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39)
배드 본 블러드-39화(39/197)
039
바바라의 저주 사건에는 수수께끼가 많다.
아직도 해명되지 않은 부분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일단은 목숨부터 건지고 볼 일이다.
나는 옆구리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통각을 무시했다. 불필요한 감각은 차단하고, 외부의 적을 탐지했다.
‘공격 드론.’
드론은 효율적인 무기다. 원거리에서 안전하게 일방적으로 적을 공격할 수 있다.
위이잉.
나는 총격의 방향과 기동음을 듣고 드론의 위치를 알아냈다. 정원 북쪽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나와 지젤은 대리석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당장은 내 수중에 무기가 없어.’
난 맨손이나 마찬가지였다. 무기라곤 캔 따개로나 쓸만한 주머니칼이 전부였다.
‘드론을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지만…….’
위치를 알아냈기에 총격도 피할 자신이 있었다. 드론의 반응성으론 나를 맞히지 못한다. 아깐 방향조차 감지 못한 원거리 기습이기에 당했을 뿐이었다. 심지어 지젤만 없었다면 어찌어찌 피했을 터다.
‘문제는, 고속기동을 하다간 상처가 덧날 수 있다는 거지.’
적이 더 있다면 몸을 사려야 한다. 드론 하나 잡자고 몸을 험하게 굴리긴 싫었다.
총성이 울렸지만, 드론의 총구에는 소음기가 달린 터라 주변에서 알아챌지도 의문이었다. 일단은 자력으로 여길 벗어난다고 생각해야 한다.
‘코가 뭉개질 정도로 때려주마, 망할 년.’
나는 바바라의 얼굴을 떠올리며 전의를 다졌다.
“거울 있습니까?”
내 말에 지젤이 접이식 손거울을 안주머니에서 꺼냈다. 나는 손거울을 빼앗듯이 낚아채곤 반사를 통해 드론의 위치를 또렷하게 확인했다.
드론의 형체는 광택이 없는 검은색 표면 덕분에 밤하늘에 녹아내린 듯이 흐릿했다.
‘집중해라, 루카.’
나는 스스로 다독이며 눈을 느슨하게 감았다가 떴다. 감각이 확장되면서 주변의 사물이 명료하게 보였다.
휘릭!
나는 빙글 돌면서 대리석 기둥 바깥으로 뛰었다. 난 몸의 회전으로 원심력을 실어 주머니칼을 쏘아 보내듯 내던졌다.
은빛 궤적이 직선으로 솟구쳤다. 주머니칼이 유도탄처럼 드론에게 날아갔다.
카- 앙!
금속성이 일면서 불빛이 튀었다. 주머니칼과 프로펠러가 뒤엉키며 요란한 굉음이 터졌다.
투두두두!
드론은 날개가 찢어진 새처럼 추락하면서 사방팔방으로 총을 쏴댔다. 나는 눈먼 총알에 맞지 않으려고 바짝 엎드리며 머리를 보호했다.
나는 추락한 드론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았다. 주머니칼 하나로 드론을 완전히 박살 내긴 힘들다. 괜히 다가갔다가 총에 맞을 수 있었다. 하지만 비행 기능은 없앴으니 쫓아오진 못할 것이다.
내가 싸우는 사이에, 정신을 차린 지젤이 단말기를 조작하고 있었다.
“통신 기능이 작동합니까?”
내가 묻자, 지젤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내외부 통신 둘 다 안 돼요.”
내 단말기도 마찬가지였다. 십수 년을 굴러먹은 구형 단말기처럼 화면이 버벅거리다가 오류가 떠올랐다.
‘이게 일개 학생이 가능한 짓인가?’
단언컨대, 불가능하다.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더 있었다. 바바라에겐 어떤 배경이 있었다.
지직.
지젤의 단말기에서 잡음이 일었다.
-지젤, 지젤, 지젤. 나는 너를 보호하려 했는데, 왜 날 배신한 거야? 그리고 루카…….
잡음이 섞인 바바라의 목소리는 더욱 섬뜩했다.
-난 네가 좋아. 그러니까…… 나를 더 경멸해 줬으면 좋겠어.
나는 지젤의 단말기를 낚아채자마자 손아귀에 힘을 줘서 부쉈다. 조그마한 부품이 가루처럼 손바닥 아래로 떨어졌다.
“정신 나간 년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죠. 아마도 이번 일은…….”
나는 옆구리를 감싸며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근위대장의 딸이라도 지젤은 민간인이다. 더는 말해선 안 된다.
‘나보다 윗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근위대장이 미적지근한 반응이 떠올랐다.
‘나는 물론이고, 자신의 딸조차 미끼로 쓴 거야.’
어긋난 조각이 내 머릿속에서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내 상관이지만…… 비정하군.’
나는 지젤을 데리고 안전한 장소로 이동하려 했다.
정원 입구에는 낯익은 얼굴이 서 있었다. 나처럼 파견 나온 근위대 생도, 펠릭스 아이겐이었다.
“펠릭스, 상부의 명령이야?”
