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88)
배드 본 블러드-188화(188/197)
188
아크바란 바깥에는 흥미로운 강자가 많다.
아크레시아 제국, 특히 아크바란은 사이버네틱 의체로 자신을 강화하는 이가 대다수다. 타국이나 타종족이 보기엔 극단적이라고 느낄 정도다.
그러나 제국을 벗어나면 의체는 강화 수단의 일부에 불과하다. 첨단 장비만으로 싸우는 자, 생명공학기술로 피와 살을 강화한 자, 희소하나 포스라는 초능력을 사용하는 자도 있다.
내가 강화 신경계와 의체를 가졌듯, 강자들은 대개 두 가지 이상의 수단을 통해 자신의 기량을 끌어 올린다.
누군가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왜 위정자와 권력자는 자신을 강화하지 않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 어떤 종류의 전투 강화라도 위험성과 부작용이 반드시 따라온다.
신경계 강화는 각종 신경증과 정신병 발병률이 비약적으로 올라간다. 재생이나 생체 강화는 몸에 시한폭탄을 심는 거나 마찬가지기에 어떤 부작용이 언제 나올지 예상조차 힘들다.
위험은 말단이 부담하면 된다. 국가와 집단의 머리가 되는 권력자와 통치자는 말 한마디와 손짓만으로도 나 같은 강화 군인이 수두룩한 군대를 움직인다.
본질적으로 나와 ‘저놈’은 같다. 윗사람을 대신해 온갖 위험을 몸으로 맞닥뜨리는 말단의 소모품이다.
‘저놈’은 ‘메노아 친위대장’을 말하는 거다.
키잉, 키이잉.
친위대장은 귀가 아플 정도의 굉음을 몸에서 내뿜고 있었다. 정확히 말해서는 강화 외골격 전투복에서 나는 소리다.
‘온몸을 첨단 장비로 도배했군.’
놈의 헬멧에는 렌즈가 여섯 개가 달려 있었다. 안면의 눈 위치에 둘, 두 측면에 하나씩, 정수리와 후두부에도 각각 한 개씩 있어서 360도 전체를 관측하는 구조였다. 여섯 개의 렌즈가 빙글빙글 움직이며 환경 정보를 습득하고 있었다.
‘놈은 잘 훈련된 부대의 대장이다. 보통내기가 아니겠지.’
친위대는 폭발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전투력이 높은 대장을 보호하기 위해 다수의 인원이 기꺼이 몸을 던졌다.
집단이 목표를 위해 하나의 생물처럼 움직이고 있다. 이건 우수한 군대의 특징이다.
치직, 칙, 칙.
내 화광예도에 부유물이 닿아 불티가 계속 튕겼고 열광이 거세지고 있었다.
폭발 직후인지라 층 내부는 후끈후끈하다. 금속판만 남은 바닥은 고기가 익을 정도로 뜨거웠다. 아까부터 내 신발의 밑창이 끈적하다 못해 녹아내리고 있었다.
화광예도는 열 증폭 특성을 가진 이그니움으로 만든 칼이다. 대기의 잔열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온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일정 온도에 이르자 이그니움과 엮인 냉매강이 화학 반응을 일으키며 방열을 시작했다.
방열의 아지랑이가 평소보다 눈에 띄게 아른거렸다.
‘실패작이지만 예술적인 설계이긴 하네.’
화광예도는 전자기계 없이 순수하게 금속으로만 제련한 칼이다. 심지어 인위적인 냉매 카트리지 교환과 충전도 없었다. 방열 관리가 필요한 무기가 다들 그러하듯, 화광예도도 일정 온도마다 기계장치가 냉매를 배출하는 형식으로 만들었다면 더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더 편한 방식을 놔두고, 소재의 특성을 정교하게 계산해 아날로그식 순환설계만으로 플라즈마 현상을 통제하려고 했군. 대단한 고집쟁이 장인들이야.’
비록 실패했지만 은하도공의 도전 정신만큼은 인정해 줄 만했다.
“화광…….”
친위대장이 날 힐끗 보더니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을 감싸고 죽은 부하를 하나씩 정리하고 있었다.
난 조급했지만, 친위대장의 조의를 방해하진 않았다.
사실 정말로 급한 건 친위대장이다. 휘하 부대는 전멸하다시피 했고, 곧 쟈파의 용병이 들이닥칠 것이다. 생존을 염두에 둔다면 저렇게 시간을 낭비할 틈이 없었다.
