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87)
배드 본 블러드-187화(187/197)
187
나는 쟈파 상사의 사옥에 진입하며 차근차근 올라갔다.
스륵.
기척을 느낀 내가 발소리조차 죽이며 자동추적 권총을 꺼냈다. 간만에 청각 시야를 사용해 사각지대의 적들을 파악했다.
눈을 대체할 정도로 청각 시야가 또렷하진 않았다. 지금은 척수액을 냉매로 바꾸는 미친 짓거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체와 위치가 보이는 정도라도 전술적 활용도는 매우 높다.
‘두 명.’
모퉁이 너머로 두 명의 침입자가 보였다. 난 눈을 떴다.
내 등의 더플백도 무생물처럼 고요했다. 교전 직전인데도 라그나타는 얌전히 있었다. 그녀도 나와 같이 숨을 죽이며 기척을 숨겼다.
뭐, 당연한 일이긴 하다. 날 방해하면 목을 비틀어버릴 테니까. 어디까지나 라그나타는 내 동정심 때문에 살아있는 거다.
나는 자동추적 권총을 꺼내서 총구만 빼꼼 내밀었다. 권총에 내장된 컴퓨터가 침입자 두 명을 인식하고 살상 경로를 만들어냈다.
침입자들은 내 존재로 인지하지도 못했다. 인지 바깥에서 날아오는 총알에 대응할 정도로 우수한 전사는 세상에 많지 않다.
‘기다렸다가…….’
난 총성과 폭음에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적절한 굉음이 울렸을 때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타- 앙! 탕!
추적탄이 멋스럽게 휘며 침입자들의 헬멧 눈구멍을 관통했다. 근위대원이라도 사격 전문가가 아니면 어림도 없는 수준의 정밀 사격이었다.
“비싼 무기를 들고 다니는군.”
라그나타가 휘파람을 낮게 불며 말했다.
“돈값은 못 해. 보조용으로나 쓸 만하지.”
“하지만 너한테 딱 맞는 무기다. 사격에 정신력과 집중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어지지. 특기가 아닌 분야를 잘하려면 더 큰 노력과 집중력이 필요한 법이야. 어차피 넌 강적을 상대로 총기를 사용하지 않을 테니까.”
괜히 라그나타를 데리고 왔나 싶기도 했다. 그녀의 통찰력은 우수하다. 나를 몇 년이나 알고 지낸 것처럼 꿰뚫고 있었다.
나는 걸어 나가서 방금 쓰러진 침입자들을 살폈다. 무장이 군인처럼 통일성이 있었다. 용병이라고 모두 무장이 난잡한 건 아니지만 뭔가 이상했다.
‘다종족 구성원 용병인데 무장에 통일성이 있다…….’
내가 부족한 정보 탓에 결론까지 버벅거렸다. 그 사이에 라그나타가 한마디 거들었다.
“무슨 언어를 쓰는지 통신을 엿들어봐.”
난 침입자의 헬멧을 벗겼다. 딱딱한 피부의 파충류형 외계종족인 사우라였다. 이렇게 가까이서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케세, 알타! 오르드 테아.
헬멧 내부에서 흘러나온 건 낯선 언어였다. 내가 외계 언어에 조예가 깊은 건 아니었기에 라그나타에게 헬멧을 가까이 댔다.
“타지룬의 언어로군. 사우라는 대개 머리가 나빠. 번역기 없이 다른 종족의 언어를 구사하긴 힘들지. 하물며 타지룬의 언어는 배우기 어렵기로 정평이 나 있다. 내 추측이 맞다면 다른 한 명도 번역기 없이 통신하고 있을 거야.”
난 다른 침입자의 헬멧도 확인했다. 이 침입자는 헬멧을 벗기기도 전에 종족을 알 수 있었다. 전투복으로도 전부 가리기 힘든 체형의 크롤러였기 때문이다.
크롤러 헬멧에서도 같은 느낌의 언어가 흘러나왔다. 내가 아는 크롤러가 많진 않지만…… 보얀의 아버지, 레고르의 경우에는 보더시티에 몇 년을 살고도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했다. 안 한 걸 수도 있지만 말이다.
“사우라와 크롤러가 타지룬어로 소통하고 있으니…… 이들은 메노아 친위대로군. 외인부대, 그러니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옛 지구의 예니체리나 맘루크 같은 군대지.”
