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25)
배드 본 블러드-25화(25/197)
025
원칙적으론 이래선 안 된다.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다. 모순이 날 찢어발기는 느낌이다. 차라리 나 자신이 두 명이었으면 좋겠다.
하나는 제국의 충실한 군인인 나, 다른 하나는 일레이를 돕고자 하는 나.
그 두 가지 면모 또한 전부 나 자신이다. 그러나 그 두 역할에 모순이 생겼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했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며 생각했다. 어쨌거나 일레이를 따라가야 한다. 이게 내 결론이었다.
‘내가 가면 일레이를 반역자로 만들지 않고 살릴 수 있다.’
내 작전은 간단했다. 릴리안 라모네스를 마주치자마자 내가 죽일 것이다. 일레이가 보고 있어도 상관이 없다!
‘일레이가 날 미워하더라도 녀석의 목숨을 건질 수 있겠지.’
그리고 시간이 지나 감정이 식고 나면 일레이도 이해할 것이다. 릴리안을 죽인 정도로 평생 척을 지진 않을 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코드락, 다른 소대가 올 때까지 여기서 포로를 수습하도록. 합류 이후 판단은 네게 맡기겠다.”
내 명령에 코드락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말을 덧붙였다.
“소대장님은 뛰어난 군인입니다. 오늘의 전투를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비범하기 짝이 없는 일을 당연하다는 듯이 해내시더군요. 감탄을 넘어서 경악할 정도였습니다.”
나는 웃지 못했다. 저 칭찬에는 가시가 있었다. 무슨 말인지 나도 알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계속해라.”
“하지만 지휘관으론 결함입니다.”
나는 눈을 감았다가 게슴츠레 떴다.
“내가 소대장이 아니었다면 피해가 이보다 더 컸을 거다. 공적도 충분히 올린 것 같은데, 뭐가 그렇게 불만인 거지?”
코드락은 한숨을 쉬었다.
“소대장님은 지휘한 적이 없으니까요. 오로지 자신의 기량만으로 전부 돌파하시더군요. 언젠가는…….”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코드락의 말을 가로채며 웃었다
“내 방식이 독단적이었던 까닭은 너희의 힘이 부족한 탓이다. 내 기량에 따라올 자가 아무도 없었으니까. 너흰 내 지휘와 전투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오지도 못할 거야. 늑대가 하룻강아지를 데리고 싸운들, 혼자 싸우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도움이 되지 않는 놈들이 자신을 써먹지 않았다고 칭얼거리는 꼴을 보니…… 참으로 어이가 없군.”
코드락의 동공이 서서히 탁하게 변했다. 분노와 굴욕으로 눈동자의 빛이 검게 얼룩졌다.
“소대장님도 자신보다 약한 자의 도움이 필요한 날이 올 겁니다. 언제나 강자일 순 없죠.”
“그럼 그때 와서 날 비웃어라, 코드락. ‘거봐, 내 말이 맞지 않았어?’하고 말이지.”
“기억해 두겠습니다, 루카 소대장님. 그럼 명령을 이행하러 가보겠습니다.”
코드락이 돌아서려 했다. 나도 일레이가 사라진 방향을 힐끗 보다가 코드락을 불러 세웠다.
“코드락, 하지만 내 첫 부관의 조언을 기억해 두겠네. 훗날 내 방식이 틀렸다고 생각되면…… 오늘의 조언을 기억하며 다른 방식으로 사고해 보도록 하지.”
코드락이 움찔하더니 눈을 크게 떴다. 그는 한쪽 입술을 씰룩이며 웃었다.
“오만함과 유연함이 공존할 수 있다는 걸 방금 처음 깨달았습니다. 그럼 무운을 빌겠습니다.”
나는 머리를 까딱이곤 뒤돌아섰다.
* * *
난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닭살 돋는 말이지만 일레이는 내 친구다. 단순히 동기 이상의 관계다. 내가 대등한 입장으로 또래와 깊게 교류한 건 일레이가 처음이다.
‘일레이, 넌 개인적인 목적으로 제국의 군인을 소모하고 있어.’
나는 일레이의 흔적을 따라가고 있었다. 군데군데 모퉁이마다 일레이 소대원의 시신이 보였다. 속도를 중시하다 보니 피해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원래라면 죽지 않아도 되는 자들이다.’
