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2)
배드 본 블러드-2화(2/197)
002
끼릭, 끼릭.
투박한 생김새의 안드로이드가 내 망가진 의족을 탈착해서 정비했다. 뒤틀린 부품을 몇 개 갈아치우자, 정비 화면에서 고장을 뜻하는 붉은색이 초록색으로 변했다.
-신경계를 연결하겠습니다, 루카 님.
“알았어.”
내 대답과 함께 안드로이드가 생체와 기계의 연결부를 체결했다.
철컥.
통증이 아릿했다. 주삿바늘 수십 개가 동시에 허벅다리를 파고드는 것 같았다.
-이상이 있으시면…….
“없어, 가봐.”
나는 망가졌던 다리를 접었다가 펼치며 말했다. 일어선 안드로이드는 뻣뻣하게 걸어 나갔다.
방은 고요하다. 나는 눈을 감고 명상했다. 감각을 느슨할 정도로 둔감하게 떨어뜨려 혹사당한 신경계가 쉴 수 있게 했다. 전부 근위대 훈련소에서 배운 것이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았다. 내 입장에서는 이것마저도 특권처럼 느껴졌다.
‘보육원에선 나만의 시간이 없었지. 열댓 명이 방 하나를 썼으니까.’
보육원 시절이 머나먼 일처럼 느껴졌다.
근위대에선 생도도 개인실을 사용한다. 상당히 호사스러운 대우였다. 거기다가 근위대 출신은 엘리트 장교나 마찬가지인지라 앞길도 탄탄대로였다.
‘출셋길이 보장된 셈이지.’
근위대는 황제의 직속부대다. 아크레시아 제국의 신민이라면 누구나 탐내는 영광스러운 자리다. 기회가 온 이상에야 놓쳐선 안 된다.
나는 동기들보다도 더 간절했다. 귀족 출신인 그들과 달리 하층 출신의 나는 근위대 생도 말곤 다른 길이 없었다.
생각에 잠겼던 나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눈을 떴다. 문 바깥의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똑, 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마저 정갈했다. 숨 한 번 내쉴 시간이 지난 뒤에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일레이 카르티카다. 루카,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일레이 카르티카, 난 녀석을 잘 알고 있다. 사형수와 싸우던 총잡이 생도가 바로 일레이다.
녀석이 여기에 온 까닭을 알 것 같기도 했다. 나도 사실은 훈련 내내 녀석을 의식하고 있었다.
“……들어와.”
나는 정좌한 채로 일레이를 맞이했다. 문이 열리면서 일레이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일레이 카르티카.’
명문가의 소년이다. 차분한 금발과 새파란 눈동자가 귀족적인 인상이었다. 굳이 이름과 출신을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를 귀족 소년으로 여길 것이다. 밋밋한 회색 생도복조차 멋들어지게 어울렸다.
“앉아도 될까?”
일레이가 창가에 놓인 의자를 보며 말했다. 해가 저문 지 오래라 창밖은 어둡고 쿰쿰했다.
“손님을 세워둘 생각은 없어. 앉아.”
“오늘 사형수와 싸우던 네 실력을 잘 봤어. 상당하더군.”
일레이가 턱을 살짝 들며 말했다. 그의 동공은 이미 사이버네틱 의안으로 교체했기에 테두리가 종종 희미하게 빛났다.
“서로 치켜세우는 말을 하면서, 친교를 다지고 싶다면 잘못 찾아왔어, 도련님.”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공격적으로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신경계가 피로한 탓인지 짜증을 참기 힘들었다. 지금 나는 며칠 동안 잠을 못 잔 거나 마찬가지였다. 상당히 예민한 상태다.
뭐, 이건 핑계이긴 하다. 내 날카로운 태도에는 근본적인 원인이 따로 있다. 나도 잘 알고 있다.
원인은 내 질투심이다. 보육원…… 그것도 두 자리 숫자 출신인 나로서는 동년배인데도 귀족 소년이 달갑지 않았다. 팔다리만 의체인 나와 달리 일레이는 사이버네틱 장기와 의체를 여기저기 쑤셔 박은 몸이었다.
일레이는 어깨만 으쓱하더니 품 안에서 알약을 꺼냈다.
“이걸 먹으면 신경계 민감도가 일시적으로 떨어져. 휴식 효율이 올라갈 거야.”
일레이가 먼저 알약을 입에 넣곤 삼켰다. 그는 내 상태를 다 알고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필요 없어.”
“그 정도 피로면 내일 훈련에도 지장이 있을걸. 정신력만으로 어떻게 되는 게 아니라는 건, 너도 잘 알 텐데? 넌 우수하잖아.”
나는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일레이의 말이 맞다. 나도 내 상태를 잘 알고 있다. 지금의 나는 비효율적인 감정에 휘둘리고 있었다.
스륵.
나는 손을 뻗어서 알약을 받았다. 감각 차단제의 일종이었다.
꿀꺽.
