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9)
배드 본 블러드-19화(19/197)
019
키누안은 종종 나를 하층 구역에 데려갔다. 그리고 아무런 정보도 없이 싸움으로 날 내몰았다.
싸움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다. 얼마나 더 최적화된 전투를 하는가가 중요했다. 내 역량을 평소에 잘 파악하는 건 기본이고, 적을 보자마자 발끝의 방향부터 시선의 움직임까지 읽어야 한다. 그다음에는 주변의 환경까지 파악해 내게 유리한 동선을 짜낸다.
그렇게 싸움을 빙자한 훈련이 한바탕 끝나고 나면, 키누안은 습관처럼 한곳을 들렀다.
끼이익.
나는 문을 열고 자그마한 기계 공방에 들어섰다. 작업대에 있던 여자가 나와 키누안을 보더니 고글을 위로 젖혔다.
“아, 어서 오세요.”
그녀는 기름때가 묻은 얼굴로 우리를 반겼다.
‘이 여자가 정비사일 줄이야.’
그녀는 얼마 전에 갱단의 사무실에서 내가 구해낸 여자다.
사정을 들어보니 수어 달 동안 행방불명이 된 채로 모진 꼴을 당한 것이었다. 다행히 정신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는지 심리 치료가 끝나자마자 일상 복귀를 할 수 있었다.
“길다, 커피 한 잔만 내주게, 블랙으로. 기름이 둥둥 뜰 정도로 넣어서.”
키누안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길다는 하던 일도 멈추고 일어섰다. 그녀는 싫은 기색 하나 없이 탕비실의 문을 열더니 내 쪽을 보았다.
“루카는요? 우유라도 마실래요?”
“……저도 커피를 마시겠습니다. 기름 없이요.”
여기서 우유를 마신다면 키누안이 놀릴 게 분명하다. 나는 좋아하지도 않는 커피를 언급했다.
스륵.
길다가 탕비실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키누안에게 따졌다.
“굳이 길다의 공방에서 커피를 마시고 갈 필요는 없지 않나요? 어차피 가브리엘에게 한 번씩 안부를 확인해 달라고 말해뒀잖아요.”
“길다는 자네가 구한 여자네. 꿋꿋하게 살아가는 저 모습을 보니 나름 뿌듯하지 않나?”
뿌듯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나는 키누안의 말속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고 싶었다.
“교관님은 길다와 아는 사이죠? 길다는 교관님이 누군지 몰라도, 교관님은 길다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키누안의 얼굴에 당혹감이 드러난 건 찰나였다. 그는 미소로 감정을 숨겼다.
“길다도 보육원 출신이야. 어릴 때부터 기계 공학 쪽에 재능이 있어서 내가 학업까지 후원한 적이 있어. 후원자가 나인 줄은 모를 테니까 비밀이네.”
키누안이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올리며 당부했다. 나는 키누안의 내면을 더 깊이 관찰하지 못했다. 외면의 흔들림이 아주 짧았으니까.
덜그럭.
길다가 커피잔 두 개가 놓인 쟁반을 들고 나왔다. 한쪽 커피에선 기름이 끓는 소리가 났다.
“좋은 커피로군.”
키누안이 기름 커피에 입술을 대며 말했다. 내가 저 커피를 마셨다간 위장에 구멍이 날 터다. 오장육부까지 사이버네틱 의체로 대체한 사람을 위한 커피였다.
나도 일반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솔직히 쓰다. 인상을 찌푸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좀처럼 다음 한 모금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스륵.
길다는 머뭇거리는 날 보더니 말없이 각설탕이 담긴 그릇을 배려하듯 내밀었다.
“으음, 생명의 은인들에게 대접할 게 딱히 없네요. 쿠키라도 사둘 걸 그랬나…….”
“쿠키 정도는 괜찮지. 루카가 좋아할 거야. 아직 어리니까 말이야.”
“역시 그렇죠? 다음엔 사둘게요.”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끼어들길 포기했다. 키누안은 내 표정을 힐끗 살피더니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길다는 나보다 일곱 살 정도 연장자였고 경력도 꽤 있는 정비사였다. 자신의 가게를 연 지 3년 차라고 했다.
길다가 납치를 당한 이유도 저번에 들었다. 그녀는 정말로 운이 나빴던 것뿐이었다. 친구 중 하나가 갱단의 돈을 들고 튀었는데 하필이면 길다의 가게에서 며칠 신세를 졌다. 그 때문에 길다조차 겸사겸사 갱단에게 납치를 당한 것이다.
‘물론, 그 친구는 이미 세상에 없고.’
어쨌든 우리의 구조가 없었다면 길다는 구제 불가능한 밑바닥까지 떨어졌을 것이다. 지금이야 멀쩡해 보이지만 그녀의 정신은 무너지기 직전까지 몰려 있었다. 지금도 그 후유증이 남아 있을 것이다. 밤마다 악몽을 꾼다든가, 뭐 그런 게 있겠지.
“장사는 어때? 쉬는 동안 단골이 많이 떨어져 나갔을 텐데?”
