.”
“너도 잘 알 텐데? 나 같은 실행범은 중개인을 통해 임무를 받아. 의뢰인을 알 수가 없지. 흠, 예전이라면 모를까. 난 더는 거물이 아니거든.”
자기 입으로 거물이 아니라고 지껄인다. 날 제압하고 내려다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자신의 입으로 강하다고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말했던 그 여자…….
……난 욕설을 내뱉으면서 얼굴을 찡그리고 싶었다.
‘왜 약해진 거야?’
이유는 잘 안다. 노화 때문이다. 그러나 납득하기가 싫었다.
“다른 이야기나 하자고. 노화는 어떤 부작용 때문인가?”
“부작용이라기보다는 정당한 대가를 치른 거지. 강제로 노화를 막고 신체를 강화했으니까. 애초에 불안정한 시술이었고, 나중엔 재생치료도 남발했다. 예전에 너와 마주쳤을 때도 난 꽤 나이가 많았어.”
암살자가 담담히 말했다.
“그래? 그땐 몇 살이었길래?”
“여자의 나이를 함부로 물으면 안 되지. 나이만이 아니야. 내 입에서 뭔가 들을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암살자가 탁하게 웃었다. 그녀는 생사에서 초탈한 모습이었다.
“기어코 힘든 길을 택하겠다는 건가? 노인의 모습이라고 내가 봐줄 거라 생각해?”
내가 손가락을 묵직하게 구부리며 말했다. 내 손아귀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웅웅 퍼졌다.
“내 꼴을 보니 화가 나는 모양이지? 왜 그런지 알아? 피와 살을 무시무시한 기계로 대체하든, 생명공학의 힘을 빌려 세포 단위로 강화하고 신경계를 화학 처리하든…… 우린 결국 노쇠하고 약해져. 늦고 빠르고만 있을 뿐이지. 내 모습은 제때 죽지 못한 너의 미래겠군. 그렇지? 꼬맹아.”
나는 참지 못하고 암살자의 머리채를 잡아 바닥에 내리찍었다.
콰직!
그녀의 코뼈가 경쾌하게 부러졌다.
“난 네 꼴이 되기 전에 뒈질 거야. 편하게 살다가 침대에서 죽을 생각은 없으니까.”
내가 머리채를 들며 으름장을 놓았다.
“킥, 킥. 나도 그랬단다. 하지만 어디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있던가?”
암살자가 부러진 앞니를 바닥에 뱉으며 말했다.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머리를 바닥에 찍어서 터트리고 싶었다. 그러나 난 손을 놓았다.
“난 널 죽이지 않을 거야. 죽음이야말로 네가 바라는 거겠지. 그러니 넌 내가 떠먹여 주는 죽이나 꼴딱꼴딱 삼키면서 목숨줄이나 붙이고 있어.”
무력한 삶은 잔혹한 형벌이 된다. 치열하게 살아온 자일수록 더 고통스럽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