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90)
배드 본 블러드-190화(190/197)
190
아키에스 빅티마는 사용과 학습이 까다로운 전투술이다.
일반인은 습득도 못 한다. 수술이든 약물이든 간에 어떤 방식으로든 뇌 신경계를 강화해야 접근이라도 가능하다.
어쨌든 아키에스 빅티마를 익힌 자들은 뇌 기능의 비정상적인 확장을 통해 관측과 통찰력을 극대화하고, 고속 사고 기반의 다각 추론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과거를 유추한다.
쉽게 말해, 일반인이 운이라 여기는 영역을 우린 예측하고 통제한다. 덕분에 실낱같은 확률의 가능성을 종종 현실로 끌어올 수 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굉장한 능력처럼 보인다. 남들이 왜 앞다퉈 익히지 않는지 궁금할 정도다. 그러나 세상만사에는 뭐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출중한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라면 권총 하나만으로 전투차량 한 대를 상대할 순 있지. 하지만 그 막대한 뇌 자원을 아키에스 빅티마가 아니라 사이버네틱 장비와 의체 사용에 투자한다면, 전투차량 한 대가 아니라 수십 대도 제압할 수 있다.’
단순히 전투력 측면에서 보면 아키에스 빅티마는 정규군에겐 비효율적인 전투술이다. 특수전에서나 그나마 쓸만하며, 실제로도 반군의 전투술로 주로 사용된다.
……그리고 몇몇 큰 단점이 있다. 특히 교체 불가능한 생체 부위인 ‘뇌’의 혹사가 따라오고, 지나친 직관의 확장 탓에 뇌의 활성도와 긴장이 상시 높아진다. 이건 불가역적인 증상이다.
“아키에스 빅티마는 대단하지만, 최강의 전투술은 아니지.”
라그나타가 운을 뗐다. 그녀는 신중한 태도로 날 바라봤다.
“최강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알고 있어.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거다.”
“너도 아키에스 빅티마의 숙련자지. 그런데 아키에스 빅티마의 약점을 묻는다는 건…… 흐음, 재미있군.”
라그나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넌 경험이 많아. 아키에스 빅티마가 아니라 다양한 부류의 적과 싸웠겠지. 너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실력을 가진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를 만났다고 전제하자고. 그러면 어떻게 파훼할 거지?”
“난 네게 패배했다. 그런 요령이 있었다면 이렇게 잡히지도 않았겠지.”
“그건 네 노쇠의 탓이지. 경험과 기술의 문제가 아니야. 전성기 시절의 너는 그 누구를 만나더라도 지지 않을 것처럼 굴었어. 실제로도 그만한 강함을 지니고 있었고.”
“고평가해 주니 고맙군.”
라그나타가 기세등등하기 전에, 내가 빠르게 쏘아붙였다.
“고평가 아니라 사실이다. 호의로 착각하지 마. 내 질문에 마땅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난 일어서도록 하지.”
나는 짜증을 내며 무릎을 손으로 짚었다. 내 엉덩이가 의자에서 살짝 떴다.
“……아키에스 빅티마는 혼돈에서 빛나며 변수 창출에도 능하지. 전투술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어. 이름 그대로지.”
난 떨어지려던 엉덩이를 의자에 붙였다.
“이름 그대로라고?”
“아크레시아는 지구의 옛 제국 흉내라도 내고 싶었는지, 많은 어휘를 라틴어에서 빌려왔다. 고상한 척하며 하층민에게 의미를 감추고 싶을 때 사용하곤 하지. 여러 신분과 귀족을 뜻하는 단어들도 거기서 나온 거고. 아키에스 빅티마도 마찬가지다. 오랜 시간에 깎여 쓰임새와 문법은 달라졌지만, 단어의 원의미와 맥락을 보면 의도는 유추할 수 있어.”
“아키에스의 뜻이 통찰이라는 건 알고 있다.”
“빅티마는?”
난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약자.”
아마 맞을 것이다. 아키에스 빅티마는 ‘힘을 가지지 못한 이’가 ‘힘을 가진 자’의 허를 찌르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영리한 학생이로군. 네 스승은 가르치는 재미가 쏠쏠했겠어. 빅티마는 제의에 사용되는 산 제물이나 희생자를 뜻하지. 강자의 손가락질 한 번에 하나뿐인 생명마저 농락당하는 처지, 타의에 의해 희생을 강요당하는 약자. 저항하지 못하는 자, 그게 빅티마다.”
나는 노엘 뮬리즈카의 삶을 떠올렸다. 그간 기억 한구석에서 그를 몰아낸 채로 잊고 있었다.
