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40)
배드 본 블러드-40화(40/197)
040
내 근접 전투 능력은 생도 중에서도 최상위권이었다. 나름의 자부심도 있었다.
그러나 습격자는 내 자부심을 인정사정없이 부쉈다. 그는 명백히 나보다 우위에 있었다. 그가 손등과 손바닥을 가볍게 뻗을 때마다, 내 칼은 거짓말처럼 옆으로 빗겨나갔다. 그는 맨손으로 내 검격을 쳐내고 있는 셈이었다.
카- 앙!
나는 엇나간 칼을 가까스로 끌어 올려 습격자의 목을 재차 노렸다. 습격자는 비스듬하게 상체를 숙이더니 손바닥으로 내 가슴을 노렸다.
콰득!
칼자루의 밑바닥으로 습격자의 공격을 받아냈다. 나는 손가락이 부러질 것 같은 충격을 느끼며 뒤로 날아갔다.
‘놈은 날 적당히 봐주고 있어. 그게 아니라면 진즉 난 죽었을 거야.’
싸움을 시작한 지 5초도 지나지 않았다. 극한의 상황에서는 시간 감각이 비틀린다. 평소에는 그토록 짧은 1초가 지금은 1분처럼 길게 느껴졌다.
습격자는 우수했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체술이 뛰어났다. 적만 아니었다면 배우고 싶을 정도였다.
“물러나라, 꼬마야. 널 죽이고 싶진 않으니까. 내가 상대라는 걸 안다면, 네 상관도 널 책망하지 않을 거다. 근위대에서 무의미하게 목숨을 소모하라고는 가르치지 않을 테니까.”
습격자가 여유를 부리며 자신의 정보를 노출했다.
나는 상대의 정체가 뭔지 알 것 같았다. 제국이 철저하게 정보를 통제하더라도 입과 입을 통해 오가는 발 없는 소문까진 막지 못한다.
‘반제국주의 테러리스트 집단.’
소문만 무성한 ‘제국의 적’이 내 앞에 있었다.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갔다. 근위대는 테러리스트를 끌어내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섣불리 상급 부대가 움직이면 테러리스트는 자취를 감출 것이기에 신중을 기했을 터다나 같은 말단은 커다란 계획의 일부다.
뭐, 아무래도 좋다. 눈앞의 개자식이 나를 우습게 여기고 있다. 제국의 반역자 주제에, 감히 나를?
“후…….”
입김이 내 입술을 타고 올라가더니 흐트러졌다. 어쩌면 이게 내 마지막 숨결이 될 수도 있었다.
‘지금부터 내 부상은 무시한다.’
난 칼을 바로 세워서 눈앞까지 끌어올렸다.
지금부터 나는 칼이 된다. 결과는 둘 중 하나다. 내가 부러지거나 그 전에 적을 베거나.
적은 나보다 강하다. 역량의 부족함을 메꾸고 조금이라도 승산을 높이려면, 한 가지 조건을 깔아야 한다.
‘놈이 나를 죽이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걸 믿을 것.’
그러면 나는 생존과 방어를 도외시하고 공격만 할 수 있다. 역량의 부족함을 조금이라도 메울 미봉책이다.
콰직!
내가 땅을 박차며 뛰어나갔다. 의체의 출력을 최대치까지 높였기에 도약의 충격이 내 정수리까지 치솟았다.
피슛.
옆구리의 총상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내가 과다출혈로 죽기 전에 승부가 날 터니 상관은 없다.
카앙!
난 양손으로 칼자루를 잡고 전력으로 내리쳤다. 습격자가 요령 좋게 상체를 옆으로 기울이며 내 검격을 피했다.
퉁!
나는 앞발을 크게 내디뎌 몸을 회전해 칼을 휘둘렀다. 내 칼은 습격자를 쫓아가듯 빠르게 휘었다.
으득!
