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41)
배드 본 블러드-41화(41/197)
041
기이잉, 기잉.
나는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진동을 느꼈다. 내 동공과 입술이 절로 떨렸다.
안드로이드가 내 등에 박힌 외장 척추를 제거하고 있었다. 등골 좌우로 박혀있던 고정나사가 빠지면서 등골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당분간은 이물감과 통증이 있을 겁니다.
안드로이드가 피가 묻은 나사를 트레이에 하나씩 놓으며 말했다.
벽면의 디스플레이에서 내 의료 차트가 보였다. 난 목이 부러지는 치명상을 입었다. 의지나 근성으로 이겨낼 영역이 아니었기에 나도 이번만큼은 조기 퇴원을 하지 않았다.
으득.
나는 목덜미를 문지르며 머리를 움직였다. 간신히 붙은 목뼈의 주변 근육이 뻣뻣했다.
‘자칫하면 외장 척추를 달고 살 뻔했네.’
외장이든 내장이든 사이버네틱 인공척추를 단다면 재활 기간도 길어진다. 인공척추로 원래의 기량까지 회복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터다. 전신의체 시술에서도 신경계가 밀집한 척추가 가장 힘들고 까다로운 시술이다.
나는 눈을 감고 몸의 변화를 느꼈다. 인공척수를 통해 우회하던 신경계 신호가 정상적인 중추신경계를 통해 오가기 시작했다.
나도 그동안 외장 척추에 익숙해진 터라, 처음에는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뇌와 육체가 좀 더 착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실제로도 반응이 빨라져서 물컵을 잡다가 놓치기도 했다.
근위대 생도에게 이런 이물감은 하루 이틀이면 해결되는 문제다. 내 뇌가 오차와 간극을 금방 알아서 보정할 것이다.
‘우리의 뇌는 사이버네틱 의체와 전투에 적합하게 개조됐으니까.’
나는 일어서면서 생도복 외투를 걸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펠릭스의 병상 앞에 섰다.
“즐거웠다, 펠릭스.”
“루, 카. 가는 거야?”
펠릭스는 여전히 목 보호대를 찬 채로 누워있었다. 그는 그동안 몇 번이나 움직여서 부상이 덧났었다. 그의 지성은 유아 수준까지 내려갔다.
“……나는 가야지.”
내가 펠릭스의 앞날을 걱정할 건 없다. 그는 기업체까지 운영하는 명문가의 일원이다. 쓸모가 없어졌다고 굶어 죽게 놔두진 않을 것이다. 실제로도 신분이 대단해 보이는 귀족들이 병문안을 왔었다.
“루카.”
내가 나가기 전에 펠릭스가 있는 힘껏 말을 끌어냈다. 뒤돌아보니 그는 어떻게든 또박또박 말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너, 너의 앞날에 무운이 있길.”
나는 고개만 까닥였다.
난 앞으로 나아간다. 펠릭스는 여기까지다. 그뿐이지.
하지만 나는 펠릭스를 기억할 것이다. 지금까지 죽은 자들도.
* * *
아직 내가 쿠스토리아 가문의 편입됐다는 사실은 퍼지지 않았다. 근위대장의 말로는 정식으로 서류가 처리되려면 시간이 제법 걸린다고 했다.
‘집안에 깐깐한 원로들이 있어서 말이지. 뭐, 신경쓸 것 없네. 이 정돈 통과가 될 테니까.’
근위대장의 말이 떠올랐다. 쿠스토리아 가문의 인사는 사오십 년을 가문의 일선에서 활동하다가 원로로 물러났다. 쿠스토리아 가문 정도면 원로 제도를 도입해 세대교체가 유연하고 활발한 편이었다.
전임자가 죽기 전까진 세대교체가 없는 귀족 가문도 많았다. 제국의 귀족은 장수하면 이백 년 넘게 살기도 했다. 한 세기도 살지 못한 내가 보기에 까마득한 시간이다.
나는 근위대 훈련소 본관의 복도를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마녀 바바라.’
난 제국의 수배범 프로필 명단을 확인했다. 가장 최근순으로 정렬하니 바바라가 있었다.
바바라의 괴이한 행동과 일탈, 그리고 저주라고 불리는 일련의 사건들.