키누안이 커피를 반쯤 마시며 물었다. 길다는 천장에 주렁주렁 걸린 의족과 의수를 가리켰다.
“덕분에 지금은 돈이 안 되는 일도 다 받아서 하는 중이죠. 그래도 가브리엘을 정비하는 건 꽤 쏠쏠해요. 워낙 일관성 없이 개조를 해놔서 손댈 곳도 많고요.”
길다는 우리를 힐끗 보다가 입을 다물었다. 묻고 싶은 게 있지만 참은 것이다.
그녀는 우리의 소속이 근위대인지 모른다. 그리고 함부로 은인의 신상을 캐는 짓도 하지 않았다. 현명한 여자였다. 나는 강인하게 살아가는 길다에게 꽤 호감을 느꼈다.
길다와 키누안은 잡담을 나눴다. 나는 앉은 채로 이야기가 끝나길 기다렸다.
“음?”
문득, 인기척을 느낀 나는 현관을 응시했다. 문이 열리기 전부터 나는 누가 들어오는지 알 수 있었다.
‘가브리엘.’
가브리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나와 키누안을 보고 흠칫했다. 정확히 말하면 키누안을 보고 놀란 것이다.
가브리엘은 본능적으로 키누안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사람의 깊이가 가늠되지 않을 테니까. 그는 키누안이 마음만 먹으면 자신 같은 사람은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앨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뭐야, 길다. 언제부터 음료도 팔기 시작한 거야? 그럼 나는 맥주로 줘.”
가브리엘은 놀란 기색을 숨기며 허세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는 키누안과 멀리 떨어진 의자에 앉았다.
“주긴 줄 텐데, 계속된 혹사로 신경계 과부하 증상이 있어요. 약물과 술을 멀리해요.”
“그쪽이 내 의사야? 어차피 오래 살 생각은 없어.”
“정작 죽을 때가 돼서 살려달라고 징징거리지나 마요. 신경계가 망가지면 끔찍하게 고통받다가 죽어요. 자다가 깨꼬닥 하고 편하게 죽는 게 아니라고요.”
길다는 가브리엘 같은 사람을 많이 봤는지 냉소적으로 말했다.
가브리엘은 어깨만 으쓱하며 맥주를 들이켰다. 절반을 단번에 마신 그가 나를 응시했다.
“요즘 이 바닥을 들쑤시고 다닌다는 놈이 너지? 도대체 무슨 속셈이야? 소문이 자자하다고. 슬슬 보스들 입에서도 조치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더라. 그 정도 인물들이 나서면 나도 길다를 보호하진 못해.”
사실상 키누안에게 하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브리엘도 내가 키누안의 명령을 받는 입장이라는 건 알고 있다.
갱단의 보스들이 우리를 찾는다면 길다도 위험에 빠진다.
나는 키누안의 눈치를 살폈다. 나와 가브리엘도 아는 사실을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어차피 우린 당분간 여길 오지 못할 걸세.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그 말을 듣고 가장 놀란 사람은 길다였다. 나도 조금 놀라긴 했다. 키누안은 내게 저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당분간이라면 얼마나요?”
“몇 달일 수도 있고, 몇 년이 될 수도 있지. 우리가 하층 구역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자네들도 알고 있겠지? 더는 캐낼 생각 말게나.”
목숨이 아깝다면 말이지.
그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길다와 가브리엘은 충분히 알아먹었을 터다.
‘당분간 하층 구역에 오지 않는다는 말인가?’
나는 혼자서 하층 구역까지 외출하지 못한다. 상부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섭섭했다. 정이라는 게 든 모양이었다.
어쩌면 오늘이 이들을 보는 마지막 날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키누안도 평소보다 길다의 정비소에 오래 머물렀다.
가브리엘과 길다를 주축으로 시시껄렁한 담소가 오갔다. 나는 내 신상에 대해 말할 수 없기에 침묵하며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가브리엘과 길다.’
나는 가브리엘과 길다가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 점차 알게 됐다. 그들은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고 나름의 노력을 했다.
길다는 험한 꼴을 당하고도 현실을 직시하고 일을 바로 시작했다. 가브리엘은 자신이 몸담은 세계에서 얕보이지 않으려고 언제나 위험을 감수하며 살아간다. 그들에겐 그게 최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바꾸지 못했지.’
저들은 이곳을 벗어나지 못했다.
내게 재능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재능이 있다고 저들보다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다. 나는 길다와 가브리엘보다 수 배, 어쩌면 수십 배는 더 치열하게 살아왔다. 내 성취와 지위는 땀과 피를 흘렸기에 얻어낸 결과다.
‘밑바닥의 인간을 동정하지 마라, 루카. 그럴 가치가 없는 자들이다.’
나는 각설탕을 다섯 개 넣은 커피를 마시며 그리 뇌까렸다.
음, 이제야 좀 마실 만하다.
* * *
심리검사를 위한 준비는 끝났다.
숙소를 나가니 날씨가 흐리고 고요했다. 나는 근위대장의 집무실까지 걸어가며 내면 통제에 집중했다.
‘드러내는 건 패턴화한 나 자신.’
연기를 반복하면 그건 진짜가 된다.
