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28)
배드 본 블러드-28화(28/197)
028
세 가문의 반란은 숙청으로 끝났다. 생포된 귀족들도 고문 끝에 죽거나 살아도 산 게 아닌 꼴이 될 것이다.
“훌륭한 전적이로군, 21소대장 루카.”
근위대장이 느슨하게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그는 깍지 낀 손가락을 배에 올리고 있었다. 반란 진압이 끝나자, 그도 긴장이 많이 푼 듯했다. 그간 가장 바빴던 사람 중 하나니까.
진압군은 아직 수도 아크바란으로 복귀하지 않았다. 전투만큼이나 전후 수습은 중요한 임무였다.
나는 단독으로 근위대장의 호출을 받았다.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내 행적에 의구심을 품은 걸 수도 있다.’
근위대장은 내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좋은 점이자 나쁜 점이기도 하다.
“감사합니다, 대장님.”
“뭐, 보고서를 잘 봤네. 격전 직후인지라, 지친 소대원이 기동하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단독으로 라모네스 일가를 추격. 그 이후에 일레이와 합류해 위고 라모네스와 그 일가를 제거.”
근위대장이 내 보고서를 요약했다. 나는 짧게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고, 근위대장의 질문을 기다렸다.
“릴리안 라모네스는 즉결처형하지 않고 최하층까지 데려갔군. 그 연유도 보고서에 있지만, 자네의 입으로 다시 듣고 싶네.”
근위대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내가 긴장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리라.
“저희는 릴리안 라모네스를 통해 공간이동 장치의 존재를 알아냈고, 미리 점거해 반군의 탈출을 방지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릴리안 라모네스의 안내를 받아 최하층까지 이동. 공간이동 장치를 확보하자마자 처형했다는 건가? 굳이 릴리안을 안내인으로 고른 까닭은?”
나는 미동 없이 서 있었다. 동요할 필요는 없다. 앞뒤가 잘 맞는 거짓말을 했다.
“라모네스 일가 중에서 릴리안 라모네스의 전투력이 낮기 때문입니다. 전장에선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 가장 통제가 쉬운 포로를 골랐습니다.”
“흠, 합리적인 판단이네. 하지만 루카, 내겐 의문이 더 있어. 물어봐도 되겠나?”
올 것이 왔다. 근위대장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겠지. 나는 더 추궁당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칠 생각이었다. 다소 무례한 행동이지만 이게 낫다.
“릴리안과 저와의 관계 말입니까?”
“자네만이 아니지. 자네와 일레이는 릴리안 라모네스와 교류가 있었네.”
나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간 경험으로 미뤄볼 때, 근위대장은 내 시건방진 태도를 종종 더 좋아했다.
“……저와 일레이는 우수합니다. 릴리안 라모네스와 사적 교류가 있었지만, 그걸로 임무를 망칠 머저리들은 결코 아닙니다. 그건 누구보다 근위대장님이 잘 아실 겁니다.”
입술을 달싹이던 나는 말을 이어서 쏟아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릴리안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습니다. 저라고 감정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릴리안은 안내를 마치면 자신이 살 수 있을 거라고 믿다가 죽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의 죽음을 인지조차 못했을 겁니다. 이게 저와 일레이가 할 수 있는 인간적 도리였습니다. 이런 감정적 부분까지 보고서에 넣을 이유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칫하면 나약해 보이니까요.”
거짓말은 진실이 섞여 있어야 호소력을 가진다. 지금 내가 내뱉은 말이 그러했다.
내 말을 경청하던 근위대장이 상체를 앞으로 당기더니 두 손으로 턱을 묵직하게 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나는 속으로 외쳤다.
근위대장이 내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보고할 사람은 나 말고도 한 트럭이나 더 있었다.
“……그렇군. 의문스러운 부분이 풀렸네, 루카. 방금 자네의 말은 기록에 남기지 않겠네. 자네 말마따나 유약해 보일 수 있으니까.”
안도감이 내 가슴에서 차올랐다. 모든 긴장이 흐트러지는 것 같았다.
근위대장이 납득했다면 더는 이번 일에 대해 추궁받을 일이 없다. 어차피 우리의 행위로 큰 사고가 터진 건 아니다. 오히려 나와 일레이는 공적을 세운 편이다.