‘어차피 죽음을 각오한 거다. 임무는 실패했고, 살아서 여길 벗어나는 건 불가능해.’
친위대장은 주변의 부하를 수습하더니 찬찬히 고개를 들어서 날 응시했다. 헬멧의 새파란 안광이 차가운 꼬리를 끌고 있었다.
철컥.
친위대장은 부하의 소총까지 들어 올리더니 양손에 하나씩 쥐었다.
“……케르겟타.”
친위대장이 타지룬어로 뭐라 말했다. 대충 시작하겠다는 뜻이라는 건 알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으니까.
키- 잉!
나도 바로 자세를 낮추며 옆으로 움직였다.
친위대장의 총은 둘이다. 하나는 날 노리고 있었고, 다른 하나로는 내가 가는 방향을 막아서듯 예측 사격을 하고 있었다.
휘릭!
나는 화광예도를 역수로 잡으며 바닥 시체의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화광예도에 스친 내 코트가 지글지글 그을렸다.
난 시체를 들어서 총탄을 가뿐히 막아냈다. 튼튼한 전투복에다가 생체까지 덧대지니 이보다 좋은 방패가 없었다.
‘부하의 시체를 방패로 써도 별다른 동요가 없군. 뭐, 이 정도로 흥분할 놈이면 진작 고함을 지르고 난리가 났겠지.’
나는 들어 올린 시체의 겨드랑이 사이로 자동추적 권총의 총구를 내밀었다.
스륵.
방아쇠를 당기자 추격탄이 친위대장의 헬멧 렌즈를 향해 날아갔다.
팅!
친위대장이 왼팔의 총을 빙글 돌리더니 총신으로 추격탄을 쳐내듯 막았다. 전투복의 방탄 성능으로 충분히 막을 텐데, 다른 기능이 있는 특수탄일 가능성도 생각해서 총으로 막은 것일 터다.
‘역시 통하지 않네.’
추격탄은 일반 총탄보다 느리다. 이 정도 수준의 상대에게는 기습용이지 정면 승부에서 쓸 물건은 아니다.
끼릭.
나는 몸을 살짝 구부린 채로 시체를 내세워 전진했다.
퉁!
친위대장이 뒤로 크게 뛰면서 권총 크기의 일회용 유탄발사기를 꺼내서 쐈다.
‘일반 유탄이 아니다.’
나는 눈을 크게 뜨며 유탄을 응시했다. 포물선을 그리던 유탄이 허공에서 갈라지더니 여덟 개의 구슬로 나뉘었다.
작게 분할된 유탄 구슬 여덟 개가 다방면으로 곡선을 그리며 가속했다. 착탄지점은 내 이동 경로 전체였다. 일종의 범위 공격이었다.
‘이야, 곤란한 무기로군.’
유탄 자체를 피하는 건 가능하다. 출력을 빠르게 올려서 급가속하면 된다. 라피스의 의체라면 가능했다.
‘그러나 내 이동 경로가 확정되면, 그쪽으로 다른 화력을 투사하겠지. 내가 피하기 힘든 종류의 것으로.’
이건 일종의 수싸움이었다.
친위대장은 화광예도를 경계하며 원거리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내 무장이 원거리에 빈약하다는 것도 알아챈 모양이다.
‘상대의 의도와 강점을 파악하고 파훼하면서 내게 유리한 환경을 강요하는 것.’
수준이 높은 상대다. 서로에게 난제를 내면서 번갈아 푸는 느낌이다. 풀지 못하는 자가 죽거나 당한다.
상대의 예측과 다른 행동을 해야 한다. 그래야 내 차례가 돌아온다.
휙!
난 시체를 놓으며 뛰어올랐다. 달아오른 천장 금속판을 손끝으로 움켜잡고 발을 대며 몸을 거꾸로 지탱했다.
쿠우웅!
나뉜 유탄이 거꾸로 매달린 내 머리 아래에서 터졌다.
탓!
내가 천장을 세게 박차며 바닥으로 몸을 뻗었다.
바닥에 발끝이 닿을 무렵, 나는 무릎을 구부리며 탄력을 붙여 천장으로 바로 뛰었다. 이런 식으로 천장의 바닥을 번갈아 박차며 빠르게 속도를 높였다. 반발력을 이용한 가속은 나도 어지러울 정도로 빨랐다.
