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rn Blood RAW novel - Chapter (42)
배드 본 블러드-42화(42/197)
042
‘3518년, 최초의 반란.’
200년도 지난 까마득한 과거의 연도였다. 한 세기도 살지 못한 내겐 너무나 머나먼 일처럼 느껴졌다.
키누안은 3518년에 제국에서 반란이 있었다고 말했다.
“처음 들어봅니다. 제국에서 숨기는 역사입니까?”
“숨기지도 않지만, 가르치지도 않지. 관심이 없다면 모를 수밖에.”
나는 이야기를 더 들어도 될지 고민했다. 키누안도 내 갈등을 알아챘는지 잠시 기다렸다.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는 어떻게든 반군, 아니 테러리스트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겠군요. 아무래도 뿌리가 뿌리니까요.”
고민 끝에 내가 말했다.
“그게 제국에서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 현황을 파악하고 명단을 만든 이유지. 하지만 질리언 캠벨 수사관도 아키에스 빅티마가 반군과 관계가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을 거네. 노엘 뮬리즈카가 만든 전투술이라는 건 몰라.”
노엘 뮬리즈카와 아키에스 빅티마의 관계성이 기밀 사항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곱씹었다.
“노엘이 아키에스 빅티마의 창시자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 겁니까?”
“정확히 말하면, 노엘이 업적을 남긴 전투 이론가라는 걸 감추고 싶은 거지. 반군의 리더라는 건 제국에서 경멸받아 마땅한 낙인이네. 하지만 아키에스 빅티마를 비롯해 노엘이 정립한 전투 이론은 지금도 제국군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지. 제국군의 공로자이면서 최악의 범죄자인 거지.”
키누안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많은 의문을 동시에 떠올렸다.
“아키에스 빅티마는 제국의 제식 전투술이 아닙니다. 추구하는 방향성도 다르고요.”
“아까 말했지만, 아키에스 빅티마는 노엘이 창시한 전투술 중 하나네.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고.”
나는 노엘 뮬리즈카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했다.
‘아키에스 빅티마 같은 전투술을 몇 개나 만들었다고?’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키누안이 괜히 천재적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
“반역자가 아니었다면, 제국에선 위인으로 떠받들고 있겠군요.”
내 말에 키누안이 부정하지 않고 웃었다. 내 입으로 내뱉었지만 불온한 말이었다. 반역자이자 위인이라니.
키누안은 어디서부터 이야기할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가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우리 인류의 선조가 아프리카 황야에서 경쟁자의 머리를 돌덩이로 내리치던 날부터…… 태양계 너머의 은하를 탐사할 때까지, 우리 인간은 타고난 피와 살로 싸웠네. 그렇게 수천 년이 지나고, 초인간의 시대가 마침내 도래했지. 생명공학과 기계의 발전으로 말이야.”
우린 타고난 생물학적 한계를 넘었다. 그걸 가지고 거창하게 초인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 역시도 현재는 ‘일반적인 범주의 인간’이니까.
하지만 과거의 인류는 달랐으리라. 모두가 유기체이던 시절에는 뇌 신경계를 강화하고 팔다리를 기계로 바꾼 인간이 초인처럼 보였겠지, 혹은 괴물로.
“총화기의 등장으로 냉병기 시절의 전투술이 장식이 된 것처럼…… 초인의 시대에선 유기체 인간 시절의 전투술이 통용되지 않았지. 사이버네틱스 기술은 인간을 기다려주지 않고 빠르게 발전했네. 그때마다 전투방식은 수없이 바뀌었고, 어느새 인간은 총알조차 피할 수 있게 됐지.”
“새로운 전투방식과 이론이 필요했군요.”
“신체의 일부를 대체하던 수준에서 전신의체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의 과도기가 있었네. 그동안 많은 전투법과 이론이 나타나고 사라지길 반복했지. 그리고 이론과 방식을 집약하듯 한 천재가 나타났네. 시대가 부른 천재지.”