나는 펠릭스의 얼굴을 보자마자 물었다. 그는 칼과 권총을 챙겨 나를 지원하러 온 모양이었다.
“그래, 또 너만 특별 취급을 받은 모양이네. 난 이번 작전에 대한 언질을 아무것도 받지 못했는데 말이야.”
펠릭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사전에 연락받지 못한 건 마찬가지야. 나도 일이 터지고 나서야, 상부의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았어.”
근위대는 큰 그림을 그리며 활동하고 있었다. 아무리 말단이라지만, 우리에게도 철저하게 숨겨야 할 만큼 비밀리 움직였다.
“잠, 잠깐만요. 지금, 이게 전부 아버지의 계획이라고요?”
나와 펠릭스는 군인이기에 소모품이나 도구로 취급당해도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지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기야, 그 지시가 아버지에게부터 내려왔으니…… 감정적으로 흔들릴 만했다.
펠릭스는 지젤의 반응보다 내게 신경 썼다. 그의 시선이 내 옆구리 부상에서 멈췄다.
“심각해?”
“당장 치료 안 하면, 내일 아침쯤 변사체로 발견될 정도?”
“아직 문제없다는 소리네.”
나는 피식 웃었다. 펠릭스가 칼은 자신이 쓰고, 부상자인 내게는 권총을 던졌다.
펠릭스는 단말기를 꺼내 상부에 보고하려 했다. 그의 단말기는 멀쩡한 듯했다.
“지금 루카와 지젤 쿠스토…….”
펠릭스는 보고를 마치지 못했다.
타앙!
총성이 울렸다. 총알은 펠릭스의 단말기를 부수며 그의 오른손도 같이 날렸다.
펠릭스는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나와 그는 약속한 것처럼 좌우 흩어지며 정원 입구의 벽에 붙었다.
키잉!
나는 지젤을 내 뒤로 끌어당기며 권총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그리고 반대편 벽에 숨은 펠릭스와 시선을 교환했다.
‘노련한 상대다.’
기습을 당했다지만, 우리는 적의 기척을 감지조차 못했다. 총성이 바로 들렸으니 장거리 사격도 아니었다.
지금 나타난 적은 기척을 죽이고 암습하는 훈련을 받았다는 뜻이다. 근위대 생도인 우리의 감각을 속일 정도로.
‘루카, 엄호를 부탁해.’
펠릭스가 입술만 움직여 말했다. 그는 칼을 들고 총격이 날아온 방향으로 달려갈 생각이었다. 우리가 집중한다면 총알 정돈 얼마든지 튕겨낼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이! 이야기 좀 하자고. 내가 작정하고 머리를 노렸다면, 너희 둘 중 하나는 이미 죽었을걸?”
정원 입구로 이어진 길 끝에서 습격자가 말했다.
습격자는 굳이 말을 걸어서 자신의 위치를 우리가 특정할 수 있게 했다. 실력에 대단히 자신이 있는 듯했다.
나와 펠릭스는 빠르게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계획을 수정했다.
‘내가 습격자와 이야기하는 동안, 펠릭스는 우회 기동해 적의 뒤를 노린다.’
작전 수립은 한순간이었다. 펠릭스는 신발을 벗더니 바로 발소리를 죽이며 움직였다. 그리고 나는 목청을 높였다.
“이야기? 우리가 누군지는 알고 이야기를 하자는 건가?”
적은 우리가 작전을 짰다고 생각조차 못 할 것이다. 거의 곧바로 대답한 거나 마찬가지니까.
“잘 알고 있지. 귀여운 생도 나리 아니신가! 나도 시간이 별로 없으니 바로 용건을 말하겠다. 지젤 쿠스토리아를 이쪽으로 넘겨라.”
“납치해서 몸값이라도 두둑하게 받으려고?”
나는 어떻게든 시간을 끌려고 했다.
“우리 공주님께서 그 여자를 가지고 싶어 하거든. 나도 애들 상대로 이러고 싶진 않아. ‘너’도 군인이니 무슨 말인지 알겠지? 내키지 않아도 명령이니까.”
습격자의 말을 듣던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말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너희가 아니라 너라고 말했어.’
습격자는 펠릭스가 우회 중인 걸 알고 있다!
나는 총을 맞을 각오를 하며 벽 너머로 머리와 어깨를 내밀었다. 당장 펠릭스를 엄호해야 한다.
우둑!
고개를 내밀자마자 들리는 건 뼈가 부러지며 어긋나는 소리였다. 요란하지도 않았다. 정적인 파열음이 고요히 내 귀에 닿았다.
‘펠릭스가 당했다.’
난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습격자는 펠릭스의 목을 쥐고 있었다. 한 손으로 펠릭스의 목을 부러뜨린 그는 나를 보고 있었다.
펠릭스의 팔다리는 축 늘어진 채로 간헐적으로 경련하고 있었다. 그가 쥐고 있던 칼이 바닥에 덩그러니 떨어졌다.
난 복잡한 감정을 한쪽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지금은 적에게 집중해야 한다.
기이잉.
습격자는 전신을 감싸는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드러난 틈이 전혀 없는 밀폐형 전신 전투복이다.