‘여기서 방향을 바꾼다.’
친위대장이 내 상하 기동에 적응하기 전에 나는 비스듬하게 뛰어서 기둥에 붙었다. 거기서 출력을 끌어 올린 손과 발로 몸을 거세게 밀어내며 친위대장의 측면으로 접근했다.
좋아, 완벽하다. 놈의 허를 찔렀다.
방금 내가 한 것은 실내의 사면을 이용한 고속기동이다. 고성능 고출력의 의체, 사용자의 우수한 반응성, 균형 감각이 전부 맞아떨어져야 할 수 있는 묘기였다.
노련한 친위대장조차 내 동선을 따라 총구를 움직이지 못했다. 자신의 예측에서 한참 벗어난 기동이기에 사고가 따라오지 못한 것이다.
예상에서 벗어난 상황을 인지하고 처리하려면 일시적인 공백이 발생한다. 나는 그 틈을 만들어냈다.
난 친위대장의 측면으로 날아가듯 접근하며 화광예도를 굳게 붙잡았다. 놈의 허리를 말끔하게 베어내는 장면이 머릿속으로 스쳐 갔다.
‘네 재주가 여기까지라면 넌 죽는 거다.’
그리고 난 실망하겠지. 다행히 친위대장도 더 숨겨둔 재주가 있었던 모양이다.
친위대장이 무릎을 살짝 숙이는가 싶더니 바닥을 박찼다. 천장까지 올라간 놈은 나처럼 가속을 탄력으로 붙이며 위아래로 기동해 내 뒤로 접근했다.
뒤를 빼앗기자 등골이 순간 오싹했다.
끼이이익!
난 오른발로 바닥을 긁듯 제동하며 빙글 돌았다. 화광예도도 내 원심성 움직임을 따라오며 궤적을 그려냈다.
휘릭!
화광예도가 허공을 갈랐다. 친위대장은 화광예도의 범위에서 벗어나며 탄창을 갈아 끼우고 있었다.
“하하, 방금 기동은 날 보고 따라 한 거냐?”
내가 화광예도를 고쳐 잡으며 말했다.
본다고 아무나 따라 할 수 있는 기동법이 아니다. 강화 외골격의 성능이 좋아 봐야 의체 수준의 반응성을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방금 친위대장은 고성능 의체처럼 경쾌하게 움직였다.
“흠, 반응 속도를 보아하니 신경계와 외골격을 직결했군.”
내가 자문자답하며 말했다. 그래도 의문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외골격으로 출력을 보조하고 신경계 직결로 반응성을 끌어 올렸다고 해도, 나처럼 움직이면 외골격 내부의 생체 다리가 박살 난다.’
고출력으로 바닥과 천장을 연달아 박차는 가속법은 충격량이 어마어마하다. 의체라면 버티지만, 전투복 크기 외골격의 충격 감쇄 수준은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
주르륵.
의문은 곧 해결됐다. 친위대장의 다리와 발에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박살 나도 외골격에 의존해서 움직이면 그만이라는 건가? 마음에 드는군.’
친위대장의 다리는 발가락부터 허벅지까지 뼈가 산산조각 났을 것이다. 외골격의 전원이 꺼지면 서지도 못하겠지.
피와 살로 의체의 기동법을 따라 한 대가였다.
“내가 화광예도를 들고 있는 이상에야 너는 계속 물러나면서 싸우겠지. 단시간에 끝나지 않을 거고, 곧 방해꾼이 와서 끼어들 거야.”
내가 화광예도를 빙글 돌려서 칼집에 넣었다. 그리고 칼집을 허리춤에서 떼어내 바닥에 내던졌다.
끼릭.
친위대장이 머리를 옆으로 숙이며 갸웃거렸다. 그러나 그도 내 의도를 알아먹곤 총화기를 내던졌다.
“……나는 너의 근접 전투 기량을 보고 싶다. 너도 실낱같은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 싶다면 내게 화답해야겠지.”
내가 단검을 뽑으며 역수 자세를 취했다.
치익.
친위대장이 헬멧을 붙잡았다. 유압 장치가 작동하면서 잠금이 열렸다.
놈도 감각을 극도로 끌어 올리기 위해 헬멧을 내던졌다. 인간 남성의 얼굴이 드러났다. 나이는 나보다 열네다섯 정도 많은 듯했다.
척!