“아키에스 빅티마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이걸 익힌 약자들이 강자의 폭압과 억압에서도 꿋꿋하게 회심의 비수를 품길 바랐겠지. 약자에게도 한 번 정돈 기회가 오는 법이거든. 하지만 대부분은 그때가 다가와도 눈치조차 채지 못해. 그렇게 절호의 기회를 허무하게 놓치고 말지. 가능성이란 그리 친절하지 않거든. 잡아채지 못한 자에겐 얼굴조차 내밀지 않아.”
나도 이해했다.
아키에스 빅티마, 그 원리와 존재 자체가 약자에게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외치고 있었다. 네 인생을 바꾸든 증오와 분노를 표출하든, 그게 복수든 뭐든 간에. 사용자의 뜻을 이룰 기회가 있다면 놓치지 않게 도와준다.
강자는 익힐 이유가 없다. 가지지 못한 약자를 위한 기술이다.
수많은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가 미래를 갉아먹으며 약물을 머리에 꽂아댔었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려면 온갖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심지어 평생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기회를 기다릴 인내심마저 있어야 하지.
위험을 감수하며 인고했다고 치자, 그러나 ‘때’가 왔는데 본인이 알아채지 못한다면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아키에스 빅티마는 그런 자들을 위한 사고술이자 전투술이다.
“노예는 목줄과 사슬이 끊어지면 불안해하지만…… 인간은 날붙이를 쥔다. 날붙이가 없으면 주먹이라도 쥐겠지. 약자는 노예의 동의어가 아니니까. 하지만 대다수는 자신의 사슬이 끊어졌는지도 모르고 살아가. 눈치조차 채지 못하지. 억압이란 인지와 판단력마저 흐릿하게 만들고 나아가 정신의 구조와 사고방식마저 바꾸거든.”
고양감이 내 등골을 타고 흘렀다.
“그럼 아키에스 도미니는 무슨 뜻이지?”
“흐음, 그러니까, 나도 전문가는 아니라서 정확하진 않겠지만…… 도미니, 그러니까 변형을 따지면, 도미누스는 지배하는 위치의 주인을 말하는 거다. 아키에스 빅티마가 저항을 위한 통찰력이라면, 아키에스 도미니는 통제를 위한 통찰력이겠지.”
나는 복잡한 심경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삼켰다. 라그나타는 제국의 복잡한 감시체제는 모를 것이다.
“그렇군.”
난 짧게 말했다. 괜히 길게 말하면 감정을 읽힐 것 같았다.
“그리고 역사가 증명하듯 노예를 감시하는 건 주인이 아니지. 언제나 노예를 감시하는 건 좀 더 나은 대우를 받는 노예였어.”
가슴 한구석이 시큰했다.
“유익한 수업이었어, 라그나타 선생. 하지만 대답이 빙빙 도는 것 같군. 내 질문의 요지는 네가 생각하는 아키에스 빅티마의 약점이다.”
“노화는 정신과 마음조차 허약하게 만들거든. 불쌍한 노인의 말 상대나 했다고 생각해. 그래, 네 질문, 아키에스 빅티마의 공략법. 참으로 모호한 질문이로군. 정말로 내게서 답을 구할 수 있다 생각하고 찾아온 건가?”
“답이 아니라 네 생각을 묻는 거지. 너 따위가 답을 알 거라 생각하진 않아.”
내가 험하게 말했다. 라그나타는 눈을 감으며 키득키득 웃었다.
“아키에스 빅티마의 약점까진 몰라도 상대하는 법은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는 혼돈으로 자신을 감싸는 거지. 그 존재 자체가 혼돈은 아니야. 그 속은 생각보다 꽤 정상적일 수도 있지. 너처럼 말이야.”
나는 부정도 긍정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나가기 전에 입을 열었다.
“만약 그 혼돈을 벗기고 또 벗겼는데도…… 그 내부가 한치도 들여다볼 수 없는 혼돈일 수가 있나?”
라그나타는 처음에는 그저 웃기만 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가 웃음을 뚝 멈추곤 검지로 날 가리켰다.
“그런 존재가 있다면, 그건 혼돈에 잡아먹혀 주객전도가 된 괴물이겠지. 수단으로써 혼돈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혼돈 그 자체가 목적이 된 괴물. 그런 자에겐 ‘상식’이라는 내 해답이 먹히지 않을 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왔던 길을 되돌아왔다.
……헛걸음은 아니었다. 도움은 된 것 같다.
