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35)
배드 본 블러드-35화(35/197)
035
인공지능과 안드로이드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전쟁은 사람이 한다.
제국군의 주력도 어디까지나 인간 군인이다. 인공지능과 안드로이드, 드론 따윈 보조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전투용 안드로이드 제조비용이 군인 양성 비용보다 비싸다.
둘째, 안드로이드는 전장의 다양한 변수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두 번째 이유가 가장 컸다. 변수가 많아질수록 안드로이드는 오작동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군에 오래 몸을 담은 자일수록 안드로이드를 신뢰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변수가 통제될수록 안드로이드의 효율이 인간보다 낫다는 것.’
안드로이드의 효율은 정해진 규칙과 변수가 통제된 장소에서 나온다.
예컨대, 복싱 경기라면 동일 사양의 인간이 안드로이드를 이기는 게 한없이 어려워진다. 일반인이라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끼이익, 끼이익.
나는 폭주 안드로이드를 응시했다. 지금도 일종의 통제된 환경이다. 저 안드로이드는 자신의 모든 연산 능력을 내 움직임을 예측에 쓰고 있다.
으득, 으득.
안드로이드가 목을 길게 빼며 구부정하게 섰다. 늘어뜨린 손에선 피에 물든 손톱이 튀어나왔다. 마치 늑대인간처럼 보였다. 추격을 중시하는 사냥개 타입이다. 여차하면 네발로도 뛸 수 있는 모델이다.
‘뭐, 순찰용 안드로이드니 연산 능력이 뛰어나진 않겠지. 폭주 상태이기도 하고.’
안드로이드를 상대하는 법도 훈련소에서 배웠다.
이치는 간단하다. 연산이 필요한 행동을 중첩 시켜 과부하를 일으키면 된다.
변수가 중첩되면 안드로이드의 연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인간처럼 사소한 걸 무시하지 못하는 안드로이드의 약점이다.
물론,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그 전에 안드로이드의 공격을 받아내면서 수를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
카아앙!
안드로이드가 땅을 박차며 단번에 뛰쳐나왔다. 놈은 강철 손톱으로 내 가슴과 목을 노렸다.
나는 상체와 고개를 젖혀 손톱을 간발의 차이로 피했다. 공격이 예리하고 무섭다. 폭주한 것치고는 반응도 빠르다. 잘 정제된 전투 프로그램을 탑재한 듯한 동작이었다.
스륵.
나는 뒤로 물러나면서 허리 뒤쪽으로 손을 가져다 댔다. 안드로이드 입장에선 높은 확률로 총을 꺼내는 동작이다.
키이잇!
안드로이드가 내게 곧장 달려들었다. 총을 뽑을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내겐 총이 없다.
휙!
나는 주머니칼을 위로 던졌다. 안드로이드는 곧장 위로 쳐다보며 내가 던진 물건이 뭔지 파악하려 했다.
‘의미가 없는 행동의 연속.’
그저 놈의 연산을 가중하기 위한 행동이다. 의미가 없을수록 안드로이드는 내 행동의 이유를 찾기 위해 더 많은 연산을 한다.
‘저들에겐 언제나 합리적 이유가 필요하지.’
안드로이드의 머뭇거림은 찰나다. 그거면 내게 충분했다.
나는 안드로이드의 왼팔을 잡으며 녀석의 뒤로 돌았다.
콰직!
안드로이드의 왼팔이 역방향으로 꺾이며 부러졌다. 관절부에서 부품과 파편이 떨어졌다.
안드로이드는 뒤로 돌면서 나를 공격하려 했다. 나는 안드로이드의 오른쪽 다리의 오금을 발로 깊게 짓눌렀다.
우드드득!
안드로이드가 오른쪽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녀석의 무릎은 바닥에 부딪히면서 완전히 으스러졌다.
으득!
나는 쓰러진 안드로이드의 등을 밟으며 오른팔을 비틀어서 뽑아냈다. 왼쪽 다리만 남은 안드로이드는 무력화된 채로 나를 보고 있었다.
-도, 도움, 이, 필요, 하십니까?
나는 안드로이드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단순한 폭주와는 다르다.
호흡을 가다듬은 나는 아직도 넘어져 있는 덩치를 돌아봤다. 내 입은 사납게 웃고 있으리라.
아직 내 갈망이 채워지지 않았다. 이 정도 안드로이드 따위에겐 내 욕구를 쏟아낼 수가 없다.
“이봐, 나랑 싸우고 싶다면서? 날 잡아둬. 몸은 이번에 잘 풀어뒀으니까.”
내가 안드로이드의 왼쪽 다리마저 부러뜨리며 말했다. 내게 시비를 걸었던 덩치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입만 뻐끔뻐끔했다.
“나, 나중에!”
덩치가 일말의 자존심을 세우며 말했다.
위이잉, 위이잉.