그게 바로 노엘 뮬리즈카였다. 과도기의 방점을 찍고 안정기를 여는 필연의 존재. 어느 분야에든 그런 존재가 있었다. 시대, 운, 재능…… 이 모든 게 맞아떨어져 하나의 점으로 모였을 때 나타나는 위인.
“근위대에서 배우는 탄도통제술도 노엘 뮬리즈카가 만든 거네. 그전까진 총알을 피하고 튕기는 건 전설적인 군인과 용병들이나 가능한 기술이었네. 전장과 사선을 수없이 넘어가며 육감과 직관을 극한으로 갈고 닦은 자들의 영역이었지. 노엘은 그걸 이론화하고 정립해 ‘우수한 군인’ 수준에서도 쓸 수 있게 만들었어.”
이건 놀랍다. 탄도통제술이 이미 이백 년 전에 정립되었을 줄이야.
키누안은 노엘 뮬리즈카의 업적을 몇 개 열거했다. 전부 말한 것이 아니라 일부인데도 내가 이름을 들어본 전투술과 이론이 많았다. 사이버네틱 의체의 출력과 부피, 무게의 비율에 따른 순발력의 최적화 황금비도 노엘의 공식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어떤 계기와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제국군의 비상임 고문이었던 노엘 뮬리즈카는 제국에 반기를 들었네. 하지만 전면전은 무리였어. 이미 제국군은 강대했으니까. 노엘은 비정규전 형태의 게릴라 활동을 위해 방향성이 완전히 다른 전투술을 새로이 만들었지. 그게 아키에스 빅티마네.”
나는 이제야 아키에스 전투술의 특수성을 완전히 이해했다. 게릴라 활동을 위한 전투술이라면 그간의 단점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뇌의 기능 이상 따윈 상관이 없었군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으며, 다들 오래 살 생각을 하고 싸우는 게 아니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비정규군이니 통일된 규격과 제식도 없을 테고, 자신의 상황과 환경에 맞게 대처하는 유연한 전투술이 필요했을 거고요. 훈련소를 세워서 군대의 질을 높이기가 힘드니 우수한 소수를 중심으로…….”
내가 말을 쏟아내다가 다물었다. 키누안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노엘은 아키에스 빅티마의 적합자만 측근과 장교로 삼았네. 그 소수의 정예가 반군의 모체이자 머리인 거지.
나머지 말단은 언제든 떼어낼 수 있는 꼬리였네. 노엘의 반군은 그렇게 제국에 저항했지. 제국의 대대적인 소탕 작전으로 전멸한 것 같아도, 아키에스 전투술을 익힌 소수 측근만이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제국 전역으로 흩어져 국지전과 게릴라를 벌였지. 제국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야 어디든 있었으니 ‘소모’할 병사는 쉽게 모집할 수 있었고.”
반군은 아무리 짓밟아도 어디선가 다시 싹이 트는 잡초와도 같았다.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는 그 특성상 어떻게든 활로를 찾아내 살아남을 테니까. 심지어 고성능 의체를 착용하지 않아도 전투를 벌일 수 있으니 평범한 시민으로 위장하기도 쉬웠을 것이다.
여기서 잠깐 생각을 해보자. 비전투용 의체를 가진 자가 반군의 핵심 인물일 거라고 생각하겠는가? 어쩌다가 불심검문에 걸려 전투의체 군인 네다섯이 가로막더라도 아키에스 전투술 사용자는 쉽게 빠져나갈 것이다.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진다. 아키에스 전투술 사용자는 제국 각지로 흩어져서 제국의 주요 시설을 타격했을 것이다. 그리고 꼬리가 잡히면 현지에서 모집한 부하를 미끼로 던지고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면 그만이다. 고성능 의체 없이도 어느 정도의 전투력을 유지하니까 추적도 힘들다.
그럼 제국은 어떻게 반군의 뿌리를 뽑아냈단 말인가?
……이윽고, 나는 무시무시한 상상을 했다. 내 추측이 맞는지 궁금했다.
“당시에 제국은 노엘의 반란을 어떻게 진압한 거죠?”
