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197)
배드 본 블러드-197화(197/197)
197
사실상 오즈머가 실각하자마자, 메노아의 타지룬들은 공백의 권력을 잡으려고 맹렬히 서로를 견제했다. 하룻밤 사이에 온갖 모략과 계약이 오갔다.
정작 그 누구도 쟈파를 경계하진 않았다. 쟈파는 외부인, 자신들의 허락이 없으면 복귀하지 못하는 추방자, 여차하면 간단히 밀어버릴 수 있는 존재라고 여겼다.
오히려 다들 외부인 쟈파의 영향력을 빌리려 굴었다. 첨예한 균형에서는 쟈파조차 큰 도움이 된다.
상속 전문 법률사무소가 도착하자마자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었다. 그들은 이틀 동안 메노아 모선에 머물며 탐문과 신문을 했다. 그 사이에 시신을 분해하다시피 한 부검도 끝났다.
“……타살이군요.”
법률사무소가 고용한 부검의가 말했다. 그는 장문의 서류로 부검 결과를 제출했다.
복잡한 내용이 많았으나 소견서에 정리된 요약은 간단했다.
‘신경독으로 인한 질식사, 증거인멸의 흔적이 있음.’
뱀이 독으로 죽었다. 잘만 하면 괜찮은 농담이 나올 것 같았다. 내 사회성이 조금만 부족해도 여기서 한마디 툭 던졌을 것이다.
난 머릿속 생각과 혓바닥에서 맴도는 말을 삼키며 상황을 보았다.
메노아의 타지룬들은 당장 오즈머에게 달려가 실토하라 강요했다. 정황상 오즈머가 가주를 죽이고 증거를 조작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나라도 저들 입장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거다.’
그러나 오즈머는 결백을 피력했다. 한술 더 떠서…….
-너희들 중에 누군가가 아버지를 죽인 거잖아! 내게 뒤집어씌우려고 한 놈이 너희들 중에 있다고! 말돈, 너, 너냐!
오즈머는 형제들을 지목하며 범인이 따로 있다고 연신 외쳤다.
‘오즈머가 자백하지 않겠지. 자신이 한 짓도 아닐뿐더러, 죄를 인정하면 추방당할 테니까.’
쟈파와 달리 오즈머는 황무지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에겐 ‘카토’가 없다.
상황은 교착이었다. 법률사무소에서 파견을 나온 변호사들이 떠들어대며 회의했다. 그들은 본사와도 연락했고, 벨라토 연방의 관료와도 종종 이야기하는 듯했다.
“메노아 씨는 자신을 죽인 자식에게 자산이 넘어가길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비밀리 저흴 고용한 거죠. 가문 내에서 범인을 색출하지 못하면…….”
변호사들이 경고했다. 메노아는 억지로라도 범인을 만들어내려 했으나 변호사들은 그런 얕은 수작에 당하지 않았다. 적어도 자식 중에 범인이 나와야 납득할 터다.
그러나 가문과 형제들을 위해 죄를 뒤집어쓰고 위증할 사람은 메노아 가문에 없었다.
‘이대로 범인을 찾지 못하면, 전 가주의 유산은 기부된다.’
쟈파의 십년지계는 훌륭했다. 메노아 가문의 특성을 이용해 불신을 심고, 자신은 자존심마저 꺾고선 낮게 엎드린 채 씨를 뿌렸다. 엎드린 쟈파가 씨를 뿌리고 있을 줄이라곤 아무도 몰랐으리라.
-정말 아버지가 기부한다고 하신 게 맞습니까?
가주 대행을 맡은 말돈이 대표해서 변호사들에게 물었다.
“벨라토 연방에서 공증한 서류입니다. 위조라고 생각하시면 연방 정부에 이의를 제기하면 됩니다.”
변호사들의 대응은 차분했다. 메노아 가문도 어느 정도 포기했는지 유산 기부를 각오하고선 변호사들과 상담했다.
“메노아 씨의 재산은 벨라토 연방의 비영리 단체로 흩어질 겁니다. 그중에서도, 흠, 연방에 등록되지 않은 법인과 사업체의 지분은…… 이참에 합법 사업체로 바꾸죠.”
-그게 가능합니까?
메노아 가문의 사업체는 연방법으로 따지면 불법이 대다수였다. 우회해서 등록한 몇몇 사업체가 있지만, 핵심적인 사업체는 불법이고 범죄조직이나 마찬가지였다.
“원래라면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예외적인 경우죠. 막대한 자금이 공익 목적으로 연방령에 흩어질 테니까요. 대충 눈감아 주리라 생각합니다. 이건 협상해 볼 여지가 있군요.”
메노아의 타지룬들이 술렁거렸다. 위기 속의 기회를 발견한 듯이 살짝 들뜬 분위기였다.
쟈파가 내 곁에 다가오더니 해설하듯 속삭였다.