견디기 힘든 가속을 따라 내 허리가 비틀렸다. 옆구리의 총상에서 피부가 크게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공격 일변도이기에 내 빈틈이 고스란히 습격자에게 노출됐다. 간담이 서늘하다. 적의 반격이 내 심장과 머리를 부술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피하거나 방어하지 않는다.
오로지 공격.
내 전략에 적이 동요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놈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죽일 테면, 죽여봐라.’
이유는 몰라도, 놈은 아키에스 전투술 사용자를 죽이길 꺼렸다. 나는 그걸 믿고 나아가야 한다.
휘릭!
습격자가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방어하거나 물러나지 않았다. 곧게 들어 올린 칼로 그의 머리를 찌르려고 했다.
흠칫!
습격자가 제동을 걸며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그는 몹시도 짜증이 났는지 혀를 찼다.
“그 나이에 이 정도로 단련했으면서 기꺼이 제국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겠다는 거냐? 내가 널 죽이지 못할 거라 생각해?”
날 바로 죽일 생각이면 나불거리지 않겠지.
내 옆구리의 총상에서 새어 나온 피가 내 발밑까지 적시고 있었다. 굳이 출혈을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다. 몸이 차가워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심각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
날카롭게 갈아 올린 집중력도 곧 흐트러질 것이다.
“제국도 제국이지만…… 네 말투부터가 일단 재수 없어서 참기 힘들었거든.”
솔직히 말해서, 이게 내가 지금 싸우는 이유의 본질일 것이다.
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 따윈 위협도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저 오만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이게 아무래도 내 천성인가보다.
“그 반골 기질이 마음에 드는구나, 꼬마야. 확실히 넌 이쪽에 가깝군.”
습격자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는 헬멧의 입 부분을 열었다. 드러난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는 말을 차분히 이어갔다.
“내 이름은 릭 카이저, 공화주의자다.”
“아하, 테러리스트라고?”
“이왕이면 레지스탕스라고 불러주면 좋겠군.”
“지금부터 널 개새끼라고 부르면 된다는 소리지? 사람의 이름이 어떻게 개새끼지? 희한하네, 참.”
습격자는 대답 없이 헬멧의 입 부위를 닫았다. 렌즈의 안광도 진홍빛이었다. 조금 열이 받은 모양이다, 어쩌면 많이.
퉁!
습격자가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었다. 기잉, 기잉하면서 출력이 올라가는 소리가 났다. 이윽고, 통통 뛰던 그가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가 싶더니 코앞에서 나타났다.
진홍빛 안광이 사납게 나를 응시한다. 그가 주먹을 힘껏 쥐더니 내 안면을 향해 뻗었다.
정확히 머리를 노린 일격. 날 죽일 생각이다. 마음을 바꾼 모양이로군.
피하기에는 늦었다. 난 칼을 잡은 채로 양팔을 교차해 방어를 취했다. 이건 생존을 위한 방어가 아니다. 아주 잠시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콰- 지지직!
교차한 내 양팔이 부서지고 있었다. 흩날리는 부품과 파편 사이로 송곳과도 같은 주먹이 보였다.
모든 것이 느리게 재생한 영상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발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발끝으로 놈의 턱을 후려 찰 생각이다. 설사 내 머리가 먼저 부서지더라도, 내 다리는 뇌가 내린 명령을 수행할 것이다.
그래, 내 머리를 부숴라. 나도 네놈의 턱주가리를 날려버릴 테니까. 운이 좋다면 같이 죽기라도 하겠지.
콰직!
충돌이 일었다.
느리게만 흐르던 현실이 원래의 속도로 돌아왔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아직 난 죽지 않았다.
꾸우욱!
습격자는 내 목덜미를 쥐고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뻗었던 주먹을 용케도 통제한 모양이다. 장담하건대, 놈은 날아오는 총알도 손으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투둑, 툭.
내 회심의 발차기는 고철로 변해 땅에 떨어지고 있었다. 습격자는 반대편 손으로 내 발차기를 감싸듯 막더니 오른발을 으스러뜨렸다.
‘졌다.’