“구분이 힘드니 의심 가는 자는 모두 죽였네. 당시에는 자신의 신원을 증명해 줄 사람이 없다면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하더군. 제국이 극단적인 강경책을 택하니 아키에스 전투술 사용자조차 하나씩 죽어 나갔지. 민간인들도 외지인이 나타나면 반군이 아닐까 고발부터 시작했네. 자칫하면 대량 학살로 인해 자신의 지역이 쑥대밭이 될 테니까.”
난 무고한 자가 얼마나 죽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 단위는 내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노엘도 그렇게 죽은 겁니까?”
“비공개 처형으로.”
제국군의 핵심 공로자였던 노엘 뮬리즈카의 반역, 제국의 대량 학살…….
그리고 비정규전 게릴라에 호되게 당한 제국군 입장에서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를 따로 관리하는 것도 당연했다.
바깥으로 퍼져선 좋을 게 없는 내용이었다. 특히 노엘 뮬리즈카의 유산은 아직도 제국군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나는 눈을 옅게 떴다. 그리곤 빳빳하게 고개를 들어서 키누안을 똑바로 보았다.
“근위대장님이 저를 보낸 까닭은…… 키누안 교관님이 테러리스트와 연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까?”
키누안이 가볍게 손뼉을 두 번 쳤다.
“정답이네, 루카. 내가 네메시스와 내통하고 있다는 증거를 찾거나 밝혀낸다면 자넨 단숨에 근위대의 중심으로 갈 수 있을 거야.”
말도 안 된다. 어떻게 근위대원, 그것도 공로를 인정받은 교관이 테러리스트와 내통한단 말인가? 그리고 근위대장이 그렇게 의심하고 있다면 왜 키누안을 자유로이 내버려 두는 것이지?
나는 키누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 깊이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반면에, 그는 나에 대한 모든 걸 아는 것 같았다.
“저는 교관님이 테러리스트와 내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네는 그럴지 몰라도, 근위대장의 생각은 다르지. 자네의 출세를 위해 조금 귀띔해 주자면 말이야. 내가 하층 구역에 있던 시절의 흔적을 조사해서 찾아보게.”
키누안의 말이 도발처럼 들렸다. 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오늘 들은 이야기는 근위대장님께 보고하겠습니다.”
“다음에 보세나, 루카.”
키누안이 일어서더니 손수 문을 열어 나를 배웅했다.
훈련소 본관을 벗어난 나는 걸음을 멈췄다. 나는 호흡을 고르며 감정을 가라앉히려 했다.
……조금 흥분해서 거칠게 말하자면,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들 날 우습게 보고 있다. 근위대장과 키누안은 나를 이용해 서로의 의중을 떠보고 있었다.
위험하다. 일이 어긋나면 나는 ‘소모’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난 이딴 일로 소모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려고 여기까지 기어 온 게 아니다.
* * *
다음날, 나는 네트워크에 접속해 노엘 뮬리즈카과 최초의 반란에 대해 조사했다.
내 열람 이력을 상부에서 보겠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내가 어느 정도 깊게 발을 내디뎠다는 건 그쪽에서도 알 테니까.
‘당연하게도 별다른 기록과 정보가 없군.’
3518년에 큰 반란이 있었고, 제국이 진압했다는 내용이었다. 내 수준에서 접촉 가능한 정보는 이 정도였다.
특히 노엘 뮬리즈카에 대해선 기록을 말살했다는 게 확연하게 보였다. 반란의 주동자라고만 간략히 나올 뿐이었다. 전투 이론가, 군의 기여자 같은 기록은 없었다. 심지어 그 흔한 사진 한 장조차 찾을 수 없었다.
‘이백 년에 걸쳐 흔적을 지웠으니 제대로 남은 게 없겠지.’
아키에스 빅티마도 마찬가지다. 원류를 알 수 없는 삼류 전투술 중 하나로 나와 있었다.
‘역시 공식적인 루트로는 안 되는군.’
키누안의 배경을 캐려면 하층 구역으로 가야 한다.
나는 근위대장에게 면담을 신청했고, 이십 분도 지나지 않아서 허가가 떨어졌다. 다른 생도라면 하루 이틀은 걸렸을 것이다.