머지않아 치안경비대의 공중차량이 사이렌을 울리며 우리 머리 위까지 다가왔다. 차량 하부의 조명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 * *
치안경비대는 군 소속이지만, 조직의 성격이 일반적인 부대와는 다르다. 말 그대로 제국의 치안을 담당한다. 그들은 외적과 싸우는 게 아니라 내적을 잡는 부대다.
‘제국의 질서와 안녕을.’
치안경비대의 구호가 떠올랐다.
“근위대 생도, 루카.”
수사관의 목소리는 눈에 띄게 중후했다. 울림이 굵고 위협적이었다. 권위에 약한 사람이라면 저 목소리만 듣고도 기꺼이 협조하겠지.
수사관은 직업의 효율을 위해 낮은 주파수의 목소리로 성대를 개조했을 것이다.
“보고서에 제가 아는 바를 전부 적어놨습니다.”
나는 지금 상황이 불쾌했다.
수사관은 참고인이라는 명목하에 내 신변을 치안센터에 붙잡아 뒀다. 아마 근위대에도 소식이 들어갔을 터다.
“읽어봤네. 보고서를 잘 쓰더군. 내 부하들보다 나아.”
수사관이 낮게 웃었다. 서 있던 그가 내 맞은편에 앉았다.
우린 탁자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쳐다봤다. 수사관의 이름은 질리언 캠벨이었다. 귀족은 아니었다. 캠벨은 하층 구역에서 흔히 쓰는 성이다.
“범인을 찾고 싶다면, 절 심문할 게 아니라 안드로이드를 조사해야 할 겁니다.”
“안드로이드 분석은 똑똑이들이 할 거야. 난 발로 뛰는 역할이지.”
질리언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는 담뱃불을 붙이고 연기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나를 쉽게 보내줄 분위기는 아니었다. 나도 이렇게 된 김에 바바라의 저주에 대해 물어봤다.
“크라치아 아카데미에서 안드로이드 폭주가 종종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일이 터져도 지금까지는 명문가의 엘리트 자제들을 심문하지 못했지. 아카데미 내부로 헤집고 다니는 건 어림도 없었고.”
“지금은 상황이 달라진 겁니까?”
“사망자가 생긴 건 이번이 처음이거든. 덕분에 일이 꽤 심각해졌어. 윗선에서도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수사를 허용했지.”
치안경비대에서도 크라치아 아카데미에서 일어난 안드로이드 폭주를 인지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쉽게 손을 대지 못했을 뿐이었다.
“제 경험상, 크라치아 아카데미 학생들이 수사에 협조적이진 않을 것 같군요.”
“여러모로 대단하신 분들이니까.”
질리언이 그리 말하며 킥킥 웃었다. 그는 반쯤 타들어 간 담배를 손가락으로 비벼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미 아시겠지만, 아카데미에선 안드로이드 폭주를 바바라의 저주라고 부릅니다.”
나는 치안경비대와 정보를 교류했다. 저쪽도 그럴 의도로 나를 붙잡아 둔 것이다. 하층 구역 출신인 나와는 말이 잘 통할 거라 생각했겠지.
“바바라에 대해서는 알고 있네. 괴소문의 주인공이지. 그 애와 친하게 지내는 학생들만 사건의 피해자가 된다지?”
“바바라가 안드로이드를 조작했을 거란 소문도 있습니다.”
“우린 그런 허무맹랑한 소문은 믿지 않네. 일개 학생, 그것도 하층 구역 출신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안드로이드를 조작할 수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집안 배경을 등에 업고 있는 귀족 자제일 거야.”
논리적으로 바바라가 범인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무엇보다 바바라가 얻는 이득이 없었다. 질리언 수사관이 저런 말을 하는 게 당연했다.
‘바바라가 범인이 아니라면…… 바바라를 아카데미에서 고립시키려는 누군가의 계략이지. 아주 정성스러우면서도 번거로운 방식으로.’
용의자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삑.
질리언이 자신의 단말기를 확인했다. 그는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아까 근위대에게 수사협조 요청을 보냈네. 방금 답신이 왔군.”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시간을 질질 끌던 이유가 이거였다.
삑.
내 단말기도 짧게 울렸다. 나는 상부의 지시사항을 확인했다.
‘질리언 캠벨 수사관에게 협조할 것.’
명령에 따를 생각이지만, 나는 대놓고 싫은 기색을 드러냈다. 어차피 질리언은 내 직속 상관도 아니다.
“……제게 원하는 게 뭡니까?”
“귀족들은 나 같은 수사관에게 조사받는 걸 아주 싫어해. 기르는 개에게 물리는 느낌이 드는 거겠지. 자네가 아카데미 내부의 분위기를 살피면서 수상한 인물을 추려주게.”
“저는 일개 생도입니다. 수사 따윈 할 줄 모릅니다. 그런 걸 배운 적도 없고요.”