“호욧, 기부를 통해 연방법상 불법인 사업체를 합법으로 바꿀 셈입니다. 참고로, 불법 영역의 사업체 자산을 기부받아 합법 자산으로 바꾸려면 수수료가 여간 많이 드는 게 아닙니다. 그걸로만 먹고사는 타지룬 가문이 있을 정도고요. 그리고 환전은 일회성 수익에 불과하지만, 합법 사업체의 지분을 소유하면 지속적인 수입이 됩니다.”
“그러니까, 연방 정부에게 눈감아 달라고 기부라는 이름의 뇌물을 주는 셈이로군.”
“그런 거죠. 연방 정부의 지출로 나갈 인프라를 사기업에서 대체해 주니까요.”
우리가 이야기하는 사이에 변호사들은 타지룬들을 설득하고 협상안을 내밀었다. 타지룬은 교활하고 영리한 종족이니 어떻게든 더 이득을 보려고 어휘와 단어를 미묘하게 비틀었다.
그러나 변호사 중에서도 타지룬이 둘이나 있었다. 타지룬의 수법은 또 다른 타지룬이 논파하며 협상을 이어갔다.
변호사들은 유산 기부와 사업체 합법화를 별도의 건으로 다뤘다. 기부 지분의 사업체를 합법화하려면 메노아 가문이 추가 비용을 상당히 지불해야 했다.
‘정말로 교묘하군.’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변호사들은 영리했다. 그들은 사업체 합법화 건으로 막대한 비용을 받아냈다. 여차하면 메노아 가문이 거절할 수도 있는 수준의 금액이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차피 기부될 유산이면 돈을 더 쓰더라도 사업체 합법화에 투자하는 게 이득이다.
그러니 눈앞의 손익 계산이 바쁜 메노아 가문은 수렁에 허리가 잠기고도 위기를 느끼지 못했다.
사흘에 걸친 협상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 기부 건은 확정이 아닙니다. 저희도 조사관을 보내 사건의 범인을 찾을 겁니다. 여기 조항을 보시면 저희가 범인을 찾아내면, 유산의 1할을 저희가 가져가게 됩니다. 사업체 합법화 수수료보다 훨씬 많을 돈을 가져가게 되죠. 그러니 저희도 최고의 인재를 보내 조사할 생각입니다.”
변호사들은 끝까지 기부가 아닌 다른 선택지가 있고, 자신들도 그쪽 방식을 원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쪽에서도 범인을 색출해 보겠습니다.
“혹시라도 연방 소속의 수사관이 필요하시면 저희가 대행으로 신청하겠습니다. 메노아 가문에서 직접 부르긴 힘들 테니까요.”
변호사와의 협상을 끝낸 타지룬들은 쟈파에게 접촉했다.
-쟈파, 그간의 일은 잊고 가문 복귀에 대해서도 이젠 신중히 생각을…….
메노아의 타지룬들은 ‘쟈파의 가문 복귀’를 확답하진 않고 가능성만 내비쳤다. 그들은 가문이 약해진 시점에서 쟈파가 돌아오는 걸 꺼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쟈파를 적으로 만들기도 싫겠지.’
쟈파는 모호한 경계에 서 있었다.
메노아 가문이 보기에 쟈파는 아군은 아니지만, 적도 아니었다. 내쳐야 하면서도 때때로 이득이 된다면 끌어안아야 한다. 다짜고짜 죽일 순 없지만, 멀쩡히 놔두기도 꺼림칙하다.
어디서 많이 본 상황이다. 난 저렇게 회색지대와 경계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존재를 본 적이 있다.
‘키누안의 방식.’
쟈파는 미묘한 균형에 발을 담그고 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정말로 키누안의 계획이 맞긴 하군.’
힘의 균형에 절묘하게 올라선다면, 절대적 강자가 아니라도 조율하고 지배하는 위치에 설 수 있다. 그게 키누안의 특기였다.
모든 일을 끝낸 우리는 메노아 모선을 떠나 보더시티로 복귀했다.
한 달 정도가 지나자, 메노아의 타지룬 중 일부가 쟈파 상사의 사옥을 찾아왔다. 사옥은 보수가 거의 끝나가고 있어서 새 건물 특유의 화학 물질과 접착제 냄새가 짙게 남아 있었다.
-쟈파아아아아아!
“쟈스피에케데라아!”
쟈파의 본명이 쩌렁쩌렁 퍼졌다. 그들은 쟈파의 집무실까지 쳐들어오다시피 했다.
방문한 메노아 타지룬과 쟈파 사이에서 거친 언쟁이 오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메노아 타지룬들의 일방적인 폭언이었다.
-우릴 속인 거냐! 쟈파! 아버지도 설마, 네가…….
이제야 모든 걸 깨달은 모양이다.
메노아 가문의 직계 타지룬, 벨라토 연방 정부, 법률사무소……. 쟈파는 배후가 아닌 척하며 은밀하게 사람을 조종했다.