제국이 개입했다면 바바라의 저주라 불리는 안드로이드 폭주 사건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제국의 공작이고 바바라의 일탈인지는 애매했다. 그 모호한 영역 때문에 네메시스는 미끼를 물었다. 그들은 바바라를 크라치아 아카데미조차 농락하는 천재 해커라 판단하고 영입했다.
하지만 바바라는 제국 측의 인물이었다. 테러리스트 집단 네메시스의 중추에 접근하기 위해 준비한 첩자.
‘수어 년에 걸친…… 아니, 어쩌면 십수 년.’
난 아직도 바바라가 어떤 존재인지는 모른다. 그녀는 단순한 하층 출신의 이레귤러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유전자 단계부터 이 작전을 위해 설계된 인물일 수도 있었다.
내가 본 바바라의 괴기한 언행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었다. 그녀가 뒤틀린 인간이라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어쨌든 모든 건 우연이 아니다.’
아카데미에서의 나는 상부가 깔아둔 계획 위를 걸었을 뿐이었다. 그게 내 선택과 의지라고 착각하면서 말이다.
알면 알수록 제국의 깊이는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내가 키누안을 만나 아키에스 전투술을 배운 것도 상부의 계획이겠지.’
이제 나도 확신했다. 키누안의 말대로 이건 내 자유의지가 아니다. 자연스레 내가 키누안과 접촉하도록 상부에서 유도한 것이다.
의심은 꼬리를 물었다. 모든 게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내가 두 자리 숫자의 보육원에서 이레귤러로 올라온 것. 어쩌면 난 원래 이레귤러가 아닐지도 모른다. 난 한 자리 숫자 보육원에 들어갈 만한 재량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항상 이상했다. 보육원 시절에는 나만 이상한 사람인 것 같았다. 종이 다른 것처럼 그들과 교류하지 못했다. 근위대 훈련소에 오고서야 나는 또래와 동질감을 느꼈다.
‘그럼 나는 노력 끝에 열악한 환경과 유전자를 극복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난 엘리트 군인이 될 운명이었고 그 계획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일레이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나 같은 이레귤러가 있어야 사람들이 계급이동의 가능성을 믿으며 지금의 체제와 구조를 납득한다고 했다.
‘그만둬, 루카.’
나는 눈을 감았다. 생각이 꼬이고 있었다. 불온분자와 똑같이 생각하면 안 된다.
……모든 건 내 망상이자 억측이다.
근위대장이 이번 사건의 내막을 가르쳐준 것도, 어쩌면 시험일지도 모른다. 제국을 향한 충성과 군인으로의 마음가짐이 흔들리지 않는지 말이다.
‘내 인생을 바꿀 기회가 왔어.’
루카 쿠스토리아.
내 손으로 거머쥔 지위다. 안심하긴 이르다. 내 손아귀가 조금만 느슨해져도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놓쳐선 안 된다.
나는 눈을 감은 채로 걷다가 우뚝 섰다. 눈을 뜨니 키누안의 집무실이 보였다.
치이익.
문이 열렸다.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앉아있는 키누안, 찻잔과 책, 그리고 창문 쪽 선반에선 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 루카. 아카데미에서 청춘을 잘 즐기고 왔나?”
아닌 걸 알면서도 저런 말을 잘도 내뱉는다. 이젠 그의 화법이 익숙했다.
“즐겁다 못해 영영 훈련소로 못 돌아올 뻔했죠.”
“펠릭스의 일은 안타깝게 됐어. 우수한 생도였는데 말이야.”
정말로 안타깝게 여기긴 하는 걸까. 나는 그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
“저는 교관님의 가르침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일단은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키에스 전투술을 힘들게 익혀도, 레기온을 착용할 땐 무용지물이라며 화내던 자네의 모습이 떠오르는군.”
“뭐, 지금도 그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키누안이 차를 따라 내게 건넸다.
음, 여전히 맛이 떫고 쓰다. 이딴 게 내 일급보다 비싸다니, 여전히 믿기지 않는군.
난 찻잔에서 입을 떼며 키누안을 응시했다. 나는 테러리스트 릭 실바 누네즈, 젠장, 그냥 릭 카이저라고 생각하자. 그게 더 편하군. 하여튼 내 목을 부러뜨린 망할 테러리스트를 떠올렸다.
