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21)
배드 본 블러드-21화(21/197)
021
제국은 정보 통제에 들어갔다.
반란은 단순한 소요로 축소되었고, 진압은 특수군사작전으로 시작됐다.
제국에 반기를 든 가문은 셋이다. 라모네스 가문을 제외한 나머지는 내 알 바가 아니었다. 연고도 없었다. 반역의 동기도 궁금치 않았다.
중요한 건 라모네스 가문이 숙청 대상이라는 점이다. 그 일가는 물론이고 고용인조차도…….
‘릴리안 라모네스.’
그녀도 제거 대상이었다.
일레이가 그토록 초조해한 까닭이기도 했다. 녀석은 카르티카 가문 소속이기에 라모네스 가문의 반역 소식을 먼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교류가 있는 가문과 여자를 우리가 숙청해야 한다.
어쨌거나 나는 전장에 나서야 하기에 정밀검사와 정비를 받고 있었다.
끼릭, 끼릭.
정비 안드로이드가 네 개의 팔을 움직였다. 공구가 내 팔다리를 헤집고 다녔다. 점검표가 홀로그램으로 떠올랐고, 교체한 부품의 정보가 스크롤 형식으로 지나갔다.
내 의체의 육각형 파라미터에선 내구성에 관한 수치가 차근차근 올라갔다.
전장은 일반적인 환경보다 가혹하다. 그렇기에 내구성에 중점을 두고 의체를 조율했다.
-루카 님, 시범 기동을 하시겠습니까?
기본적인 조율을 마친 안드로이드가 말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통통 뛰었다.
목욕을 끝낸 뒤의 외출처럼 기분이 상쾌했다. 묵은 때를 벗겨낸 듯이 신체가 매끄럽게 움직였다.
끼끽.
나는 주먹을 뻗으면서 손가락을 펼쳤다가 접었다. 고속으로 움직인 손가락은 잔상을 남겼다. 평소라면 만족했을 속도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니었다. 나는 얼마 전부터 의체가 의식을 따라오지 못하는 느낌을 받았다. 의식과 행동 사이에 지연이 있었다.
나는 정비 안드로이드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의체의 신호 피드백 속도를 높이고 대역폭도 늘려.”
뇌와 의체 사이의 신호를 가속하면 반응 속도가 빨라지고, 대역폭을 늘리면 더 세밀한 출력 조절과 정교한 움직임이 가능하다.
내 지시에 안드로이드가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안드로이드의 안구가 붉은빛으로 세 번 깜빡였다.
-경고, 이 이상은 안전 규정치를 넘어섭니다. 직접 신호의 감쇠를 위해 보조연산 장치 부착을 추천합니다.
보조연산 장치는 날카롭고 인위적인 사이버네틱 신호를 좀 더 자연스러운 생체 신호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뇌의 부담을 덜어주기에, 레기온 같은 초고성능 전갑의체에선 필수적인 장비였다.
하지만 보조연산 장치에의 의존이 커질수록 감각이 둔탁해진다는 단점도 있다. 나아가서 의체가 타인의 것처럼 느껴지는 이물감도 생긴다.
“추가 파츠는 필요 없어.”
나는 정비 의자에 누우며 말했다. 안드로이드가 내 팔다리에 케이블을 연결하더니 시스템 조율을 시작했다.
-지정하신 설정을 완료했습니다. 하지만 실전에 나가시기 전에 안전성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불합격 시 안전치 이내로 설정이 복구됩니다.
인상이 절로 구겨졌다. 나는 융통성이 없는 저 안드로이드의 안면을 박살 내는 상상을 하며 한숨을 쉬었다.
“시행해.”
-사이버네틱 신호의 부하 단계를 올리겠습니다.
내 눈앞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신호의 부하를 나타낸 원형 계기판이 보였다. 계기판 왼쪽 아래에 가라앉아있던 바늘이 들썩거리면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계기판에는 7할의 초록색과 3할의 빨간색이 있었다. 초록색 지점 끝이 내가 설정한 신호 한계치였다. 그리고 빨간색은 과부하 상태다. 안전성 시험은 빨간색 지점에서 1분 이상 버텨야 한다.
계기판의 바늘이 기울더니 열두 시 방향까지 치솟았다. 부자연스럽게 증폭한 더미 신호가 불쾌하게 내 머리를 뒤흔들었다. 가만히 있는데도 세상이 빙빙 도는 것 같았다.
‘난 할 수 있어.’
이건 오만한 자신감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이다.
나는 아키에스 전투술의 적합자다. 그 말은 즉, 뇌의 정보처리 능력이 남들보다 우수하다는 뜻이다. 규정을 웃도는 수치도 버틸 수 있었다.
