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23)
배드 본 블러드-23화(23/197)
023
나는 목까지 죄는 전투복의 구속을 느꼈다. 가슴 보호구는 탁한 은빛과 검은색이 뒤섞여 있었다. 흉부를 보호하는 부위는 살짝 더 두꺼웠다.
‘중요한 건 머리와 가슴.’
나는 헬멧과 가슴 보호구를 번갈아 만졌다.
여기만 날아가지 않으면 제국의 군인은 죽지 않는다. 숨을 쉬면서 뇌에 혈액만 공급하고 있다면 제국이 어떻게든 사이버네틱 기술로 살려낸다.
그렇기에 제국 소속의 군인은 가난한 하급병조차 오랫동안 복무할수록 전신의체에 가까워진다. 하급병으로 시작해 격전지를 전전하다가 고위 장교까지 출세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었다.
달그락.
나는 총과 칼을 점검했다. 문제없이 깨끗했다. 총은 찌꺼기 없이 반들거렸고, 칼날의 울음은 맑다 못해 귀가 시릴 정도였다.
“이동한다, 코드락.”
나는 시간을 확인하고선 자리에서 일어섰다. 휴식하던 소대원이 나를 따라 움직였다.
저벅, 저벅.
막사를 나가자 군영은 이동하는 군인들로 북적거렸다.
선두에선 검은색 전갑의체를 착용한 기갑여단이 보였다. 근위대 같은 특수부대를 제외하곤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이들이다.
끼릭.
우리는 중장갑 강습차량에 탑승했다. 정원은 50인승이지만, 보병 소대 둘은 넉넉하고, 구겨 넣으면 셋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드륵, 드륵.
강습차량의 무한궤도 바퀴가 거칠게 회전하고 있었다.
위잉.
차량의 내부 디스플레이가 작동했다. 차량 전체를 두르듯 설치된 여덟 개의 카메라를 통해 외부가 360도로 보였다.
분위기는 먹먹했다. 우리와 같이 탑승한 소대도 그다지 말이 없었다.
“루카 소대장님.”
내 옆에 앉은 코드락이 말을 걸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할 말이 있으면 하도록.”
난 짧게 대답했다. 코드락은 한숨을 작게 쉬더니 입을 움직였다.
“소대장님이 우수하다는 건 누구보다 제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꼼꼼하게 상관의 이력을 확인하니까요.”
코드락은 내게 유화적으로 말했다. 이자도 보통 성격은 아니었다. 내가 공격적으로 굴었는데도 침착하게 호의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나도 코드락에게 험한 말을 하기 힘들었다. 웃는 낯짝에 침을 뱉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실전에 들어가면 제 조언을 귀담아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전 제국군에서 십 년을 복무했습니다. 소대장님만큼은 아니라도 제가 그리 무능하진 않을 겁니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필요하다면 누구의 말이라도 듣겠다.”
내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코드락도 그제야 안심했는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끼릭, 끼릭.
강습차량이 전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아케인 요새의 포탑 사정거리 바깥에서 우린 대기할 것이다.
‘기갑여단이 포탑을 제거하면…… 우린 요새로 돌입한다.’
작전의 개요는 그러했다. 요새를 포위하듯 둘러싸 섬멸전을 벌인다. 쥐새끼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가 엿보였다.
끽!
강습차량이 정지했다. 우리의 차량만이 아니라 수십여 대가 넘는 강습차량이 일제히 정렬했다. 그리고 정지한 차량 사이로 기갑여단의 부대원이 걸어 나왔다.
기갑여단은 날렵한 전갑의체를 이끌고 아케인 요새를 향해 돌격했다. 그들의 전갑의체 모델은 양산기 미르미돈이다. 새카만 도색의 미르미돈은 2세대와 3세대가 뒤섞여 있었다. 멀리서 보면 검은 병정개미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것 같았다.
백여 기의 미르미돈이 포탑의 유효사거리 안으로 진입했다.
우린 침조차 삼키지 못하고 디스플레이 너머의 전황을 응시했다.
세월의 풍파로 반쯤 무너진 아케인 요새는 포스 방어막으로 부족한 방호력을 메우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포스 방어막 일부가 허물어지듯 열리고 있었다.
‘포격이 시작된다.’
포탑의 정확한 위치는 불투명한 포스 방어막 때문에 가시적으로 확인이 힘들었다.
위이이잉!
포스 방어막 내부에선 광입자가 압축되듯 모여들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윽고 아케인 요새에서 발사된 에너지 광선이 지상을 찢어발기듯 일직선으로 길게 지나갔다.
쿠우우우웅!
강습차량까지 진동이 일 정도였다.
기잉, 기잉.
푸른 연기가 대지 위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미르미돈들은 좌우로 흩어지며 광선을 피했다. 그들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요새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위잉!
다른 방향에서도 에너지 광선이 사출됐다.
전갑의체가 거구라지만 어디까지나 인간형이다. 차량이나 함선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표적이다. 기동성도 좋고 움직임이 불규칙한지라 포탑 따위로 맞추기 힘들었다.
미르미돈은 산개한 채로 에너지 광선을 피해냈다. 일부는 광선의 범위에 휩쓸렸지만, 고작해야 네다섯 기 정도의 손실이었다.
마침내 미르미돈 중 일부가 돔 형태의 포스 방어막과 충돌했다. 그들은 일제히 등에 달려있던 창을 뽑아 휘둘렀다.
미르미돈의 창끝에는 홀리스톤이란 특수한 광물을 가공한 날붙이가 달려있었다. 홀리스톤과 포스 에너지가 중화반응을 일으키며 방어막이 일시적으로 찢어졌다. 이번 작전을 위한 특별 사양의 무기였다.