먹자마자 효과가 빠르게 나타났다. 역시 뒷골목에서 파는 조잡한 복제품과는 달랐다. 감각이 둔감해지는데도 불쾌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잠들기 직전의 포근함처럼 마음이 편안했다.
참기 힘든 짜증이 억제할 만한 수준까지 가라앉았다. 이제는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네 솜씨도 제법이었어, 일레이. 난 널 따라 한 것뿐이야.”
일레이는 총알로 총알을 맞히는 실력자다. 바로 앞에서 그걸 보지 못했다면 나도 칼날로 총알을 튕겨낸다는 발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배우지도 않은 걸 즉석에서 해낸 게 더 대단한 거지. 난 보다시피 전투용 의안을 가지고 있어서 탄도 계산이 어렵지 않지만, 넌 감각만으로 해냈잖아.”
일레이가 자신의 안구를 손톱으로 두드렸다. 그의 말은 가식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진심으로 날 칭찬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내가 소인배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몇 없으리라, 나도 마찬가지고.
나는 애써 무표정을 유지했다.
“……그래서 날 찾아온 용건은?”
“네가 보육원 출신의 이레귤러라고 들었어. 그쪽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층 구역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거든.”
자칫하면 기분 나쁠 수도 있는 말이었다. 잘나신 도련님께서 밑바닥 생활이 궁금하다고 하신다. 그러나 그 말투는 조심스럽고 공손했다. 무엇보다 순수한 호기심이 느껴졌다.
“별건 없어. 길거리는 지저분하고, 사람들은 억세다 못해 포악해. 고장 난 팔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 부랑자들은 약에 취한 채로 뒷골목에 쓰러져 있고.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굶주린 아이들은 밤이면 보육원 바깥으로 나가 쓰레기장을…….”
“잠깐만, 보육원은 인원만큼 물자를 보급받잖아.”
나는 일레이의 지적에 헛웃음을 흘렸다.
“……그게 고스란히 우리까지 내려올 것 같아?”
“보육원은 제국의 인재를 길러내는 곳이야. 그런 횡령을 용납해선 안 돼…… 라고 말하면 너무 세상 물정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건가?”
일레이가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굳이 부정하진 않았다.
“횡령이든 뭐든 나와는 이제 상관없어. 난 근위대가 될 거니까.”
내 이성이 어느덧 부정적 감정을 밀어냈다. 생각해 보면 귀족가의 도련님을 질투할 이유도 없다.
지금은 나와 일레이가 대등하다. 장차 등을 맞대고 싸워야 할 사이이기도 했다. 동료와 나쁜 관계를 유지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다.
“물어볼 게 있다면 물어봐. 아는 게 있으면 대답해 줄 테니까.”
내 말투에는 여유가 묻어 나왔다. 일레이가 옅게 웃더니 턱을 괴었다.
“그럼 제국 바깥에 나가본 적은 있어?”
나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녀석이 질문은 미묘했다. 그 의도를 읽기 힘들었다.
“난 수도 아크바란에서 나고 자랐어.”
내가 차분히 대답했다. 일레이는 여전히 웃는 낯을 유지하며 일어섰다.
“나도 그래.”
그 말을 끝으로 일레이는 내 방에서 나갔다.
* * *
근위대장은 종종 생도의 훈련과 교육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체로 위험하거나 중요한 훈련일 때였다.
오늘은 위험하기도 하고 중요한 훈련이기도 했다.
철컥.
팔목에서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내 팔다리는 구속구에 갇혔다. 손가락과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게 전부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나와 같은 꼴의 생도들이 보였다.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 표정도 별반 다르진 않을 터다.
‘통증 내성 훈련.’
여러 커리큘럼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훈련으로 악명이 높았다. 사실상 고문을 버티는 훈련이다.
나는 유리창 너머의 사람들을 바라봤다. 은퇴한 근위대원으로 이뤄진 교관들이 냉담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들 뒤에는 과학자와 기술자가 오갔다.
그리고 팔짱을 낀 근위대장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는 내게 잠시 주목하더니 다른 생도에게 시선을 옮겼다.
파직.
내 머리와 팔다리에 붙은 전극에서 전류가 튀었다. 나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어차피 만들어진 가짜 신호다. 진짜가 아니야.’
그리 읊조려 보지만, 내 뇌가 느끼는 감각은 진짜나 다름없었다.
푹!
천장의 스피커에서 살을 꿰뚫는 소리가 퍼졌다. 실제로 누가 나를 찌른 건 아니다.
‘복부 관통상이로군.’
나는 내 배를 바라봤다. 복부의 근육이 경련하고 있었다. 누가 손을 대지도 않았는데 내 피부가 벌겋게 멍들고 있었다.
탕!
현실적인 총성은 뇌를 교란했다. 어깻죽지가 총상을 입은 듯이 시큰거렸다.
스- 겅!
자상은 팔을 자르고 지나갔다. 현실과 신호의 괴리로 뇌가 혼란스러워했다. 장난 같지만 진짜다. 정말로, 더럽게, 아프다.
“뇌에 속지 말고, 뇌를 속여라.”