뿌득.
내 머릿속에서 혈관이 열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한 점으로 압축하듯 집중력을 끌어 올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사이버네틱 신호가 내 신경계를 할퀴며 뇌까지 질주했다.
끼릭!
계기판의 바늘이 녹색 지점을 통과했다. 이어서 내 중추신경계 지도가 계기판 옆에 떠올랐다. 과부하 상태로 들어간 부위부터 붉게 빛나며 깜빡거렸다.
신경계 폭주에 들어가자마자 내 동공이 사방팔방으로 멋대로 움직였다. 내 시야도 같이 빙글빙글 돌았다.
우드득!
내 손아귀에 잡혀있던 팔걸이가 단번에 으스러졌다. 악다문 입에서는 어금니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이빨 가루가 내 혓바닥 위를 꺼끌꺼끌하게 돌아다녔다.
툭!
눈 주변의 혈관이 터졌다. 코에서도 피가 주르륵 흘렀다.
-신경계에 영구적 손상이 생길 가능성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중지하시겠습니까?
고작 십여 초 남았는데 안드로이드는 저딴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나는 눈의 초점을 간신히 바로잡으며 안드로이드를 노려봤다.
“내, 내가 장담하건대, 멋, 멋대로 시험을 끝낸다면 내 손으로 널 개박살 낼 거야.”
협박이 먹힐 리가 없다. 하지만 이런 말이라도 내뱉어야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곧 전장에 나간다. 거기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내게 남은 잠재력이 있다면 여기서 모조리 끌어올려야 했다.
치이이익!
오른쪽 끝에 도달한 바늘이 빠르게 왼쪽으로 가라앉았다. 내 머릿속을 찢어발기던 증폭 신호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나는 안정성 시험을 통과했다. 내게도 안드로이드에게도 다행인 일이다.
“이제 됐냐? 이 개자식아.”
나는 안드로이드의 안면을 손바닥으로 밀며 일어섰다. 안드로이드는 휘청거리다가 금방 균형을 잡았다.
-훌륭하십니다, 루카 님. 하지만 농담이라도 폭력적인 언행은 삼가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제국의 자산입니다.
안드로이드가 덤덤하게 말했다.
“난 농담한 게 아니야.”
안드로이드가 잠깐 침묵했다. 안광이 통신하듯 반짝였다. 놈은 방금 내 말을 상부에 전송했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감점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런 사소한 점수 놀음 따윈…… 내 알 바 아니다.
* * *
제국근위대는 범용성이 우수한 정예군인이다. 근위대원은 제국군의 어떤 편제에 끼워 넣더라도 유연하게 적응한다. 생도에 불과한 나조차 일개 보병부터 야전 지휘까지, 모든 역할을 가능하도록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훈련일 뿐이다. 난 대규모 전장에서 소대를 실제로 지휘해 본 적이 없다.
근위대 상부에선 이번 반란조차 훈련의 기회로 삼았다. 생도들을 대거 투입해 소대장 역할을 맡겼다. 우린 난생처음으로 하급 군인을 지휘하며 싸울 것이다.
“내 이름은 루카, 현 시간부로 진압군 제21소대장을 맡았다.”
나는 정렬한 소대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제국은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진압군을 새로이 편제했다. 내가 맡은 부대는 제21소대였다.
지금쯤이면 다른 생도들도 자신의 소대원과 마주했을 터다. 일레이도 마찬가지겠지. 나는 반란 소식 이후로 일레이와 둘이서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경례!”
부관이 절도있는 동작으로 소대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나는 경례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식이 몸에 밴 소대였다. 훈련 상태도 좋아 보였다. 뭐,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하다.
반란의 불씨는 진압이 늦으면 늦을수록 크게 번진다. 제국도 실전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위주로 진압군을 편제했을 터다.
특히나 생도 출신 소대장은 아무리 엘리트 훈련을 받았더라도 전장에선 신출내기다. 상부에서 신경 써서 노련한 부관을 배치했다.
나는 소대원의 신상 정보에 대해 전부 알고 있었다. 내 밑으로 들어온 부관은 산전수전 다 겪은 자였다. 그의 전투 장비에는 실전의 흔적이 사납게 새겨져 있었다.
‘부관 코드락 상사.’
이번 임무 내내 내 손과 발이 될 사람이었다.
제21소대의 편제에는 소대장인 내가 있고, 부관이자 부소대장인 코드락 상사가 있다. 그 밑으론 1분대장 비안 하사, 2분대장 졸란 병장이 있고, 각각 분대원은 11명과 12명이었다.
나를 포함해 소대원은 총 27명이다.
스륵.
