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3)
배드 본 블러드-3화(3/197)
003
“그걸 끝까지 버틴 거야? 적당히 요령 있게 기절했어야지. 너도 참 우직한 면이 있다니까.”
통증 내성 훈련이 끝난 다음 날이었다. 날 찾아온 일레이 카르티카가 칭찬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말을 했다. 아마도 반반 섞여 있을 터다.
“버틸 만했으니까.”
내가 짧게 대답하며 물을 마셨다. 입안이 쓰라리고 목구멍은 까끌까끌했다. 손끝도 간헐적으로 떨렸다. 걸을 때면 나도 모르게 균형을 잃었다.
통증 내성 훈련의 후유증이 내 몸에 짙게 남아 있었다. 며칠 동안 치료받으며 안식을 취해야 완전히 회복될 것이다.
“하하, 안대가 꽤 어울리잖아. 우주 해적이라도 나타난 줄 알았네.”
일레이가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
“신경계가 회복되면 인공 안구를 이식받을 예정이야. 너보다 좋은 모델로.”
휴식기 동안, 일레이는 종종 날 찾아왔다.
일레이는 산뜻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느긋하고도 부드러운 말투를 구사했다. 근위대보다 행정관료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인상이었다.
‘하지만 실력은 대단한 녀석이지. 인정할 수밖에 없어.’
서서히 동기 간에서도 실력의 차이가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
나와 일레이가 가장 뛰어났다. 이건 교만이나 오만이 아닌 사실이었다. 대부분 훈련에서 우리 두 명이 수석과 차석이거나 상위권을 다투었다. 종합 성적으로 보면 일레이가 미세하게 나보다 앞설 것이다.
나는 휴식기 동안 몸이 애달았다. 빨리 훈련에 복귀하고 싶었다. 어느 정도 회복이 끝나자마자 나는 인공 안구를 서둘러 이식받았다. 의사는 남은 눈도 적출해서 갈아치우길 권했지만 내가 거절했다.
‘근위대장의 사비로 하는 수술이다.’
나도 얼핏 들었다. 내 눈을 후벼 파는 건 근위대장의 돌발 행동이었다. 그 때문에 자비로 내 수술을 지원한다고 들었다.
‘……근위대장 정도면 돈이 썩어 남아돌겠지만. 집안도 엄청난 가문이고.’
그래도 불필요하게 빚지는 기분이 싫었다.
‘악의를 가지고 내 눈을 파낸 게 아니야.’
근위대장의 태도를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닌 모양이었다.
“대장님은 널 꽤 신경 쓰고 있는 것 같더라. 넌 그분의 눈에 들었어.”
일레이도 그렇게 말했다.
나도 근위대장의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한쪽 눈을 잃고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더 좋은 눈을 미리 받을 수 있었다. 어차피 나중엔 버릴 생체 안구였다.
위이이잉.
나는 내 오른쪽 의안에서 울리는 고주파 때문에 이틀 동안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사흘이 지나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내 뇌와 신경계가 새로운 인공기관에 완전히 적응했다.
“예정보다 훨씬 빨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군. 역시 근위대의 인재라는 건가?”
의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는 내 오른쪽 눈에 정밀검사 기기를 가져다 대더니 동공의 복잡한 움직임을 확인했다.
검사를 마친 나는 거울을 바라봤다.
기이이잉.
내가 의식하자 오른쪽 의안이 활성화되면서 테두리가 밝게 빛났다. 가상 인터페이스가 망막 디스플레이에 떠오르면서 주변의 정보를 증강현실로 나타냈다.
‘탄도 예측 활성화.’
가장 중요한 기능이었다.
주변에 총기가 없었기에 궤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두통이 심했다. 막대한 정보량이 뇌에 밀려 들어왔다.
내 뇌는 새롭게 추가된 기능에 맞춰 신경계를 확장하고 재구성하고 있었다. 이 기능을 완전히 활용하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것이다.
“시스템 적응이 끝나기 전까지 하루에 한 알씩 자기 전에 먹어둬.”
날 지켜보던 의사가 약통을 내밀며 말했다. 신경 세포의 결합과 형성을 돕는 약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헤일라스 대장에게 하라고. 나야 돈을 받고 하는 일이니까.”
헤일라스, 오랜만에 듣는 근위대장의 이름이다. 항상 직위로 부르니 이름을 들을 일이 잘 없었다.
내 눈깔을 파낸 사람에게 감사하라니…… 정말 웃기게도 정말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누가 들으면 정신 나간 놈이라고 생각하겠지.