* * *
쟈파는 무척이나 바쁜 사람이었다. 사흘이나 옆에서 지켜보니 업무량은 살인적인 수준이었다. 잠도 거의 자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저도 평소에 이렇게까지 일하진 않습니다. 습격 이후로 업무가 쏠렸거든요.”
내 시선을 느낀 쟈파가 말했다.
“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 넘겨짚긴.”
난 건너편 소파에 앉은 채로 말했다. 물론, 쟈파는 넘겨짚은 게 아니라 내 생각을 정확히 읽은 거다.
쟈파는 타인의 감정과 의도를 잘 읽는다. 이건 타지룬의 특징이기도 했다.
“아니면 말고요.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 대답한 겁니다, 호요오. 잠시 차나 한잔하면서 쉬죠.”
“어차피 난 잘 쉬고 있어.”
내 경호 업무 대다수는 한량처럼 대기하는 거다. 세부적인 일정 조율은 에퀘시안들이 알아서 했다. 어차피 난 임시직이기에 누구도 내게 학습해야 하는 복잡한 업무를 맡기진 않았다.
달그락.
쟈파는 수수께끼의 티백을 꺼내더니 뜨거운 물에 담갔다. 티백 상자에는 뱀 어쩌고저쩌고, 이제 설명이 귀찮은 문구가 있었다. 짧게 추리자면, 뱀에서 유래한 성분으로 차를 만들었다고 한다. 저걸 차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쉭, 쉭.
쟈파가 혓바닥으로 찻물의 표면을 훑었다. 그는 적당한 온도를 기다리며 자리에 앉았다.
“메노아 가문에서 추가로 습격하진 않을 겁니다. 그쪽도 친위대를 잃어 피해가 크겠죠. 애초에 타지룬은 폭력적인 방법으로 뜻을 관철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필요하기에 무력을 갖추는 것뿐이죠.”
“거래와 협상은 결국 힘으로 관철하는 거다. 너흰 돈으로 무력을 사는 것뿐이지. 돈에 가치가 있는 건 그걸로 타인의 목덜미에 칼을 들이밀 수 있기 때문이야.”
“뭐, 훌륭한 지적입니다만…… 논점에서 좀 벗어났군요. 제 말의 뜻은 당분간 습격과 암살 시도가 없을 거라는 말입니다.”
“그럼 날 경호원으로 내세울 필요가 있나? 나도 재활이 끝나가고 있어. 키누안을 찾는 일을 본격적으로 해볼까 싶거든.”
“하지만 세상에 만약은 있고 절대는 없죠. 키누안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지만, 제가 죽으면 모든 게 끝입니다. 무엇보다 조만간 메노아 가문과 협상하는 자리가 있을 겁니다. 그때 당신이 곁에 있으면 든든하겠죠. 아키에스 빅티마의 능력은 여러모로 쓸모가 있으니까요.”
아키에스 빅티마 숙련자는 사람 관찰에 능하다. 당연히 협상에서도 유용한 능력이다.
“키누안도 협상에 도움을 준 적이 있나 보군.”
내가 빠르게 추궁하듯 캐물었다.
“호욧,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방금의 추궁처럼 아키에스 빅티마의 날카로운 면모가 협상 자리에서 도움이 되겠죠. 저도 메노아 가문 출신이지만…… 가족을 만나는 건 오랜만이라서요.”
“그나저나 가문과 평화 협상이 깨진 이유가 뭐지? 기한이 정해진 평화였다면, 네가 지금보다 더 준비를 단단히 했을 거고.”
쟈파는 습격이 언젠가 올 거라고 예상했지만, 정확한 날짜까지 알았던 건 아니다.
“조약 당사자인 메노아 가주, 즉 제 아버지가 죽었습니다. 생각보다 더 빨리요. 참고로 타지룬의 평균 수명은 그리 짧지 않습니다. 인간의 평균보다도 긴 편이죠.”
“타살일 가능성도 있다는 건가?”
“공식적으론 사고사라고 합니다만, 다른 타지룬 가문이 그렇듯이 메노아 가문도 폐쇄적인지라 정확한 사인은 측근과 직계 말곤 모를 겁니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정보를 나열할 필요는 없어. 네 감에 묻는 거야. 타살이라고 생각하나?”
쟈파가 적당히 식은 차를 입에 댔다. 그가 한 모금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옅은 입김을 내뿜었다.
“네, 타살입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과 함께 메노아 가문을 방문할 생각입니다. 제가 당신에게 바라는 게 무엇인지 아시겠죠?”
난 헛웃음을 흘렸다.
……탐정 루카가 이번에도 나가신다. 이 일까지 해결하면 앞에 ‘명’을 붙여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