내가 그 ‘정확한 의미’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라그나타가 말을 덧붙였다.
“……노예병이다. 타지룬 종족의 메노아 가문이 키운 사병이지.”
메노아 가문이 쟈파가 태어난 집안인 듯했다.
“바로 답이 나오는 걸 보니 유명한가 보네. 네가 타지룬 전문가는 아닐 테니까.”
내가 시체를 지나가며 계단을 올랐다.
“메노아는 인신매매를 주업으로 삼은 가문이다. 그 때문에 다른 타지룬 가문에 없는 특이한 전통이 하나 있지. 놈들은 자신의 상품 중에서 자질이 괜찮은 아이들을 뽑아서 사병으로 써먹어. 혹독한 훈련만큼이나 좋은 대우를 해주는 탓에 노예병이지만 충성도가 높지.”
설명을 들으니 근위대가 떠오르긴 했다. 사실 메노아 친위대나 근위대 같은 차출 형태의 군대는 흔하다.
“유명세치곤 그리 강해 보이진 않는걸.”
“진짜로 우수한 아이라면 비싼 값에 팔리니 자기네들 병사로 쓰지 않지. 하지만 메노아 친위대에서도 부대 지휘관급은 수준이 다르다. 심지어 가문의 일원으로 취급을 해줄 정도로 뛰어난 놈들이라고 하더군.”
들을수록 익숙한 이야기였다.
‘……나인가?’
비천한 출신, 자질을 인정받아 차출,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
이 우주에서 나만 특별한 인간이 아니긴 한가보다.
“타지룬은 상업 종족이잖아. 자신의 사병을 돈 받고 용병으로 빌려주기도 해?”
“타지룬은 비열하고 교활하다는 평을 듣지만, 폭력을 좋아하진 않아. 전투에 유리한 신체의 종족도 아닐뿐더러, 대부분 상황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성향이 있지.
놈들이 손대지 않는 사업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용병업이다. 그쪽 시장에선 타지룬 종족이 일방적인 소비자야. 어쨌든 메노아 가문이 사병까지 보낼 정도니까, 쟈파는 메노아 가문의 원수급 적인가 보군.”
라그나타는 편리했다. 협력하는 속내야 따로 있겠지만, 당장은 내게 부족한 정보를 스스럼없이 제공했다.
‘쟈파는 메노아 가문 출신이고, 어떤 이유로 추방당했다. 가문에서 쟈파의 목숨까지 노렸으나, 이후 불가침조약을 맺어 평화 상태를 유지. 그리고 오늘 그 조약이 깨진 탓에 재공격을 받았다.’
정리가 끝났다.
‘일단은…… 라피스의 안전부터.’
라피스가 제때 대피했다면 다행이겠지만, 기계정비실에 남아 있거나 방에서 자다가 공격을 당했을 수도 있다.
가다 보니 계단이 폭발로 끊어져 있었다. 침입자의 짓이 아니라 쟈파가 미리 설치해 둔 폭탄이 터진 듯했다. 다른 통로로 가봐도 사옥의 상층으로 올라가는 길이 여기저기 부서지거나 막혀 있었다. 다들 절묘한 위치였다.
“끄으으으…….”
함정에 휘말린 침입자의 시신도 여기저기 보였다. 숨이 붙어있던 중상자들은 내가 직접 마무리했다.
난 확인사살 용도로 쓴 자동추적 권총을 재장전하며 다른 길을 찾아보았다. 강행 돌파할 수도 있지만, 아군이 만든 함정에 내가 당하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천천히 올라가며 뒤에서 압박하는 게 전황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쟈파는 평소에도 건물 여기저기에 폭탄을 설치해 두고 있었던 건가? 잘도 이런 정신 나간 짓을…….’
그동안 폭탄 위를 걸어 다녔다고 생각하니 섬뜩했다.
무너진 계단과 막힌 경로를 확인하던 나는 눈을 깜빡였다. 쟈파 상사의 사옥은 나도 제집처럼 드나들던 건물이다.
정보의 조각이 모이니 내 머릿속이 활짝 열리면서 사고가 뻗어 나갔다.
내부 지도가 저절로 떠오르면서 막힌 통로를 보고 우회할 경로가 보였다. 사방에서 들어온 침입자들이 특정 층에 적체되어 모일 것이다.
