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4)
배드 본 블러드-4화(4/197)
004
내 오른쪽 의안이 돈값을 하고 있었다. 의안이 가시광선 파장을 확장해 흡수하며 주변 사물을 인식했다. 빛 증폭과 보정 처리가 된 시야가 대낮처럼 훤했다.
내게 절벽에 서 있는 코라인 두 명이 보였다. 그들은 소매와 옷자락이 펄럭이며 나부끼는 옷을 입고 있었다. 원래 하얀색이었을 옷은 낡고 바래 회색처럼 보였다.
코라인 두 명은 담배를 꺼내더니 하나씩 입에 물었다. 라이터의 불꽃이 환하게 일렁거리다가 사라졌다.
나는 눈을 깜빡여 의안의 안광을 끄며 손을 들었다.
‘나는 왼쪽, 너는 오른쪽.’
짧은 수신호를 보내 역할을 나눴다. 나와 일레이는 좌우에서 동시에 전초기지를 습격할 것이다.
휙!
내가 가장 먼저 절벽 위로 올라갔다. 땅을 박차며 칼자루를 잡았다.
뎅- 겅!
나는 담배를 피우는 두 사내 사이로 스치듯 지나갔다. 그들이 떨어뜨린 담배꽁초가 빨간 불빛을 끌며 떨어졌다. 그리고 두 사내의 머리도 바닥을 굴렀다.
내 공격을 신호로 삼아 침묵의 학살이 시작됐다.
휘릭!
나와 생도들은 전초기지에 들이닥쳐 보이는 족족 베고 찔렀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잉!
뒤늦게 경보가 전초기지 전체로 번져 나갔다. 기지의 전면이 소란스러워졌다. 전면을 지키던 경비들이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아, 아크레……!”
저들은 우리의 절도 있는 모습과 복식을 보고선 정체를 대번 알아챘다. 그리고 이내 겁에 질렸다. 이래서야 싸우기 전에 패배한 거나 마찬가지다.
타- 앙!
적의 총성이 퍼졌다. 공포에 질려 아무렇게 쏜 총이다. 그걸 맞는 머저리는 우리 중에 없었다. 다들 알아서 흩어졌다.
투두두두두!
사격이 연거푸 이어졌다. 나는 능숙하게 화망을 벗어나며 우회해 나아갔다. 다른 생도들은 일시적으로 몸을 숨기거나 시체를 방패로 삼았다.
나는 기관총을 쏘는 코라인의 옆으로 접근했다. 그는 황급히 총구를 돌리려다가 늦었다는 걸 알곤 권총을 뽑으려 했다.
“이, 악, 악마!”
코라인이 나를 보며 외쳤다. 나는 어깨만 살짝 으쓱하며 칼을 휘둘렀다.
스- 겅!
코라인의 머리가 관자놀이를 중심으로 상하로 분리됐다. 인중과 턱의 붉은 단면이 비현실적으로 매끄럽게 드러났다.
나는 머리가 날아간 코라인을 발로 밀어서 넘어뜨렸다.
‘……쉽군.’
나와 일레이 둘이서도 이런 전초기지는 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우린 제국의 엘리트 군인이 될 재목이니까.
나는 혼란에 빠진 전초기지 내부를 산책하듯 걸어 다녔다.
“어, 어머니, 엄, 엄마, 엄마…….”
나는 소리를 듣곤 고개를 돌렸다. 내 또래의 코라인이 땅바닥을 기고 있었다. 처음에는 다리에 부상이라도 입은 줄 알았다.
‘그냥 겁에 질려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거로군.’
멀쩡한 다리를 쓰지도 못하고 있었다. 한심하다.
“아, 아…….”
어머니를 애타게 찾던 코라인 소년이 내 기척을 느끼곤 고개를 들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며 소년과 눈을 마주했다.
‘제국 신민의 안녕과 황제 폐하의 영광을…….’
나는 소리 내지 않고 입만 움직여 읊조렸다. 마음을 다잡으려 했다.
그러나 나는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 손을 멈췄다. 차라리 저 소년의 손에 칼이나 총이 있다면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 개운하게 목을 벴겠지.
‘……무저항의 비전투원.’
하지만 내가 받은 명령은 이곳의 코라인을 전부 죽이는 것이다.
푹!
나는 칼을 내리찍었다. 칼은 소년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가며 땅에 박혔다.
“죽은 듯이 엎드려 있어. 그럼 살 수 있을 거다.”
내가 칼을 빼내며 속삭였다. 내 마음에서 동요와 불안이 일었다. 지금의 행동을 다른 생도가 알아챈다면, 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충동적으로 위험을 무릅썼다. 곧바로 살인으로도 생기지 않던 죄의식이 몰려왔다.
‘이러면 안 돼, 루카. 제국의 명령은 지엄하다. 어겨선 안 돼.’