전투복의 표면은 일렁이듯 도색이 뒤바뀌었는데 주변의 풍경과 사물에 따라 색상이 자연스레 변했다. 위장변색 기술이 적용된 전투복이었다.
‘우리가 감지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군.’
습격자는 펠릭스를 옆으로 내던지며 나를 쳐다봤다.
기이잉.
습격자의 헬멧에서 두 쌍의 안광이 붉게 빛났다. 더는 위장이 필요 없었기에 전투복의 색상은 검정에서 고정됐다.
탕!
나는 습격자의 머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적의 반응 속도를 보기 위해서였다.
습격자는 머리를 옆으로 젖혀서 총알을 피했다. 상당히 빨랐다. 펠릭스가 허무하게 당할 정도니 상대는 근위대원 수준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거 좀 힘들겠는걸.’
나는 한쪽 입술만 씰룩였다.
“지젤, 제가 싸우기 시작하면 전력으로 달려서 도망가세요. 뒤도 돌아보지 말고요. 최대한 시간을 벌어보겠습니다.”
“저는…….”
나는 지젤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말싸움할 시간은 없어. 시키는 대로 해.”
내가 으르렁거리듯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이게 최선이다. 그리고 적의 목표는 지젤를 생포하는 것이다. 지젤이 도망가기 시작하면 시선 분산의 효과도 있을 터다.
나는 엄폐 역할을 하는 벽에서 걸어 나왔다.
“하룻밤 사이에 후배를 두 명이나 죽이긴 싫은데 말이지.”
습격자가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
‘후배?’
나는 잠시 그 단어에 신경이 팔렸다.
휙!
습격자는 어느새 내 앞까지 달려왔다. 엄청난 속도였다. 그가 움직인 궤적을 따라 안광이 너울너울 흔들리고 있었다.
콰득!
나는 양팔을 교차해서 습격자의 발차기를 막았다. 그리고도 이십여 미터는 붕 떠서 날아갔다.
“이 정도로 감각을 흐트러뜨리다니! 귀엽구만, 정말!”
습격자가 나를 날리며 쾌활하게 웃었다.
까득!
나는 너무 분해서 혀를 깨물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모든 역량을 부딪쳐도 이길까 말까 한 상대다. 사고와 신경을 전투에 오롯이 쏟아야 하는 판국에 다른 생각을 했다. 한심하구나, 루카.
한 가지 다행이자 열 받는 점은, 적이 나를 우습게 본다는 점이다. 칼과 총도 쓰지 않았고, 추격타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놈은 내가 준비할 시간까지 줬다.
끼릭, 끼릭.
내 오른쪽 의안이 요동치듯 빙글빙글 돌았다. 생체 안구라면 불가능한 움직임이다.
막대한 시각 정보가 내 뇌로 스며들고 있었다. 시각중추가 있는 후두엽이 뜨거워진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나는 입력한 시각 정보를 뇌 내에서 3차원 지도로 재구성했고, 반경 백 미터 이내의 모든 사물을 인지했다. 수십 년을 살아온 집처럼, 주변 사물의 위치를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아키에스 전투술.’
그 본질은 뇌 손상조차 개의치 않는 극단적인 분석과 통찰. 시작은 오감을 확장해 주변의 환경을 장악하듯 인지하는 것.
열병에라도 걸린 듯이 머리가 지끈거리며 이마에서 열감이 올랐다.
탕!
나는 습격자를 향해 연거푸 사격했다.
휙!
습격자는 몸을 좌우로 흔들며 총알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빠르게 내게 접근했다. 그의 시선은 찰나였지만 도망치는 지젤을 보고 있었다.
나는 탄창이 빈 권총을 내던지며 움직였다. 뒷걸음으로 뛰면서 정원 입구의 벽 가까이 붙었다. 그리고 보지도 않고 도약해 벽을 훌쩍 넘었다. 내 머릿속의 가상 입체 지도와 현실이 완벽하게 일치했다.
벽 반대편으로 넘어가던 나는 공중에 뜬 채로 담벼락을 박차 멀리 이동했다.
내 동작에는 찰나의 낭비도 없었다. 속도가 부족하더라도 군더더기가 없기에 습격자는 나를 따라잡지 못했다.
‘칼 좀 빌리겠다, 펠릭스.’
내가 착지한 곳은 펠릭스의 시신 옆이었다. 나는 그의 칼을 잡아서 빙글빙글 휘둘렀다. 고속기동을 시작하니 슬슬 옆구리의 출혈이 심해지고 있었다.
“방금 너, 보지도 않고 사물의 위치를 파악하고 움직였군. 아키에스 특유의 최적화지?”
습격자가 벽 위에 쪼그려 앉은 채로 나를 가리켰다.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습격자는 뭔가 생각하듯 턱을 매만지더니 말을 이어갔다.
“……아키에스 빅티마를 익힌 것 같으니, 죽이진 않겠다.”
나는 눈썹을 치켜뜨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내 상관도 아니면서, 내 머리 위에 있는 것처럼 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인간상이 몇 없긴 하지만, 놈은 특히나 내가 싫어하는 유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