이런 말을 한다고 질리언이 협조 요청을 철회하진 않을 것이다. 나는 그저 불만을 드러내고 싶었다.
“아키에스 전투술 사용자는 통찰력이 뛰어나지. 그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수사관이네.”
나는 움찔했다. 아키에스 전투술을 익히고 있다는 게 내 파일에 기록된 지는 몰랐다.
내 반응을 본 질리언이 옅게 웃었다. 그는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나를 쳐다봤다.
“……수사협조의 대가라고 하긴 뭐하지만,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을 가르쳐주지.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는 따로 명단을 모아둘 정도로 요주의 인물이네. 물론, 뒷골목 시정잡배가 아니라 자네처럼 ‘제대로 배운 사람’을 한정해서지만.”
아키에스 빅티마는 아키에스 전투술의 정식 명칭이다. 나도 오랜만에 듣는 단어였다.
“어째서입니까?”
묻는다고 가르쳐주진 않겠지. 하지만 물어봐서 손해 볼 건 없다.
“그 이상은 말할 수 없어. 궁금하면 자네에게 아키에스 전투술을 가르쳐준 사람에게 물어보게.”
* * *
나는 크라치아 아카데미로 돌아왔다.
의외로 나를 가장 먼저 찾아오며 반기는 이는 아직도 이름도 모르는 ‘덩치’였다. 그는 카노 가문의 말석 귀족이었다.
“파견 생도, 내 입장도 이해해 줘. 칼레사의 말이라면 죽는시늉도 해야 하는 게 나야. 다행히 죽을 고비를 한 번 넘기니까 칼레사도 더 닦달은 안 하더라고.”
귀족, 특히 같은 가문이라도 그 안에서 상하관계는 있었다.
덩치는 나와 대립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확실히 밝혔다. 나와 그 사이에는 어차피 별다른 감정도 없었다. 물 흐르듯 지나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칼레사를 조심해. 내 보스지만 앙심이 깊은 여자거든. 2년 전의 일로 바바라를 아직도 괴롭히고 있는 거 보면 나도 질릴 정도야.”
“매일같이?”
내가 되물었다. 덩치는 어깨를 으쓱했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주일의 세 번 정도. 바바라, 그 여자도 보통내기가 아니야. 나라면 자퇴했을 텐데 말이지. 하기야 크라치아 아카데미는 하층 출신에겐 엄청난 기회니까.”
나는 바바라를 다시 봤다. 내 생각만큼 유약한 여자는 아니었다. 2년이나 칼레사에게 괴롭힘을 당하고도 아카데미에 붙어있었다.
두 번째로 날 찾아온 사람은 지젤 쿠스토리아였다. 멀리서부터 인상을 팍팍 구기고 있었다. 내 뺨이라도 칠 기세다.
“바바라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기껏 신경 써서 경고했더니 이따위로 굴어요? 내 호의를 짓밟은 대가는 크게 치를 겁니다.”
엄청나게 화가 난 모양이었다.
“여럿이서 하나를 괴롭히고 있는 꼴은 못 참는 터라…….”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지젤에게도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그녀가 내 질문에 제대로 답할 것 같진 않았다.
“당분간은 눈에 띄지 마세요. 당신이 아카데미 생활을 무사히 마치지 못하면, 제 평판도 같이 떨어지니까요.”
지젤도 열심히 하는 이유가 있었다.
“저도 되도록 조용히 지낼 생각입니다.”
“칼레사가 벼르고 있을 거예요. 힘으로 당신을 못 누르면 다른 방법이라도 쓸 겁니다.”
“그 여자가 제게 해코지할 방법은 많지 않을걸요.”
내 삐뚤어진 성격 탓인지, 오히려 나는 칼레사의 복수를 기대했다. 어떤 참신한 수로 나를 공격할지 말이다.
내가 미소를 띠자, 지젤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나도 그녀를 더 자극할 생각은 없었지만, 여러모로 그녀와 나는 상성이 맞지 않았다.
“제가 칼레사 카노를 만나서 중재를 요청해 볼게요.”
지젤의 입에서 예상 밖의 말이 나왔다.
“참고로 고개를 숙여서 사과하는 건 못합니다. 생도 신분이라지만, 근위대의 명예를 손톱만큼은 어깨에 얹고 다니는 몸이라서요.”
이건 진심이다. 근위대장이 명령하는 게 아니라면 난 죽어도 사과하지 않을 거다. 애초에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도 전혀 없다.
“……알았어요. 제 말이라면 칼레사도 적당히 타협할 겁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지젤과 칼레사는 친분이 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 머릿속에서 인물의 위치가 움직이면서 관계도가 떠올랐다.
지젤 쿠스토리아, 칼레사 카노, 바바라.
나는 목을 느슨하게 매만지다가 입을 열었다.
“이참에 지금 칼레사를 만나러 같이 가죠. 또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되니까요.”
내 제안에 지젤도 놀란 듯이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