* * *
우리의 훈련도 2년 차 3분기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관둔 사람은 사십 명 중에 두 명이었다. 근위대 생도는 죽지만 않으면, 대부분은 4년의 훈련과정을 수료하고 정식 대원이 된다. 이탈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탈이 적다고 훈련과 교육과정이 만만한 건 아니었다. 근위대 훈련은 제국에서 제일간다고 자부할 정도로 혹독한 부대며, 전투병과 장교 양 측면에서 필요한 지식을 전부 습득해야 한다.
근위대원은 어떤 상황과 임무에서도 즉각 전력이 되는 유연한 엘리트 군인이었다.
“근위대 생도는 처음부터 선별검사를 통해 양성과정을 버틸 만한 인재만 데려오니까. 중간에 낙오하는 자는 거의 없지.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진 애들은 웃돈을 주고 선별검사 결과를 조작했을걸.”
일레이가 권총으로 표적지를 겨누며 말했다. 그의 총기와 연동된 동공에선 사격을 보조하는 인터페이스가 나오고 있을 터다.
스륵.
나도 총을 뽑았다. 사격장에선 다른 이들의 총성이 간간이 퍼졌다.
근위대가 근접 무기를 선호한다지만, 사격술 훈련을 게을리하는 건 아니다. 근위대는 제국의 모든 장비와 무기를 숙련자급으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선별검사를 조작하는 게 가능하다고?”
내가 되물었다. 일레이는 입꼬리를 더욱 깊게 끌어 올렸다.
“증거는 없지만, 심증은 확실해. 제국은 계급 분화가 이뤄진 지 너무 오래됐어. 서서히 능력주의의 환상이 걷히고 있지. 지위와 재물이 있다면 무능한 자조차 유능한 자처럼 자신을 꾸밀 수 있거든.”
“위험한 발언이야, 일레이.”
내가 경고하듯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 과감한 발언이 걱정되기도 했다. 저런 말을 제국 신민이 해도 되는 걸까? 아무리 명문가의 자제라지만…….
‘걱정?’
나는 방아쇠를 당기며 쓴웃음을 지었다. 일레이와 친해지긴 한 모양이다. 보육원 출신의 내가 명문가 도련님을 걱정하다니.
“그 증거로…… 루카, 너 같은 이레귤러는 지금까지 제국의 상급 군인 양성과정에서 탈락한 사례가 한 건도 없어. 뒷돈으로 수작을 부리지 못하니까. 정말로 뛰어난 자만이 올라온 거지. 애초에 이레귤러라고 따로 호칭하는 것조차 이상한 거야.”
뒷배경이 든든하니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거겠지. 나라면 저런 생각을 품고 있어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터다. 그보다 나는 지금까지 저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귀족도 무능할 수 있다고?’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귀족은 우수하고, 평민…… 특히 하층민일수록 무능하다. 제국은 선별검사를 통해 모든 신민에게 공정한 기회를 준다. 그 기회를 잡지 못할 정도로 무능했기에 실패한 삶을 살아가는 거다.
이게 내가 평생 들은 말이다. 그 증거가 바로 나다. 하층민 출신인데도 선별검사를 통해 기회를 잡고 올라왔다.
“루카, 지금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하지만 넌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기에 기회를 얻은 거야. 너 같은 인재를 집 바깥에 뒀다간 오히려 화근이 되거든. 타오르는 불씨가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커지는 걸 구경할 바에야 차라리 집안으로 들이는 거지…….”
총성이 일레이의 목소리를 적당히 묻었다.
일레이는 방아쇠를 연속으로 당겼다. 사격 표지의 구멍은 아까부터 하나였다. 총알이 같은 자리를 계속 통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처럼 바닥에서부터 성공한 이레귤러가 나와야 사람들은 실패를 자신이 무능한 탓이라고 여기며 현 체제를 납득할 수 있어.”
들을수록 일레이의 말은 위험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꼈다. 내 상식과 세계로는 일레이의 발언을 인정할 수 없었다.
“내가 당장 상부에 네 말을 고스란히 보고할 수도 있어. 카르티카 가문의 일원이라도 그냥 넘어가진 못할걸.”
일레이는 흐려지지 않은 미소로 나를 바라봤다. 그의 손가락은 여전히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시선을 옆으로 두고도 사격 솜씨는 여전했다.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 정말로 그럴 생각이면 보고하니 뭐니 하는 말도 하지 않겠지. 날 걱정해 줘서 고마워, 루카.”
일레이는 내 내면을 들여다본 듯이 말했다. 나는 그게 짜증 났다. 왜냐하면…… 사실이니까.