지금이라도 저 소년의 목을 그어야 한다.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소년을 사납게 내려다봤다. 제국의 명령이 내 등과 손을 떠밀고 있었다.
지금 내 육신은 나의 의지가 아닌 제국의 의지로 움직이려 한다. 난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망설이고 있다.
타- 앙!
총성이 퍼졌다. 총알은 소년의 머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소년은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기도 전에 죽었을 것이다.
‘일레이?’
나는 총성의 시작점을 응시했다. 건물 옥상에는 일레이가 서 있었다. 그의 권총에선 연기가 흐느적거리며 흘러나왔다.
일레이는 나를 보며 머리를 좌우로 살짝 저었다. 모든 걸 보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일레이다. 그래서 난 안도했다.
‘지금 내 행동을 본 게 일레이가 아닌 다른 생도였다면…….’
나는 그 생도의 입을 어떻게든 막아야 했을 것이다. 설득과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최악의 방법으로라도.
‘일레이는 내 망설임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겠지. 어쨌거나 오늘의 머저리는 나로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똑똑히 깨달았다. 이름도 모를 코라인 소년에게 자비를 베풀겠다고 나와 동료를 위험에 빠뜨릴 뻔했다.
나는 턱짓으로라도 감사의 인사를 하려고 건물 옥상에 있는 일레이를 재차 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우우웅!
일레이의 옆에서 공기층이 일그러졌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내 최첨단 의안조차 상황을 바로 파악하지 못했다. 물리법칙을 넘어선 현상이기 때문이다.
쾅!
일레이 곁에서 폭발이 일었다. 어떤 폭발물이 날아온 게 아니었다. 주변의 공기가 일그러지다가 팽창했을 뿐이었다.
“이, 이 쓰레기 같은 새끼들아아아아-!!”
거친 목소리가 쩌렁쩌렁 퍼졌다. 나는 황급히 일레이가 있던 곳으로 뛰어갔다.
폭발에 휘말린 일레이는 3층 높이의 옥상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루카, 포스 사용자가 있다. 방심했어. 면목이 없군.”
일레이는 벽에 기댄 채로 간신히 서 있었다. 그는 팔다리로 머리와 몸을 폭발로부터 보호한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 듯했다. 방패막이가 된 팔다리에선 부품과 전선 다발이 튀어나와 있었다.
“내가 처리할게. 넌 쉬고 있어.”
나는 전초기지의 중심에 있는 공터를 응시했다. 그곳에서 소란이 일고 있었다.
‘포스.’
나도 직접 마주하는 건 처음이다. 지식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일종의 초능력.’
포스 사용자는 물리법칙을 넘어선 현상을 일으킬 수 있었다. 일레이를 덮친 폭발도 그 현상의 일종이었다.
‘근위대장은 여기에 포스 사용자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미리 경고라도 해줬다면 일레이가 부상을…….
나는 공터로 뛰어가며 고개를 저었다. 멍청한 생각이다. 우린 모든 상황을 대비했어야 했다.
일레이는 부주의했기에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일레이의 부주의는 나 때문이기도 했다.
‘내 망설임 때문에 일레이는 부상을 입었다.’
오랜만에 자기 자신에게 환멸을 느꼈다. 다신 이러지 마라, 루카.
공터에는 이미 포스 사용자와 생도 간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여긴 군사기지가 아니야! 정착지라고! 너희들이 죽인 사람들은 그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포스 사용자가 울분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겉보기엔 평범한 중년 사내 같았으나 그의 피부 위로는 푸르스름한 오라가 흐르고 있었다. 코라인 특유의 펑퍼짐한 옷이 중력을 거스르듯 펄럭거렸다.
쾅!
포스 사용자가 손짓하는 방향으로 폭발이 일었다. 분노 어린 공격에 생도들이 이리저리 휩쓸리며 날아갔다.
탕!
쓰러진 생도 중 하나가 총을 쐈다. 포스 사용자는 얇은 막을 두르고 있었는데 약해빠진 권총탄에 꿰뚫리지 않았다.
‘상성이 좋지 않네.’
지금 우리의 무장으로는 상대하기 까다로운 적이었다.
‘당황할 것 없어.’
포스 사용자와 싸우는 건 처음이다. 그러나 상대하는 법은 이미 배웠다. 오늘은 실습하는 날이다.
‘실전이 이론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칼과 권총을 하나씩 꼬나쥐며 달려 나갔다.
탕! 탕!
무용지물인 걸 알면서도 나는 총을 쐈다. 놈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였다.
‘이 녀석은 내가 맡는다.’
나는 다른 생도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아직 우리가 이 전초기지를 완전히 점령한 게 아니다. 내 지시를 받은 생도들이 전초기지를 마저 점령하기 위해 흩어졌다.