“릭이 교관님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자신은 잘 있다고 하면서 말이죠.”
“아, 릭 실바 누네즈? 그래, 잘 지내고 있다니 다행이군.”
키누안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눈썹조차 미동이 없었다.
“릭은 일급 수배범이자, 테러리스트입니다. 제 목을 부러뜨린 장본인이고요.”
“운이 나빴군. 아니, 좋았다고 해야 하나? 녀석과 마주하고도 살아남았으니까 말이야. 하기야 릭은 예전부터 성격이 물렀지. 여전한가 보군.”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테러리스트를 친밀하게 부르고 있었다.
“잘 아는 사이입니까?”
“알다마다, 근위대 동기였으니까. 우린 릭 라피두스라고 불렀네. 라피두스는 빠르다는 뜻이지. 그 별명대로 반사신경이 특출나게 빨랐거든. 의체의 성능만 받쳐준다면, 날아오는 총알조차 손가락으로 잡을 정도였지. 지금이야 기술 발전으로 그런 재주를 부리는 자가 꽤 있지만, 당시엔 독보적이었지.”
세상이 넓긴 한가보다. 키누안은 릭 정도의 전사가 많다는 듯이 말했다.
“아직도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라는 거군요.”
“자네가 뭔가 오해하는군. 퇴역병이지만, 난 아직 제국의 녹봉을 받는 몸이네. 테러리스트와 연락을 주고받을 정돈 아니야. 보아하니 릭의 안부 인사를 근위대장에게 말하진 않았나 보군.”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교관님이 즉결처형당할 수도 있는 내용이니까요. 적어도 제 눈과 귀로 확인한 다음에 보고하고 싶었습니다.”
반은 진심이고, 반은 호의를 사기 위한 말이었다.
“날 그리 배려할 필요는 없네. 이런 일로 처분당할 거라면 진즉 당했겠지. 자네의 마음만 받아두지.”
“그리고 만약 교관님이 처분을 당한다면, 그 전에 아키에스 전투술에 대해 더 알고 싶었습니다. 여러 가지로 들은 게 있어서요.”
“하하, 날 배려했다는 말보다 그편이 더 믿음이 가는군.”
나는 그간 있었던 일을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는 따로 명단을 모아둘 정도로 요주의 인물이네.’
수사관 질리언 캠벨의 말이었다.
‘아키에스 빅티마를 익힌 것 같으니, 죽이진 않겠다.’
테러리스트 릭 카이저가 내 머리를 통째로 부수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회생의 여지를 남기며 내 목을 꺾었다.
여기서 아키에스 빅티마가 뭔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 전투술,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 아키에스 전투술이란 게 뭡니까?”
나는 질질 돌려 말하지 않았다. 질리언 캠벨과 릭 카이저가 언급한 내용을 키누안에게 고스란히 전달했다.
키누안은 창밖을 보며 식어가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그는 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웃었다.
“생각보다 빨리 여기까지 도달했군, 루카 쿠스토리아.”
“벌써 들으신 겁니까?”
내 말에 키누안은 철벽같은 미소를 유지했다. 그의 정보망은 상부에도 뻗어있는 듯했다. 정말로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뭐, 그렇지. 이제 자네도 중심에 가까이 접근했어. 말단치고는 너무 많이 알고 있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겠지?”
“잘 알고 있습니다.”
내 입에서 기밀과 비밀이 새어나간다면, 난 죽은 목숨이다. 그리고 내 언행과 상관없이 상부에서 어떤 사건과 비밀을 통째로 묻고 싶어 한다면…… 그땐 나도 위험해진다. 쿠스토리아라는 이름이 그나마 막아주겠지만 말이다. 그 때문에 근위대장이 서둘러 나를 가문원으로 편입시킨 것이다.
“아키에스 빅티마의 역사는 자네의 생각보다 훨씬 깊네. 제국이 노바스 행성에 정착하기 이전의 시대부터 언급해야 하지. 그리고 그 창시자는…….”
키누안이 미소를 거뒀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3518년, 제국 역사상 최초로 반군의 봉기를 주도한 노엘 뮬리즈카네. 반군의 리더이자, 아키에스 빅티마를 만들고 메타 전투술 이론을 제시한 인물이지.”
아키에스 빅티마는 태생부터 불온한 전투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