소대원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그들을 보듯, 그들도 나를 관찰하고 있다. 불순하게 느껴질 정도로 따가운 눈빛이었다.
저들에게 나는 그리 반가운 존재가 아니다. 자신들이 훈련의 도구로 쓰인다는 걸 알고 있다. 그것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장에서.
제국의 군인이 아무리 계급과 상명하복에 익숙할지라도…… 능력이 입증되지 않은 신입 상관에게 다짜고짜 충성할 정도로 못난이는 아니다.
이건 생도에게도 하나의 시험이다. 저들이 하급 군인일지라도 경험만큼은 나보다 앞선 자들이다. 저들을 내 역량으로 휘어잡고 지휘할 수 있어야 한다.
“소대장님, 곧 저희 차례입니다.”
코드락 상사가 내 곁에 다가오며 속삭였다.
나는 열차역을 응시했다. 진압군은 자기부상 열차를 타고 반란지역까지 이동할 예정이었다. 차례차례 탑승하는 군인들이 보였다.
곧 우리 21소대 차례가 왔다. 코드락은 능숙하게 소대원을 이끌고 열차에 탑승했다. 나도 일단은 침묵하며 상황을 지켜봤다.
끼릭.
열차는 한 칸에 소대가 하나씩이었다. 내부는 휴식부터 간이 정비까지 가능한 설비가 갖춰져 있었다.
드륵, 드륵.
소대원들은 익숙한 듯이 짐을 정리하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여깁니다, 소대장님.”
코드락은 내 자리를 상석에 마련했다. 그는 나 같은 어린 상관을 잘 모셨다. 정확히 말하면 잘 다루는 자였다. 내 기분이 상하지 않게 적당히 대우하며 소대를 뜻대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푸쉬이이.
증기가 빠져나오면서 열차의 문이 단단히 잠겼다. 낮은 진동음과 함께 열차가 지면에서 떠올랐다.
삑.
전광판에 숫자가 떠올랐다. 두 시간 후면 열차는 반란군이 있는 지역에 도착한다.
나는 자리에 앉은 채로 소대원들을 응시했다. 의례적인 인사 이후에는 나를 무시하듯 자기들끼리 떠들어대고 있었다. 딱히 내가 기분 나빠할 일은 아니다. 저들에게 나는 스쳐 가는 사람이다.
자, 이제 어떻게 할까?
내게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 번째 방법은 코드락 상사에게 일임하는 것이다. 내가 두리뭉실하게 명령을 내리면 알아서 코드락이 처리할 것이다. 이게 일반적인 선택일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저들에게 반감을 일으킨 후에 내 힘으로 찍어누르는 것이다.
사실, 이미 나는 선택한 지 오래다. 첫 번째 방법? 내 성격상 못 해 먹는다. 남은 건 두 번째 방법이다.
“나는…….”
내가 입을 떼자 소대원의 잡담도 멎었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너희들보다 우수하다. 그러니 너흰 내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하며 불복종은 엄벌로 다스리겠다.”
동요가 맴돌았다. 소대원들은 침묵하며 코드락을 쳐다봤다.
“루카 소대장님, 잠시 이야기…….”
코드락이 내 팔을 잡으며 옆 칸으로 이동하려 했다. 내 돌발 행동을 막으려는 속셈이었다.
휘릭!
나는 내 팔을 잡은 코드락을 그대로 내던졌다.
쿠웅!
코드락은 공중에서 빙글 돌더니 소대원들 사이로 날아갔다. 소대원들의 눈동자가 가늘다 못해 사나워지고 있었다.
좋아, 이게 바로 내가 좋아하는 적대적 환경이다. 나는 초면부터 친절한 사람이 싫다. 내 인생에서 초면부터 친절했던 사람은 대게 두 부류였다. 나를 우습게 봤거나, 이용할 생각이거나.
“나는 너희와 똑같은 하층 구역 출신이다. 두 자리 숫자 보육원에서 자랐지. 그런데 나이도 더 어린 나와 너희의 지위가 이토록 차이 나는 게 무엇 때문이지? 바보가 아니라면 다 알겠지. 내가 너희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소대원들을 노려봤다. 그리고 차가운 침묵을 뚫고 말을 이어갔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곧 알게 될 거다. 난 너희가 만난 그 누구보다 우수한 소대장일 테니까. 코드락 상사, 언제까지 누워있을 건가? 앞으로 내 몸에 멋대로 손을 대지 말도록.”
코드락은 전투복을 툭툭 털며 일어섰다. 그는 화조차 내지 않고 사람 좋게 웃었다. 내가 쉬운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는 걸 코드락도 알 터다.
“제가 무례를 범했습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루카 소대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