‘설마…….’
나는 천장을 보았다. 바로 위쪽은 층 전체를 연회실로 쓰고 있었다.
사옥의 통로가 대부분 막혀 침입 병력이 찔끔찔끔 한 줄로 올라가는 형편이었다. 순차적으로 상층으로 올라가다간 각개격파 당할 확률이 높았다.
내가 지휘관이라면, 연회실에서 모여 재정비하고 다른 통로를 개척해 동시다발적으로 상층으로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그게 쟈파의 노림수였다.
키이이잉!
난 화광예도를 황급히 뽑았다. 라그나타는 내 행동에 의아해했다. 그녀가 명석한들 쟈파 상사의 사옥 구조를 모르기에 다음 일은 예상 못 할 것이다.
콰드득!
나는 화광예도를 절단기처럼 사용했다. 강제로 바닥에 칼날 박아 넣고 힘을 줘서 잘라냈다.
곧 사람 하나 지나갈 정도의 구멍이 생겼다. 잔열로 철골과 콘크리트 테두리가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휙!
난 더플백을 아래로 던지고선 나도 뛰어내렸다. 바로 아래는 탕비실로 쓰는 공간이었다.
탁!
착지한 나는 곧바로 더플백을 잡으며 몸을 옆으로 굴렸다.
‘한 층 더 내려갈까?’
어쩌면 내 모든 추측이 기우일 수도 있다. 아니, 의심하지 말자. 내 직관은 날 몇 번이나 살려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나는 쟈파에 대해 안다. 사옥의 구조도 잘 알고 있다. 막힌 통로들의 위치에서 ‘어떤 의도’를 느꼈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난 눈동자를 굴리다가 냉장고를 발견하고선 열어젖혔다. 안에는 쟈파 프랜차이즈의 음식이 가득했다.
콰득!
강제로 냉장고의 서랍을 부수며 빼냈다. 그리곤 라그나타가 담긴 더플백을 그 안에 집어넣곤 닫았다. 라그나타도 이젠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깨달은 듯했다.
그리고 나는…….
콰-아아아앙!
폭발이 일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규모의 폭발이다. 그도 그럴 것이 ‘층 하나’를 전부 날려버릴 정도의 위력일 테니까.
콰앙! 쾅!
폭발이 연달아 일었다.
사옥 중간층에 폭탄을 우르르 설치했을 거라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것이다. 설계와 계산에 실수가 있거나 부실 공사라도 있는 날에는 건물 전체가 무너진다.
끼잇!
난 바닥에 박힌 철제 탁자 하나를 뽑아서 내 위로 세웠다. 무너지는 잔해를 막아야 했다. 한 층을 날릴 정도면 위아래로 2, 3층까진 영향을 받을 것이다.
쩌어어억!
사옥 전체가 흔들리며 사방팔방 금이 가고 있었다. 삐걱거리고 흔들리고 부서진다.
쿠르르르릉!
후폭풍까지 사납게 몰아쳤다. 나도 귀가 먹먹했다. 작은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콰직! 쿠웅! 쿵!
내가 팔로 받치고 있는 탁자 위로 잔해가 끝없이 떨어졌다. 이윽고 나는 작은 돌무덤에 갇힌 형세가 되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폭발의 여운이 잦아들었고, 뿌연 콘크리트 가루는 연막처럼 자욱하게 떠올랐다. 숨을 쉴 때마다 기도가 긁히는 것 같았다.
끼릭, 끼릭.
나는 의수의 출력으로 높이며 잔해를 탁자와 함께 밀어냈다. 지진이라도 휩쓸고 간 듯이 엉망진창이었다.
2층이나 아래인 여기가 이 정도였다. 폭발이 일어난 층은 끔찍한 꼴일 것이다.
덜컹!
라그나타가 들어있는 냉장고를 열어젖혔다.
“타지룬은 비폭력적이고, 평화로운 해결책을 선호한다고?! 거참, 더럽게 평화적인 방법이네!”
내가 애꿎은 라그나타에게 따지고 들었다.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지. 네 격한 반응을 보아하니 쟈파가 설계한 함정인가 보군.”
난 더플백을 한쪽 어깨로 짊어지고선 잔해로 이뤄진 언덕 위로 올라갔다.