“어, 어딜 가는 거냐! 이 새끼들아아아! 덤벼! 나한테 덤비라고!”
생도들이 흩어지자 포스 사용자는 오히려 당황했다.
‘역시 이 사내는 혼자서 미끼 역할을 하려는 거였군. 그 수에 당해줄 필요는 없지.’
나는 포스 사용자의 팔에 집중했다.
‘포스 능력에는 필요한 촉매와 행동이 있다. 그걸 보고 반응하면 돼.’
포스 사용자의 능력은 폭발이었다. 그리고 방아쇠와 총알처럼 명백한 선후 관계가 있었다.
포스 사용자는 손짓으로 폭발 방향을 정했다. 그리고 폭발 직전에는 그의 손에 사슬처럼 감긴 목걸이가 파랗게 빛났다. 저 목걸이가 포스 능력의 촉매였다.
‘손짓, 촉매의 광 반응, 그리고 폭발.’
일련의 과정이 있었다. 원리를 알았으니 주의하면 피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 오히려 총알을 피하는 게 더 어려웠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공격이기에 다른 생도들이 쉽게 당했을 뿐이었다.
쾅!
내 옆에서 폭발이 일었다. 나는 폭발 직전에만 속도를 높여가며 움직였다.
내 불규칙한 가속과 움직임을 본 포스 사용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쾅!
폭발이 다시 일었다. 내 예측보다 범위가 넓어서 나도 충격을 받았다. 휘청거리던 나는 바닥을 짚으며 옆으로 뛰었다.
콰- 앙!
내가 있던 자리가 폭발했다. 범위가 계속 커지고 있었고, 폭발 간격도 아까보다 빨랐다. 놈도 내 변칙적인 움직임에 대응하려고 방책을 짜냈다.
“끄으으으으……!”
포스 사용자는 굉장히 무리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핏발이 바짝바짝 서 있었다.
하지만 한계까지 움직이며 무리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지구전으로 가고 싶지만, 나도 고속기동을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해.’
고출력 의족이 있더라도 나머지 생체 부위가 오래 버티질 못한다. 급제동과 급가속 때문에 내 고관절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내가 먼저 무너진다.’
최속을 유지할 수 있을 때 달려들어야 한다.
휙!
나는 곧장 일직선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끝에는 포스 사용자가 서 있었다.
‘더 빠르게!’
나는 고통을 무시했다. 어차피 몸이 망가지면 제국에서 고쳐줄 것이다. 머리만 멀쩡하면 나머진 어떻게든 된다.
“후으으읍!”
포스 사용자가 숨을 가다듬으며 양손을 앞으로 크게 뻗었다. 나는 촉매 목걸이의 빛을 보며 폭발을 예상해 가속했다. 그러나 내가 예상한 폭발이 일지 않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사신의 낫이 내 목덜미까지 다가왔다.
‘속임수!’
한 박자 늦게 내 앞의 공기층이 일그러졌다. 포스 사용자는 본인의 능력을 노련하게 쓸 줄 알았다. 전투 경험이 풍부한지 임기응변도 빨랐다.
‘여기서 내가 뒤로 물러나면…….’
내 몸은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가속이 붙은 상태였다. 여기서 제동하면서 뒤로 물러났다간 내 고관절이 박살 날 것이다. 그러면 지금은 버텨도 다음 공격을 피하지 못한다.
‘오히려 더 속력을 붙여서 나아간다.’
결단은 찰나다. 이 판단으로 난 죽을지도 모른다.
나는 폭발의 전조를 보고도 물러나지 않았다. 일그러지는 공기층을 몸으로 관통했다. 피부는 뜨거운 가시에 닿은 것처럼 찢어졌다.
콰- 앙!
내 등 뒤에서 폭발이 일었다. 화끈한 통증이 내 등을 휘갈기며 지나갔다. 급박한 상황에서는 고통을 무시해야 한다.
나는 내 몸 상태가 어떤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로지 포스 사용자만 응시했다.
……드디어 내 칼이 놈에게 닿는다.
난 팔을 길게 뻗어서 칼끝을 포스 사용자의 가슴에 밀어 넣었다. 포스 방어막을 찢은 칼날은 그의 피부와 근육을 가르며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커, 커헉!”
포스 사용자가 비틀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그는 피를 토하며 촉매 목걸이를 든 손을 내게 뻗었다. 목걸이가 푸르스름하게 반짝거렸다. 포스 폭발의 전조 반응이다.
‘최후의 공격인가?’
내겐 그의 공격을 피할 여력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도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이, 이렇게 보니 너, 너도…… 어리구나…….”
포스 사용자가 중얼거리며 손을 내렸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우우웅!
그의 손에 모인 포스 오라가 흩어지면서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가더니 증발했다. 폭발은 없었다.
털썩!
포스 사용자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졌다. 생명이 꺼진 몸이 힘없이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