“그럼 뭐, 이 건은 여기까지 하지. 자네도 피곤할 테니 말이야.”
“그럼 이만…….”
“아니, 아니. 잠깐 기다리게. 다음 건이 남았으니까.”
내가 자리를 뜨려고 하자, 근위대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홀로그램에 다른 보고서를 띄웠다.
‘코드락의 보고서.’
내 부관인 코드락이 보고서였다.
“코드락이 자네를 높게 평가를 했네. 특히 전투 능력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본 소대장과 생도 중에선 최고라는 말까지 덧붙였지. 아키에스 전투술이 자네의 기량 향상에 도움이 됐나 보군.”
나는 짐짓 놀랐다. 코드락이 내게 후한 평가를 해줄 줄은 몰랐다.
“하지만 하급자와의 유대관계 구축은 미흡하다고 평했네. 이에 대해 할 말이 있나?”
“없습니다. 실제로 저는 공격적인 태도로 부하들을 대했습니다. 단시간에 상급자로서의 위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하지만…… 아니, 됐네. 부하를 다루는 법이라면 키누안이 잘 알겠군. 그자에게 배우면 될 일이지. 어쩌면 그자의 방식이 자네에게 더 잘 맞을 수도 있으니까.”
갑자기 키누안의 이름이 나왔다. 나는 의문을 밖으로 내뱉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궁금증은 속으로 삼켰다.
이제 정말로 끝나는 분위기였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아, 루카.”
나는 몸을 반쯤 돌리다가 멈췄다. 근위대장은 느슨한 동작으로 물을 마시더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을 툭 내뱉었다.
“그나저나 라모네스 일가의 솜씨가 의외로 좋더군. 일레이의 소대가 말끔하게 당할 정도일 줄이야.”
보고서에 이미 다 써뒀다. 일레이의 소대는 급히 추격하다가 라모네스 일가의 매복에 빠져 전멸한 것이다. 내가 당황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저 떠보기의 의중은 무엇이란 말인가. 욕지거리가 목구멍까지 나왔다. 조금만 호흡이 흐트러져도 식은땀이 주륵 나올 것 같았다.
“……저라면 당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무래도 이번 기수의 수석은 저일 것 같군요.”
내 말에 근위대장은 호탕하게 웃었다.
“기대하지.”
* * *
자기부상 열차는 고요하다. 간헐적인 고주파만 간간이 신경을 긁을 뿐이다.
나는 수도로 돌아오는 동안 혼절하다시피 잠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긴장의 끈을 놓지도 못하고 며칠을 꼬박 활동했다.
많은 일이 있었다. 전부 다 빌어먹을 일이었다.
일레이 카르티카, 릴리안 라모네스, 근위대장 헤일라스 쿠스토리아, 아케인 요새와 유물, 공간이동 장치.
장면과 인물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보더시티.’
릴리안이 가고 싶어 한 곳이다. 그녀는 제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었다, 기사님인 줄 알았던 일레이의 총에 맞아서.
비극적인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동정하고 싶지 않다.
일레이도 릴리안도 제멋대로 굴었을 뿐이다. 그들에게 휘둘린 피해자는 오히려 나다.
수도 아크바란으로 돌아온 우리는 정비와 휴식을 취했다. 논공행상과 정치는 상부의 일이었다. 우리 같은 말단은 다음 명령을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틀 뒤, 일레이를 숙소 건물 뒤편으로 호출했다.
콰직!
나는 일레이의 멱살을 잡고 벽까지 밀어붙였다. 일레이는 반항하지 않고 나를 보고 있었다. 녀석의 표정은 공허했다.
“너, 당장 생도를 관둬. 넌 군인에 맞지 않아, 쓰레기 같은 새끼.”
내가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아직도 그날의 일을 잊지 않고 있다.
‘일레이는 자신의 사적 감정 때문에 소대원을 죽였다.’
그건 내 가치관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레이를 상대로 진심으로 증오와 살의를 잠시나마 품을 정도였다.
“나도 관둘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네.”
일레이가 얼굴을 옆으로 돌리며 말했다.
“이 자리에서 재기불능으로 만들어줄까?”
“루카, 이 자리에서 날 죽이지 않는 이상…… 어떻게든 우리 가문에선 날 근위대로 만들 거야. 내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자리니까. 화풀이가 하고 싶다면 맞아줄게.”