친위대장도 나처럼 단검 한 자루를 꺼내서 쥐었다.
“후우.”
나는 짧게 숨을 골랐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짧고 굵은 싸움이 될 것이다.
전투 감각이 한 올 한 올 풀리듯 깨어났다. 내 머리카락조차 촉각을 곤두세우며 적을 향해 있는 듯하다.
스륵.
발가락으로 움직이며 거리를 좁혔다. 곧이다.
나는 유리한 상황을 내던지고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인다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내게 필요한 일이다.
난 내면의 공격성을 바깥으로 배출해야 한다. 이번 전투가 끝나고 살아남는다면 나도 당분간은 미친 짓을 덜할 것이다. 좀 더 이성적으로 사고하면서 불필요한 도박과 위험을 피하겠지, 아마도.
킷!
근접 전투의 시작이다. 난 발가락부터 무릎, 허리까지 구부리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팔과 어깨가 절도 있게 움직였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놈도 마찬가지였다. 정석에 의거한 멋진 동작이었다.
손바닥보다 조금 긴 단검이 서로의 급소를 노리며 매섭게 지나갔다.
탁!
우린 서로의 팔을 쳐내며 팔꿈치 각도를 봉쇄했다. 그때마다 반대편 손으로 단검을 바꿔 쥐며 재차 공격하고 방어했다.
콰직!
내가 친위대장의 발을 밟으려 했다. 놈이 발을 빼더니 오히려 내 발을 짓누르려 했다. 체술과 단검술이 뒤섞여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모든 감각을 끌어 써야 한다.
전투 사고와 전술 사고가 뇌리에 번뜩이고, 전투 반사와 직관이 사고 바깥에서도 섬세하게 위험을 감지한다. 평생토록 익힌 전투 기술은 몸에 밴 본능과도 같아서 예리하게 적을 향해 뻗어 나갔다.
숨이 차오른다. 생체 근육은 긴장과 수축을 반복하고, 의체는 부드럽게 포효했다. 무기라곤 단검 하나지만, 그렇기에 모든 기량을 바닥에서부터 박박 긁어야 했다.
끼이이익!
나와 놈의 단검이 부딪히면서 자석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그 찰나에 놈이 호흡을 고르는 게 느껴진다. 입술을 살짝 오므리려고 했다.
……끝났구나.
난 주먹을 쥐었다. 놈은 단검끼리 부딪치는 순간에 쉬려고 했다. 호흡을 고르며 다음 동작에 힘을 주려 했겠지.
콰- 직!
내 주먹이 친위대장의 명치에 적중했다. 깨진 전투복이 내 주먹에 밀리며 놈의 가슴과 복부를 파고드는 게 느껴졌다.
“컥!”
처음으로 친위대장이 신음하는 걸 들었다. 폐까지 짓눌려 강제로 공기가 목구멍으로 빠져나왔을 테니까 참기 힘들 것이다.
그래, 내가 이겼다.
꼬리뼈부터 전율이 일면서 내 정수리를 통과하는 듯했다. 쌓인 피로마저 사라지는 느낌이다.
콰직!
내가 놈의 손을 잡아끌며 주먹으로 팔꿈치로 깨부쉈다. 동시에 발바닥으로 녀석의 양 무릎을 번갈아 가격해 다리를 지탱하는 외골격까지 깨부쉈다.
털썩!
친위대장은 오른팔과 두 다리가 무너졌다. 남은 건 왼팔이지만, 놈을 완전히 제압했으니 굳이 부러뜨릴 것도 없다.
이제 남은 건 목이다. 불필요한 고통을 더 주기도 싫다.
“루카 씨! 잠, 잠시만요! 그만!”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막 도착한 쟈파가 소리를 질러댔다.
난 별다른 이유 없이 남에게 엿을 먹이려는 반골 기질이 있다. 보더시티에서 날 알게 된 자라면, 여기서 내가 친위대장을 죽일 거라 생각하겠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러니까, 난 오늘 꽤 만족했다. 라그나타와 싸우고, 메노아의 친위대장과도 겨뤘다.
스륵.
나는 뒷걸음치며 뻐근한 어깨를 주물렀다.
“조심해. 아직 송곳니가 살아있는 놈이니까.”
내가 순순히 물러나며 말하자, 오히려 쟈파가 당황했다.
“어, 어어? 방금 제 말을 들으신 겁니까? 호, 호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