‘폭발로 건물이 무너지진 않았군. 사옥을 지을 때부터 계산해 둔 거야.’
잔해를 밟고 올라선 내가 원래 있던 층으로 올라가며 위를 보았다. 폭발이 일어난 층은 여기서 바로 위였다.
투둑, 툭.
천장의 외장은 폭삭 무너졌지만, 층계를 나누는 두꺼운 금속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층과 달리 층과 층 사이에 금속판을 삽입해 둔 것이었다. 그것도 이음새조차 없는 통판이었다.
끼이익, 끽.
금속판은 폭발로 부서지지 않고 찌그러지거나 부풀어 올랐을 뿐이다. 폭발 충격을 흡수하려고 주문한 특수강일 것이다. 보아하니 연회실은 천장과 바닥, 벽까지 금속판을 삽입해 뒀을 것이다.
‘단단히 닫아둔 금속 상자 안에서 폭탄을 터트린 꼴이로군.’
폭발의 위력도 배가 됐을 것이다. 이런 함정에서 살아남을 자는 몇 없을 터다. 과감하고도 또 과감했다.
새삼스레 쟈파를 다시 보게 됐다. 저번부터 느꼈지만, 그는 보신주의와 거리가 먼 타지룬이었다. 여차하면 위험을 짊어질 각오가 있었다.
우득, 우지끈.
난 잔해로 막힌 계단을 힘으로 돌파하고선 폭발이 일어난 층에 도착했다. 시뻘건 죽음의 폐허 위로 돌가루가 섞인 연기가 뿌옇게 떠다녔다.
“메노아가 대가문이라지만 손해가 상당하겠군. 부대 하나가 통으로 증발했으니까.”
라그나타가 감상을 말했다. 걸을 때마다 내 발끝에 누군가의 팔다리가 차였고, 발밑으론 쏟아진 내장이 질척하게 밟혔다.
갈기갈기 찢긴 신체 부위를 얼추 눈대중으로 합쳐보니 이 층에 있던 침입자는 팔십여 명 정도였다.
다른 방면의 인명 손실도 있을 테니, 침입자는 백 명 정도의 규모로 쟈파 상사의 사옥을 습격한 듯했다.
스륵.
난 한쪽 어깨에 걸쳤던 더플백을 내려놓고, 집어넣었던 화광예도를 재차 뽑았다. 주변의 열기를 흡수하듯 열광이 한쪽 날을 따라 예리하게 빛났다.
기이잉.
나는 인위적으로 쌓인 시체 더미를 보았다. 마치 폭발로부터 누군가를 지키는 듯한 형태의 고기 무덤이었다.
들썩, 들썩.
고기 무덤이 꿈틀거렸다. 윗부분의 탄화된 시체가 떨어지자, 그 아래로는 그나마 새빨간 시체가 드러났다. 한 꺼풀이 벗겨질수록 폭발의 충격을 덜 받은 시체가 드러났다.
“끄으윽…….”
신음할 정도로 목숨이 붙은 부상자가 고기 무덤에서 기어 나왔다. 나는 그쪽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처참한 시체, 덜 망가진 시체, 목숨이 붙은 중상자. 그리고 다음에 나올 것은 당연히 ‘생존자’다.
“마트료시카 같군.”
라그나타가 뒤에서 어려운 단어를 내뱉었다.
키잉.
무덤 가장 안쪽에서 누군가가 일어섰다. 그는 시체와 부상자를 어깨와 등에 두른 채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음영이 드리운 얼굴에선 새파란 안광이 빛나고 있었다.
아마도 저놈이 ‘메노아 가문의 루카우스’겠지. 비천한 노예 출신으로 메노아 가문의 중심까지 다가간 폭력의 인재.
“10초 정도 줄 테니까. 충분히 쉬고 덤벼. 부하들 원수는 갚아야지? 대장을 지키려고 앞다퉈 희생했잖아. 음, 음, 멋진 부하들이로군.”
내가 화광예도를 앞으로 뻗으며 말했다. 돌가루가 칼날에 닿을 때마다 타닥타닥 소리 내며 증발했다.
쟈파의 에퀘시안 용병이 지금 여기로 내려오고 있을 터다. 나는 그 전에 싸움을 끝낼 생각이다. 저놈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뺏길 생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