근위대장이 나직이 말했다. 그 말에 귀를 기울이는 생도는 없었다. 다들 인상을 찌푸리며 연달아 이어지는 통증을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생리현상을 이기지 못하고 실례한 이도 여럿이었다.
‘뇌에 속지 말고, 뇌를 속여라.’
나는 간신히 그 말을 되뇌었다.
화르르륵!
이번에는 화상이다. 방이 뜨거워지고 불길이 몰아치는 소리가 났다. 손발이 벌벌 떨리고, 몸의 구멍이란 구멍은 전부 열리는 느낌이었다.
훈련이고 뭐고 죽을 것 같다. 나도 몸을 비틀어 구속구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리 멋있는 모습은 아니다.
“살, 살려줘! 제, 제발, 아, 아아아아악!”
다행히 이건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내 옆의 생도가 울부짖고 있었다. 나는 아직 오줌도 지리지 않았고 목구멍에서 나오는 신음도 들어줄 만했다. 이 정도면 잘 버티는 축이지.
“너희가 왜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지 상기해라.”
근위대장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내가 고통을 겪는 이유. 힘든 훈련을 받는 까닭. 출세? 물론 그것도 있다. 하지만…….
“제국과 황제 폐하를 위하여!”
누군가 악에 받친 고함을 내질렀다.
‘그래…….’
나도 잘 알고 있다. 인류의 수호자, 건국의 아버지, 제국의 황제…….
“황제 폐하를 위하여…….”
내 옆의 생도가 중얼거렸다. 나도 입술을 달싹였다. 저 말이라도 읊조리면 고통이 좀 가실까?
‘하지만…….’
하지만, 뭐?
우우우웅.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호흡이 가빠진다. 숨을 쉬기 힘들었다.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커지는가 싶더니 귀까지 잠겨 먹먹하다.
익사.
단순히 거짓 신호인데 왜 이리 진짜처럼 느껴지는 건지, 참 대단하다. 빌어먹을 과학자 새끼들. 그 똑똑한 머리로 이따위 장치나 만들었군.
‘뇌에 속지 말고…….’
내 입안에는 피만 그득하다. 입술과 볼살을 어지간히도 씹어댄 모양이다.
‘……뇌를 속여라.’
염병, 그게 무슨 말이냐고!
나는 입을 벌리며 고함을 내지르려 했다. 그러나 폐에는 공기가 없었다. 폐가 쪼그라든 느낌이었다.
숨을 쉬어라. 현실이 아니야. 가짜다. 현실이 아니라고.
내 머리통을 깨부숴서 내용물을 반죽 쳐대듯 때리고 싶었다. 이 멍청한 회백질은 진짜와 가짜도 구분 못 했다. 아주 등신 새끼가 따로 없다.
도대체 이 망할 고문은 언제 끝나는 거지? 이딴 게 훈련이라고? 장난해?
기이이잉!
전기신호의 출력이 내려가는 소리가 났다. 내 몸을 휘어 감던 고통도 가라앉고 있었다.
“후욱, 후욱.”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고개를 들긴커녕 눈을 뜰 힘도 없었다. 신호가 사라져도 신경계와 뇌를 찢어발긴 통증의 후유증이 남아 있었다.
저벅, 저벅.
발걸음이 내 앞에서 멈췄다. 나는 눈을 희미하게 떴다.
“루카, 견딜 만했나?”
근위대장의 목소리다. 내 앞에 그가 서 있었다. 욕이라도 한 바가지 내뱉고 싶었지만, 마지막 인내심을 발휘해 참았다.
“그, 그래 봐야 가짜니까요…….”
“그래, 가짜지.”
근위대장이 내 얼굴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무슨, 개…….
근위대장이 차갑게 웃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과 손톱이 내 오른쪽 눈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라네.”
근위대장의 말이 끝나자, 내 세상의 절반이 사라졌다.
푸욱!
근위대장이 내 오른쪽 안구를 뽑았다. 내 눈은 인공 안구 따위가 아니다. 시신경이 연결된 진짜 눈이다.
뿌득!
근위대장이 내 안구를 검지와 엄지로 짓눌러서 터트렸다.
두려움, 당혹감, 그리고 의문. 감정의 색깔이 내 안에서 빠르게 변했다.
통증은 사소하다. 그저 육체의 상실감이 공허할 뿐이다. 참을 만한 통증이야. 통증 내성 훈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내 머릿속이 서늘하게 식어갔다.
젠장, 훈련이 효과가 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눈을 잃고도 이성을 잃지 않았다. 어차피 훗날 적출할 안구다. 내 몸은 나중에 전신의체로 바뀔 테니까.
“……이왕이면 탄도 예측기가 달린 걸로 갈아주시죠.”
내 말을 들은 근위대장이 눈을 크게 뜨며 웃었다. 내 대답에 만족한 모양이다.
스륵.
텅 빈 오른쪽 안와 밑으로 피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나는 고개를 들어 반쪽짜리 시야로 주변을 둘러봤다.
나는 근위대장이 내 앞에 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 말고는 전부 기절한 상태였다.
하, 염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