다른 소대라면 희생을 감수하며 반군을 추적하지 않을 것이다.
진압군은 요새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적당히 몰아세우기만 해도 우리의 역할은 다하는 셈이었다.
‘설사 릴리안을 확보한다고 치자, 어떻게 탈출시킬 거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당장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릴리안은 결국 죽어야 한다.
‘좋아했던 여자라 미련을 가지는 건 이해해. 하지만 같이 죽을 필요는 없잖아.’
내가 보기에 일레이의 행동은 자살이나 마찬가지다. 녀석은 명백하게 폭주하고 있다.
“나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
소대를 이탈해 일레이를 쫓는 것도 현명한 판단은 아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나아갔다.
‘여기서 다시 충돌이 있었군.’
나는 그을린 벽과 탄피를 응시했다. 귀족들의 시신도 보였다. 시간을 벌기 위해 익숙지 않은 총을 든 것 같았다.
‘군인이 아닌 귀족마저 총을 들고 싸우다가 죽을 정도다. 그만큼 반군이 몰리고 있다는 거지.’
이쪽 통로 말고도 비슷한 상황이 요새 지하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진압군의 상당수가 거주지로 진입해 반군을 소탕하는 중이겠지.
끼릭, 끼릭.
작은 소음이 났다. 나는 고개를 돌려 소리의 진원지를 응시했다. 잘린 머리만 남은 귀족 사내가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대단히 비싼 생명유지장치를 달고 있는 모양이었다.
“커억, 컥! 투, 투항하, 하겠다. 나는 라모네스 가문의…….”
귀족 사내는 힘겹게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는 겨우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릴리안 라모네스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나?”
나는 귀족 사내의 머리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릴리안? 아, 직, 직계라면 어, 어디로 갔는지는 나도 몰, 몰라.”
귀족 사내의 동공이 찰나였지만 옆으로 움직였다. 거짓말의 습관 중 하나다.
콰직!
나는 손가락을 집어넣어 사내의 안구를 끄집어 터트렸다. 부서진 안구 내부에서 흘러내리는 가루는 전부 미세한 기계부품이었다. 상당히 비싼 사이버네틱 안구였다.
“뭐, 뭐 하는 거냐! 투항한다고 했잖아!”
하지만 내가 예상한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목이 잘릴 때부터 통각을 차단해 뒀을 터다.
전신의체의 인간에게 육체적 고문은 큰 의미가 없었다. 중요한 건 머릿속에 들어있는 정신과 뇌다.
키이잉!
나는 칼을 뻗어서 사내의 관자놀이를 따라 둥글게 그었다. 과일을 쪼개듯 머리가 열리더니 뇌수와 같은 분홍빛 젤이 흘러내렸다.
질퍽, 질퍽.
나는 젤 형식의 완충제를 손으로 걷어내고 뇌를 담은 용기를 붙잡았다. 내가 힘을 주자 고정장치가 부서질 듯이 삐걱거렸다.
끼이이익!
제법 섬뜩한 소리다. 마음에 드는군.
“그, 그만둬! 무슨 짓이야! 아, 으, 아아아!”
공포에 질린 비명이 튀어나왔다. 나는 웃으면서 사내를 쳐다봤다.
“마지막 기회다, 귀족 나리. 릴리안 라모네스는 어디로 갔지?”
내겐 시간이 없다. 대답이 질질 끌릴 것 같으면 가차 없이 죽이고 나아갈 생각이다. 그 기세를 눈앞의 귀족도 느꼈을 터다.
“밑으로 갔을 거야! 밑으로!”
“밑? 장난해? 어차피 탈출하려면 어떻게든 지상으로 올라와야 해. 위로 통하는 다른 탈출 루트가 있을 텐데?”
“나도 자, 자세한 건 몰라. 정, 정말이야. 방계 사람에겐 중요한 걸 알려주지 않는다고.”
놈의 정신 상태는 거짓말을 할 수준이 아니었다. 지금 내뱉는 말은 진짜라고 판단해도 무방했다.
“일레이 카르티카는 봤나?”
내가 물었다. 귀족은 남은 인공 체액을 눈물과 콧물로 다 빼내며 대답했다.