격이 달랐다. 그는 내 회심의 수조차 파훼했다.
놈이 나보다 좋은 의체를 쓰고 있다. 그러나 이번 패배는 의체의 성능 탓이 아니다. 같은 출력의 의체를 쓰더라도 내가 졌을 것이다.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내 양팔은 팔꿈치 아래로 산산조각 나 없었고, 오른발은 놈의 손자국을 따라 찌그러졌다.
“넌 내 화를 돋웠지. 마지막 기회다, 살려달라고 빌어. 그럼 목숨은 건지게 해주마.”
습격자가 내 목덜미를 쥔 채로 말했다. 나는 억지로 입술을 끌어올려 웃었다.
깡!
나는 그나마 멀쩡한 왼발로 습격자의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보호대를 잘 착용했는지 쇳소리가 났다.
“……하하, 좋아. 네게 우주의 가호가 있는지 한번 시험이나 해보자고. 혹시라도 살아남는다면, 키누안에게 안부나 전해라. 난 잘 있다고 말이야.”
그 말을 끝으로 습격자는 팔에 힘을 줬다.
우득!
오늘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건, 내 목뼈가 부서지는 소리. 이런 경험은 드물지.
* * *
유기체의 인간은 목이 부러지면 대부분 죽는다.
……대부분은 말이다.
나는 내 목덜미에 꽂힌 철침을 응시했다. 부러진 목뼈를 지탱하는 견인장치다.
뒷덜미를 매만져 보니 차가운 금속이 손끝에 닿았다. 끊어진 중추신경을 임시로 대체하는 외장 척추가 내 뒷덜미부터 꼬리뼈까지 차갑게 이어져 있었다.
외장 척추 덕분에 나는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었다. 목을 자유로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 말고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어이, 펠릭스. 말은 할 수 있어?”
난 상체를 옆으로 틀어서 병석에 누운 펠릭스를 응시했다.
“우, 으, 루, 루카? 아, 아파.”
“바보야. 목을 움직이려고 하니까 당연히 아프지.”
펠릭스는 맹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자신감 넘치던 쾌남은 온데간데없었다. 입가에서 흐른 침이 그의 베개를 적셨다.
난 펠릭스를 보며 쓰게 웃었다. 그는 재기불능이다. 펠릭스의 뇌 손상은 심각했다. 목이 부러진 채로 오래 방치된 탓이다.
반면에, 난 운이 좋았다. 내가 습격자에게 당한 직후, 근위대원 네 명이 지젤과 함께 나타났다고 들었다. 재빠른 응급조치 덕분에 뇌 손상을 입지 않았다.
내 목을 부러뜨린 테러리스트의 모습이 내 뇌리에 깊게 남아 있었다. 눈을 감아도 선명했다. 일종의 트라우마였다.
‘릭 카이저.’
내 앞에 나타난 테러리스트의 이름이다. 나는 그에게 당한 지 보름 만에 눈을 떴다.
‘웃기는군. 공화주의자라는 사람의 이름이 카이저라니.’
카이저는 황제라는 뜻이다. 냉소적인 유머였다.
나와 펠릭스의 병실 바깥에는 근위대원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문이 열리면서 근위대장 헤일라스가 우리를 찾아왔다. 정확히 말하면 나를 보러 온 것이다. 펠릭스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니까.
끼익.
근위대장이 제복을 입은 채로 내 앞에 섰다. 나는 목을 움직이지 못해서 그의 가슴만 볼 수 있었다.
“설 필요는 없네. 편히 앉아있게.”
근위대장은 내 눈높이에 맞추듯 의자에 앉으며 상체를 구부렸다. 그는 내 어깨너머로 펠릭스를 훑었다. 그의 눈빛에서 착잡함이 잠깐 스치고 지나갔다.
“……펠릭스는 자신의 역할을 끝까지 수행했습니다.”