찢어진 틈새는 좁았고 복구도 금방이었다. 그러나 미르미돈이 요새 내부로 침입하기엔 충분한 공간과 시간이었다.
“돌입했다…….”
침묵하던 소대원들이 웅성거렸다. 이번 전투에선 미르미돈의 활약이 가장 중요했다. 미르미돈이 실패한다면 전황이 크게 힘들어진다.
포스 방어막 내부의 상황은 우리가 알 수 없었다. 포탑을 제거한 미르미돈이 나와서 보고하길 기다려야 한다.
1분여가 지났다. 전략 컴퓨터의 판단에 따르면 포탑을 제거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우린 초 단위로 집중하고 있었다. 미르미돈이 포탑을 처리하지 못해도 진압군은 전진할 것이다. 그땐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고 사망자도 속출하겠지.
시한이 끝나가고 있었다. 소대원들의 얼굴도 딱딱하게 경직됐다. 긴장을 통제하지 못해 손발을 떠는 이도 있었다.
-치직.
통신기에서 노이즈가 흘러나왔다. 우린 화면을 응시했다. 미르미돈 한 기가 포스 방어막을 내부에서 찢으며 밖으로 나왔다.
-포탑을 무력화했다. 다음 단계로 이행 바람.
안도의 한숨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씰룩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전장은 끔찍한 곳이다. 목숨을 잃는 건 비극이다. 그래,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이 끔찍한 비극에서 즐거움과 성취감을 찾는 부류의 인간이다. 그렇지 못했다면 진즉 미쳐버렸을 테니까.
자, 드디어 내 능력을 검증할 차례다.
* * *
아케인 요새는 기본에 충실한 구조였다.
포스 방어막과 금속 재질의 2중 성벽이 내부를 보호하는 형태였다. 다만, 지금의 성벽은 반파된 상태라 방어 기능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기이잉!
우리가 탑승한 강습차량도 미르미돈의 도움을 받아 포스 방어막을 중화하며 성벽 앞까지 도달했다. 해치가 열리자마자 우린 성벽을 넘어가며 내부로 진입했다.
성벽 내부에선 포탑을 무력화한 미르미돈들이 지상을 진압하고 있었다.
‘우린 지하 내부를 소탕한다.’
나를 비롯한 보병의 임무였다.
반군이 개수한 시설이 요새 지하에 형성되어 있었다. 지하 시설의 출입구는 전갑의체의 진입을 막기 위해 비좁았다. 미르미돈의 활약은 여기까지였다.
삑.
나는 망막에 떠오른 전술지도를 확인했다. 지휘부가 우리에게 전달한 진입 루트가 보였다. 모든 보병 소대는 여러 출입구에서 동시에 진입한다. 우린 반군이 도망갈 곳조차 남기지 않을 것이다.
“내부 진입하면 대인 화력만 사용한다. 허가 없는 화력 투사는 용납하지 않는다.”
나는 지하 출입구가 열리는 걸 보며 말했다.
제국은 과거에 이곳을 전수조사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만들어둔 지하 지도가 있었으나, 현재는 반군이 내부를 개수했기에 정확히 맞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과거의 지도를 일방적으로 믿었다간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
아케인 요새 지하는 미로 같은 구조였다. 지도 없이 들어갔다간 미궁을 헤매는 기분이 들 터다. 밝혀진 깊이만 해도 백여 미터가 넘었다.
출입구는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폭이었다. 우린 정찰 드론을 내부로 보내 안전을 확인하고선 진입했다.
계단으로 내려갈수록 통로가 조금씩 넓어졌다. 그래 봐야 사람 두셋이 겨우 걸을 정도였고, 천장도 낮아서 등과 허리를 살짝 숙여야 헬멧이 천장에 닿지 않았다.
진입만으로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 반란군이 뭘 준비하는지 몰라도 시간을 벌기 좋은 구조의 통로다.
“루카, 우린 이쪽으로 간다.”
같은 출입구로 들어온 생도 소대장이 갈림길에서 말했다. 나도 그의 무운을 빌며 반대 방향으로 이동했다.
“여기서부터 내가 선두에 선다.”
내 말에 부관 코드락이 움찔했다.
“……이런 곳에서 선두는 위험합니다, 소대장님.”
이 앞에는 함정과 매복이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럴 땐 높은 확률로 선두의 첨병이 죽는다.
“내가 죽으면 문책을 당할까 걱정되나?”
부관은 애송이 소대장의 보호자이기도 하다. 나도 잘 알고 있다.
“솔직히 그렇습니다.”
코드락은 가식 없이 말했다. 나도 솔직히 말하자면…… 코드락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내 제멋대로 언행에 잘 따라오고 있다. 여러 방면으로 노련한 부관이다.
“음, 그렇긴 하지. 내가 이레귤러 출신이라지만, 명색이 근위대 생도니까 말이야.”
내가 고려하는 척하며 느슨하게 말했다. 코드락의 눈빛에서 안도가 스쳤다.
“이해해 주시면…….”
나는 코드락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하지만 말이야, 코드락. 나는 내가 죽은 다음의 일은 신경 쓰지 않아. 자네와 소대원이 강등이나 감봉을 당하든 말든 말이지.”
나는 사납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선두에 선 소대원의 어깨를 잡고 뒤로 내쳤다.
“다시 말하지. 내가 선두에 선다. 뒤통수나 보면서 따라와라, 머저리들아.”
나는 소대원의 총부리가 내 뒷덜미를 향할 것 같은 서늘함을 느꼈다. 지금 머릿속으로 짜릿한 상관 살해를 꿈꾸는 이도 있겠지.
그러나 그들은 상상을 현실로 옮기진 않을 것이다. 어찌 됐건 그들도 제국의 충실한 군인이니까, 내가 그러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