“봤, 봤어. 그 자식 미쳤다고! 그래도 안면이 있는 사이인데, 투항한다는 말을 듣고도 우릴…….”
미안하지만, 나도 더는 네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콰직!
내 손아귀에서 금속용기가 찌그러지면서 뇌수가 삐죽삐죽 새어 나왔다. 곧 물컹한 분홍빛 고깃덩이가 찌그러지며 흘러내렸다.
어차피 숙청 대상이다. 투항한 귀족들도 결국은 고문을 당하다가 죽을 것이다. 지금 이렇게 죽여주는 게 어쩌면 자비일지도 모르지.
나는 더러워진 손을 바지에 문질러서 닦아냈다. 평소에도 살인에 죄책감을 느끼진 않지만, 오늘은 유독 무덤덤했다. 전장이란 원래 이런 거겠지.
나는 일레이의 소대를 계속 추적했다. 더 깊이 내려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헤맬 필요가 없었다. 엇갈린 통로에서도 길을 선택하기가 쉬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총성과 비명을 들었다. 거리는 가깝다. 멀지 않다.
그래, 드디어 일레이를 따라잡았다.
* * *
나는 일레이와 어울리면서도 한 가지 불안을 늘 가지고 있었다.
일레이가 제국에 반기를 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녀석이 가끔 보여주는 일탈 정도는 나도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제국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 나아가 반역이라고 봐도 무방한 짓을…… 일레이가 저지른다면 나는 어찌해야 할까.
지금, 줄곧 미뤄왔던 대답을 해야 할 때가 왔다.
나는 총성과 시신을 따라 넓은 연회실로 들어섰다. 길게 늘어진 식탁은 수십여 명이 앉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곳엔 풍성한 만찬 대신에 시신이 늘어져 있었다.
그 식탁 중앙에는 연설이라도 할 것처럼 서 있는 일레이가 보였다.
“일레이!”
나는 소리를 질렀다. 그와 동시에 일레이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타- 앙!
일레이는 자신의 부관을 쐈다. 그의 부관은 허망한 눈빛을 끌며 뒤로 자빠졌다. 부관의 미간에는 반대편이 보일 정도로 선명한 구멍이 나 있었다.
“……내가 그렇게 부탁했는데 결국은 따라왔구나, 루카.”
일레이가 입술을 움직여 내 이름을 읊조렸다. 그의 주변에는 제국 군인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모두 일레이의 소대원이었다.
기어코 저질렀구나, 일레이.
처음에는 어이가 없어서 감정이 식었다. 그리고 곧 가슴 한구석에서 활화산 같은 분노가 솟구쳤다.
일레이의 소대원은 모두 충실한 군인이었다. 일레이의 무리한 지휘와 명령에도 군말 없이 따라온 자들이다.
일레이는 그런 부하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 그깟 여자 하나 때문에! 그깟!
끼릭.
내 오른쪽 의안만 따로 움직였다. 연회실 한쪽에 라모네스 일가가 보였다. 분석이 끝나자마자 그들의 신상이 망막 디스플레이에 떠올랐다.
‘라모네스 가문의 가주와 그 직계들.’
모두 다섯 명이었다. 가주 위고 라모네스와 그 부인, 그리고 두 아들과 딸 하나. 그 딸의 이름은 릴리안 라모네스. 그녀는 초조한 얼굴로 나와 일레이를 번갈아 보고 있다.
반란을 일으킨 주범은 세 가문. 그 수장 중 하나가 저기에 있었다.
일레이는 기나긴 한숨을 쉬었다. 그는 나를 응시했다. 피에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얼음이 박힌 듯한 눈동자가 빛났다.
“루카, 루카, 루카. 이번만큼은 너도 그냥 넘어가진 않겠지.”
일레이가 중얼거리며 권총을 든 오른손을 늘어뜨리더니 왼손으로 칼을 뽑았다. 그의 칼끝이 나를 향하고 있다.
나는 그득하게 차오른 분노를 억눌렀다. 감정적으로 싸워 이길 상대가 아니다. 놀라울 정도로 무미건조한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황제 폐하와 제국 신민을 대신해 너를 심판하겠다.”
억누른 감정은 앞니가 시릴 정도로 차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