나는 보고에 앞서서 펠릭스를 언급했다.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이어서 나는 근위대장에게 구두로 사건 경과에 대해 보고했다. 내 말을 들은 근위대장은 이번 사건에 대해선 서류로 보고서를 남길 필요 없다고 했다.
“릭 카이저, 본명은 릭 실바 누네즈. 제국의 일급 수배범이네.”
“처음 들어봅니다.”
“모든 수배범이 공개수배인 건 아니니까. 제국의 치부와 관련된 자는 더욱 그렇지.”
나는 움찔했다.
‘제국의 치부.’
제국은 완벽하고 무결해야 한다. 제국의 치부라는 말은 자칫하면 불온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런 단어가 근위대장의 입에서 나왔다.
“릭은 근위대 출신이군요.”
“자신의 입으로 말하던가?”
“저와 펠릭스를 후배라 칭했습니다.”
근위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테러리스트가 근위대 출신이라니, 비공개 수배범인 이유가 있었다.
“자네에겐 이번 작전의 전말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예의겠지. 사양할 건 없네.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자네에겐 있어.”
나는 근위대장의 말을 기다렸다. 그는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생각하는 듯했다.
“작전명 줄리엣은 오 년 전부터 준비된 계획이네. 목표는 반제국주의 테러리스트 집단 ‘네메시스’의 지휘부에 접근하는 것이지.”
“소탕이 아니라 접근입니까?”
근위대장이 단말기를 앞으로 내밀었다. 단말기의 홀로그램 렌즈가 빛나더니 조직도가 3차원 입체로 떠올랐다. 지금까지 조사한 테러리스트 집단의 조직도인 듯했다.
조직도는 굉장히 느슨하고 연관성이 없어 보였다.
“네메시스는 철저한 점조직 형태의 집단이네. 일반적인 방법으론 소탕하는 게 불가능해. 아무리 잘라내고 잘라내도 어디선가 계속 증식하지. 머리를 잘라내지 못하면 의미가 없어.”
나는 릭 카이저를 떠올렸다. 그는 아마도 네메시스의 핵심 인사였을 것이다. 그를 잡는 게 이번 작전의 목적이었을까?
“릭을 생포하는데 실패했으니, 작전은 실패한 겁니까?”
펠릭스의 죽음이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나는 심기가 불편했다.
근위대장 입가의 주름이 깊어졌다.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린 멋지게 성공했네, 루카. 우리 쪽 인물을 네메시스의 중심으로 잠입시켰어.”
나는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간만에,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네조차 어리둥절할 정도니까, 이번 작전이 성공한 거겠지.”
근위대장은 손으로 홀로그램을 옆으로 밀어냈다. 다음 화면을 본 내 눈동자는 커졌다. 바바라의 얼굴이 홀로그램으로 떠 있었다.
“바바라가 우리 쪽 사람이네. 네메시스가 그 아이를 해커로 영입했지. 오래전부터 바바라를 염두하고 있었을 거야. 우리가 그렇게 유도했으니까.”
침대의 난간을 붙잡은 내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내 원래 의체가 부서져서 다행이다. 보급형 의수가 아니었다면 분명히 난간이 부서졌을 테니까.
이번 작전을 위해 상부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기만한 것인가. 그중에는 근위대장의 딸, 지젤도 있었다.
“지젤도 알고 있습니까?”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내 감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말이었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네. 앞으로도 모르는 게 좋겠지. 내가 자네에게 이런 이야기까지 하는 이유를 알겠는가?”
근위대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처분.’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다. 내가 우수하다고 해도, 결국 언제든 잘라낼 수 있는 말단에 불과하다. 특히 아무런 배경이 없으니 처분하기가 더욱 편하겠지.
“……읽어보고 서명하게.”
근위대장이 품에서 전자 서류를 내밀었다. 잔뜩 긴장하던 나는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근위대장 헤일라스 쿠스토리아의 서명이 있는 입양 서류였다. 내 이름을 기입하는 칸만 공백이었다.
“쿠스토리아 가문에 온 걸 환영하네, 루카.”
헤일라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