전 가주의 자산과 지분은 합법적 자본과 사업체로 변했다. 그리고 기부 명목으로 비영리 단체로 자산이 흩어졌다.
‘메노아에선 기부로 모든 게 끝난 줄 알았겠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쟈파가 메노아 가문의 자본과 사업체를 잠식하고 있었겠지.’
쟈파는 기다렸다는 듯이 관련 없어 보이는 단체들을 쟈파 장학 재단으로 흡수하거나 산하 조직으로 영입했다. 이미 끈이 전부 있었다. 간혹 무리한 합병조차 벨라토 연방 정부에서 기꺼이 허가했기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쟈파는 오래전부터 연방 정부와 협력해 ‘메노아 가문’을 먹어치울 계획을 짰다.’
연방 정부도 메노아 가문 같은 회색 집단보다 쟈파 같은 부류를 더 선호했다.
메노아 가문은 쟈파에게 먹혔다. 메노아의 타지룬들은 먹히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사방팔방이 다 어두워지고 탈출구도 사라지고 나서야 현실을 깨달았다.
“아, 그리고 쟈파 장학 재단의 이사회에 리산다를 영입했습니다. 지분을 얼마로 나눠야 리산다가 원탁회의 참석이 가능한지 계산 좀 해보겠습니다, 호욧, 호욧. 거참, 연봉도 꽤 올려야겠군요.”
쟈파는 타지룬어를 쓰지도 않고 유창하게 떠들어댔다.
메노아의 타지룬들이 입을 일제히 다물었다. 그들도 깨달은 것이다.
메노아 가문의 의결권자를 쟈파가 지정할 수 있다. 심지어 말단의 경우에는 쟈파의 지원 여부에 따라 원탁회의에서 밀려날 수도 있었다.
톡, 톡.
쟈파가 양손의 긴 손톱을 마주치며 소리 냈다. 에퀘시안 용병들이 타지룬들을 쫓아내듯 다가왔다.
-이대로 끝나진 않을 거다, 쟈파.
현 가주인 말돈이 으름장을 날리며 물러났다.
……그리고 한 달 뒤에 말돈이 죽었고, 메노아 가문의 가주가 바뀌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가주가 누구인지 더는 중요치 않았다.
“일 처리가 쉬웠던 건 메노아 가문이 시대에 뒤처진 탓입니다. 타지룬들도 벨라토 연방과 협력하지 않고선 버티기 힘든 시대가 오고 있죠. 다른 가문들은 벨라토 연병과 긴밀하게 협력해 타지룬 자치구를 얻어냈고, 거기서 타지룬만의 세력과 정치 집단을 꾸리고 있습니다. 만약 메노아 가문이 자치구에서 영향력이 있는 집단이었다면, 제가 이렇게 삼키기 힘들었겠죠.”
쟈파가 소감을 말했다.
“그리고 키누안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림도 없었겠지. 키누안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방식이었어. 그보다 내게 사전에 사정을 얘기했다면 불필요한 희생이 더 줄었을 거다.”
소파에 앉은 내가 턱을 괴며 말했다.
“당신이 키누안의 사고 수준까지 도달한 사람인지 확인할 절호의 기회였으니까요. 고용주로서 이 정도의 시험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호욧, 호욧.”
나는 눈을 옅게 떴다. 표정을 관리하지 않으면 한쪽 입술이 솟구쳐서 사납게 내 뺨을 찌를 것 같았다.
“그래서 만족스러웠나?”
“중간부턴 전부 눈치채신 것 같더군요. 무척이나 안심했습니다. 호요요요오, 그렇게 째려보면 무섭답니다.”
난 화를 낼지 말지 고민했다.
두어 달 전이었으면, 당장 쟈파의 멱살을 잡아챘을 것이다.
지금은 참을 만했다. 쟈파가 여자라서 참는 건 아니고, 내 정신이 안정됐기 때문이다. 고요한 상태를 의식적으로 유지하기 쉬웠다.
딸각.
쟈파가 탁자를 두드렸다. 홀로그램이 방안에 떠올랐다. 지도와 신상정보가 주르륵 나왔다.
“……그러니 이제부터 전적으로 당신에게 모든 걸 믿고 맡기겠습니다. 이건 발렉의 현 위치입니다. 사냥을 시작합시다, 루카 씨.”
쟈파는 영리하게 미끼를 던져 내 감정의 방향성을 바꿨다. 난 히쭉 웃으며 일어섰다.
‘발렉.’
자칭 키누안의 제자라는 놈이다. 아마 자칭은 아니고 정말로 키누안의 가르침을 받긴 했을 터다. 어쨌든 놈도 나처럼 쌍검으로 된 화광 시리즈를 다루고 있다.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한가요?”
난 잠시 생각하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더플백 하나,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크기로. 아, 그리고 입마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