정신을 가다듬은 나는 근위대장의 집무실을 찾아갔다. 그리고 키누안 교관의 수상한 언행에 대해 전부 털어놓았다.
근위대장이 침묵으로 내 보고를 되새김질했다. 그는 많은 생각이 담긴 숨을 살짝 내뱉더니 입술을 움직였다.
“……보고는 끝인가?”
“이상입니다.”
“키누안 교관은 늦은 나이에 생도 생활을 시작했네. 원래라면 근위대원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어. 하지만 당시의 제국은 불순물조차 필요하다면 끌어안아야 했지. 여러모로 혼란기였거든.”
키누안은 근위대에서 이질적이다. 나도 그걸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왜 이런 인물을 아직도 놔두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부에서 키누안의 사상과 행동을 모를 리가 없어.’
키누안은 숨길 생각도 하지 않는 듯했다. 그는 제국의 불순물이었다.
궁금증이 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참아냈다. 의문은 군인의 본분이 아니다.
내 침묵에 근위대장이 말을 이어갔다.
“키누안이라는 사내가 어떤 인물인지는 나조차도 정확히 모르네. 내가 햇병아리이던 시절부터 키누안은 근위대의 핵심으로 활동했지. 특히 비공식적인 임무를 주로 맡았던 것으로 추측되네.”
나는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아니, 이건 놀라는 게 당연하다. 근위대장조차 키누안에 대한 정보와 기록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근위대장은 키누안에 대해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 이상은 내가 알아도 좋을 게 없을 터다. 비밀을 안다는 건 위험하다. 비밀은 지켜야 하는 것이고, 가장 확실한 방법은 죽음이다.
“……어쨌거나 키누안이 자네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 건 사실이네. 몇 번이나 생도를 보낸 적이 있었지만 다들 오래 버티지 못했지.”
오래 버티지 못했다는 말이 내 뇌리에 맴돌았다.
그 말의 의미를 묻고 싶었다. 자질의 부족으로 아키에스 전투술을 배우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다른 변이라도 당한 걸까…….
내 추측일 뿐이지만, 키누안에게 접근했던 생도 중에선 죽은 자도 있을 것이다.
“루카, 궁금한 게 있다면 물어보게. 답변 가능한 선에서 말해주지.”
“저는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내 대답은 빨랐다. 망설임도 없었다.
나는 충실한 군인이다. 황제 폐하의 칼이며, 제국의 방패다. 불구덩이에 뛰어들라 명해도 나는 머뭇거리지 않을 것이다.
“자네는 우수하네. 그러나 아직 완벽하진 않지. 지금의 자네는 좋지 않은 영향을 받기 좋은 상황이네. 심리검사를 다시 할 필요가 있어. ”
예상했던 일이다. 나는 담담하게 심리검사를 받아들였다.
삐익.
근위대장이 홀로그램 인터페이스를 열어서 내 일정을 조율했다. 그는 자신의 권한으로 심리검사 일정을 오늘 오후로 잡았다. 내 망막 디스플레이에도 그가 전송한 일정이 떠올랐다.
예약을 마친 근위대장이 눈을 감으며 미간을 주물렀다. 키누안의 일이 아니더라도 골치 아픈 일을 여럿 맡은 듯했다. 그는 망설이듯 입을 달싹이다가 말을 꺼냈다.
“루카, 솔직하게 말하지. 이런 부류의 임무를 맡은 근위대 생도의 결말은 두 가지네. 입막음을 당하거나, 아니면 공을 인정받아 근위대의 중심으로 부상하거나. 나는 자네가 후자의 사람이 되길 원하네.”
나는 언제든 제거가 가능한 인물이다. 아무런 배경이 없는 외톨이니까. 이런 임무에 적격이지. 원망할 생각은 없다. 군인은 제국의 도구로 쓰이는 게 당연하니까.
“저는 제 역할을 다할 뿐입니다. 만약 이 일이 끝나고도 제게 변질이 없다면, 대장님께서 그만큼 저를 밀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이 정도 야욕은 드러내도 될 터다. 내 향상심과 성취욕은 상당히 높게 나오니까.
“만족할 만한 성과가 있다면, 내가 자네의 배경이 되어주지. 정확히 말해 자넬 양자로 삼겠네. 루카 쿠스토리아? 흠, 제법 어감이 나쁘지 않군.”
나는 모든 동작을 멈추곤 눈만 동그랗게 떴다. 내 예상을 뛰어넘은 보상이다. 칠칠맞지 못한 미소가 입가에 번질 뻔했다.
근위대장의 이름은 헤일라스 쿠스토리아.
그리고 쿠스토리아? 제국 최고의 명가 중 하나다! 빌어먹을! 기뻐서 욕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건 나와 근위대장 사이의 거래이며 오롯이 내 힘으로 얻어낸 기회다.
나는 들끓는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근위대장도 내 심장의 벅찬 고동을 분명히 듣고 있을 것이다.
“……방금 깨달았는데, 저도 제법 속물이었나 봅니다.”
근위대장은 고요한 미소를 지었다. 경례를 마친 나는 집무실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