* * *
아크레시아 제국에는 오랜 숙적이 둘이나 있었다.
벨라토 연방국과 코라 신성국.
제국보다 노바스 행성에 먼저 정착한 두 국가다.
“비열함을 지혜라고 착각하는 천박한 기회주의자들.”
벨라토 연방을 말하는 것이다.
“달콤한 평화와 위선적인 정의를 속삭이면서 한쪽으론 전쟁을 준비하는…… 그릇된 믿음의 광신도들.”
코라 신성국도 좋은 평가를 듣진 못한다. 벨라토보단 그나마 낫다고나 할까. 거기서 거기지만 말이다.
제국은 벨라토 연방은 경멸했고, 코라 신성국은 적대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보다 더 나쁜 취급을 받는 이들이 있었다.
지구의 인류라는 시작점에서 갈라진 벨라토와 코라는 손을 잡을 여지라도 있었다. 과거에도 어쩔 수 없이 연합을 이뤘던 적이 있다고 했다. 어쨌거나 같은 인간이라는 종이니까.
……하지만 뿌리조차 다른 외계종족은 상종할 가치도 없었다. 제국에서 외계종족을 보기란 힘들었다. 외계종족은 제국 내에서 범죄를 당하더라도 그 어떤 보호도 받지 못했으며, 심지어 자기방어권도 없었다.
우리에게 외계종족 차별은 당연한 일이다. 외계종족들은 줄곧 제국을 이용하고 속이려고만 했다. 호의로 손을 내밀면, 그 손마저 잘라서 훔쳐 갈 놈들이다.
이게 내가 수도 없이 듣고 배운 지식이다. 그러나 외계인은 물론이고, 벨라토인과 코라인조차 내가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오늘은 내가 코라인을 처음 보는 날이다. 하지만 유쾌한 만남은 아닐 터다. 피를 흘려야겠지. 물론, 우리가 아닌, 놈들이.
“루카와 일레이가 각각 소대장을 맡는다. 불만이 있다면 나와서 쟁탈해라.”
근위대장이 바위에 앉은 채로 말했다. 나와 일레이는 근위대장 양옆에 서 있었다. 우리 앞에는 생도들이 기계처럼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생도들은 침묵했다. 나와 일레이를 소대장으로 삼는 데 이견이 없었다.
“저 협곡 너머에는 우리의 영토를 불법으로 점거한 코라인의 전초기지가 있다…….”
근위대장이 검지를 들어 보이지 않는 곳까지 가리켰다. 말꼬리를 끌던 그가 명령을 내렸다.
“……포로는 필요 없다. 전부 죽여라.”
이것도 훈련과정 중 하나였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생도들이 나와 일레이를 중심으로 뭉쳤다. 우리가 가진 무기라곤 각자 취향에 맞는 근접 무기와 권총 한 정이 전부였다.
우리가 지급받은 권총은 경량형 전투복조차 뚫지 못할 정도로 화력이 약했다. 사실상 자결이나 근접 처형 용도였다.
우리는 좁은 절벽 길을 통해 이동했다. 서로의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고요한 행군이었다.
우린 삼십여 분을 이동하고서야 잠시 휴식을 취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순서를 따라 경계를 섰다.
“루카, 보여? 저 멀리서 잘나신 선배님이 우릴 보고 있어.”
일레이가 물을 마시며 내게 말했다. 나는 일레이의 말을 들으며 협곡 위에 자리한 숲을 응시했다.
주의를 기울이니 숲속의 어둠에서 무언가가 일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 흐릿한 그림자는 근위대의 제식 전갑의체 레기온의 형상이었다. 나무 사이로 강철의 거인이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명목상으론 우리의 보호 역이다. 그러나 감시의 목적도 있다.
‘감시…….’
무얼 감시한단 말인가? 나는 머리를 흔들어 따라오는 생각을 떨쳤다.
짧은 휴식이 끝나고 행군이 이어졌다.
어느덧 우린 협곡 위쪽에 자리한 전초기지를 발견했다. 전면은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나 절벽을 등진 후면은 개방된 채로 뚫려있었다.
저치들은 우리가 절벽 길로 이동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할 것이다.
드득.
우린 맨손으로 가파른 절벽을 올랐다. 곧 전투가 벌어질 것이다.
‘전부 죽인다. 포로는 필요 없다.’
나는 근위대장의 명령을 상기했다.
절벽 끄트머리에 도착한 나와 일레이는 눈만 내밀어 주변을 살폈다. 다른 생도들도 우리 밑에 매달린 채로 명령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