일레이는 저항도 하지 않았다. 나도 맥이 빠졌다.
콰직!
나는 죽지 않을 정도의 힘으로 일레이의 명치를 가격했다. 녀석의 갈비뼈 서너 대가 시원스레 부러졌다.
비틀거리던 일레이는 용케도 주저앉지 않았다. 그는 피가 섞인 기침을 하다가 나를 쳐다봤다.
“왜? 맞아준다면서? 안 때릴 줄 알았냐? 나도 분이 좀 풀렸으니 이야기나 하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한 손으로 가슴을 감싼 일레이가 구부정하게 벽에 기대서 숨을 골랐다.
“으음, 뼈를 부술 줄은 몰랐지. 이건 제법 아프네. 장기가 상했을 수도 있겠…….”
“망가지면 의체로 바꾸면 되잖아. 엄살 집어치워.”
나와 일레이는 보고 내용에 대해 입을 다시 맞췄다. 우린 상부를 속이고 있다. 신중을 아무리 기울여도 부족하다.
재차 점검해도 이상한 점은 없었다. 우린 동일한 내용으로 상부에 보고했다.
“나는 네가 릴리안을 죽일지 몰랐다. 오히려 가망도 없는데 근위대를 상대로 덤벼들 거라 생각했어.”
“나 혼자였으면 그랬을 거야.”
일레이가 덤덤하게 말했다.
‘역시 그랬던 건가.’
예상했던 답변이었다. 일레이가 자신의 목숨이 아까워 릴리안을 죽였을 리가 없다. 그 자리에 내가 있었기에 최선의 판단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일레이의 사고 과정이 눈에 훤히 보였다.
당시 일레이에게 자신의 생존은 중요치 않았다. 그에겐 릴리안과 나의 목숨이 중요했다. 그리고 유일하게 구할 수 있었던 내 목숨을 우선시한 것이다.
‘내가 합류하지 않았다면…… 일레이는 릴리안과 최후를 맞이했겠지.’
릴리안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내 목적을 달성했다.
‘일레이를 살렸으면 된 거지.’
이제야 마음이 홀가분했다. 나는 하늘을 보며 뒷걸음질 치다가 벽에 기댔다. 수도 아크바란의 날씨는 대개 우중충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집안에선 내가 라모네스 일가를 해치우는 데 공을 세웠다고 좋아하더라. 그쪽 가문과 교류가 제법 잦았는데도 말이야. 이게 귀족 사회라는 거겠지. 어쨌거나 너와 난 이번에 무공훈장을 받을 수도 있어.”
일레이가 그리 말하며 자신의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낯선 물건이 녀석의 품에서 나왔다.
“담배?”
“내 부관이 골초였거든. 나도 친해지려고 얻어 폈어. 내가 콜록거리는 꼴을 보더니 아주 좋아하더라고.”
“담배는…… 뭐, 됐다.”
나는 일레이를 말리지 않았다. 일레이는 어색한 손놀림으로 담배를 입에 물더니 불을 붙였다.
일레이의 기침 소리와 함께 담배 연기가 바람을 따라 흐물흐물 흘러갔다. 나는 연기를 따라 동공을 움직였다.
“루카.”
일레이가 문득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녀석의 얼굴을 일부러 보지 않았다. 날 부르는 목소리에 흐느낌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난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일레이가 벽을 따라 주저앉았다. 그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어깨를 들썩였다. 담배 연기만 그의 귓가를 타고 흘러나왔다.
나는 욕을 하려다가 말았다. 침묵으로 일레이를 기다렸다.
전투에 불필요하기에 막아뒀던 감정들은 일상에 돌아오면 후폭풍처럼 밀려오기도 한다.
일레이는 살인마가 아니다. 부하를 죽인 죄책감이 없을 리가 없다. 우리가 살인에 대한 거부감이 낮긴 해도 무감각한 기계는 아니다. 더군다나 일레이는 그 난장을 피웠으면서 릴리안조차 구하지 못했다. 녀석이 느낄 자괴감이 어느 정도일지는 짐작도 가지 않았다.
나는 목적을 이뤘으나, 일레이는 모든 것에 실패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확신했다. 일레이는 제국에 있어선 안 된다. 녀석은 제국과 맞지 않았다. 머지않아 죽을 것이다. 죽는 게 정신이든 목숨이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